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보기

케네디 전 상원의원의 가르침 – 브라이어 전 연방대법관의 회고

by

조지 워싱턴 대학교에서 공개 강연을 하고 있는 브라이어 전 대법관(왼쪽)

내가 다니고 있는 조지 워싱턴 로스쿨은 지난해 7월에 은퇴한 스티븐 브라이어 전 미 연방대법관과 로스쿨 교수들의 공개 대담을 시리즈로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총 4번이 진행됐고, 다음 달에 마지막 다섯 번째 대담이 열릴 예정이다.

공개 대담은 스티븐 브라이어 전 대법관의 인생 경로를 따라서 진행됐다. 첫 번째 대담은 학창 시절, 두 번째 대담은 법무부와 하버드 로스쿨에서 근무하던 시절,  세 번째 대담은 상원 법사위원장실 수석 법률 보좌관 시절 그리고 네 번째 대담은 미국 제1 연방 순회 항소 법원 판사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다음 달에 열릴 예정인 다섯 번째 대담에서는 연방 대법관 시절의 이야기를 할 계획이라고 한다. 나는 이 가운데 지난해 여름과 가을에 열린 세 번째와 네 번째 대담을 직접 방청했다.

스티브 브라이어 대법관은 미국 민주당 소속인 클린턴 전 대통령이 재임 시에 지명한 대법관으로 뚜렷한 민주당 성향의 법관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과거 민주당 성향의 브레이어 대법관이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키다가 트럼프 대통령 재임 시에 세상을 떠나면서 대법관 자리를 공화당원에게 넘겨주게 된 전례를 경험한 미국 민주당 지지층은 바이든 대통령이 집권하자마자 고령(1938년생)인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의 은퇴를 요구했고, 결국 브라이어 대법관이 은퇴하면 바이든 대통령은 그 자리에 브라이어 전 대법관의 로클럭 출신인 커탄지 잭슨 현 대법관을 임명했다. (커탄지 잭슨은 흑인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연방 대법관이 됐다.)

앞서도 잠시 언급됐지만 스티븐 브라이어 전 연방 대법관은 판사가 되기 이전에 다양한 법조 경력을 쌓은 인물이다. 브라이어 전 대법관은 스탠포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미국 연방법무부 등에서 잠시 근무한 후 하버드 대학교에서 교수로 활동하며 행정법의 권위자로 인정받았고, 이후 전설적인 상원의원인 에드워드 케네디 전 의원이 상원 법사위원장으로 있을 때 법사위원장 수석 법률 보좌관으로 일하다가, 1 연방 순회 항소법원의 판사로 임명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주로 판사만 하다가 대법관으로 임명되는 우리나라의 경우와는 차이가 있다.

직접 방청한 세 번째와 네 번째 공개 대담 때도 브라이어 전 대법관은 상원 법사위의 수석 법률 보좌관 시절과 제1 연방 순회 항소 법원의 법원장으로 근무하던 시절을 자랑스럽게 회고했다. 에드워드 케네디 전 상원의원은 당시  젊었던 브라이어 전 대법관을 많이 아껴서 여러 자리에 데리고 다니면서이봐 하버드 로스쿨에서는 이런 것 못 배웠겠지?”라고 농담을 던지며 많은 것을 가르쳐줬다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 케네디 전 상원의원이 자신에게 해줬던 여러 조언을 자신이 사용하는 컵에 인쇄해 종종 읽어본다고 말했다. 특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의 20%만 자신이 차지해야 하고, 상대방 이야기는 무조건 끝까지 들으라는 조언이 이후 법관으로 일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강연을 들으면서 브라이어 전 대법관이 우리나라에서 법관을 했다면 법원행정처에서 여러 차례 근무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상원에서 일할 당시 공화당 관계자들과 협력해서 예산 업무 등을 원만하게 처리한 것을 자랑스럽게 회고하거나 제1 연방 순회 항소 법원의 법원장(Chief Judge)로 재직할 때 자신이 주도해 신축한 법원청사를나의 법률적 견해들보다 더 오래 남을 유산으로 꼽는 것을 보면서 전형적인 대법관과는 조금 다른 인물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법정이 진영 대결의 최전선으로 변해가고 있는 요즘 세태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네 번째 대담이 끝나고 이어진 리셉션 자리에서 브라이어 대법관과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 온 저널리스트라고 소개하며 사진 촬영을 청하니 상당히 특이한 케이스라는 듯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전직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이 대학에서 석좌교수 등으로 근무하는 일이 종종 있는데, 이들의 경험을 공개적으로 나눌 수 있는 특강이 더욱 활성화되면 좋겟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