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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바심도 이제 추억…분주했던 LA 정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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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2일 LA 공항에 도착했으니 연수 생활도 벌써 다섯달 째를 지나고 있네요.  곧 반환점을 돈다고 생각하니 아쉬움도 들고, 또 아직 반이나 남았으니 이 시간을 잘 채워봐야겠다고 다짐도 합니다. 미국 서부에서 1년 살이를 준비하면서 이곳 연수기에 실린 선배들의 이런저런 경험이 참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다소 중복될 수도 있겠지만, 혹시 미국 서부로 연수를 계획하고 계신 분들에게 참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짧은 정착기를 남겨봅니다.

먼저 LA 도착 뒤 진행한 간단한 타임라인입니다. 학교 프로그램은 9월 1일 시작인데, 조금 일찍 입국했고요. 곧바로 은행계좌 개설과 아이 학교 등록을 마쳤습니다. 은행계좌 개설하는 것도 중요한데, LA는 우리아메리카 은행이 있어 별도로 현지 은행 계좌는 만들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크게 불편을 겪지는 않았습니다. 그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왼쪽) 남부 캘리포니아의 겨울입니다. 우리의 초가을 날씨인데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춥습니다. / (오른쪽) LA에서 북쪽으로 두 시간 정도 달리면 이렇게 눈을 볼 수 있기도 합니다. Lebec이라는 시골 마을입니다.

<타임라인>

  • 8월 2일 도착 / 은행 계좌 개설 및 장보기
  • 8월 4일 아이 학교 등록
  • 8월 9일  운전면허 필기 통과
  • 8월 15일 운전면허 실기 통과
  • 8월 23일 아이 학교 개학
  • 9월 1일 USC Visiting Scholar 프로그램 시작
  • 9월 중순 운전면허 Real ID 도착
  • 11월 22일 SSN카드 도착

1. 짐싸기 – 단프라 박스? 이민 가방?

출국 사흘 전까지 야근 근무를 해야 해서 준비 시간이 넉넉지는 않았습니다.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꼭 필요한 것들 위주로 준비했고요. 나중에는 다 사람 사는 곳인데 한두 개 빠졌다고 한들 현지에서 해결하자고 넉넉하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한 가지 고민은 8세 여아를 포함해 세 식구가 이동하며 부릴 수 있는 짐의 무게와 개수였습니다. 단프라 박스가 편하냐, 이민 가방이 편하냐 의견이 다분한데 저희는 단프라 박스로 정했고 결과적으로는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출국 직전의 모습. 짐 찾을 때 시간 아끼려 과감히 분홍 테이프로 마감을 시도했습니다. 다시 하라면 굳이 저러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출발 당일 저희 짐은 단프라 박스 6호 6개,  골프백 2개, 기내용 캐리어 2개,  어깨에 메는 가방 3개였습니다.  인천공항과 LA 공항에서 짐을 옮기는 게 골치였는데 두 곳에서 모두 포터 서비스를 이용했습니다. 인천공항의 경우 카트 하나에 5천 원이고, 두 분 부탁드렸습니다. 별도 민간업체 소속이었고 무척 친절하게 잘 도와주셨습니다.

LA 공항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한항공 한국 직원분께 부탁했더니, 근처에 있던 두 명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정해진 가격은 없는 듯했습니다. 짧은 거리였고, 저희는 잔돈이 없어서 50달러를 두 명에게 주었습니다. 다 주는 거냐길래 웃으며 그럴 리가 있냐고 20달러는 잔돈으로 다시 돌려달라 하였습니다. 약간의 흥정과 은근한 밀당이 필요했는데, 사실 일인당 10달러면 충분해 보였습니다.

2. 가구 구입과 세팅

저희는 무빙세일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지역이 무빙 받기 좋은 조건이 아니었고, 날짜 맞추는 것도 어려웠어요. 그래서, 이케아에서 저렴한 가구로 모두 주문했습니다. 방문 구입도 검토했지만, 이케아에서 대량으로 구입하면 배달비가 많이 내려갑니다.

미리 한국에서 8월 2일 도착으로 침대 매트리스, 책상, 소파, 책장 등등 주문해 두었습니다. 대략적인 날짜와 시간까지 조율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가끔 부품을 빼먹는 경우가 있습니다. 침대 설치에 필요한 나사 하나 받기 위해 왕복 세 시간을 달려야 했으니까요. (반품과 환불, 부품 빠진 데 대한 보상 등은 확실히 해줍니다.)

문제는 저 많은 가구를 어떻게 조립하느냐였습니다. 아, 이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숙제구나라고 빨리 결론을 내렸고 TASKRABBIT의 조립 서비스를 이용했습니다. 침대와 식탁 등 큰 가구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의자 등 간단한 건 제가 그 분에게 물어가며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TASKRABBIT은 숙련도와 경력에 따라 비용이 다른데요, 가장 숙련도가 높은 직원을 쓰는 게 돈을 아끼는 방법입니다. 시간당 비용이 청구되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여러 가구를 조립해 주거든요. 저희는 다행히 모스크바에서 이민 온 젊은 노동자였고, 만족도가 아주 높았습니다.

TaskRabbit의 이케아 조립 신청. 여기서는 한 명뿐인데, 여러 명을 비교할 수 있다면 숙련도가 높은 직원을 선택하는데 결국 비용을 아끼는 팁입니다. 물론 직접 조립하는 게 최선이겠지만요.

3. 아이 학교 등록 및 생활

제가 있는 LA 팔로스버디스 교육청은 아이 학교 등록에 집 계약서와 거주지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 두 가지를 요구했습니다. 인터넷 설치 영수증은 있었는데, 아직 전기요금은 청구가 되지 않아 난감했습니다. 좀 더 기다려야 할까, 하다 결국 자동차 보험 및 아파트 보험 등 주소가 기재된 서류는 모두 들고 찾아갔더니 별다른 이의제기 없이 무사히 등록했습니다.

학교 등록보다 걱정되었던 것은 아이의 생활이었습니다. 개학까지 20일 정도 시간이 남아, 저는 이 시간에 여행보다는 집 살림살이, 운전 면허, SSN 신청 등 최대한 빨리 정착과 관련된 업무를 처리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한 주 정도 SUMMER CAMP에 등록해 등교 전 적응 시간으로 삼았고요. 며칠 우여곡절이 있기는 했지만 결국 잘 마무리했습니다. 아이들 적응 걱정할 시간에 본인 걱정이나 하라는 선배들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꼭 그렇지는 않더라고요. 새 환경에 녹아드는 것이 고된 건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미국에서 만난 첫 친구들.

학교 첫날 친구들과 함께

그리고 다섯 달이 지난 지금은 학교생활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다만 Before School이나 After School을 등록하지 못해 조금 아쉬웠는데요. 7월 초 신청인데 빨리 마감된다고 합니다. 다자녀가 많은 미국도 육아가 쉽지는 않아서 할아버지 할머니 찬스에, 학교 방과 후 활동에 많이 의존합니다.

4.운전면허와 SSN

캘리포니아를 연수지로 정하면서 가장 번거롭게 느껴진 게 운전 면허 필기와 실기시험이었습니다. 20년 넘게 무사고 운전이라지만 다른 나라에서 ‘시험’을 치른다니 긴장도 되고 그렇더군요. 인터넷 카페 등에 보면 캘리포니아 운전 면허 시험 필기에서 몇 번, 실기에서 대여섯 번씩 떨어졌다, 아주 이상한 시험관을 만나 곤욕을 치렀다는 등의 글도 종종 올라와 내심 긴장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도착해서 2주 안에 필기와 실기 모두 잘 마무리했습니다. 합격률이 좀 높다고 알려진 곳의 DMV는 실기시험 예약도 쉽지 않은데, 저는 그냥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가장 빠른 날에 볼 수 있는 곳을 예약했습니다.

실기에 통과하면 이렇게 두 달 기한의 임시 면허증을 발급 받습니다.

<리얼 아이디와 SSN>

문제는 시험 합격 뒤에 터졌습니다. 실기 시험을 통과하면 위의 사진처럼 임시 운전 면허증을 발급해 줍니다. 면허 접수하며 캘리포니아주 면허와 신분증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Real ID 가운데 어느 것으로 할지 신청을 받는데, 저는 REAL ID로 신청했습니다. 2025년까지 운전 면허를 모두 REAL ID로 바꾸게 되어 있어 DMV에서도 사실상 강요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문제는 SSN이 없어 제가 신청할 수 없는데, DMV에서는 일단 합격하고 SSN을 받은 뒤 다시 오면 된다고 하더군요. 여기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는데 결과적으로 실물 운전면허증은 9월 중순에, SSN 카드는 11월 말에야 받을 수 있었습니다.

Social Security Card. 서두르다 되려 11월 말에야 받았습니다.

운전면허와 SSN 발급까지를 정착의 종점으로 삼고 있었기에, 뭔가 덜컥거리는 거 아닌지 괜한 근심에 이리저리 신경이 쓰이기도 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SSN 발급에서 제가 실수를 했더군요. 정착 도와주시는 분이 SSN은 입국 후 열흘 뒤에 신청하면 된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니었습니다. 먼저 학교 프로그램 시작 뒤, 그러니까 9월 1일로부터 열흘 이내에 제가 학교 등록을 하면 학교에서 이민국에 통보를 합니다.

이 정보가 있어야 SSN이 발급되는 것인데, 지역 사회보장국(SSA)에서 SSN부터 신청했으니 일 처리가 꼬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중간에 한번 SSN이 PENDING 되면 몇 달이 걸린다고 합니다. 저야 은행 계좌는 우리 아메리카 은행에서, 운전 면허 REAL ID는 거주지 증명으로 신청할 수 있었지만, 자칫 SSN이 오랫동안 발급되지 않았다면 큰 낭패를 겪을 뻔했습니다.

5.한 번에 되지는 않지만 결국 되긴 되더라.

미국에서 다섯 달 가까이 지내면서 얻은 결론입니다. 미국에서 관공서 한 번 방문하려면 날을 잡고 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점심시간에 잠깐 짜면 내서 업무처리를 하곤 했던 우리 행정을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차분히, 하나하나 두드리다 보면 결국 되긴 다 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