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보기

한글날 심사위원(?)이 된 사연

by

제가 적을 두고 있는 USC 한국학 연구소는 한반도 국제 정세를 중심으로 언어와 문화 등 우리와 관련된 폭넓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뿐 아니라 우리말과 문화를 연구하고 알리는 데도 적극적인데요, 지난해 10월 9일에는 한글날 행사가 있었습니다. USC 한국학연구소와 LA 한국문화원,  USC 동아시아 언어문화학과 등이 공동 주최했고, 많은 학생들이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LA에서 한글과 우리 문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번 살펴보고 싶었는데, 행사에 관해 문의하자 학교 측에서 뜻밖의 심사위원 제의를 해왔습니다. 대단한 것은 아니고요, 학생들이 쓴 한글 문구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주면 재미 삼아 시상을 하는 작은 이벤트였습니다.

저는 김치찌개를 대상으로! 금강산도 식후경 아니겠습니까.

오전 10시 시작이었고요, 아침 일찍부터 한국학 연구소 앞이 분주하더군요. 멋들어진 한글로 가훈이나 이름을 써주기도 하고, 작은 공예품으로 직접 이름을 만들어 볼 수도 있었습니다.

제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것은 한글 쓰기 부문이었습니다.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평화라든지 사랑이가 진짜 사랑해요 처럼 애교 섞인 문구도 돋보였습니다. 저는 금강산도 식후경, 김치찌개 좋아하고 만들어 본 적 있다는 글귀에 한 표를 던졌습니다.

행사에 참석한 김에 USC에서 한국어 교육을 맡고 있는 선생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지금 USC에는 레벨에 따라 모두 네 개 반이 있고요, 한 반에는 15명 정도 된다고 하더군요. 최상급반 학생들의 실력은 수준급이라고도 귀띔하여 주었습니다. 물론 모두 학점으로 인정이 됩니다.

다만 학생 수는 지난 2~3년에 비해 살짝 감소세라고 합니다. 코로나19가 덮쳤을 당시 오히려 BTS를 포함해 한국문화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국어 수요가 많았지만, 지금은 잠시 주춤하고 있다고 합니다.

USC 한글날 행사를 계기로 늘 인터뷰만 하던 제가 인터뷰이가 되는 경험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Daphne Yaman이라는 여학생으로,  마침 정치학과 저널리즘을 전공하는 친구였습니다. 한국어 수업에서 한국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을 잡아 인터뷰하는 과제가 있다고 하더군요.

마침 전공이 저와 비슷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한국 유학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하니 인연이 된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LA에는 한인들이 많다 보니,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고 계신 이민자 분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는 것도 쏠쏠한 재미입니다. 40년 전에 이민 와서 자식들 모두 대학까지 졸업시키고 이제야 마음이 조금 편하다는 카센터 사장님, 30년 전 잘 나가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아이들 유학비자로 미국에 정착해 세탁소를 하며 힘겹게 버티셨다는 70대 할아버지, 이제는 아들 둘이 낳은 손자만 여섯 명이라며 손자 자랑에 여념이 없으셨습니다. 여기에 아들과 아버지, 부자가 운영하는 치과까지, 이런저런 사연을 가진 한인을 만나는 것도 LA 연수 생활의 또 한 가지 매력입니다.

한글날 행사는 LA에서 우리 한인들의 높아진 위치를 조금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특히 캘리포니아주는 지난 2019년 하원에 이어 상원에서 한글날 제정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LA시는 지난해부터 10월 9일을 한글날로 공식 지정해 기념합니다. 아무래도 한인들의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을 무시하지 못했을 겁니다.

왼쪽은 인도 문화 체험 행사이고, 오른쪽은 학교에서 보내온 스페인어 수업 안내 메일입니다. 스페인어 수업 참가 독려 메일이 한 번 더 온 걸 보니 그리 인기 있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이곳에서는 사실 한인뿐 아니라 다른 나라, 다른 문화와 관련된 이벤트가 수시로 마련됩니다. 여러 인종이 다양한 문화를 공유하며 살아가는 것을 아이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합니다.

동네 도서관에서는 틈틈이 인도와 일본, 태국 등 동아시아 나라를 소개하는 행사가 열리고요, 아이의 학교에서도 스페인어 수업이 따로 이뤄집니다. 특히 캘리포니아는 히스패닉 인구가 계속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런 영향이 미국 정치구조와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흥미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