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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갈등 속 한국의 대응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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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갈등 속 한국의 대응 전략 매일경제신문 김기정 연수기관: C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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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제제기- 미중갈등은 계속될 것인가

“미중갈등은 두 나라 정치체제의 대립이 본격화되면서 앞으로 더 심화될 것이다. 한국은 지리적으로 중국과 제일 가까운 미국의 동맹국으로 미중경쟁의 최전선에 서 있다.” (엘렌 김 박사,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2022년 5월 인터뷰)

미국이 지난 2019년 중국 이동통신 기업 화웨이를 압박하며 가시화된 미중 대결은 초기엔 기술패권을 놓고 벌이는 통상전쟁의 성격을 보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민주주의’와 ‘전체주의’ 또는 ‘민주주의’와 ‘중국식 사회주의’라는 정치체제충돌로 프레임이 바뀌는 양상이다.

중국이 전략적 후퇴를 택할 수 있는 기술전쟁과 달리 정치체제의 문제는 중국이 양보할 수 없는 ‘핵심이익’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미국의 대표적인 싱크탱크인 CSIS의 엘렌 김 박사를 비롯한 다수의 싱크탱크 관계자들은 미중 갈등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으며 갈등의 수위도 고조될 것으로 예상했다.

미중 갈등이 악화된다면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한국은 미중 갈등 속에서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이란 입장을 취해왔다. ‘안보’는 동맹국인 미국에 의지하지만 최대교역국인 중국과의 ‘경제’관계도 무시할 수 없다는 ‘줄타기 외교’를 구사했다.

이번 보고서는 CSIS 석학들의 의견을 중심으로 ‘신 냉전’이라 불리는 미국과 중국의 기술전쟁 원인과 체제대결로의 전개과정을 살펴보고 한국의 현 상황을 진단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또 대중국 관계설정에 있어 ‘안보’와 ‘경제’사이에서 고민을 했던 호주의 사례와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이 한국에 던지는 메시지를 검토하고 미중 갈등 속에서 한국의 대응전략을 모색하고자 한다.

2. 미중 신 냉전의 원인-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중국

“미국이 4G(4세대) 이동통신까지만 해도 안 그랬는데 5G(5세대)를 가지고 중국을 압박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4G와 5G가 어떤 기술적인 차이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트럼프 행정부에서 미중관계 설정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는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 외교안보 싱크탱크의 A박사, 2020년 1월 인터뷰)

미국과 중국의 기술 냉전이 일반인들에게 크게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8년 화웨이의 5G 통신장비에서 발견된 데이터 백도어 논란이다. 2018년 12월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을 하는 동안 미국은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캐나다 밴쿠버공항에서 전격 체포한다. 화웨이는 5G 이동통신의 상징기업으로 미국은 화웨이와 멍부회장을 금융사기 및 기술절취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1)

당시만해도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무역전쟁’의 국면을 보였다. 12조에 달하는 5G시장을 선점하려는 미국과 중국의 기술경쟁이 갈등의 핵심이라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을 외치며 중국에 대한 무역수지 적자를 회복하려고 했고 5G와 같은 첨단기술은 미중 갈등의 상징이 됐다.

니얼 퍼거슨 스탠포드대 교수도 미국과 중국의 신 냉전은 2019년부터 명확해졌다고 보고 있다.2) 퍼서슨 교수에 따르면 미국의 무역적자와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범 문제로 양국의 갈등이 심해졌고 5G 이동통신을 놓고도 기술전쟁이 벌어졌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산하 벨퍼센터는 ‘위대한 기술경쟁, 중국 대 미국’ 보고서에서 “안면인식, 음성인식, 핀테크 등 AI 응용분야는 중국이 미국을 앞질렀으며 양자 컴퓨터 등도 10년 안에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경고했다.3)

하지만 기술패권 경쟁 이면에는 G2로 부상하는 중국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의 고민이 숨어있다

미국은 중국이 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국제질서에 편입할 것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중국은 중국식 사회주의 강대국 달성을 꿈꾸고 있다. 시진핑 지도부는 국제 사회에서 중국의 역할을 참여자에서 주도자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중국은 군사력과 기술력 키우며 자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도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4) 미국과 중국의 이해가 충돌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 것이다.

미국은 중국이 국제규범을 따르지 않고 ‘중국제조2025’라는 프로젝트 등을 통해 정부 보조금을 지원하면서 관련 산업을 육성했다고 지적한다. 미국 기업들이 정부 지원을 받는 중국 기업들과 불공정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는 게 미국의 시각이다.

1)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381149

2) https://www.mk.co.kr/news/world/view/2022/03/257747/

3) Graham Allison, Kevin Klyman, Karnina Barbesino, Hugo Yen, The Great Tech Rivalry: China vs the US, Belfer Center, Harvard Kennedy School, 2021. 12.

4)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11108/110143837/1

미국은 민간에서 개발된 기술이 중국 공산당과 군에 넘어가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상황도 우려하고 있다. 실제 미국은 첨단기술에 대한 보호주의 장벽을 높이고 있다.

지난 2021년 화상회의 서비스기업 줌(Zoom)은 ‘파이브나인’이라는 콜센터 업체를 인수하려 했지만 미 법무부가 미 연방통신위원회(FCC) 해당 인수를 승인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결국 거래는 무산됐다. 줌의 창업자인 에릭위안은 미국 시민권자지만 중국 태생인 점이 문제가 됐다는 분석이 나왔다.5)

반면 중국은 미국의 정한 국제질서를 따르면 만년 하청국가의 위치를 벗어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이미 최첨단 분야에서 멀찌감치 앞서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를 따라 잡으려면 중국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CSIS의 엘렌 김 박사는 “한 때 미국은 중국의 급격한 부상을 경계하면서도 중국이 미국주도하의 국제질서를 존중하고 수호하는 합리적인 이해관계자(reasonable stakeholder)가 되길 기대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하지만 시진핑 주석 집권 후의 중국은 힘을 본격적으로 팽창, 패권국가로서의 야심을 드러냈고 기존 국제질서를 중국의 이해관계에 맞게 재설정하려는 현상타파 국가(revisionist state)의 모습을 보였고 이것은 결국 미중 패권다툼을 촉발시켰다”고 설명했다.

3. 현주소- 대(對)중국 연합전선 짜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 국내 정책은 트럼프 행정부와 각을 세우고 있지만 대중정책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계승한다는 입장이다.

중국 관영 영자신문 ‘차이나데일리’는 지난 2021년 7월18일자 사설에서 “바이든의 새 병에는 트럼프의 오래된 와인만 들어 있다”면서 바이든 정부의 대중 정책을 ‘신 트럼프주의’라고 불렀다.6)이 신문은 또 미국이 다른 모든 국가를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하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외 정책에 있어서 바이든 정부가 트럼프 정부와 다른 점은 동맹국과의 관계설정이다. 트럼프는 중국과의 무역전쟁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동시에 한국을 비롯해 유럽, 캐나다, 맥시코 등 동맹국들과도 갈등을 빚었다. 반면 바이든 정부는 동맹국과 스크럼을 짜고 대중국 연합전선을 형성한다는 전략이다.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짜고 있는 대표적인 연합전선이 인도-태평양전략이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한국, 호주, 일본, 태국, 필리핀과의 양자동맹을 바탕으로 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국간의 쿼드(QUAD), 미국, 영국, 호주 3국간의 오커스(AUKUS)를 엮어냈고, 한미일 3국 협력을 구축해 민주주의에 기초로 하는 역내질서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또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구축을 통해 핵심기술이 중국으로 흘러가는 것을 통제하고 핵심품목과 원자재의 대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등 국제 공조를 강화해 중국을 견제한다는 방침이다.7)

중국을 겨냥한 국제공조에 한국의 보다 적극적인 참여를 바라는 미국의 입김도 점점 거세지고 있다.

미국은 2021년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반도체, 배터리 등 핵심 품목에 대한 공급망 협력을 한국으로부터 약속받았다. 또 미국 정부는 국방물자생산법(DPA)라는 법을 적용하며 한국 기업도 대 중국 전선에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하고 있다.8)DPA는 지난 1950년 한국전쟁 때 제정된 연방법이다. 국가 비상사태 때 대통령이 주요 필수품의 생산을 확대하거나 가격담합을 금지할 수 있다는 권한이 있다는 게 이 법의 요지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지난 2021년 9월 삼성전자에 반도체 재고, 주문량 주요 정보를 제출할 것으로 요구했다. 9) 앞서 4월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자동차 업계 경영진을 소집해 반도체 서밋(반도체 공급망 대책회의)을 열기도 했다.

한국 반도체기업이 중국에 부품을 공급할 것이냐를 놓고 미국 정부가 개입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 기업은 이제 경제논리로만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게 됐다.

중국도 2021년 ‘반 외국제재법’을 통해 대 중국견제에 나서는 국가에 상응하는 제재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중국을 겨냥한 수출통제에 맞서 원자재 공급망을 틀어쥐고 대응하겠다고 밝혔다.10)

중국은 ‘기술전쟁’ 분야는 가급적 미국과 직접적인 정면대결을 피하며 자구책 마련에 나선다는 입장이지만 공산당과 사회주의 체제를 왜곡하거나 위협하는 행동에는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4. 정치체제 대결로 번지는 미중갈등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2021년 3월3일 ‘잠정 국가안보 전략지침’을 발표했다. 여기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가장 큰 경쟁력은 ‘민주주의’라는 가치라며 이를 통해 동맹국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시켜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11)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2020년 5월 ‘미국의 새로운 대중국 전략보고서’를 통해 신 냉전상황을 기정사실화 하고 중국을 경쟁자로 규정하며 사회주의 공산당으로 표현했다.12)

마이클 그린 CSIS 선임 부소장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국의 가장 큰 경쟁력을 ‘민주주의’라는 가치라고 밝힌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앞으로 미국은 ‘민주주의’라는 가치 속에서 동맹국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시켜 대 중국 압박에 나설 것이란 의미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시각에서 중국은 이미 ‘민주주의’ 국가의 범위에서 벗어 났다. 미국이 대만, 홍콩, 신장 등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지적하는 이유다.

전문가들이 미중 갈등이 앞으로 더욱 고조될 것으로 보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이 지적하는 이러한 문제들, 즉 대만, 홍콩, 신장 등의 이슈들은 중국 또한 자국의 국가주권과 연관된 ‘핵심이익’이라고 보고 있는 것들이며 중국은 어떠한 대가와 비용을 치르더라도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과의 전략경쟁을 피할 수 없는 중장기전으로 인식하고 수출위주의 경제발전에서 벗어나 내수경제 중심으로 체질개선을 준비하고 있다. 중국은 미중 전략경쟁 상황에서 수출의존도를 줄여 외부 위협에 대응한다는 전략이다.13)

중국은 미국의 인도 태평양 전략에 대응하기 위해 이란, 파키스탄과 협력을 강화하고 러시아, 북한과도 전략적 공조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미국이 주도하는 쿼드에 한국이 참여할 지를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여러 채널을 통해 미중전략경쟁 구도 속에서 한국이 미국을 선택해 중국을 적으로 만드는 정책은 지양해야 한다는 점을 한국에 전달하고 있다.

결국 미국이 동맹국들과 스크럼을 짜고 중국과 ‘전략적 경쟁’ 체재로 돌아선 이유는 자유무역주의의 붕괴 때문이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은 자유무역주의라는 이름으로 국제질서를 유지해왔지만 중국의 부상과 함께 그 힘이 약해지면서 자유주의 세계질서도 무너지게 된다.

또한 시진핑 집권이 장기화되면서 중국은 시장경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모습보다는 전체주의 사회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중 경제 패권다툼이 정치제재대립으로까지 확전되면서 미중갈등은 해결되기가 더 어려운 양상을 보이고 있다

10) 한시엔둥, 정재흥, 미중 전략경쟁에 대한 중국의 인식과 대응, 세종정책브리프, 2021. 8.12

11) 오일석, 바이든 행정부의 잠정 국가안보 전략지침에 나타난 신안보 인식과 대응방안, 국가안보전략연구원, 2021년 3월.

12) 한시엔둥, 정재흥, 미중 전략경쟁에 대한 중국의 인식과 대응, 세종정책브리프, 2021. 8.12

13) 한시엔둥, 정재흥, 미중 전략경쟁에 대한 중국의 인식과 대응, 세종정책브리프, 2021. 8.12

5. 미중갈등 최전선에 선 한국, 통상과 안보 딜레마

한국은 지리적으로 중국과 가장 가까운 미국의 동맹국이다. 지정학적으로 보면 미국의 쿠바이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인 셈이다.

사드 배치로 인한 중국의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미중 갈등 속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했다. 한국경제의 대중국 의존도가 여전히 높다라는 현실론과 함께 북한과의 대화에서 중국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는 문재인 정부의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의 타깃이 되고 있는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다.

한국과 같은 수출 주도형 국가는 자유무역 상황에서 성장이 용이하다. 한국은 내수시장이 작아 자유무역 주의 기조에서 수출로 경제발전을 이끌어 냈다. 중국의 부상과 함께 거대한 중국시장으로의 수출은 대미수출 의존도를 줄이는 것을 넘어서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새로운 외교 방정식을 도출해 내게 된 배경이다.

자유무역주의 기조 하에선 소위 ‘통상’과 ‘안보’가 분리되는 것이 가능했고 당연했다. 하지만 국가간 긴장상황이 고조되면 ‘통상’보다 ‘안보’가 우선시 된다.

미중 갈등과 통상, 안보 딜레마 속에서 ‘통상’보다 ‘안보’를 선택한 국가로 호주가 많이 인용된다.14)

전통적으로 호주는 중국에 광물과 농산물을 수출하고 중국으로부터 소비재를 수입하며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호주는 전체 수출의 40%를 중국에 의존했다.

하지만 양국 관계는 지난 2018년 호주 정부가 중국기업의 호주 5G 참여를 금지하며 악화되기 시작했다. 이어 2020년 코로나19의 기원에 대한 조사와 홍콩보안법, 솔로몬 제도 등을 놓고 양국간 갈등이 고조됐고 호주는 쿼드 참여와 오커스 참여로 중국과의 ‘통상’을 희생하더라도 ‘안보’를 택하는 결정을 내린다.

중국은 호주산 쇠고기 수입을 규제하고 와인 등 호주산 수출품에 고율관세를 부과하는 등 경제보복에 나섰다. 하지만 철광석, 석탄 등 호주의 주요 수출품에 대한 국제 수요가 늘어나면서 호주는 수출다변화에 성공했고 오히려 국방력을 키우며 미국과 안보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6.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교훈, 동맹의 중요성

지난 2022년 2월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미중 갈등은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 앉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를 좀 더 면밀히 분석해 보면 미국과 러시아의 지정학적 갈등이 우크라이나에서 터진 것처럼 미중 갈등이 한반도에서 ‘냉전’이 아닌 ‘열전’이라는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원인을 미국이 제공했다는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의 주장15)은 흥미롭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지난 2008년 우크라이나가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 될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러시아를 자극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가입시키고 친미국가를 만들려는 전략을 펼치자 1962년 소련의 쿠바 미사일 기지 건설로 미국이 느꼈던 위협을 러시아가 느꼈다는 것이다.

미어샤이머 교수의 주장은 소수론에 불과하다. 하지만 ‘대만해협’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간 위기고조가 어떻게 한반도에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좀 더 정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또 다른 시사점은 이번 사태에 대응하는 서방의 방식이다.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진단하는 CSIS와의 대담에서 ” 서방국가들이 지금껏 보여주지 않았던 단합된 자세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대응하며 서방을 하나로 묶은 것은 ‘민주주의’라는 단어다.

마이클 그린 CSIS 부소장은 “푸틴의 러시아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우크라이나-러시안 전쟁은 민주주의 국가와 전제국가의 대결이다”라며 “바이든 행정부는 ‘민주주의’ 연대 강화를 통해 나토 및 동맹국의 협력을 이끌어 냈다”고 분석했다.16)

우크라이나 전쟁의 또 다른 키워드는 ‘동맹’이다.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면서도 ‘동맹’이 아니라는 이유로 군사적 개입을 거부했다.

수미 테리 우드로윌슨 센터 국장은 CSIS 토론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통해 역설적으로 한국은 ‘동맹’의 중요성을 확인하게 됐다”고 말했다.

7.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인가?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가요? 한국은 미국의 ‘동맹’ 국가가 아닌가요?” CSIS의 관계자들, 또 CSIS를 찾은 다른 주요 싱크탱크의 연구자들과의 비공개 대화를 나눠보면 그들은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펼치는 것이 현 국제정세에서는 더 이상 적절하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일부는 대중 경제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사정을 이해한다면서도 한국이 국제사회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걱정스런 뉘앙스가 많았다. 그렇다면 미중갈등 속 한국의 전략은 무엇인가.

한국정부는 미중 갈등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미국이 한국 정부에 명확한 시그널을 보일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한다면 ‘전략적 모호성’은 더 이상 국가전략이 되기 힘들다. 결국 한국의 선택지는 미국 주도의 ‘민주주의 전선’에 동참하는 것 이라는 게 상당수 미국 싱크탱크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CSIS의 한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한국의 국가 정체성은 민주주의 국가로서 현 국제질서를 따르는 것이다. 따라서 한미동맹을 중심에 두고 한중관계를 재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다 현실적으로 북한의 안보위협으로 막기 위한 한미 군사동맹 상황에서 한국은 미국의 협력 요청을 거부하기 힘들다. 결국 한국은 미국과 안보동맹을 유지하면서 중국과 충돌하지 않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CSIS의 엘렌 김 박사는 “한국 정부가 한미동맹과 민주주의 국가간 협력을 중국에 대항할 수 있는 전략적 자산(asset)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이 미국 편에서 중국과의 싸움에 선봉장이 될 필요는 없다”면서도 “중국의 공격적이고 강압적 행동을 저지하려는 미국과 다른 국가들에 동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박사는 북한정권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검토해 북한 핵, 미사일 문제에 대해 중국의 협조를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중국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북한 핵, 미사일 실험에 미온적으로 반응한다면 이는 결과적으로 중국 정부가 원하지 않는 동북아의 무기경쟁(arms race)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점을 중국에 명확히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동안 분리 운영됐던 ‘통상’과 ‘외교’의 컨트롤타워를 합치는 것도 필요하다.

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외교통상부의 ‘통상’ 기능이 산업부로 이전됐다. 하지만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가 ‘안보를 중심으로 하는 통상’으로 바뀌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경제논리가 지배하던 자유무역주의시대와 달리 지금은 ‘정무적 판단’을 통한 통상외교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무역기구(WTO) 다자무역 규범이 유명무실해지고 국가안보를 이유로 한 예외적인 무역규제조치인 ‘GATT 21조 조치’가 브레이크 없이 시행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선 통상교섭권을 외교부로 다시 되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17)

CSIS의 연구진들은 미중 갈등 속에서 한국이 좀 더 적극적인 역할에 나설 수 있다고 조언했다.

마이클 그린 CSIS 선임 부소장은 “한국은 미중 갈등에서 빠져나가려는 소극적 자세에서 탈피해야한다”고 말했다.

미중 갈등속에서 한국이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구체적인 한 방안으론 빅터 차 CSIS 부소장 겸 한국석좌가 제시한 동북아평화협력구상(동평구)이 인용된다.

동평구는 북한의 비핵화, 영토분쟁 등 국가간 의견이 갈리는 문제는 피할 것을 권한다. 대신 기후변화, 재난 리스크 관리, 핵 안전과 안보 등 한국, 미국, 북한, 중국, 러시아, 몽골, 일본 등 모두의 공통 관심사에 대해 협력적인 대화를 추구하는다는 것 이 요지다. 18)

조태열 전 외교부 차관은 헬싱키 프로세스를 모델로 한 동평구가 대립과 갈등의 시기에 역설적으로 대화와 협력의 공간을 만들어 한국이 동북아 신뢰구축에 기여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19)

빅터 차 한국석좌는 또한 윤석열 정부가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러시아 대해 강경한 입장을 밝힐 것, 한미일 정상회담에 합의할 것, 미국의 ‘자유롭고 열린 인도, 태평양 전략’을 전적으로 지지해야 할 것을 주문했다.20)

한국 기업들은 이제 미국 정부와의 협조가 ‘필수조건’이 돼버렸다. 미국 정부와의 우호적인 관계조성을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미중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미국은 반도체, 배터리 산업의 공급망 재편을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이들 분야의 최대 생산기지이자 소비시장이다. 배터리 주요 원자재의 60~70%가 중국에서 생산된다.21) 당장 중국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가 없다.

최근 한국 기업들이 잇따라 미국 대관인력 강화에 나선 것은 이 같은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삼성전자 북미법인은 지난 2월 마크 리퍼트 전 주한미국대사를 북미법인 대외협력팀장 겸 본사 부사장에 임명했다. CSIS의 유튜브 방송채널인 캐피탈 캐이블(capital cable)의 진행자로도 활동 중인 리퍼트 전 대사는 대관업무를 총괄하는 삼성전자 워싱턴DC 사무소를 이끌고 있다. 한화그룹도 워싱턴DC 대관조직을 강화하고 방산업체 BAE출신 존 켈리 부사장을 한화디펜스 USA법인장에 임명했다. 또 버나드 샴프 전 미8군 사령관이 한화의 미국 대관 총괄업무를 맡았다.22)

LG그룹은 워싱턴DC사무소를 새롭게 열고 조 헤이긴을 영입했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백악관 부비서설장을 역임한 인물로 2018년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을 총괄했다. 포스코는 스티브 비건 전 미국 국무부 부장관을 고문으로 영입했다. 2019년 미북정상회담 북핵협상 대표를 맡았던 비건 전 장관은 통상, 투자, 친환경 분야 자문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쿠팡은 알렉스 웡 전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를 워싱턴사무소 총괄임원으로 영입했다.23)이외에 CJ ENM도 워싱턴DC 사무소를 열고 대관인력 영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