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보기

스페인 음식에 맞는 음료는

by

더운 날씨 탓에 틴토 데 베라노, 카바 마셔
주정 강화 셰리 와인도 인기

스페인의 음식 문화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음식과 함께 빠지지 않는 것이 음료다. 식당에 앉으면 유럽 대부분이 그렇듯 음료 주문을 먼저 받는다. 대표적으로 생맥주를 식사에 곁들이지만, 와인을 기반으로 한 상그리아(Sangria)가 이미 널리 알려져있다. 여기에 탄산과 얼음을 곁들이는 틴토 베라노(Tinto verano), 스페인의 스파클링 와인인 카바(Cava)도 여름에 시원하게 마실 수 있다.

여름에 와인에 탄산수와 얼음을 넣은 음료 틴토 데 베라노

가벼운 알콜은 왠지 음식에 맞춰 마시는 페어링일 뿐 가끔은 마음껏 취해 볼 수 있는 기회는 없다는 게 아쉽게 느껴 질 수도 있겠다.

스페인의 식당의 천장이나 갈고리에 걸려 있는 거대한 돼지 뒷다리 지방인 하몬(Jamon)은 종류와 부위에 따라 천차만별의 가격이 있지만 지방이 많은 이베리코 하몬은 위스키와 페어링 되기도 한다.

하지만 위스키는 싱글 몰트의 인기로 가격도 높고 원산지가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이다 보니더 스페인스럽고 도수가 높은 술이 없을까란 생각이 들 수 있다. 연수를 받으며 머무르고 있는 안달루시아 지방인 헤레즈라는 곳에서 생산된 셰리 와인을 추천받았다. 셰리 와인이란 이름 자체가 이 지방 헤레즈의 영어식 표현이기도 하다.

헤레즈 지방에서 생산되는 셰리 와인

셰리 와인과의 만남은 우연했다. 물론 추천을 받았지만 술꾼이 아니고서야 듣고 한 귀로 흘리기 쉽다. 하지만 시내의 한 유통점에 주차하기 위해 서둘러 금액을 채워야 하는데 이 때 줄지어 서있는 와인 중에 꺼내 든 것이 셰리 와인이었다.

일단 원리를 알아야 어떻게 도수가 높은 와인이 나올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주정 강화라는 방식인데 결국에는 와인에 알콜을 더 집어 넣는 원리다. 포도 품종도 다르다. 셰리 와인은 청포도 그중에서도 팔로미노란 품종으로 주로 만들어진다. 여기에다 주정 강화 방법에 따라 피노타입은 효모 막에서 오는 이스트나 견과류의 냄새가 나고 올로로소는 산화를 통해 버터나 바닐라 향이 더 해 진다.
이른바 솔레라 시스템을 이용해 셰리 와인을 나무통에서 뽑아내고 생긴 빈 공간을 이듬해 만든 새 와인으로 집어넣는 방식으로 품질의 균일화시킨다. 빈티지 블렌딩을 통해 일관성있는 맛을 가질 수 있게 고안해낸 방법이다.

그런데 이쯤되면 왜 생뚱 맞은 영어 이름이 이 와인에 붙었는가란 생각이 든다. 이 지역은 기원전 1100년 페니키아인들에 의해 와인 양조 기술이 도입되면서부터 형성될 만큼 뼈대있는 와인 양조장이었다. 로마인들에 의해 양조되다가 무어인들이 통치했고 스페인이 국토를 회복해가던 1264년 알폰소 10세가 해당 지역을 통치하기 시작하면서 유럽 국가들에 셰리 와인의 수출량이 증가하게 됐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신세계 탐험에 셰리 와인을 가져갔고 페르난드 마젤란은 1519년 세계일주를 할 때 무기보다 셰리 와인을 구매하는데 더 많은 돈을 섰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 만큼 주정 강화했기 때문에 보관이 쉬웠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본격적인 유행은 영국이 해상을 지배하던 1587년 카디스(Cadiz)를 약탈한 이후 셰리는 영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다. 그 당시 카디즈는 스페인과 영국의 해상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였다. 스페인은 영국과 일전을 위해 이 지역에 군대를 준비했는데 당시 연간 2900 배럴(약 46만 6000리터)의 셰리 와인이 영국 군 손에 들어갔고 이 와인이 영국에서 인기를 끈 것이다. 셰리 와인은 영국으로 수출되는 주요 품목으로, 영국인들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발전했다.

또다른 주정 강화 와인인 포르투갈의 포트 와인 역시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을 시작하면서 포르투갈과 무역을 통해 자국의 와인들을 배에 실어 보내야 했는데, 알콜이 와인 안에 들어오면 더 이상 발효를 진행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발전해 셰리 와인의 발전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이 밖에 대서양에 위치한 섬 마데이라에서 생산되는 와인도 주정강화 방식이다. 이 와인 또한 영국과의 수출과정에서 생긴 와인인데, 이 와인도 수출시 45도 이상 상승하면서 와인이 변질되어 독특한 풍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 특징이다.

와인에 알콜을 더한 이른바 주정 강화 와인도 결국 전쟁의 역사가 고스란히 묻어있다. 이후 인기를 끈 증류주 꼬냑도 보르도 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영국과 프랑스의 주도권 싸움에서 탄생됐다고 하니 전쟁은 유럽의 패권 뿐 아니라 식생활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현재까지도 문화로 남아 전세계로 전파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