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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7km 직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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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7km(292마일) 직진하세요”

미국에서 생활하다보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내비게이션 안내 화면이다. 미국의 국토가 한국에 비해 넓다는 것은 알고 있던 바이지만, 막상 이런 내비게이션 안내를 접하면 우리가 정말 좁은 곳에서 아등바등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서울 광화문(세종대로 사거리)에서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까지 자동차로 이동할 때 내비게이션에 찍히는 거리는 414.2km이다.

한국이라면 가득 주유하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운전해서 이동할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주행한 적도 적지 않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웬만한 주의 크기가 대한민국보다 크기 때문에 몇 개 주를 거쳐 목적지로 이동하려면 중간에 주유하고, 식사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미국의 고속도로에는 한국의 고속도로에서 볼 수 있는 휴게소가 없다. 고속도로 진출로마다 조성된 ‘주유소 타운’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동네에는 주로 여러 브랜드의 주유소와 패스트푸드 식당이 함께 모여있어서 자신이 좋아하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평소 자주 이용하던 브랜드나 근방에서 가장 기름값이 저렴한 주유소를 이용하면 된다.

다만, 기름값이 지역마다 천차만별이라 미리 얼마에 기름을 넣을 것인지 염두에 두고 이동하다가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대형 안내판에 뜨는 기름값을 보고 진출로로 나가는 것이 좋다. 또한 진출로 안내판에는 해당 지역에 있는 주유소 브랜드 뿐 아니라 패스트푸드 식당 브랜드도 함께 안내해주기 때문에 선호하는 식당에 따라 진출로를 정해도 좋다.

문제는 주유소마다 기름값을 안내하는 대형 전광판을 세워놓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즉, 운전 도중에는 기름값이 얼마인지 알기 어렵다는 얘기다. 미국은 주마다 세율이 달라서 주 경계선을 지나자마자 갑자기 기름값이 갤런당 30센트가 오르기도 하는데, 리터당 100원 넘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미리 주유할 곳을 정해놓고 이동하는 것이 좋다.

그런 점에서 웨이즈라는 내비게이션 애플리케이션을 추천한다. 예를 들어 조지아주 에덴스(Athens)에서 버지니아주 리치몬드(Richmond)까지 이동한다면 앱에 목적지를 설정한 후에 추가정보 탭에서 주유소를 검색하면 이동 경로상 주유소까지의 거리와 현재 유가 정보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만약 주유나 식사를 하지 않을 때 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면 고속도로 중간에 위치한 Rest Area를 이용할 수 있다. 기름을 넣지 않으면서 주유소 화장실만 이용하거나 식사를 하지 않으면서 패스트푸드 식당 화장실만 이용하는 것이 심적 부담이 있는 데다 주유소 화장실의 청결 상태는 복불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Rest Area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이 복병이다. 한국의 내비게이션처럼 다음 휴게소까지 얼마가 남았다는 안내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Rest Area가 80km(50마일) 만에 나타나기도 하고, 어떤 때는 160km(100마일)에 한 번씩 나오기도 한다. 경험에 따르면 휴게소 화장실의 청결 여부도 장담하기 어렵다.

그래서 최근에는 주 경계를 넘어가는 장거리 여행때는 주 경계마다 설치되어 있는 ‘Welcome Center’에 반드시 들리곤 한다. 미국의 고속도로 Rest Area에서 딱히 위험한 상황을 마주한 적은 없지만, 생각보다 Rest Area 이용객이 많지 않고 야간에는 제법 어둡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 이동할 때는 아무래도 이용이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 남동부 지역의 주 경계에 있던 웰컴센터는 굉장히 깨끗하고, 야간에도 굉장히 밝은 조도를 유지하고 있어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의 자차 이동거리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길지만, 생각보다 운전에 대한 피로도가 적은 이유는 대부분의 고속도로가 급격한 커브 없이 상당 부분 직선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인 것 같다. 서두에 나오는 “467km(292마일) 직진하세요”라는 내비게이션 안내가 결코 낯선 일이 아니다.

다만 미국에도 과격하게 운전하는 운전자는 반드시 있다. 특히 커다란 픽업트럭으로 차 뒤에 바짝 붙어 운전하는 이도 적지 않다. 처음에는 매우 당황하고 화도 났지만, 그럴 땐 감정을 무른 채 조용히 2차선으로 물러나 주면 된다. 뒤에서 쫓아온다고 절대 속도를 올릴 이유가 없다. 그러다 경찰에 단속되면 내몰리듯 과속하던 선두 차량만 과태료를 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