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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일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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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北京)에서 생활한 지 벌써 두 달이 넘었습니다. 더 늦어지면, 이곳 생활을 차분히 되돌아볼 기회를 영영 잃겠다 싶어, 그때그때 생각날 때마다 소식을 전하려고 합니다.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보고 느끼는 중국-중국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로 쓰겠지만, 나중에 중국(특히 북경)에서 연수할 사람들을 위해 가급적 생활 정보를 많이 담도록 하겠습니다. 생활 정보로서 필요하다 싶은 내용은 글 말미에 제가 파악한 내용을 요약해놓겠습니다. 첫 이야기는 제가 북경에 정착하기까지의 좌충우돌한 사연을 전하겠습니다.



저는 8월12일 북경으로 들어왔고, 가족들은 보름 뒤 입국했습니다. 그 사이 저는 부동산 중개업소를 통해 북경시 북쪽 야윈춘(亞運村) 부근에 가족들이 살 집을 구했습니다. 야윈춘은 1990년 북경아시안게임 때 선수촌으로 조성한 동네로, 외국인 밀집 거주 지역입니다. 한국 주재원 가족들도 이곳에 많이 살고 있습니다.

북경에 정착한다는 것은 집을 구해서 가족과 함께 거주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북경에 ‘공식적으로 정착한다’는 의미는 거류증(居留証)을 발급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국인이 북경(물론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입니다)에 합법적으로 1년 이상 체류하려면 거류증을 받아야 합니다. 저는 1년 연수기간의 X비자로 입국했는데, X비자로 중국에 입국한 사람은 입국 후 한 달 이내에 거류증 수속을 밟아야 합니다. 기한이 지나면 상당히 비싼 과태료를 물어야 합니다.

기한이 가까워져서 거류증 수속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주변에 물었더니, 의외로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별로 없더군요. 저처럼 직장인 신분으로 대학에 연수를 온 사람이, 대학 기숙사가 아니라 학교 밖에서 거주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업 주재원들은 회사 담당 부서에서 일괄적으로 처리하고, 관련 업무도 중국 현지 채용인들이 대신 처리해준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저와 같은 경우 어떻게 거류증 수속을 밟아야 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북경대학에서 외국 유학생을 담당하는 직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숙사 생활을 하지 않으면 외부의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거주한다는 증명서를 받아오면 된다는데, 도대체 그 증명서를 어디에서 어떤 형식으로 받아와야 하는지는 모르는 겁니다.

이미 거류증을 발급받은 주재원 몇 사람을 통해, 그 회사 직원의 거류증 문제를 담당하는 총무파트 직원에게 물어보니, 거주하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거주증명서를 발급받은 뒤 공안국에 제출하면 된다고 하더군요. 아파트 단지마다 자체 보안부가 있기 때문에 그곳에서 증명해주면 된다는 겁니다.

그러나 저에게 집을 소개시켜주었던 부동산 중개업소 직원은 전혀 다른 말을 했습니다. 그는 거주 지역을 관할하는 파출소에 집 주인과 함께 가서, ‘거주 신고’를 하고, 증명서를 받은 뒤 그것을 공안국에 제출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이 방식대로 하려면 집 주인이 사전에 다른 정부 기관에 외국인에게 아파트를 임대했다고 신고해야 하는데, 신고 비용만 인민폐로 500~600원(우리 돈으로는 7만5000~8만원 가량)이 들고, 신고를 마치면 임대 수입에 따른 세금도 부과되는 모양입니다. 그러니 어느 주인이 흔쾌히 응해주겠습니까. 중개업소 직원 말로는 이런 점 때문에 신고 비용 500~600원은 대부분 집을 구하는 외국인이 부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문제는 제 거류증 수속 시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겁니다. 어느 한 방법을 선택해 일을 처리하다가 실제로 거류증 발급을 담당하는 북경시 공안국(公安局)에서 “서류가 잘못 됐으니 다시 준비해오라”는 통보를 받으면 꼼짝없이 시한을 넘기고 과태료를 물어야 할 판국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시행착오를 없애기 위해 아예 북경시 공안국을 접촉했습니다. 그런데 외국인 거류증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 중 한 명이 마침 제가 연수중인 북경대학 유학생 오리엔테이션 때 참석했던 아리따운 여자 공안원인 것입니다!!! 물론 그가 저를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저는 “당신을 며칠 전 북경대학 유학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봤다”고 아주 반갑게 아는 체 했죠. 덕분인지 그는 아주 알아듣기 힘들었을 저의 중국말을 끈기 있게 듣고 난 뒤 알아듣기 쉽게 또박또박 가르쳐주었습니다. 연수생 신분으로 대학 기숙사에 살지 않고 외부에 거주하는면서 거류증 수속을 밟으려면, 두 가지 경우로 나뉜답니다. 우선 외국인 거주가 허용된 아파트면 아파트 자체 보안부에서 발급한 거주 증명서를 첨부해서 공안국에 제출하고, 외국인 거주 허가를 받지 않은 아파트면 해당 지역 파출소에서 거주 증명서를 받아서 첨부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거주하는 아파트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기까지 내가 이곳 저곳으로 전화를 걸어 문의한 회수는 족히 열댓 번이 넘을 겁니다.

제가 구한 아파트가 어떤 아파트인지 알아보니 중국인 매매용으로만 건축 허가를 받은 아파트였습니다. 외국인이 매매할 수 없다는 것은 거주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제가 중국에 들어오기 직전, 중국 정부는 9월1일부터 북경의 모든 아파트에 대해 외국인에게 매매를 허용하기로 했다는 뉴스가 신문에 보도됐습니다. 보도 내용대로라면 외국인 거주가 제한되는 아파트는 없어야 마땅합니다만, 중국 정부가 시행시기까지 명시해서 발표한 정책이 일선 행정에서 실행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가 봅니다.

북경시 공안국을 통해 거류증 발급받는 정확한 방법을 파악한 것만으로도 저는 의기양양했습니다. 정확한 절차를 파악하는 데까지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기 때문이죠. 북경 대학교 담당자 중에서 제대로 아는 사람이 있는지 4~5명 바꿔가면서 접촉했지, 중국에 진출해있는 한국 기업체 3~4곳에 문의해봤지, 개인적인 지인들 2~3명에게도 물어봤지, 부동산중개업소 5~6군데도 물어봤지… 모두들 제각각 대답하면서 결국에는 “100% 정확한지는 모르겠다”며 꼬리를 내리는 반응만 접하다가 북경시 공안국으로부터 ‘정답’을 받아들었으니, 그럴만도 했습니다.

“공안국을 직접 접촉해보면 이렇게 명쾌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을 지금까지 북경에서 생활한 교민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야”라며 내심 호기도 부렸습니다.

그런 호기로움은 잠시였습니다. 집 주인과 파출소에 증명서를 받으러 가려고 약속한 날 아침, 집 주인이 “파출소에 전화를 걸어보았더니 증명서를 끊어줄 수 없다고 한다”는 겁니다. 더구나 “외국인 거주가 허용되지 않은 아파트인데도 불구하고 만약 외국인이 거주하다가 적발되면 그 외국인은 당장 나가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집 주인도 거액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는 겁니다.

이런 황당한 경우가 있습니까. 북경시 공안국은 그런 아파트는 파출소에서 거주 증명을 받아와야 한다고 했는데, 정작 파출소는 거주증명은커녕, 퇴거조치시키겠다는 반응이니 말입니다.

결국 중국 생활을 오래 한 여러 선배분들의 조언대로 ‘안되면 돌아가는’는 ‘중국식 방법’을 택했습니다. 외국인 거주가 허용된 아파트에 살고 있는 한 지인의 도움을 받아 제 주소를 그 쪽으로 올린 것입니다. 그분 도움으로 그 아파트의 보안부에서 거주증명서를 받아 서류에 첨부했습니다. 거류증 수속 시한이 임박했기 때문에 제가 사는 동네 파출소를 찾아가서 “시 공안국에서 끊어주라고 했다”고 따질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증명서를 끊는 것은 가능할지 몰라도 또 3~5일 시일이 지체되면서 수속 시한을 넘길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죠.

중국의 법과 규칙은 일상에서 부딪치는 하나하나의 현장에서 아직 멀리 있었습니다. 제가 세든 집 주인 왈 “중국은 법에 명확히 나와 있어도 말단 행정기관에서 실행되기까지는 한참이 걸리는 나라다”고 하더군요. 중국인들에게 그런 체념은 이미 익숙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중국에서 처음 처리한 ‘공식적으로 정착하기’ 과정에서 선택했던 것은 ‘비공식적’이자, ‘중국식 방법’이었습니다.

후일담을 조금 더 소개하면 북경시 공안국에 수속 절차를 밟고, 1주일 뒤에 거류증은 나왔습니다. 거류증을 받고 난 뒤에 공안국에 다시 문의해봤더니, 저와 같은 경우, 파출소는 거주 증명서를 끊어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어쩝니까. 저는 이미 거류증을 받았고, 파출소를 다시 상대해서 제가 실제로 살고 있는 주소지로 거류증을 만들려니 시간과 돈, 정력이 필요한 걸 말입니다. 거주지를 지금 제가 사는 곳으로 옮겼다고 이야기하면서 정확한 주소로 다시 거류증을 받으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그때 받은 거류증으로 그냥 살고 있습니다.



<거류증 수속 실전 정보>

1.필요한 서류

여권/여권용 사진 2장/건강검진표/JW202표(연수 기관에서 발급)/녹취(錄取)통지서(연수기관 발급)/거류증신청서/거주증명서(외부 지역 거주할 경우)

2.거주증명서

-연수 또는 유학하는 교육기관의 기숙사에 거주할 경우 해당 교육기관이 발급

-외부에서 거주할 경우 외국인 거주 허용 주택이나 아파트는 해당 주택-아파트 관리사무소 보안부의 거주증명서를 첨부하고, 그렇지 않은 주택이나 아파트는 해당 지역 파출소에서 거주 증명서 발급

3.아파트를 구할 때 사전에 집 주인에게 거류증 수속에 필요한 서류를 갖추어주도록 미리 확약을 받는 것이 좋음

4.건강검진표는 중국 입국 비자를 받을 때도 필요한데, 중국 비자용 건강검진표를 유학원 등을 통해 구한 뒤 그것을 들고 병원에 가서 그 건강검진표에 검진 내용을 기재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좋음. 나는 아산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비자를 받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거류증을 받을 때 건강검진표 양식이 맞지 않다는 이유로 북경에서 다시 받았음. 건강검진을 새로 한 것이 아니라 중국 병원에서 기존의 내 건강검진표 내용에 따라 건강검진표를 다시 작성해줬을 뿐임.

5.거류증을 아예 발급받을 필요가 없도록 6개월 연수 비자를 받아와서 현지에서 연장하는 것도 고려해볼만함. 거류증을 받으면 받기까지의 번거로움은 물론이고, 잠깐 귀국할 때 사전 의무를 지켜야 하는 등 출입국 때 불편한 점이 훨씬 많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