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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이 더 걸린 자동차 보험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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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0년째 초보운전이다. 면허는 대학 시절에 땄으나 첫째를 임신한 아내가 만삭이 되고 나서서야 조금씩 운전대를 잡기 시작했다. 이후로도 운전과는 친하지 않았다. 알코올과 함께 하는 기자의 삶에서 자가용 출퇴근은 어차피 불가능했고, 수시로 노트북을 열어야 하니 대중교통이 더 편했다. 항상 초보의 자세로 운전대를 잡아서인지 최근까지 사고는 단 한 번도 내본 적이 없었다.

미국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크든 작든 사고가 나면 무조건 경찰부터 불러야 하고, 복잡한 사고 처리과 비용까지 생각하면 1년 동안은 반드시 무사고 기록을 유지하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각오와 달리 사고가 났다. 정확히는 당했다. 집에서 십 분 거리에 있는 한인 마트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장을 보고 나왔더니 누군가 접촉사고를 내고 가버렸다. 차를 돌리면서 부딪힌 것인지 왼쪽 뒷바퀴 부근 차체가 찌그러져 있었다.

천만다행인 것은 범인(?)이 미안하다며 메모를 남기고 갔다는 점. 한국과 달리 사생활 침해 우려 탓에 CCTV나 블랙박스가 별로 없는 미국에서는 사고를 낸 뒤 그냥 가버리면 방법이 없다고 한다. 결국 자신의 자동차 보험으로 수리 비용을 충당해야 하는데 이때는 보험 계약 시에 설정한 본인 부담금(Deduction)을 내야 한다. 수리 비용이 1,000달러인데 Deduction이 500달러라면 본인이 500달러를 내야 한다는 것. 정말 양심적인 사람을 만났다는 것이 차를 구매한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한국자동차 측의 설명이었다.

마트 주차장에 차를 세워둔 사이 누군가 접촉사고를 내고 가버렸다. 보험사에서 뽑은 수리 견적은 680달러.

상대방에게 연락했더니 자신의 인적 사항과 차량 정보, 자동차 보험 정보 등을 넘겨줬다. 당연히 사고를 낸 쪽에서 보험사에 사고를 신고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보상을 받는 쪽에서 사고를 접수시키고 처리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도 몰랐다. 그것이 얼마나 지난한 작업인지를.

우선 사고 접수를 위해 한국자동차 측의 도움을 받아 상대방 보험사에 전화했다. 직원은 친절하지만 잘 알아듣기 힘든 발음으로 나와 상대방의 인적 사항, 차량 정보, 보험 정보 등을 물었다. 사고 경위, 차량의 피해 정도에 대해서도 세밀하게 물었는데 사고 접수에만 30분이 더 걸렸다. 해당 보험사에 회원가입도 따로 해야 했다. 사건 처리 과정을 추적하고 정보를 확인하는 데 필요하단 것이었다.

사고 처리 과정이 기록된 보험사 홈페이지 모습. 접수 후 사고 경위 확인, 견적 계산, 보험금 지급까지 한 달이 넘게 걸렸다.

끝이 아니었다. 접수 후에는 해당 정보를 바탕으로 보험사가 가입자에게 교차 확인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내용으로 사고가 접수되었는데 맞느냐, 사고 경위와 차량의 피해 정도는 어떠냐는 똑같은 내용을 묻고 확인하는 과정이다. 그리고서 사고 경위가 확인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접수 1주일 뒤에.

다음은 수리 견적을 뽑는 과정이었다. 보험사가 견적 계산을 위해 방문하라고 지정한 공업사는 거리가 꽤 있었다. 한국처럼 보험사 직원이 찾아와 견적을 뽑는 게 아니라 사고를 당한 쪽이 지정된 정비소를 찾아가야 하는 이해 불가의 시스템이었다. 다행히 사진으로 견적 계산도 가능하다고 하여 차량의 전후좌우, 번호판, 제조번호 정보(찾는 데 한참이 걸렸다) 등 총 12장의 사진을 찍어 보냈다.

1주일 뒤 견적이 나왔다. 예상 수리비는 총 680달러였다. 교체해야 하는 부품, 소모되는 재료, 그에 따른 공임 등을 하나하나 나눠서 계산한 총액이었다. 그리고 해당 견적으로 수리를 받을 수 있는 지정 정비소 목록이 딸려왔다. 목록에는 없는, 직접 원하는 곳에서 차량을 수리하겠다고 하니 보험금을 계좌로 입금해 준다고 했다.

보험금 지급까지는 2영업일이 걸린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2주 뒤에 680달러가 입금됐다. 사고 발생일로부터 따지면 수리비 입금까지 한 달이 넘게 걸린 셈이다.

사건은 아직 다 해결되지 않았다. 수리비를 받았으니 당연히 이제 차를 고쳐야 한다. 그런데 사고 발생 두 달이 다 되도록 아직 수리를 못하고 있다. 그러자면 차를 정비소에 맡겨야 하는데 미국은 차가 없으면 생활이 불가능한 땅이다. 아이들 레슨을 보내고, 마트에 장을 보기 위해 매번 우버를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언제쯤 차량을 맡길 수 있을지 답을 찾지 못하고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처음 미국에서 운전하며 신기했던 장면은 꽤 많은 차들이 범퍼가 찌그러지다 못해 너덜너덜한 채로 도로를 달리는 모습이었다. 정말 이해할 수 없었던 작태였는데 내가 그 꼴이 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