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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테크 냉전’과 1980년대 미-일 반도체 분쟁 비교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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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테크 냉전’과 1980년대 미-일 반도체 분쟁 비교 연구 동아일보 김현수 연수기관: 조지워싱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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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패전 후 40년 동안 일본은 거인으로 성장했다. 소련을 넘어 미국에 이은 세계 제2의 산업 국가가 됐다. 만약 일본이 계속 팽창한다면 20년 후 미국을 능가하는 산업 패권 국이 될 수 있다……그들의 최상의 무역 전략은 (미국의) 가늠할 수 없는 대응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40년 전, 진주만에서 도쿄만의 USS 미주리 전함1)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2)

1985년 7월 미국 뉴욕 타임즈에 ‘일본으로부터의 위험(The Danger from Japan)’라는 제목으로 실린 기사 내용이다. 만약 이 기사에서 몇 구절을 바꾸면 어떨까?

“만약 ‘중국’의 팽창이 계속된다면 20년 후 미국을 능가하는 산업 패권국이 될 수 있다.”

일본을 중국으로 바꾸면 현재 진행 중인 미중 무역갈등을 떠올리게 된다. 미중 무역 갈등은 2018년 트럼프 정부가 중국 수입품에 25%에 달하는 보복관세를 물린 것을 시작으로 촉발된 양국의 경제적 분쟁을 일컫는다. 미중 무역 갈등의 원인으로는 중국의 부상과, 이를 견제하고 글로벌 경제 정치 헤게모니를 쥐려는 미국의 총력전이 꼽힌다. 2020년대를 지배하는 새로운 경제질서로 자리잡는 중이다.

40년 전 기사에서 일본을 중국으로 바꾸어도 낯설지 않은 이유는 산업 패권을 쥐려는 강대국의 총성 없는 전쟁이라는 공통점 때문이다. 특히1980년대 미일 갈등도, 현재의 미중 갈등도 반도체를 앞세운 하이 테크 분야에서 첨예하게 드러났다는 점에서 두 무역 갈등은 유사한 면이 적지 않다.

물론, 두 ‘전쟁’의 배경과 양상은 다른 점도 많다. 일본은 미국의 외교적 우방인 상태에서 미국과 무역 갈등을 겪은 반면 중국은 미국과 외교적 대척점에 있다. 이 때문에 최근의 미중 갈등은 훨씬 복잡하고, 전 세계 경제 및 외교 질서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다.

그럼에도 1980년대 미일 반도체 갈등이 어떻게 불거졌으며 향후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양국의 관계 및 세계 무역 질서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살펴보는 것은 현재 무역갈등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특히1986년 미일 반도체 협정을 중심으로 한 미일 무역 분쟁은 1980년대 가장 논쟁적인 무역 정책으로 꼽힌다.3)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한 GATT 체제를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다소 무리가 있는 무역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일본 경제 부상에 따른 미국 내 반일 감정 악화, 하이테크 분야에 대한 안보 불안감, 자국 산업 보호주의 강화 등이 미국 정부와 의회를 움직인 영향이 컸다. 1980년대 보호무역주의의 부상, ‘정보화 시대’로의 진입이 영향을 준 것이다.

이후 1990년대 초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미국 중심의 WTO체제하 자유무역이 보편화 되며 본격적인 ‘Globalization’이 글로벌 경제 질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2008년 금융위기는 다시금 큰 정부, 반 세계화 흐름으로 이어졌고 마침 4차 산업혁명이 화두가 되며 다시 테크노내셔널리즘(기술 민족주의)이 부상하는 계기가 됐다. 다시 반도체가 산업 패권전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것이다. 미중 갈등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에서 하이 테크 분야를 둘러싼 무역 갈등 4)은 곳곳에서 벌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과거 사례를 통해 시사점을 도출해 보고자 한다

1)1945 년 일본은 이 전함에서 2 차세계대전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2)Theodore H White, “The danger from Japan,” New York Times, July 28 1985, p19

3)Douglas A. Irwin, “The U.S.-Japan Semiconductor Trade Conflict,” 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January 1996

4) 2019 년 일본이 한국에 취했던 반도체 핵심 원자재 수출 규제가 대표적이다.

2. 미일 반도체 갈등

(1)1980년대 일본의 부상과 테크노내셔널리즘

1980년 미국의 무역적자는 241억 달러에서 1984년 1233억 달러로 400% 이상 급증했다. 1985년에는 1500억 달러에 육박했다. 1970년대 오일 쇼크, 1980년대 초반 미국에 닥친 불황, 생산성 저하 등은 사회 문제로 부각되며 미국 내 불안 여론이 커지기 시작했다. 반면 미국이 ‘패전국’으로 여긴 일본은 승승장구했다. 일본 자동차가 미국 포드, GM을 위협했고, 특히 소비자 가전 분야에서 일본의 부상은 도드라졌다. 미국의 대일 무역 적자 폭은 점점 커져 1985년에는 전체 미국 무역적자의 절반을 차지했다. 이 같은 흐름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G5가 1985년 뉴욕에서 모여 ‘플라자 합의’를 도출했다.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평가절상을 유도해 환율을 조정한 것이다.

하지만 반일 감정은 커져갔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저서 ‘슬픈 외국어’에서 1980년대 반일 정서를 생생히 묘사하기도 했다. 저자가 프린스턴 대 방문 연구원으로 미국에 머무를 당시, 마을 축제 놀이의 하나로 일본 자동차를 부수는 것을 볼 정도였다고 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국 컴퓨터 산업이 지나치게 일본 메모리 반도체(D램)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미국 내 일본 견제 여론을 더욱 키웠다. 1980년대 초반 일본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NEC, 도시바 등이 64K D램에서 256K D램으로 집적도를 높여가며 미국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1978년 미국 기업이 매출 기준 세계 반도체 시장의 55%를 차지할 때, 일본 기업은 28% 수준이었다. 하지만1986년 미국이 40%, 일본이 46%로 일본이 마침내 앞지르는 사태가 벌어졌다5) 특히 당시 최강 직접도 칩인 256K D램 시장에서 일본의 미국 시장점유율은 92%에 달했다.

*단위: 백만 달러 / 자료: DATAQUEST 6)

위 표에서 보듯 세계 반도체 업계는 1980년 중 후반 이후 일본이 장악했다. 당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늘면서 D램에 강한 일본 반도체 기업 매출이 10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미국이 개인용 컴퓨터, 슈퍼컴퓨팅 시대를 열었는데 정작 일본이 컴퓨터 공급망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는 데 미국 반도체 업계의 우려가 커지기 시작했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 문제를 안보와 직결된 사안으로 봤다.

전직 국가안보국(NSA) 관료인 조지 젤렌은 1986년 NSA의 비공개 계간지 ‘Cryptologic Quarterly’에 기고한 “The High Tech Trade War with Japan: Can Anyone Win?”에서 당시 반도체 산업과 관련된 미국내 우려를 다음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반도체는 소비자 가전, 첨단 군장비에 필수적이라 미국은 내부 반도체 기반이 필요하다.

둘째, 핵심 부품에 대한 일본 의존도가 너무 높다. 핵심 산업에 대한 미국의 직간접적인 타국 의존성은 10년 전 오일 의존 문제처럼 7) 미국의 약점(vulnerability)으로 작용할 수 있다.

셋째, 일본의 반도체 공급업체는 컴퓨터도 만든다. 부품 장악력은 세계 시장에서 일본 컴퓨터의 경쟁력을 높일 것이다.

넷째, 핵심 컴퓨터 수입 증가는 전복(subversion)의 위험성을 높인다.

5) Laura Tyson “Who’s Bashing Whom?: Trade Conflict in High Technology Industries,”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 1993

6) Fred Warshofsky, “The Chip War,” Charles Scribner’s Sons, 1989 에서 재인용 및 재구성

7) 1970 년대 오일 쇼크를 의미한다.

(2)미일 반도체 협정과 슈퍼301조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직후 1985년 컴퓨터 수요 급감은 메모리 업체에 심각한 불황을 가져왔다. 메모리 가격을 급락했고, 그 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60% 줄어들었다. 텍사스 인스트루먼츠(TI)와 마이크론을 제외한 나머지 반도체 기업은 D 램 시장을 포기했다. 이때 도산한 미국 D램 기업은 ‘Mostek’ 뿐 나머지는 단순히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 시장에서 나온 것이었다.8)

TI나 마이크론 등 남은 미국 D램 기업을 중심으로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반덤핑 제소를 시작했다. 1985년에만 세 가지 제소가 있었다. 첫째, 미국 반도체협회(SIA)가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일본이301조를 위반했다며 제소했다. 둘째, 마이크론이 64K D램 덤핑 건으로 일본 기업들을 제소했다. 셋째, 인텔 등이 일본의 EPROM에 대한 반덤핑 제소다. 무역 연구 권위자인 더글러스 어윈 다트모스대 교수에 따르면 당시 SIA나 미국 기업들은 일본이 ‘공정 가격’ 이하로 미국에 덤핑했다는 구체적 증거가 없었다.

그럼에도 무역적자를 해소하고 일본과의 산업 패권 전에 우위를 점해야 했던 레이건 행정부와 의회는 일본 반도체 산업에 대해 강도높은 규제를 요구했다. 미국 상무부는 1985년 12월, 일본이 256K D램을 미국 시장에 덤핑했는지 자체 조사에 나섰다. 당시 미국 상무부가 제소 없이 자체 조사에 나선 것은 처음이었다. 9) 비슷한 시기, 여론을 등에 업은 의회는 한 술 더 떴다. 일자리 보호 법안을 발의하기 위해 혈안이 된 하원은 한 세션 동안 무려 300개 가까운 무역 규제를 소개했다고 한다. 이 중 200여 개는 지역 표심 용이었고, 나머지는 크게 수입 쿼터, 수입 관세, 시장 접근성, 불공정 무역 제소 등 네 가지 분야로 가다듬어졌다.10)

당황한 일본은 미국 달래기에 나섰다. 미국 법무부에 따르면 일본이 1985~1987년 미국 정부와 의회의 전방위 압박을 피하기 위해 쓴 로비 비용만 380만 달러를 썼다고 한다. 히타치는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세우겠다고 발표했고, 일본 내에서는 미국 상품을 사자는 ‘바이 아메리칸’ 캠페인도 있었다. 하지만 레이건 대통령의 전폭적 지원하에 미 상무부는 일본에 강도높은 관세를 부과할 수 있음을 강조했고, 1986년 일본은 ‘미일 반도체 협정’에 사인하게 된다. 효력 기간은 5년이었다.

일본 정부는 크게 다음 네 가지 사안 합의했다. 11)

1)일본 기업이 제조가 이하로 반도체를 팔지 않도록 감독한다.

2)제3국가(미국, 일본 외 다른 국가) 에서도 일본 반도체 가격을 규제한다.

3)미국 정부와 합의 하에 일본 반도체 가격을 정한다.

4)일본 시장에서 미국 반도체 시장점유율을 10%까지 끌어올리도록 노력한다. 필요하다면 일본 정부는 일본 기업 생산을 제한해야 할 것도 암시했다.

미국 의회는 미일 협정에서 더 나아가 보호무역주의를 법제화해 일본과의 무역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했다. 1974년 무역법을 확장해 1988년 제정한 ‘종합무역경쟁력법(Omnibus Foreign Trade and Competitiveness Act of 1988)가 대표적이다. 이 법안에는 이른바 ‘슈퍼301조’가 포함돼 있다. 일반 301조보다 포괄적이고 광범위하게 불공정무역 교역국에 차별적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또 이 법안에는 연방위원회인 ‘외국인 투자심의위원회(CFIUS)’의 조사를 근거로 미국 대통령이 첨담산업처럼 민감한 산업분야에 한해 외국인 투자를 제한할 수 있는 조항이 포함됐다. 12)

8) Douglas A. Irwin, “The U.S.-Japan Semiconductor Trade Conflict,” 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January 1996

9) Michael Schrage, “U.S to Probe Japanese Chip Makers,” Washington Post, December 7 1985

10) George F. Jelen, “The High-Tech Trade War With Japan: Can Anyone Win?,” National Security Agency, Cryptologic Quarterly 5, no. 1–2, 1986

11) Bryan T. Johnson, “The U.S.-Japan Semiconductor Agreement: Keeping Up the Managed Trade Agenda,” Backgrounder, The Heritage Foundation, January 24, 1991

12) James L. Schoff, “ U.S.-Japan Technology Policy Coordination: Balancing Technonationalism With a Globalized World,” Carnegie Empowerment for International Peace, 2020

(3)미일 반도체 갈등의 종식 및 영향

1987년, 레이건 대통령은 3억 달러에 달하는 일본 수입품에 100%에 달하는 보복 관세 조치를 발표했다. 일본이 1986년 반도체협정을 잘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실 일본 경제산업성이 아무리 자국 산업 지원 및 육성에 나서왔다 해도, 기업의 가격과 생산량, 미래 시장점유율까지 제한하긴 쉽지 않아 고군분투했기 때문이다. 놀란 일본 정부는 수출 통관 지연 등 각종 관료적 전략을 통해 워싱턴을 달래려 애썼다.

정작 미일 반도체 협정에 대해 가장 큰 불만을 가진 쪽은 미국 컴퓨터 업계였다. 해외 경쟁사 대비 비싼 가격에 D램을 사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미일 반도체 협정을 맺었다고 인텔은 다시 D램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더 이익이 많이 나는 프로세서 분야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미국 D램 제조사는 마이크론 정도라 컴퓨터 업체들은 결국 일본 같은 해외 제조사로부터 반도체를 사야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미일 협정에 따라 1메가 D램을 미국에는 5달러에, 유럽에는 3.9 달러에 팔았다. 4메가 D램은 미국에 30달러, 유럽에 18달러 수준이었다.13) 이틈을 타 미일반도체 협정의 규제를 받지 않는 한국의 금성(현 LG), 삼성, 현대(현 하이닉스)가 미국 D램 시장을 넓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4)

IBM, 휴렛패커드 등 컴퓨터 제조사들은 1989년 컴퓨터 시스템 정책 프로젝트(CSPP: Computer System Policy Project)라는 단체를 만들어 미국의 일본에 대한 반덤핑 조치에 반대하고 나섰다. 협정의 유효기간이 끝나는 1991년 협정의 연장을 막기 위해 나선 것이다. 결국 미일 반도체 협정은 1년 더 연장돼 1992년 종식됐다.

미일 반도체 협정의 영향에 대한 학계의 평가는 어떨까? 어윈 교수는 미국 내 반도체 산업을 부흥시키는 데 효과가 없었다고 단언한다. 이미 미국 기업들은 D램 시장에 나온 상태였고, 마이크로프로세서 등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 반도체를 포함해 글로벌 D램 반도체 지형에 주는 영향이 컸다. 한국의 삼성, 대만의 TSMC가 고객사를 확보하며 일본을 제치는 계기를 마련했다.

미국이 얻은 것은 정치적 효과였다. 일본은 미국과 산업패권을 다투는 대신 냉전 이후에도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받아들이는 동맹으로 남겠다는 것을 재확인시켰다. 미국 중심 세계질서 하에서 아시아에서 일본의 지역적 이해관계를 넓히는 등 자국 이익을 추구하겠다는 전략을 보다 분명히 한 것이다. NATO 일본 전문가인 카네기 맬론 국제평화단의 제임스 스코프 연구원은 미일 관계에 대해 이같이 적었다.

어떻게 미일 동맹은 1980년대와 1990년대 경제 갈등의 폭풍을 견뎠을까? 일본은 1975년 G7 창설 멤버였고, 1985년 플라자 합의를 받아들여 환율 조정을 했다…. 1980~1990년대 워싱턴과 도쿄의 협상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일본은 미국 요구를 받아들여 자국 내 수입 관세를 낮추는 등 노력을 했다. 미국 압박에 대한 응답으로 미국뿐 아니라 NAFTA 투자를 늘렸다. 그 결과 어려운 순간에도 불구하고, 장기적 테크노내셔널리즘의 폐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15)

13) he Japan Digest, July 25, 1990, p. 1.####

14) 1992 년, 마이크론은 일본에 했듯 한국 금성, 삼성, 현대에도 덤핑 혐의로 제소했다.

15) James L. Schoff, “ U.S.-Japan Technology Policy Coordination: Balancing Technonationalism With a Globalized World,” Carnegie Empowerment for International Peace, 2020

3. 미중 ‘테크 냉전’과 비교 연구

(1)테크노 내셔널리즘의 귀환

15년 이상 지속된 미일 갈등의 배경에는 산업 패권을 둘러싼 미국 내 반일 감정의 격화와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여론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미중 갈등 역시 글로벌 보호무역 주의의 재부상이라는 점, 첨단 산업이 안보 문제로 떠올라 무역 제재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미일 갈등과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면 1990년대 WTO 체제 출범 이후 세계 경제질서로 자리 잡은 세계화 및 자유무역 체제가 다시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콘돌리자 라이스 스탠포드대 교수 등은 2018년 펴낸 저서 ‘폴리티컬 리스크’에서 냉전 시대 종식 이후 세계에 충격을 준 4가지 외생적 쇼크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6)

1)2001년 9.11 테러: 미국이 강력한 국가뿐 아니라 미약하고 정부가 아닌 조직에 의해 공격 당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 또한 1812년 미국 독립전쟁 이후 첫 미국 본토에 대한 공격을 목격한 미국인들의 ‘안보’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2)2008년 금융위기: 반 세계화, 큰 정부, 기업에 대한 규제 요구가 커졌고, 글로벌 경제 위협이 개인에 미치는 영향을 체감하게 됐다.

3)아랍의 봄 및 중동 내전: 장기화된 난민 문제 등으로 유럽연합(EU)이 각국 국경과 유럽인들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정서를 강화시켰다.

4)‘나쁜 국가의 부상’: 시진핑의 중국과 푸틴의 러시아의 부상. 둘 다 각종 분쟁에 무력충돌을 불사하며 나서는 등 파워 게임을 강화해 안보 불안을 야기했다. 러시아는 오일 외에 경제적 영향력은 미미하지만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자 글로벌 기업의 주요 시장이라 보다 복잡하게 얽혀 있다.

2018년에 나온 책이라 저자가 담지 못한 그 이후에 벌어진 글로벌 쇼크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다. 바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대대적인 유행, 팬데믹이다.

5)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2019년 말~ ) 전례 없는 팬데믹 사태는 물리적으로 교역에 타격을 줬고, 자국 중심주의, 자국 중심의 공급망을 필요성을 체감하는 계기가 됐다. 또한 비대면 사회로의 전환, 4차 산업혁명으로의 산업구조 재편에 속도를 붙여 전 세계적인 반도체 품귀 현상의 원인을 제공했다.

16) Condoleezza Rice, Amy B. Zegart, “Political Risk,” Twelve Hachette Book Group, 2018

위 5가지 사건은 각국 안보의 중요성(민족주의의 부상)과 ‘크고 강한 정부’에 대한 필요성을 키우는 방향으로 경제 질서를 바꿔왔다. 안보와 경제는 따로 간다고 봤던 자유무역 시각에서 벗어나 안보와 경제는 같이 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주류가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자유무역, 세계화 체제를 수정하려는 지도자들이 각국에서 정권을 잡기 시작했다. 2017년 미국에서도 미국 우선주의를 자극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됐다. 팬데믹 와중인 2020년, 조 바이든 정부로 정권이 교체됐지만 자국 중심주의, 보호무역주의, 큰 정부 라는 새로운 정치 경제적 질서는 큰 틀에서 변할 수 없다.

미래 산업의 전환기가 보호무역주의 부상과 맞물린 점도 1980년대 미일 갈등과 흡사한 경제적 배경이다. 1980년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가 주창한 ‘제3의 물결’, 즉 3차 산업혁명의 시기에 일본이 기술적 경제적우위에 있을 경우 미국을 군사적으로 위협할 수 있다는 공포가 다소 과장되게 만연했던 것이다. 앞서 언급한 기술 민족주의, ‘테크노 내셔널리즘’의 부상이다. 비슷하게 2010년대~2020년대는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의 경제 패러다임 변환기로 꼽힌다. 미국 양당 할 것 없이 인공지능(AI), 양자 컴퓨팅 등 미래 산업 및 첨단 군사 장비에서 미국이 중국에 우위를 점해야 미국 중심의 경제 및 안보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은 같다.

실제로 2018년 출범한 대통령 및 의회 자문 기구인 ‘인공지능에 관한 국가안보위원회(NSCAI: The National Security Commission on AI)’는 2021년 펴낸 750페이지 분량의 최종 보고서의 상당 부분을 중국 견제 필요성에 할애했다.

(2)중국은 다르다-프렌드 쇼어링

미일 반도체 갈등과 미중 테크 갈등의 결정적 차이는 일본은 미국의 우방이었지만 중국은 아니라는 점이다. 일본의 ‘항복’과 동맹으로 끝이 난 미일 반도체 갈등과 달리 미중 갈등은 훨씬 복잡하고 갈등의 폭이 넓다. 훨씬 광범위하게 세계 질서의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고 보여지는 이유다. 첨단 산업 분야에서 40년 전 미일 갈등과 현재의 미중 갈등의 차이는 다음과 같이 정리해봤다.

1)중국은 미국의 우방이 아니다
일본은 자유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미국의 동맹의 역할을 충분히 해 왔고, 미국과 산업패권전을 벌일 때에도 동맹 우위의 행동을 보여왔다. 반면 중국은 미국의 우방인 적이 없는데다 지적재산권, 인권 문제, 등 시스템적으로 다르다. 테크 갈등과 더불어 중국 공산당 체제 전환이라는 냉전 시대 정치적 현안도 자리잡고 있다.

2)경제적 협력관계는 커져 있다
글로벌 다국적 기업들은 자유무역 체제 하에 더욱 길고 복잡한 공급망 혁신을 해 왔다. 공급망 관리 전문가인 요시 셰피 매사추세츠공대(MIT) 트랜스포테이션·로지스 연구센터 및 공급망 관리 프로그램 디렉터 겸 교에 따르면 더 복잡해지고, 넓어지고, 길어지고 있다. 기업들도 자사의 공급망을 세세히 알지 못할 정도다. 셰피 교수에 따르면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났을 때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일본으로부터 공급받는 부품 수조차 파악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3월 14일 1차 협력사를 파악했을 때 390개로 조사됐던 부품이 24일 1551개로 늘었고 29일 1889개, 4월 13일에는 5329개까지 늘었다. 1차 협력사로부터 받은 부품의 코팅 약품이 알고 보니 일본산이었다는 식이다. 17)

3)중국과 미국 및 미 우방 국가들과의 경제적 협력 또한 커져 왔다
중국은 미국, 한국, 일본, 대만 , 독일 등 미국 및 우방 국가의 주요 제조국이자 주요 시장이다. 직접 투자가 아니더라도 3, 4차 협력사 이상으로 넘어가면 중국을 뺀 공급망을 상상하기 어렵다.

4)미국 기업은 정부의 중국 무역 제재가 달갑지만은 않다
미일 반도체 갈등은 마이크론 등 미국 기업들이 자국 산업을 보호해달라며 미국 정부에 호소해 촉발됐다. 하지만 이제 미국 기업들은 (관세 부과 등) 시장 보호보다 해외 시장 개방을 원하는 쪽이 됐다. 18) 미국은 반도체 장비 및 설계, 한국-대만은 제조, 중국은 소비라는 분업 체계을 흔드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다. 이는 한국, 일본, 대만 기업도 마찬가지다. 미중 갈등은 미국 정부 주도일 수밖에 없다.

40년 전 미일 갈등은 양국의 문제에 국한된 점이 컸다. 유럽이 “왜 미국 일본이 싸운다고 우리까지 비싼 값에 반도체를 사야하느냐”며 GATT에 제소하는 등 일부 갈등이 확산된 면은 있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일본이 미국 질서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결론이 났고, 자유무역이 대세가 되며 자연스레 갈등은 해소됐다.

반면 중국은 미국의 우방이 아니다. 로버트 셔터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지난해 9월 열린 한국 정책 포럼에서 “미국은 중국을 근본적인 위험(fundamental Danger)’으로 본다”고 했다. 셔터 교수에 따르면 미국이 보는 중국의 위협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동아시아 힘의 균형 측면에서의 안보 위협 둘째, 하이테크 분야에서의 중국의 위협, 셋째, 거버넌스 이슈다.

미국 정부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현재 내세우고 있는 것은 두 가지로 보인다. 하나는 미국내 혁신 산업 강화다. 바이든 정부는 출범 직후 반도체 및 첨단 산업에 천문학적인 지원을 쏟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글로벌 반도체 양대 기업인 대만 TSMC나 한국의 삼성전자가 미국에 공장을 지어 달라 압박하기도 했다. 국내 핵심기업 관계자는 “한국 정부를 건너뛰고, 미국 정부가 직접 한국기업에 접촉하는 일이 늘어났다”고 했다.

두 번 째는 ‘프렌드 쇼어링’이다. 혼자 다 만들 수는 없고, 자국의 공급망을 적으로부터 지켜내야 하니 ‘친구끼리’ 공급망을 새로 재편하자는 취지다. 앞서 언급했든 중국은 미국의 우방이 아니지만 미국 및 미국의 우방국과 긴밀한 경제적 협력 관계에 놓여 있다. 넓고 길어져 공격에 취약한 핵심 산업의 공급망을 건드려 상대국의 핵심 산업을 흔드는 ‘전쟁’이 가능하다. 이미 각국이 정치적 분쟁에서 이 같은 경제적 보복 조치로 대응 중이다. 중국이 한국의 사드 배치에 반발해 한한령으로 대응한 것이나 일본이 한국 사법부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반발해 반도체 원자재 수출 규제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프렌즈 쇼어링이란 용어는 4월 재닛 옐런 미 재무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새로운 글로벌 경제 질서의 비전으로 언급해 주목을 받았다. 옐런 장관은 5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브뤼셀 경제포럼에서도 러시아와 중국에 대항해 “서로 믿는 국가간 공급망 구축을 독려해 우리 경제와 무역 파트너에 대한 위험을 줄이면서도 계속해서 안전하게 시장을 넓혀 가야 한다”고 말했다. 19)

20일 방한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일성도 “반도체 동맹”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방한 첫 일정으로 삼성전자 평택 공장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만났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함께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코로나19 대유행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공급망 확보의 필요성이 한층 부각됐다. 이것이 확보돼야 우리의 경제·안보가 우리와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국가들에 좌우되지 않을 수 있다. 우리 전략이 동맹과의 협력을 전반적으로 강화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20)

앞서 NSCAI의 최종 보고서에도 미국이 적어도 두 세 대가량 중국과의 AI 기술 격차를 유지하려면 한국, 대만, 일본, 네덜란드 등과 함께 중국 견제에 나서야 한다21) 는 내용이 나온다. 한국과 대만으로 하여금 미국 내 생산시설 확대를 유도하고, 반도체 소재 및 장비 공급망 중심인 일본 네덜란드 반도체 소재 및 장비를 중국에 수출하지 않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반도체 소재 강국이고, 네덜란드는 반도체 최첨단 미세공정인 극자외선(EUV) 공정에 쓰이는 노광 장비를 독점하고 있다.

17) 김현수, 박형준 “‘저스트 인 타임’→‘저스트 인 케이스’로… 글로벌 공급망 공식이 바뀐다,” 동아일보, 2020 년 2 월 18 일

18) Chad P. Bown, “How the United States Marched the Semiconductor Industry into Its Trade War with China,” East Asian Economic Review vol. 24, no. 4, Special Issue (December 2020)

19) Remarks by Secretary of the Treasury Janet L. Yellen at the Brussels Economic Forum, U.S. Department of the Treasury

20) 문병기 장관석, “한미, 삼성 공장서 ‘반도체 전략동맹’ 선언, 동아일보, 2022 년 5 월 21 일

21) National Security Commission on Artificial Intelligence, “Final Report” May 2021

4. 한국에 주는 시사점

한국은 대만과 더불어 1980년대 미일 반도체 갈등의 대표적 수혜국으로 꼽혀 왔다. 물론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 강국이 된 것은 한국 기업의 끊임없는 기술 개발과 과감한 투자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하지만 미일 반도체 협정으로 일본 정부가 미국 정부와 함께 반도체 가격을 정해야 할 때, 당시 한국 삼성이나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는 그 같은 규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일본보다 싼 값으로 시장을 개척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표2에서 보듯 1988년 미국에서 한국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8%였지만 1989년 15%로 뛰었다.

표 2. 미국 반도체 수입의 진화22)

일본을 제소했던 미국 내 유일한 D램 기업 마이크론은 미일 반도체 협정이 끝난1992년 이번엔 한국 금성, 삼성, 현대전자를 상대로 덤핑 제소에 나섰다. 미 상무부는 이후 한국 기업에 추가 관세 명령을 내리는 등 한국 기업을 견제하려 했던 것도 사실이다. 마이크론은 대만에도 같은 방식으로 반덤핑 제소에 나섰다. 하지만 치명적 관세를 피하려 미국과 굴욕적 반도체협정을 맺어야 했던 일본과 달리 1990년대는 WTO 체제가 자리잡고 있었다. 자유무역의 흐름 속에 한국은 미국의 반덤핑 관세 부과에 WTO 제소로 맞섰고 마침내 2000년 승소했다.

2000년대에는 미국이 반도체 시장에 대한 관심이 줄었다.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의 반도체 수입 비중은 1995년 27%에서 2019년 5%까지 줄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반도체는 어디로 갔을까? 바로 중국이다. 중국은 2005년 이후 세계 반도체의 최대 수입처였고, 한국과 대만 반도체가 성장하는 바탕이 됐다.

즉 미국이 한국 반도체를 견제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한국은 자유무역 바람, 미국 및 유럽의 반도체 다변화가 낫다는 판단, 중국의 부상으로 1990년대 중반 이후 20여년 이상 반도체 강국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미중 갈등이 반도체와 같은 첨단 분야에서 촉발됨에 따라 한국 반도체는 고통스러운 선택에 직면할 수밖에 없게 됐다. 미국은 지난해 미국 반도체 기술이 들어간 반도체의 중국 수출 규제에 나섰다. 미국 기술 없이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기업은 없다. 중국에 있는 한국 반도체 공장은 네덜란드로부터 반도체 노광장비를 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 반도체 성장의 배경이 됐던 시장 조건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바이든 정부의 ‘프렌드 쇼어링’ 정책을 비롯한 미중 테크 갈등이 새로운 세계 질서를 만들 것이라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경제가 곧 안보 의제가 된 새로운 질서를 어떻게 받아들일 지에 대해 정부-기업 간 전략적 협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22) Chad P. Bown, “How the United States Marched the Semiconductor Industry into Its Trade War with China,” East Asian Economic Review vol. 24, no. 4, Special Issue (December 2020)

23) Chad P. Bown, “How the United States Marched the Semiconductor Industry into Its Trade War with China,” East Asian Economic Review vol. 24, no. 4, Special Issue (December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