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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IP비즈니스 기업을 키운 미국의 규제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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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IP비즈니스 기업을 키운 미국의 규제 환경 중앙일보 박민제 연수기관: UC얼바인

1. 머리말

지난해 12월 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마이크로소프트 시어터. 가수·뮤지컬 공연, 시상식 등이 주로 열리는 이곳에 백발이 성성한 대배우 알 파치노(83)가 모습을 드러내자 7000여 좌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환호성을 쏟아냈다. 그가 시상자로 나선 무대는 영화가 아닌 게임 시상식 ‘더 게임 어워드’(TGA·The Game Award). 알 파치노는 목소리 연기·모션 캡처 등을 통해 게임 속 캐릭터를 잘 구현한 배우에게 주는 연기상(best performance) 시상자로 나섰다. 그는 “게임을 해 본 적이 없지만 게임을 즐기는 내 아이를 보며 많은 시간을 보냈고 깊이 감명 받았다”며 “게임 스토리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배우들에게 찬사를 보낸다”고 말했다.1)

TGA는 게임 저널리스트 제프 키글리(Geoff Keighley)가 2014년 만든 게임 시상식이다. 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SIE), 마이크로소프트 엑스박스(MS Xbox), 텐센트, 닌텐도, EA 등 글로벌 주요 게임사 대부분이 GTA 자문위원회에 참여해, 게임업계의 아카데미상(오스카)으로도 불린다.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미국 현지에선 높아진 게임산업의 위상과 함께 주목도가 매우 커진 행사다. 배우 알 파치노의 등장은 이를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 이번 행사는 온라인 생중계로만 전 세계 1억 300만 명이 시청했다.

지난해 12월 미국 LA에서 열린 TGA 관객들이 시상자로 알 파치노가 등장하자 환호하고 있다.
사진 박민제 기자

1) 중앙일보, [팩플] 알 파치노도 왔다…‘게임계 오스카’ 시상식서 본 IP의 미래,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24761

시상식 현장 취재를 하면서 주목한건 ‘IP’(Intellectual Property·지식재산)를 사업화하고 비즈니스로 키워 온 미국 엔터테인먼트 관련 법제도 환경의 저력이다. 특히 게임에서 시작된 여러 IP들이 주류문화인 드라마·영화·뮤지컬과 결합하고 확장하면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만들어 가는 ‘미디어 믹스(media mix)사례들이 인상적이었다. 지난해 개봉한 액션 어드벤처 영화 언차티드가 약 4억 달러(5224억 원)를 벌어들이며 글로벌 흥행한 점이 대표적이다. 언차티드는 게임사 너티독의 동명 인기 게임 시리즈에 기반을 둔 실사 영화였다. 그 외에도 많은 스타트업이 새로운 IP를 공개했고, 이를 확장할 여러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굳이 미국 기업이 만든 IP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올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 중인 영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좋은 예다. 동명의 일본 닌텐도 게임 IP를 활용해 미국 영화사 일루미네이션이 공동 제작한 이 애니메이션은 지난 5월 기준 티켓 판매만으로 12억 달러(약 1조 6000억 원) 이상을 벌었다. 충성 팬을 확보한 IP를 다양한 미디어로 확장했을 때 만들어지는 이윤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스타트업이 만든 작은 IP가 이곳에서 성장 동력을 얻어 웬만한 대기업 수준의 매출을 창출하는 거대한 사업으로 성장한다. 미국 기업들은 어떻게 이처럼 IP를 잘 활용해 글로벌적인 사업 기회를 만들 수 있었을까. 어떤 법률·제도·문화적 특성이 미국에서 혁신적인 IP 비즈니스 스타트업을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게 만들었는지 조사했다.

2. 법률 : 저작권법

디즈니는 IP비즈니스 스타트업의 교과서 같은 기업이다. 지난 100년 간 IP로 만든 디지털 세계를 물리 세계로 연결해 소비자 경험을 확장하는 데 글로벌 최고 경쟁력을 유지해왔다. 지난해 9월 열린 ‘D23 엑스포 2022’에서 글로벌 IP 최강자 디즈니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D23은 디즈니 공식 팬클럽 이름으로 월트 디즈니가 창업한 연도 1923년에서 따왔다. D23 엑스포는 월트 디즈니 컴퍼니가 팬들을 위해 2년 주기로 여는 행사다. 사흘 간 이 행사가 열린 미국 캘리포니아 애너하임 컨벤션센터 주변은 이른 아침부터 세계 각지에서 온 디즈니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뉴욕타임스2) 등에 따르면 2022년 D23 엑스포에는 43개국에서 14만 명 이상이 참석했다. 가장 비싼 899달러짜리 패키지 표(124만여 원)는 7분 만에 매진됐다. 하루 89달러인 일반 입장권도 역시 매진됐다. 100만 평방피트(축구장 13개 이상)가 넘는 애너하임 컨벤션센터 전시 공간은 디즈니 캐릭터 복장의 팬들로 가득 찼다.

2) NYT, At Corporate Pep Rally, Disney C.E.O. Pitches Warmer, Fuzzier Side
https://www.nytimes.com/2022/09/11/business/media/bob-chapek-disney-expo.html

행사 취재 과정에서 인터뷰한 레베카 캠벨 월트 디즈니 컴퍼니 인터내셔널 콘텐츠 및 오퍼레이션 회장은 디즈니의 사업 전략을 ‘플라이 휠’(flywheel)이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그는 “디즈니 사무실에는 창업자가 연필로 그린 플라이휠이 있다”며 “창업자는 예전부터 소비자들이 캐릭터를 직접 만나고 영화에서 본 장면을 놀이기구를 통해 다시 느끼는 경험을 갖길 원했다”고 말했다. 즉 만화, 애니매이션 등으로 창조한 캐릭터 IP를 디지털 공간에만 머무르게 하지 않고 뮤지컬·게임·공연 등 콘텐츠뿐만 아니라 테마파크, 호텔·리조트, 크루즈, 캐릭터 상품 등 물리 세계로 확장해 소비자 경험을 강화하는 게 기본 전략이라는 의미다. 이를 위해 월트 디즈니 창업자는 창업 이후 20년 넘게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를 활용한 놀이공원을 구상해왔고 1955년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에 세계 최초 테마파크이자 첫 디즈니랜드를 개장했다. 현재 전 세계 12개 디즈니 테마파크엔 매년 1억 4500만 명 이상이 방문한다. 호텔 53개와 크루즈 5대도 운영 중이다. 테마파크, 크루즈 등은 단순히 캐릭터 상품을 파는 걸 넘어서 보다 더 깊이 몰입 가능한 경험을 준다는 차원에서 디지털 세계와 물리 세계를 IP로 잇는 최적의 미디어다.

지난해 D23 EXPO 미디어 간담회에서 디즈니의 전략을 소개 중인 레베카 캠벨 월트 디즈니 컴퍼니
인터내셔널 콘텐츠 및 오퍼레이션 회장. 사진 박민제 기자

이 같은 디즈니의 전략이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는 미국 법률의 강력한 IP보호다. 미국은 역사상 최초로 헌법에 IP 권리의 보호를 보장한 국가다.3) 헌법에는 ‘To promote the Progress of Science and useful Arts, by securing for limited Times to Authors and Inventors the exclusive Right to their respective Writings and Discoveries.‘(저작자와 발명가에게 제한된 시간 동안 저작물과 발견물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확보함으로써 과학 및 유용한 예술의 발전을 촉진한다’)4) 라고 돼 있다. 미국 의회는 1790년 특허법과 저작권법등 근거법령을 만들었으며 이후 특허청, 저작권청을 설치해 새로운 아이디어와 투자를 보호해왔다. 저작권 보호가 미국 경제를 성장시키고 혁신을 촉진하는 가장 근간이 된다는 취지다.

저작권 보호기간은 처음엔 최장 28년(첫 14년 이후 한차례 연장 가능)이었다. 1909년에 최장 56년(28년+28년)으로 늘어났고, 1976년엔 이미 존재하는 기업 저작권의 경우 최장 75년까지 보호할 수 있게 바뀌었다. 그리고 가장 최근인 1998년 미국 의회는 ‘소니 보노 저작권 기간 연장법’(Sonny Bono Copyright Term Extension Act)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법인 저작물의 경우 최초 발행일로부터 95년까지 보호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흥미로운 점은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 과정에서 디즈니가 큰 역할을 했다는 부분이다. 디즈니의 핵심 캐릭터인 미키마우스는 1928년 창작됐다. 당시 법대로라면 1984년에 저작권 보호 기간이 끝나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공유재산)이 됐어야 했다. 하지만 회사의 핵심 재산에 대한 법률적 보호가 끝나가는 걸 알게 된 디즈니가 강력하게 법 개정 로비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 결과 두 차례 보호기간이 연장됐다. 실제 소니 보노 법은 미국 법조계에선 ‘미키 마우스 보호법’이라고 불렸을 정도다.5) 미키마우스의 저작권 보호 기간은 이 법안 덕분에 올해인 2023년까지로 연장됐다.

3) John J. Diffley, Diane R. Sabato, and Richard H. Kosakowski, PROPERTY LAW—THE IMPORTANCE OF INTELLECTUAL PROPERTY EDUCATION IN A KNOWLEDGE ECONOMY, 44 W. New Eng. L. Rev. 403 (2022),
https://digitalcommons.law.wne.edu/lawreview/vol44/iss3/3

4) U.S. Constitution Article I. Section 8, Clause 8
https://constitution.congress.gov/browse/essay/artI-S8-C8-1/ALDE_00013060/#:~:text=Article%20I%2C%20Section%208%2C%20Clause,their%20respective%20Writings%20and%20Discoveries

5) Kaitlyn Hennessey, INTELLECTUAL PROPERTY—MICKEY MOUSE’S INTELLECTUAL PROPERTY ADVENTURE: WHAT DISNEY’S WAR ON COPYRIGHTS HAS TO DO WITH TRADEMARKS AND PATENTS, 42 W. New Eng. L. Rev. 25 (2020),
https://digitalcommons.law.wne.edu/lawreview/vol42/iss1/2

결론적으로 미국 저작권법은 저작자 사망 후 70년, 최초 발행일로부터 95년(법인 저작물의 경우)간 저작권을 보호하고 있다. 저작자 사망 후 70년간 보호하고 있는 한국(업무상 저작물도 공표한 때로부터 70년)과 비교하면 법인 저작물 보호기간이 좀 더 길다. 코트라 LA무역관 IP Desk 김윤정 변호사는 “미국 법은 강력하게 IP를 보호하고 있고 이를 침해할 경우 대응하는데 상당한 비용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강력한 법률적 저작권 보호는 IP비즈니스를 활성화하고 성장시키는 기반이 된다. 물론 저작권 보호 기간을 늘리는 게 능사는 아니다. 다만 일정 기간 창작자의 권리를 강력하게 보호하는 사회적 합의가 IP비즈니스를 키우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확실하다.

저작권 보호기간이 지나 퍼블릭 도메인이 되면 누구나 다 해당 IP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실제 지난해 1월 디즈니의 또 다른 IP ‘곰돌이 푸’가 저작권이 만료됐고 이를 활용한 영화 ‘곰돌이 푸 : 피와 꿀’이 올해 개봉되기도 했다. 기존의 곰돌이 푸의 이미지와 전혀 다른 공포 장르 영화였다.6)

6) Guardian, Disney could soon lose exclusive rights to Mickey Mouse
https://www.theguardian.com/film/2022/jul/03/mickey-mouse-disney-copyright-expiry

3. 주변 환경 : 문화적 다양성, 지원 제도, 인재

LA 지역 IP비즈니스 기업 관계자들은 무엇보다 주변 환경이 IP비즈니스를 하기 위한 최적의 요건을 갖췄다고 설명한다.

① 문화적 다양성 : LA 현지에서 사업하고 있는 IP비즈니스 기업 관계자들은 협업에 우호적이고, 기업 활동을 지원하는 분위기가 비즈니스를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전한다. 미국 LA에 본사를 둔 네이버웹툰 김준구 대표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문화적 수용도도 높고, 다양성도 되게 중요시하는 나라”라며 “한국 콘텐츠가 들어와도 수용되고 뿐만 아니라 이걸 기반으로 해서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기 위한 최적의 국가”라고 설명했다.7) 네이버웹툰이 DC, 마블의 콘텐츠까지 플랫폼에 수용할 수 있게 된 점에 대해서는 “기존 IP강자들은 IP의 라이프 사이클을 길게 가져가기 위해 젊은 층에게 콘텐츠를 전달해야하는데 이를 위해 웹툰이 필요했다”며 “우리 입장에선 북미에서 잘 알려진 IP를 통해 플랫폼을 알릴 수 있어서 서로 윈윈(win-win)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② 지원 제도 : 스타트업 지원 제도가 잘 갖춰진 것도 강점이다. 옥테인(octane)은 남부 캘리포니아 지역 기술·의료 스타트업의 성장을 지원해주는 조직이다. 사람과 자원과 자본을 연결해 2030년까지 5만 5000개 이상의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게 목표다. 2022년에만 1573개의 기업을 지원했고 지금까지 누적 2만 8372개(2022년 5073개)의 보수가 높은(high paying)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었다.8) 옥테인의 지원을 받았던 인벤 글로벌 오의덕 대표는 “투자뿐만 아니라 필요한 경우 현지 다양한 회사들과 연결해 주기 때문에 스타트업 입장에선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③ 인재 : IP비즈니스 사업을 확장하기 위한 필수 인력이 풍부하고, 노동시장이 유연한 점도 현지에선 강점으로 꼽는다. LA인근에는 UCLA, USC, UC Irvine(UCI) 등 관련 학과를 설치한 많은 대학이 있다. 특히 UCI는 공식 이스포츠(e-sports)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최초의 공립대학으로 잘 알려져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와 오버워치 팀을 운영 중이며 정보 관련 학과와 함께 매년 컨퍼런스를 개최해 이스포츠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데도 앞장서고 있다. UCI 이스포츠 선수들이 처음 등록하고 5년 뒤 이 과정을 완료 후 졸업한 비율은 94%로, UCI 일반 대학생들의 졸업 비율(83%)를 웃돈다. 해당 프로그램을 이수한 이들은 다양한 지역 게임회사 등으로 진출한다.9) 지역 대학에서 배출한 인재들이 많은 것은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선순환을 창출한다. 미국 게임사 구인구직 포털인 게임잡헌터에 따르면 LA 오렌지카운티 지역 게임 스튜디오는 100개 이상이다. 샌프란시스코(91개), 시에틀(73개)를 크게 웃돈다.
인재가 다양한 것과 함께 인재의 이동이 자유로운 점도 IP비즈니스 기업 입장에선 장점으로 꼽힌다. IP비즈니스는 흥행 산업인데, 유연한 고용형태가 실패 부담을 덜어준다는 차원에서다.

7) 중앙일보, ’99씹 1읽씹’ 당한 김준구…美웹툰 뚫은 ‘첨부파일 1개’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07934#home

8) https://octaneoc.org/#impact

9) https://esports.uci.edu/student-success/

4. 맺는말

“새로 창업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진입할 수 있다. 또 다양한 경로로 투자를 받을 수 있고, 성장을 위한 법제도도 잘 갖춰져 있다. 실패했을 때 재기가 가능한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다.”

UCI 연수기간 동안 만난 한 IP비즈니스 스타트업 대표에게 이 지역을 거점으로 삼은 이유를 묻자 돌아온 답이다. LA 지역에서만 10년 넘게 스타트업을 운영해 온 그는 “어느 하나를 장점으로 꼽기보단 지금까지 말한 모든 요소들이 물 흐르듯 잘 연결돼 사업에만 집중하면 되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LA는 미국 스타트업 생태계 중심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 빗대 ‘실리콘비치’로 불린다. 전 세계 도시 스타트업 창업생태계 경쟁력을 분석 기관인 스타트업 지놈에 따르면 LA는 글로벌 6위에 오를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 실리콘밸리가 기술창업 위주라면 LA는 콘텐츠 기반 IP비즈니스 생태계가 잘 갖춰져 있다. 스타트업을 키우고, 글로벌 진출을 노리는 기업이 많은 한국에서 이 곳의 기업문화, 지원제도, 법률적 여건 등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