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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에드거 후버와 미국의 20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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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하고 있는 매튜 그레이브스 연방검사 / 2024년 2월 22일

미국에서 공부를 하면서 부러웠던 점 중 하나는  논픽션 출판 시장이  활성화 돼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들의 평전( biography)이 꾸준히 출판되고 있고 판매량도 상당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 같은 유명 인사에 대한 평전은 수십 만 부 씩 팔려 나가기도 하고, 미국 건국의 아버지( Founding Fathers) 중 한 명인 알렉산더 해밀턴의 평전이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각색돼 흥행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퓰리처상에도 평전 부문이 따로 있을 정도다.

지난 2024 2 28일에는 퓰리처상 평전 부문을 수상했던 논픽션 작가 한 명이 내가 공부하고 있는 조지 워싱턴 로스쿨을 방문했다. 초대  FBI 국장이었던 존 에드거 후버(John Edgar Hoover)에 대한 평전인 <: 제이 에드거 후버와 미국의 세기 만들기(G-Man: J. Edgar Hoover and the Making of the American Century)>의 작가인 비버리 게이지(Beberly Gage) 교수의 특강이 있었던 것이다.  존 에드거 후버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예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보다도 미국의 저명한 논픽션 작가가 역사적 인물을 다루는 방식이 궁금해져서 책을 사서 읽은 후 특강에 참석했다.

특강은 진행자가 게이지 교수에게 책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진행자가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은 민간인 사찰 전력 등으로 악명이 높은 후버에 대한 책을 오랜 기간 공들여 쓴 이유였다. 게이지 교수는 후버의 삶을 돌아보면서 20세기 미국의 역사의 다양한 측면을 살펴볼 수 있다고 판단해 집필에 착수했다고 설명했다.게이지 교수는 후버의 삶이 많은 측면에서 20세기 미국 역사의 중요한 테마들을 관통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첫 째로 연방 정부 권한의 광범위한 확대다. 게이지 교수는 후버가 처음FBI 국장이 되었을 때 FBI 100명 정도의 인력을 거느린 관할도 애매한 소규모 조직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후버는 대학 졸업생만을 채용하고, 처음으로 연방 정부 차원의 범죄 통계 작성을 시작하고, 지문 감식 등 당시로서는 첨단 포렌식 기술을 적극 채택하는 개혁안을 관철시키며 비합리적이고 부패한 지방 정부 법 집행기관과 대비되는 전문적이고 청렴한 연방 정부 산하 FBI 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후버는 이를 바탕으로 FBI의 권한을 서서히 키워 나갔고 이는 미국에서 연방 정부가 존재감을 확대하는 시기와 일치했다. 후버가 지금의 관점에서는 보수적이고 반동적인 인물로 평가되기 때문에 최고의 진보 대통령으로 평가되는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 정부에서 후버가 성공을 거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는 진행자의 지적에 게이지 교수는 당시 후버가 채택한 방침이 전문적이고 진보적으로 평가됐던 점 그리고 루즈벨트 대통령이 연방정부 권한의 확대를 추구했던 점을 감안하면  이상한 결과는 아니라고 게이지 교수는 답했다.

둘째로 공산주의에 대한 대응이다. FBI의 성장은 단지 전문성과 청렴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1920년대까지 미국에서 법 집행은 대부분 주 정부를 비롯한 지방 정부의 몫으로 여겨졌다, FBI는 각 주의 관할권이 미치기 어려운 애매한 범죄정도를 관할로 하고 있는 소규모 조직이었다. 예를 들어 인디언 보호 구역 내의 범죄나 주를 넘나드는 자동차 절도 등에 대한서나 관할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플라워 문>이 후버가 FBI 국장으로 취임한 초기에 인디언 보호 구역에서 벌어진 범죄를 다룬 영화다.)  그러나 후버는 1930년대부터 무정부주의와  공산주의 조직 감시에 FB를 투입하면서 FBI의 관할권과 역량을 대폭 확대했다고 한다. 이런 움직임은 1950년대 매카시즘 전성기까지 이어졌지만, 이때 후버는 매카시 상원의원의 근거 없는 선동과는 어느정도 거리를 두면서, 비정치적이고 분별 있는 법 집행기관으로서 FBI의 위상을 지킬 수 있었다고 게이지 교수는 설명했다.

셋째로, 1960년대 미국 사회의 시민권 운동에 대한 대응이다. 게이지 교수는 48년 동안 FBI  국장 자리를 지킨 후버와 가장 친밀했던 대통령은 루즈벨트와 마찬가지로 진보적 대통령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린든 존슨이었다고 말했다. 게이지 교수는 두 사람의 친분은 사적인 인연 때문이기도 했지만, 린든 존슨 대통령이 1960년 시민권 운동과 관련해 후버의 FBI 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린든 존슨 대통령은 시민권 운동 그룹의 요구 사항을 반영한 시민권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후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반발 움직임이 포착되자 후버에게 미시시피에 FBI 지부를 만들어서 연방 정부의 힘을 보여주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동시에 린든 존슨 대통령은 마틴 루터 킹 목사 등 시민권 운동 지도자들을 FBI를 통해 감시하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킹 목사 등 일부 시민권 운동가들에 대해서 FBI 는 도청 등 불법적 수단을 동원해 감시한 것은 물론이고 수집한 개인 정보를 바탕으로 익명의 투서를 통해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이렇게 대통령을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완력을 행사하는 일까지 불사하면서 후버와 FBI 1960년대까지도 최고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게이지 교수는 분석했다.

게이지 교수는 연방 정부의 확대, 공산주의, 시민권 운동 등 후버가 FBI 국장으로서 핵심적으로 관여했던 일들은 모두 20세기 후반 미국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흐름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후버와 FBI가 어떤 대응을 했고, 이에 따라 후버와 FBI그리고 미국 사회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추적하면서미국의 세기라고 불리는 20세기의 형성 과정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게이지 교수의 핵심 주장이었다.

게이지 교수의  강연을 들으면서 이런 수준의 논픽션을 우리나라에서 쓰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이 생각해봤다. 우리나라의 20세기를 형성한 이들에 대한 공적, 사적 기록물이 제대로 보존이 되어있는지, 보존이 되어있다고 해도 미국처럼 정보 공개 절차 등을 통해 원활하게 접근이 가능한지, 접근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미국처럼 명예훼손의 위험 없이 솔직한 평가를 남길 수 있을지  등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을 만들 때도 후손들의 반발을 우려해 역사적 인물에 대한 실명 사용을 회피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대중성과 깊이를 모두 인정받는 논픽션을 쓸 수 있는 저널리스트나 역사학자가 우리나라 출판 시장에서 나타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해방 이후 80년 가까이 지나도록 우리 근대사를 형성한 중요한 인물들에 대한 제대로 된 평전이 몇 편 없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 수준의 평전 또는 역사 논픽션을 쓰기 위해 어떤 자질과 자원이 필요한지 좀 더 구체적으로 연구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