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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보다 배꼽이 큰 교통범칙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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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생활하면서 가슴 철렁했던 순간을 하나만 꼽으라면 교통 경찰 단속에 걸렸을 때다. 연수를 시작한지 한달쯤 됐을까. 이른 아침 집 근처 한적한 도로를 한가하게 달리고 있는데, 뒤편에서 불빛이 요란하게 번쩍였다. 룸미러로 뒤를 보니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검은색 차가 속도를 높여 내 차에 바짝 붙어오는 게 아닌가. 긴급 차량인가 싶어 비켜주려 차선을 바꿨더니, 뒷차도 차선을 바꿨다. 차를 세우기 위해 속도를 줄이자 따라 속도를 줄였다. 그제서야 범퍼에 적힌 POLICE라는 작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차가 정차한 뒤에도 경찰관은 한참을 차에서 내리지 않았고, 시간이 흐를 수록 내 머릿속은 온통 불길한 상상으로 채워졌다. 두 손이 잘 보이도록 운전대를 잡고 있어야 해, 맘대로 창문을 내려선 안돼, 허리를 숙이거나 허투루 몸을 움직이면 총을 꺼낸다고 생각해, 묻는 말에만 답해, 잘 못하면 총에 맞을 수도 있어. 차에서 내린 경찰관은 총을 찬 허리 춤에 손을 얹고 천천히 걸어와 차량 후미등 쪽을 손으로 짚자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차량 검문 과정에서 부상을 입거나 사망할 경우를 대비해 자신의 지문을 남기 것이란 얘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경찰관은 제한 속도 시속 25(40km)마일 도로를 35(56km)마일로 달렸다며 차량 등록증과 운전면허증을 달라고 했다. 임대인이 미국에 온 첫날 했던 당부가 그제서야 떠올랐다. 큰 길로 이어지는 집 앞 도로의 제한 속도가 근래에 바뀌었으니 주의하라는 말이었다. 연수지인 노스캐롤라이나(NC)주는 제한 속도 규정이 일반 도로는 통상 35~55마일, 고속도로는 65마일이어서 35마일 이하로 달리면 과속 티켓을 받을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특별히 지정된 일부 도로의 경우 25마일 등으로 제한되고, 이들 도로에서는 경찰 단속도 심심찮게 이뤄져 현지인들도 적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것이었다. ‘한국처럼 과속 단속 카메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다니는 차도 거의 없는 한적한 도로인데 설마 잡히겠어라고 방심했다 보기 좋게 걸린 것이다.

경찰이 어디서 나타났지종류도 다양한 교통경찰

그날도 경찰이 잡아 세우기 전까지 도로에는 다른 차량이 없었다. 그런데 경찰은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 의문은 며칠 안에 풀렸다. 같은 길을 다니며 유심히 살펴보니 경찰은 맞은 편 도로의 사각지대에 숨어있었다. 현지인들의 설명에 따르면 고속도로와 달리 일반 도로는 경찰이 맞은 편 도로에서 교통 법규 위반 장면을 촬영한 뒤 차를 돌려 온다고 한다.

특히 미국 경찰 차량은 한눈에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한국 경찰차는 파란색으로 누가 봐도 경찰차임을 알 수 있지만, 이곳은 POLICE라는 글씨가 적혀 있는 걸 빼면 일반 차량과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게다가 교통 단속을 하는 경찰의 종류도 다양하다. 흔히 만날 수 있는 일반 경찰(Police), (County) 단위의 보안관(Sheriff), 주 단위 교통 경찰(State Trooper), 고속도로 순찰대(HP) 등에다 경찰이라는 표식조차 없는 암행 차량(Under Cover)까지 있어 미국에 오래 거주한 사람들도 사이렌이 켜지기 전까지는 일반 승용차인지 경찰차인지 외관상으로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교통 법규가 주마다 다르다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과속 단속에 걸리고 한달 사이에 교통 경찰에 두 번 더 적발됐는데, 한번은 버지니아주 고속도로를 달리다 갓길에 멈춰서 있던 경찰차 옆을 지나갔다는 이유로 단속됐다. 버지니아주의 경우 갓길에 정차된 경찰차와 가까운 차선을 비우고 1, 2차선 등 안쪽 차선을 변경한 뒤 주행해야 한다고 한다. 버지니아 주민이 아니고서는 알기 쉽지 않는 교통 법규다. 딱지를 받지 않으려면 로드트립 전 경유하게 될 주의 교통법규를 챙겨볼 필요가 있다.

교차로 통행 방식이 한국과 크게 다르다는 점도 운전시 염두에 두어야 할 포인트다. 신호등이 없는 교차로에서의 정차(STOP) 위반은 현지인들도 자주 단속에 적발되는 부분이다. 특히 ‘STOP All Way’라고 적힌 표지판 앞에서는 모든 방향의 차량은 정지선에서 3초간 멈춰 선 뒤 우선 순위의 차량을 보내고 주행하도록 돼 있다. 차를 완전히 세우지 않거나 우선 순위를 어기고 통과할 경우 티켓을 받게 된다. 오가는 차가 없는 교차로에서 3초간 완전히 멈춰서는 운전 습관을 기르는 게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황색 신호일 때 꼬리 물기도 현지인들도 지키기 쉽지 않은 교통 법규라고 한다.

차선마다 신호가 따로 주어지는 점도 한국식 운전에 익숙한 비지터들이 헷갈려 하는 대목이다. 좌회전은 초록색 좌회전 화살표 신호가 있는 경우가 아니면 비보호 좌회전이 원칙이다. 청색 신호라고 무턱대고 핸들을 돌려서는 안 된다. 우회전의 경우 적색 화살표 신호가 켜지거나, 초록색 불에만 우회전이 가능하다고 명시된 경우에는 우회전을 해선 안 된다. 하다 못해 차선 변경 시 깜빡이를 켜는 것도 놓쳐선 안 된다. 필자의 경우 펜실베니아주의 한 작은 마을을 지나다 깜빡이를 켜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붙들리기도 했다. 다행히 경찰이 구두 경고만 받고 끝났지만, 미국에서는 아주 사소한 법규라도 어길 경우 어디선가 기다렸다는 듯 경찰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절감할 수 있었다.

법칙금보다 비싼 행정 수수료보험료 할증 위험까지

  사소한 교통 법규를 위반해도 후과는 크다. 당장 납부해야 할 비용이 만만찮다. 25마일 제한 속도 위반으로 가장 저렴한 티켓이 발부됐지만, 210달러를 납부해야 했다. 법칙금은 30달러였지만 법원 행정 수수료가 190불이나 됐다. 미국의 경우 교통 법규 위반도 원칙적으로 재판에 회부되는데 이에 따른 비용이 청구되는 탓이다. 재판에 출석할 경우 통상 경감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는 하지만, 법원까지 오가는 노력 등을 감안하면 범칙금 등을 일괄 납부하고 마무리하는 게 편하다는 게 현지인들의 한결 같은 조언이었다.

물론 위반 정도가 크다면 재판에 출석해는 게 오히려 나을 수 있다. 납부해야 할 비용이 만만찮은 데다 위반 기록으로 인해 보험료가 할증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변호사 수임료가 저렴한 편이어서 이편이 나을 수도 있다. 필자도 티켓을 받은 이틀 뒤 집 우편함에 변호사들의 편지가 답지했다. 법원에 공지된 재판 일정을 보고 보내온 광고 편지로, 법원 수수료 수준의 수임료만 내면 자신들이 교통 위반과 관련해 면책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내용이 주다. 물론 변호사를 산다고 해서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현지인들은 말한다.

미국은 자동차 보험을 6개월 단위로 들게 되는데, 필자의 경우 올해 2월 보험 갱신시 보험료가 500달러가량 비싸졌다. 미국의교통법규와관습을익히길게을리한데따른수업료를톡톡히치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