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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조계종 사찰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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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절은 애써 찾을 필요가 없는 장소였다. 명산, 명승지마다 이름난 사찰이 있고 그 자체로 문화유산이자 다양한 문화재를 품고 있어 목적지로 정하지 않아도 이런저런 연유로 방문할 수 있는 곳이 절이었다. 미국에서는 어떨까. 한때 문화부 종교 담당 때의 기분을 되살려 미국에 있는 한국식 사찰을 방문해보기로 했다.

한국불교 최대 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세계 곳곳에서 포교 활동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미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국 동부에만 뉴욕주, 뉴저지주, 메릴랜드주, 버지니아주, 플로리다주, 미주리주 등에 총 20여 곳의 조계종 사찰이 운영되고 있었다.

조계종 총무원이 해외 교구 관련 제도를 정비한 때가 2011년이지만 대부분 사찰은 그전에 문을 열었다. 조계종 해외 포교는 익히 알려진대로 숭산스님을 필두로 이미 1970년대부터 이뤄졌다. 걔 중 교민들이 많이 사는 버지니아주 애난데일에 위치한 법화사를 가족들과 함께 방문했다.

미국 버지니아주 애난데일의 한 건물 2층에 자리잡은 대한불교조계종 법화사. 한국에서 흔히 보는 사찰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미국 내 사찰들은 당연히 한국과는 비교 불가할 정도로 규모가 작다. 2012년 문을 연 법화사도 마찬가지. 불전은 한 건물 2층에 차려져 있었고 그 옆에 주방과 화장실이 붙은 것은 전부였는데, 2층에 지하실까지 갖춘 미국의 타운하우스를 생각해보면 절이 가정집보다 더 작은 셈이었다. 처음 방문한 일요법회에는 십여 명 신자가 참석했고, 추석 합동 차례 때는 인원이 삼십여 명으로 늘어 작은 도량이 북적북적했다. 법회에서 신자 등록 카드를 훑으며 축원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등록된 신자는 훨씬 더 많은 듯했다.

법회는 비구니인 주지 월 스님이 주관하고 법회와 공양(식사), 각종 행사 준비는 재가신자(흔히 보살님이라고 부르는 여성 신도들)들이 돕고 있었다. 2시간가량의 법회가 끝나면 참석자들이 다 같이 모여 공양을 했다.

지난해 추석 미국 버지니아주 애난데일 법화사에서 진행한 추석 합동 차례 모습. 평소와 달리 명절 차례 때는 교민 2세, 3세 등을 마주칠 수 있었다.

월 스님은 10년 전에 어떤 신자의 요청을 받은 것이 인연이 되어 미국에 머물다 지금껏 포교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개척교회에 비할 만한 작은 사찰이지만 스님은 이곳에서 법회뿐 아니라 참선 수행도 지도하고 종단 일정에 맞춰 하안거, 동안거 결제 기도 역시 진행한다. 또 여러 사찰과 협의해 연꽃축제 등을 열고, 때로는 현지의 각종 종교인 행사에 참석하기도 한단다. 현지 언론을 검색해보니 법화사의 활동이 제법 소개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절 살림을 꾸려나가는 것은 만만치 않을 듯했다. 진성 불자가 아니라도 인연 따라 오가며 복전(福田)을 일구는 인구가 적지 않은 한국과 달리, 이곳은 오직 신앙생활을 위해 모이는 교민들이 있을 뿐이니 사찰의 수입은 뻔해 보였다. 그리고 신자들의 고령화, 탈종교 추세는 미국도 한국과 다를 바 없으니 독지가가 없는 한 절 살림이 미국의 고물가를 이겨내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 듯했다.

크지 않은 법당이 가득 차 뒤늦게 법회에 참석한 신자들이 유리문 너머에서 불상을 향해 절을 하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은 2024년을 ‘K-명상 대중화의 원년’으로 선언하고 한국불교식 선 수행을 널리 알리겠다고 선언했다. 그동안 조계종은 템플스테이, 사찰 음식 등으로 대표되는 한국불교 세계화 사업을 통해 우리 문화를 널리 알려왔다. 그런데 이런 사업들도 결국은 유서 깊은 한국의 사찰이라는 유형의 자원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그런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해외의 소규모 개척 사찰에서 K-명상 대중화는 만만치 않을 듯했다. 특히 한국불교가 교민들을 넘어 기초적 이해가 부족한 현지인들에게까지 어떻게 새로운 종교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지는 상당한 고민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