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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통일을 위한 남북한 건강격차 해소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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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통일을 위한 남북한 건강격차 해소 방안 YTN 김잔디 연수기관: 존스홉킨스대




I. 서 론

새해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16년 1월 6일, 미국 언론들은 일제히 ‘북한, 4차 핵실험’ 소식을 속보로 전했다. 그리고 놀랐던 가슴을 달래기도 전, 핵실험 발표 후 한 달도 되지 않아 북한은 다시 한 번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한국과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경악했고, 국제사회는 발 빠르게 대처했다. 유엔은 만장일치로 대북 제재 결의안 2270호를 통과시키고 북한에 대한 정치, 경제적 제재를 더욱 강화했다. 그동안 한 발 빠져 있던 중국과 러시아, 스위스 등도 북한을 상대로 금융, 경제 제재에 나섰고, 전 세계가 핵 포기를 한 목소리로 다시 한 번 촉구했다. 남한 정부는 북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조처로 2월 10일, 남북 경제협력 중단을 선언하고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을 발표했고, 이에 북한은 곧바로 개성공단 폐쇄와 함께 남측 인원을 추방했다. 이뿐이 아니다. 지난 4월 23일, 북한은 잠수함에서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결국,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워싱턴 DC 정가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움직임을 잡기 힘든 잠수함이라는 이동식 발사대에서 탄도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매우 위협적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워싱턴DC에 일 년간 머물며 북한과 관련한 여러 이벤트에 참석하면서 알게 된 것은 적어도 미국은 북한의 새 리더 김정은이 예상했던 것보다 북한 내에서 힘을 얻고 있고, 김정은을 중심으로 권력 체계도 보다 견고히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5년 전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북한 권력 이양기에 일부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북한 체제가 자체적으로 붕괴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는 현실성이 없다고 분석하고 있다. 김정은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당과 내각, 군부 등 3대 권력을 모두 장악하고 공산당 위원장에도 올랐고, ‘핵 보유국’으로서의 자신감을 표출하고 있다. 미국의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이미 권력 중앙화, 리더십 강화에 성공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진단에 따르면 김정은은 자신의 임기 안에 통일을 이루는 것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 한반도의 통일을 이야기하고, 평화롭고 효과적인 통일을 이루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논의하는 것이 시의적절치 않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이미 지난해 8월 남북 고위급 회담을 마친 뒤 기대했던 남북 경제협력 활성화의 분위기는 싸늘하게 식었고, “북한이 핵을 포기하기 전에는 남북 경제협력 사업 어느 것도 재개 불가”라는 우리 정부의 방침이 철회될 가능성도 북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만큼이나 희박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이 앞으로 세계 무대에서 잘 살아 남기 위해서는 통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조건이라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언제가 될 지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통일을 이루고,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올 시기를 준비하는 것은 그래서 반드시 필요하다. 남한과 북한이 통일을 이루고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난 70년간 너무도 다른 방향을 향했던 두 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의 격차를 좁혀야 한다. 하지만 남과 북의 정치와 경제는 공통점을 찾기조차 어려워 그 격차를 좁히기가 절대 쉽지 않다. 균형점, 합의점을 찾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보건, 교육, 문화 분야가 우선이 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 가운데 무엇보다 으뜸이 돼야 하는 것은 삶의 근본인 양측 국민의 생명, 건강이다. 그런데 우리와는 달리 북한 주민들의 건강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 많은 수의 북한 주민들이 건강하게 살 권리를 위협받고 있거나, 너무도 열악한 상황에서 아파도 알맞은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살고 있다. 북한 주민들의 건강 상태는 알려진 것만 살펴 봐도 남한 국민의 건강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비참한 상황이다. 특히 취약 계층인 어린이와 노인, 여성의 건강 수준은 아프리카 일부 극빈국 국민 수준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한다. 북한을 방문하고 온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북한 주민들의 영양 결핍 상태가 심각한 수준이고, 이미 성장에도 문제가 생겨 같은 민족인 남한 사람들보다 키나 덩치가 매우 작았다. 두 나라의 국민이 같은 민족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라고 말하고 있다. 북한은 정권의 정치적인 이유로 국제사회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도 못 하는 상황이니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보다 어려운 상황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한반도 통일을 ‘대박’으로 만들기 위해, 통일 초기에 충격을 최소화하고 통일 비용을 줄이기 위함뿐 아니라, 인도적 차원에서도 같은 민족인 우리가 북한 주민의 건강에 관심을 두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우리가 관심을 갖고 교류를 준비한다고 해서 곧바로 지원이나 협력이 이뤄질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 북한이 반복적인 핵실험으로 전 세계에 도발하다 보니 국제사회의 지원에서 소외되거나, 반대로 폐쇄적인 북한 정부 자체가 외부 지원을 거부하는 경우도 많다. 소련 등 동구권이 붕괴한 데 이어, 우방국인 중국마저 경제 제재에 함께 나서고 있어 북한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북한은 경제적으로 매우 낙후된 데다 외부에 매우 폐쇄적이라 북한 일반 주민들에 대한 기본적인 보건 통계도 없는 경우가 많다. 보건사업을 벌이는 데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세계보건기구나 유니세프 등 일부 국제기구들이 북한에서 어린이 백신 접종과 식량 보급 등의 사업을 벌일 수 있었고, 그 때 작성한 통계치가 전부다. 하지만, 통계 자료가 없다고, 지원 사업을 시작하는 데 걸림돌이 많다고 해서 아무 것도 시작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한반도의 평화 통일, 그리고 민족의 동질성 회복이 반드시 이뤄내야 할 목표라고 두고 그것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아서 차근차근 준비하면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 보고서에서는 북한 주민들의 건강 상황에 대해 보다 최신의 정확한, 진실에 가까운 통계를 확인하고, 우리보다 먼저 통일을 이룬 독일의 사례를 검토하고, 국제 보건기구들이 북한에서 벌인 백신접종 사업과 국가영양조사 결과도 함께 살펴보면서 가능한 방법을 찾아 보겠다. 북한을 방문하고 머무르며 직접 현실을 경험한 외국인들의 증언, 그리고 북한을 떠나 중국이나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탈북자들의 북한 사회에 대한 증언도 찾아봤다.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우리만의, 지속 가능하고, 남북의 건강 격차를 줄일 수 있는 효과 있는 방안을 논의해 보고자 한다.


II. 본 론

1. 남북한 건강 격차와 시사점

대한민국 국민과 북한 주민들은 같은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분단 이후 정치ㆍ경제 수준의 큰 차이로 각 나라 국민의 건강상태 격차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남북한 기본 통계>




















남북한 기본 통계
구 분 북 한 남 한
인구 수 (2014년)

2,466만 2천 명 5,042만 4천 명
국민 총소득 34조 2360억 원 1,496조 5930억 원
1인당 GNI (만 원)

139

2.968


<참고: 통계청, 북한 통계>

먼저, 두 나라의 인구수를 비교해 보면, 남한 인구가 5천만 명을 넘어 북한의 두 배에 이르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민 총소득을 의미하는 명목 GNI는 남한이 북한의 44배, 1인당 GNI는 21배 수준이다. 남북의 경제력 차이는 지금도 격차가 크지만, 점차 심화하고 있어 간극을 좁히는 데 많은 비용과 시간이 걸릴 것이 분명하다.
예상했던 대로 북한 주민들의 보건 통계 자료는 많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지난해 세계 각국에서 국제보건 사업을 벌이고 있는 세계보건기구와 유니세프, 세계식량계획 등이 최근까지 북한에서 벌인 백신 접종과 식량 보급 사업을 바탕으로 보고서를 내놓은 것이 큰 도움이 됐다. 국제보건사업을 벌이고 있는 이 분야 전문가들은 북한 정권이 워낙 폐쇄적이고, 요구하는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에 필요성이 크고 위급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보건 사업을 진행하기 쉽지 않다고 밝혔다. 존스홉킨스 대학교 블룸버그 공중보건대학원 소속 루팔리 리마예(Rupali J. Limaye) 교수는 본인과의 인터뷰에서 “US AID 등을 통해 전 세계 40여 개 국가에서 보건사업을 진행했지만, 북한은 접근 자체에 제한이 많아서 보건사업을 진행할 수 없었다.
국제기구 가운데서도 세계보건기구와 유니세프 정도만 규모 있는 보건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정치, 경제적 국제 제재 때문에 전 세계 국제보건 사업의 가장 큰 후원자인 미국이 지원하는 보건사업은 진행할 수 없었고, 북한 주민들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보건 통계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북한 주민들의 건강 수준을 염려하고 북한 정권의 폐쇄적인 자세와 핵실험 등 정치적 도발을 비난했다. 전 세계의 보건통계를 보유하고 있는 세계보건기구는 최근 유니세프, 세계면역백신기구와 함께 2009년부터 현재까지 북한에서 영유아 백신접종 사업을 벌였고 다음과 같은 보건통계를 발표했다. 국제기구의 지원과 관리를 바탕으로 훨씬 신뢰도 높은 통계 자료가 나온 것이다.



<남북한 건강수준 비교>
































남북한 건강수준 비교
구 분 북 한 남 한
2014년 출생자 기대여명 69.2세 81.4세
인플루엔자&폐렴 사망자 50.33 / 100,000명 16.34 / 100,000명
결핵 사망률 (2012)

27 / 100,000명 5.2 / 100,000명
출산 관련 모성사망률 87 / 100,000명 27 / 100,000명
5살 이하 발육부진 (2014)

28%

3%

5세 이하 사망률(2012)

27 /1,000명 4 /1,000명

<출처:세계보건기구,UN>

2014년에 태어난 아기가 앞으로 몇 살까지 살 수 있는지를 가늠해 보는 기대수명은 북한의 경우 남자 65.8세, 여자는 72.6세로 나타났고, 남한은 남자 78세 여자 84.8세로 남과 북 주민의 평균 수명은 12년 이상 차이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 주민의 평균 수명은 남한의 30년 전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앞으로 그 격차는 더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 모두 다른 선진국에 비해 높은 발생률과 유병률을 보이는 결핵의 경우 한 해 동안 새로 감염된 환자 수는 남한이 2014년 인구 십만 명당 86명, 북한이 2011년을 기준으로 344명으로 4배에 달했다. 결핵 감염 사망률은 북한이 남한의 5배가 이상 많았다. 북한 주민들의 건강 수준이 위험 수준이라는 것은 5세 이하 영유아 사망률과 모성 사망률 통계를 보면 알 수 있다. 북한의 5세 이하 영유아 사망률은 천 명당 27명으로, 남한의 4명에 비해 8배 가까이 많고, 이는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도 최악의 상황인 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 역시 통계에 잡히지 않은 사망자 숫자를 고려하면 실제로는 훨씬 더 높을 것이라는 게 보건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영유아 사망률이 출생 천 명당 27명인데, 생후 1개월 이내 사망하는 경우가 절반을 차지했다. 백신 등 기초의약품과 식수 개선, 위생시설 보급만으로도 예방이 가능한 설사병과 호흡기 감염증이 원인인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분석됐다. 상하수도 시스템이 아직 덜 발달돼 깨끗한 식수확보가 어려워 수인성 전염병 발생도 높고, 의료기관 이용이 용이하지 않아 제 때 치료받지 못하는 탓에 영유아 사망률이 높다는 분석도 나왔다. 세계보건기구와 유니세프,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등 국제기구들이 나서 북한의 영유아 전체를 대상으로 백신 접종사업을 벌였고, 필수 예방백신 접종률이 95%이상에 이르는 데도 불구하고 영유아 사망률이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그 이유는 북한 정권이 내세우고 있는 ‘전 인민의 무상의료 서비스’와는 달리 1차 의료기관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고, 좋은 의약품이 없는 데다 영양 불균형으로 인한 면역력 약화, 발육 부진 등이 종합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으로 분석할 수 있다. 특히, 1990년대 북한의 극심한 흉년에 의한 심각한 기근이 당시 태어난 아이들의 영양 상태에 악영향을 줬고, 어린이뿐 아니라 가임기 여성의 높은 영양 결핍률이 임신기와 출산 뒤 아기에게 모유 수유를 하면서 엄마와 아이가 동시에 영양분이 부족한 결과를 낳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모성 사망률은 그나마 국제기구들의 지원과 노력으로 많이 낮아진 것이 임산부 십만 명당 87명 수준이다. 또한, 6백만 명이 넘는 주민들이 기본적인 1차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 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깨끗한 식수와 위생적인 화장실 사용이 불가능한 주민도 7백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남북한 주요 사망 원인 비교> (기준:인구 10만 명당, 2013년)



























남북한 주요 사망 원인 비교
사망 원인 북한 남한
뇌졸중 168.5

39.1

심장질환 98.8

26.4

인플루엔자&폐렴 50.3

16.3

결핵 8.5

4.1

자살 37.4

29.3


얼마 전까지 북한의 사망원인 1위는 심장질환이었는데 2013년 기준으로 남한과 마찬가지로 뇌졸중이 가장 주된 원인으로 꼽혔다. 질환 별 사망자 숫자가 남한과 비교해 5배 이상 많은 이유는 기본적으로 의료 수준이 낮고 필요할 때 제때 치료를 받을 수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이 체제 선전용으로 늘 사용해 왔던 ‘무상 치료제’는 완전히 붕괴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평양에 위치한 북한 내 최고의 병원들에도 약품과 의료기기가 부족해 환자 치료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또, 본인이 지난해 봄 인터뷰한 탈북자 40대 박 모 씨에 따르면, 이미 이십여 년 전부터 병원에서 약품을 구할 수 없어 환자 가족들이 직접 돈을 주고 약을 다른 곳에서 구해서 병원에 가야 했고, 의사에게 진료비를 주지 않으면 제대로 진료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비공식적으로 받는 진료비가 없으면 생계를 꾸리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무상치료제가 말 뿐이라는 근거는 이뿐이 아니다. 북한에서 거주했거나 병원 진료를 받은 경험이 있는 외국인들, 탈북자들은 병원에 의료 시설이 부족하고 약품이 없어 제대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지난 2012년 미국의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맨과 함께 북한 김정은의 초청을 받고 방문했던 VICE 기자가 화면에 담은 병원의 모습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것으로 사용하는 부항기(의료기기가 아님)를 “유방암을 치료하는 데 사용한다”고 안내하고 있고, 환자가 없이 텅 비어 있으며 첨단 의료기기는 보기 힘들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북한의 ‘무상 의료 시스템’은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시스템이나 운영 면에서 잘 정비된 편이었지만 이후 동구권이 차례로 붕괴하면서 수입 약품과 기기 공급에 차질이 생기고, 심지어 모두 끊기면서 큰 타격을 입기 시작해 지금은 완전히 붕괴했다고 한다. 북한은 의료인이 일정한 주민 주거지역을 담당해 그 지역에 사는 주민들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고 돌보는 ‘의사 담당 구역제’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시설과 약품이 턱없이 부족하고 의료인들 역시 경제난에 시달리면서 이 역시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했다. 결국, 지금은 무상의료제가 왜곡 집행되면서 사실상 유상치료를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외부인이 방문했을 때 북한 정권이 안내하는- 상대적으로 시설이 잘 정비돼 있을 법한- 북한의 병원을 방문하고 온 외국 기자나 의사들은 북한 병원의 시설을 보고 모두 크게 놀란다고 한다. 기본적인 수술 장비나 의약품이 부족해 일회용 제품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가 하면 아주 오래된 시설에 약품 창고는 텅 비어 있는 경우도 흔하다고 증언하고 있다. 물론, 이 증언들이 얼마나 사실에 가깝냐는 것을 두고는 한계가 있음을 분명히 하고 싶다. 북한 정부가 공식적으로 확인했거나 공개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워싱턴 DC 존스홉킨스 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인 SAIS에서 열린 아시아 포럼 중 ‘북한 탈북자들의 시각으로 본 사회 변화’에 전문가 패널로 참석한 인권단체 Human Rights의 북한 인권위원회 위원장인 그레그 스카라투(Greg Scarlatoiu)는 “북한은 공산당에 대한 충성도에 따라 출신 성분이 세 계급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 출신 성분에 따라 교육, 경제, 문화, 정치 등 접할 수 있는 세계가 다르다. 특히, 접할 수 있는 정보의 종류와 양이 아예 다르기 때문에 같은 나라에 국민으로 사는 것으로 볼 수 없을 정도다. 그 때문에 탈북자에게 북한 정권이나 실정을 듣는 게 반드시 일반적인 사실이라고 볼 수 없다. 그의 출신 성분에 따라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믿고 있고 주장하는 ‘진실’에는 반드시 오류(bias)가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아플 때 병원에 가고 의사의 진료를 받고 좋은 약을 구하는 것도 출신 성분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탈북자 개인의 경험담을 들을 때는 출신 성분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다.”라고 설명했다. 북한 주민들의 건강권이 이렇게 위협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북한 김정은 정권의 핵실험으로 국제사회의 제재 강도는 높아지고, 이 때문에 북한의 주민 중 취약계층은 더욱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 이에 대해 지난 4월 말 북한을 방문하고 온 노벨상 수상자들은 “페니실린으로 핵폭탄을 만들 순 없다”며 대북제재 완화를 촉구했다. 이들은 5월 7일 중국 베이징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북한 주민들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며 제재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핵실험에 대한 제재와 의료 약품 공급은 구분해서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다. 이들은 북한의 병원들을 둘러본 뒤 평양의 어린이병원은 환자 300명을 수용할 수 있지만, 의약품이 부족해 하루 60명밖에 진료하지 못하고 있다며 의약품 수급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유엔의 대북 제재에는 무기 제조, 판매와 관련이 있을 수 있는 물품의 거래를 금지하고 있지만 금융 거래까지 차단된 상황이라 필수 의약품 반입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2. 북한의 영양결핍ㆍ발육부진 심각성


<출처: china.org.cn>

세계식량기구와 유니세프는 북한 보건부와 함께 국가 영양조사를 시행해 그 결과를 발표했다. 지금까지 근거가 부족하고 정확성이 떨어지는 자료조차도 없었는데, 그나마 주민들의 영양 상태를 국제기구들의 관리와 도움으로 발표할 수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북한의 영유아 영양실조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5세 이하 어린이 4명 가운데 1명이 만성 영양결핍과 빈혈을 겪고 있고 적당한 성장을 하지 못하고 있다. 5세 이하의 영양실조는 면역력 약화와 직결돼 있기 때문에, 발육부진뿐 아니라 여러 질병으로 인한 조기 사망률을 높일 수 있어 더욱 위험하다. 북한 내 지역별 편차도 심해, 어린이 만성 영양장애 비율은 양강도가 40%, 자강도 33%에 이르지만 평양은 20%가 채 되지 않아 지역별 격차가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UN이 지난해 발표한 <대북 인도주의 필요와 우선순위 보고서>를 보면 북한은 천8백만 명이 필요한 만큼 음식을 섭취하지 못해 영양 결핍 문제에 노출돼 있다고 보고됐다. 지난 1995년부터 북한에 식량 원조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세계식량계획의 북한 영양 사업 담당국장인 마틴 블로임은 어린 시절의 부족한 영양분은 결국 평생에 걸쳐 영향을 주고 발달 지연이나 장애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태어난 후 2년간 섭취한 음식이 결국 그 사람의 평생 신장과 건강상태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다고 덧붙였다. 유니세프의 자료에 따르면 북한 내륙지방에 사는 어린이들의 경우 해산물 섭취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요오드 결핍증이 심각하고, 따라서 이 지역에 사는 아이들의 지능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가임기 여성의 영양 결핍률도 무시할 수 없다. 가뭄이 극심했던 90년대에 태어난 여성들이 가임기가 됨에 따라 이들이 낳는 자녀들의 건강상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만성 영양결핍에 의한 발달지연은 다음 세대에까지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니세프는 또 북한의 영양 데이터 보고서에서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하고 정권이 김정일로 넘어가면서 정치적 혼란과 기술력 부족 등으로 흉년이 이어졌고, 이 때문에 백만 명이 넘는 북한 주민들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8년부터는 기본적인 음식물 섭취를 할 수는 있었지만, 그 양이 턱없이 부족해 만성적인 영양결핍은 여전했다. 너무 많은 북한 아이들이 영양섭취 부족으로 인한 여러 가지 문제점에 평생 노출될 위험에 처해 있다. 북한에서는 김정일 부자를 제외하고는 살찐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이뿐이 아니다. 식량 부족과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오랜 시간 영양 결핍 상태가 계속되면서 남북한 성인의 평균 키 차이도 10cm 가까이 벌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영양결핍 상태에서 성장기에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탓에 지금 성인들의 신장에도 영향을 준 것이다. 키는 유전의 영향을 많이 받는 탓에 이들이 낳은 자식 세대도 역시 키가 작을 수밖에 없다.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성인 남성의 경우 남한 성인 남성 평균과 비교해 8cm 가까이 작은 것으로 나타났고, 젊은 세대로 갈수록 남북의 키 차이는 더욱 심해져 10대의 경우 20cm 가까이 난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영국의 인디펜던트지는 북한 보건부와 유니세프, 세계식량계획과 세계보건기구가 함께 조사한 북한의 영양실태 데이터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북한 주민들은 남한의 사촌들보다 평균 3인치(7.62cm) 이상 작다.”고 보도했다. 영국의 언론인이자 작가였던 크리스토퍼 히친스(Christoper Hitchens)는 북한에 방문했던 몇 달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2010년 잡지 에 기고한 글 ‘북한, 인종차별주의 난쟁이들의 나라’에서 북한 주민들은 남한 사람들보다 15cm 이상 키가 작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증언뿐 아니라 북한 주민들의 발육부진이 심각하고 널리 팽배해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근거는 북한군 모집의 키 제한 변화다. 자유아시아 방송 등 다수 언론사들은 북한 내부 소식통의 말 등을 인용해 2014년 8월 북한의 ‘초모 사업’(고등학교 졸업 후 군 입대)에 있어 신장 제한을 기존 145cm 이상에서 143cm로 낮춘 데 이어 지난 2015년 초에는 이 제한마저 없앴다고 전했다. 남한의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의 평균 신장이 151.4cm인 것을 감안하면 실제로 엄청난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세계식량기구는 지난해, UN의 <대북 인도주의 필요와 우선 순위>보고서에서 북한 주민 천 8백만 명이 적절한 양과 질의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고 있어, 영양결핍 상태에 직면해 있다고 밝혔다. 세계식량계획은 “1990년대 극심했던 기근에 이어, 오늘 날 북한은 어린이 1/3이 만성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고 발육부진으로 인해 다른 나라 또래 아이들의 평균에 비해 왜소한 상황이다. 반대로 남한은 눈부신 경제 성장에 힘입어 평균 신장이 계속 커졌다. 결과적으로 남한 사람들이 키가 크는 동안 북한 주민들은 점점 키가 작아졌다.”라고 보고했다. 더욱 암울한 사실은 이 같은 키 차이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내놓은 ‘2015년 세계 식량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2014~2016년 북한의 영양실조 인구는 41.6%로, 지난 2005~2007년의 35.5%보다 6.1%포인트나 늘었다. 이 보고서는 “북한 인구의 약 75% 이상인 2,500만 명이 식량 공급에 대한 불안과 외부 충격에 대한 극심한 취약성을 겪고 있다. 약 1,800만 명은 인도주의 형태의 지원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영양실조 인구 비율은 계속 늘어나고 있어 이에 대한 사회적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여성과 5세 이하 영유아의 영양실조 문제가 심각하다. 보고서는 영양실조가 북한의 산모와 영아의 사망률과 질병 발생률 증가의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위혜승 한국개발경제연구원(KDI) 위원은 <북한경제리뷰> 2015년 10월호 ‘북한 어린이 영양 상태 조사 및 인구 센서스를 통한 기근 시기 추정’에서 “1990년대 극심한 기근 여파가 다음 세대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기근 세대, 특히 여성 건강 증진을 위한 보건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기근 시대에 태어난 여성이 향후 5~15년 뒤 출산적령기에 접어들 때, 그들의 자녀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북 경제 제재가 강화됐지만, 인도주의 차원의 식량 지원은 멈춰서는 안 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쌀과 밀가루 포대를 지원하는 것보다는 국제기구 등의 도움을 받아 균형 잡힌 영양 식단을 짜고, 그에 맞는 음식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직접 배급을 하는 방법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3. 동서독 통일 사례 연구

동서독은 분단된 지 45년 만인 1990년 10월 3일, 통일을 이뤘다. 통일된 지 25년이 지난 독일은 대부분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통일, 통합을 이루었다고 평가받는다. 동독 지역 주민들의 경제력은 통일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고 동서독 지역 주민 간의 삶의 질은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소비생활환경과 교육, 문화, 의료, 그리고 기대수명까지 통일 이전 많은 격차를 보이던 분야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거의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다. 독일의 성공적 통일 준비과정과 통합 정책을 눈여겨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 개의 다른 체제가 통합되면서 정책과 제도가 변화하게 되고, 이 같은 변화가 야기할 수 있는 문제점을 예측해 보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여진다. 동서독 역시 남북한 만큼은 아닐지라도 정치와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서 달랐다. 서로 다른 두 체제가 통합되는 과정, 그리고 격차를 극복해 조화와 균형점을 찾아내는 과정을 살펴보고 어떤 정책이 추진됐고, 그 효과와 결과는 어땠는지도 따져볼 수 있다.



<통일 당시 동ㆍ서독 비교>















통일 당시 동ㆍ서독 비교
인 구 서독: 전체의 80% 동독: 20% (4배 차이)
국민총생산 서독이 동독의 135.3배
1 인당 GNP 서독이 동독의 7.5배
평균 수명 서독 주민이 동독보다 3년 길어

<출처:남북보건의료통합준비 한-독 심포지엄 발표집 재구성>

당시 동독과 서독의 평균 수명 차이는 3년, 이 차이를 극복하는 데만 1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심장질환 사망률이나 자살률, 사고 사망률 등의 보건지표들이 1991년 통일 직후에는 큰 차이를 보이다 2007년쯤 격차를 줄이고 안정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당시 전체 독일의 인구 중 서독에 사는 사람들이 78%가 넘었고 동독 주민이 22% 수준이었던 점과 서독의 1인당 GNP가 동독의 7.5배 수준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동서독 주민의 건강격차는 그리 크지 않았는데도 그 격차를 줄이는 데 20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 셈이다. 남북한 평균 수명 차이가 10년이 넘고, 북한의 인구비율이 동독의 비율에 비해 높은 것을 생각하면 남북한 건강격차를 줄이는 데는 얼마나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지 예측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독일 통일 사례를 보면 통일이 되기 한참 전인 1970년대 중반부터 동서독 간에 ‘보건 협정’을 맺고 보건의료 교류를 진행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서독은 1972년 동독 측의 제안으로 보건 분야의 협력을 규정하는 ‘기본조약’을 맺고 1974년 ‘보건협정’을 체결한다. 양측 국민을 위해 건강유지 및 증진의 의미를 인식하고, 전염성 질병의 예방과 퇴치문제에 대해 정보를 교환하는 데 합의한 것이다. 이어, 1989년에는 공동위원회를 구성해 보건의료 분야 협력 내용을 담은 <통일방안 10개 항>을 제시하기도 한다. 모두 동독 주민들의 보건의료 분야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치, 경제 체제처럼 격차를 줄이는 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한 분야와 달리 동서독은 보건의료 교류를 먼저 시작한 것이다. 우리 남북의 경우 문화 교류를 먼저 시작했다. 보건의료 분야의 협력과 교류는 빨리 시작할수록 효과가 좋고 비용이 덜 든다. 의료분야의 지원은 인도적 지원이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도 북한 주민의 기본적인 건강 수준을 지키기 위해 우리도 어느 정도 책임감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고려대학교 병원 윤석준 교수는 분단시기에도 보건의료분야와 같이 인도적인 지원이 가능한 분야에서 양국 정부 협정을 맺고 지속적인 교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지속적인 교류를 하더라도 통일까지 쉽지 않지만, 설사 통일이 되더라도 실질적인 수준의 건강 형평성에 도달하려면 적어도 수십 년의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독일의 경우만 봐도 1990년대 여러 보건지표가 동서독 주민 간에 상당한 격차를 보였지만 2000년대 후반에 들어 격차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상당 부분 해결이 됐다. 그러나 독일은 통일 전 인구비가 서독이 동독의 4배, 경제 수준 격차는 약 3배였다. 남북한의 경우는 인구는 2배, 경제 수준은 약 20배 차이를 보인다. 또한, 각 보건지표의 차이도 동서독 주민 간에 보였던 격차보다 적게는 3~4배에서 많게는 수십 배까지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이 심한 격차를 좁히는 데는 더욱 어려운 경로가 예상된다. 또, 남한의 경제 사정이 북한보다는 월등하다고 하나, 서독의 경제 수준과 비교하면 1/4 정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독일식 통일 모델을 한반도 통일에 그대로 대입할 수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기도 하다. 실제로, 지난 4월 워싱턴 DC에서 열린 북한 관련 세미나에 패널로 참석했던 전 미국 국무부 관료인 윌리엄 브룩스 박사는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위해서는 남한과 일본, 북한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독일의 통일을 한국 통일의 모델로 삼는 것에는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독일의 당시 상황은 한국의 사정과 매우 다르다. 무엇보다 중요한 차이점은 동독과 서독은 서로를 상대로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 남한과 북한은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눈 경험이 있다. 또, 동독 내부에서 자유에 대한 열망과 움직임이 매우 강했지만 지금 북한 내부에서는 그런 것이 감지되지 않는다. 따라서 독일이 통일을 이룬 방법으로 한국이 통일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의 통일은 안타깝지만, 독일의 통일보다 훨씬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며 독일 통일방식을 모델로 삼는 데 한계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충남대학교 김철웅 교수 역시 남북보건의료통합준비 한-독 심포지엄에서 독일의 경우, 1990년 통일 이전에 이미 양국은 여행의 자유가 선포됐고 이를 바탕으로 왕래가 잦아지면서 동독의 사회주의 시스템이 자연스럽게 몰락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설명하고, 남북의 경우는 통일이 언제 이뤄질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 역시, 동독의 경우와는 달리 북한 국민이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고, 북한 내부사회의 변화를 감지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동서독이 통일 이전부터 교류 협력을 이미 시작했고, 탈냉전을 맞이해 통일을 이뤄냈지만, 남북한은 교류협력이 걸음마 단계에서 진전되지 않고 있고, 남북의 분단과 대결이 동서독과 비교해 훨씬 심각하다고 분석했다. 한반도가 남북으로 나뉘어 대결한 시간도 독일보다 훨씬 길다. 따라서 독일의 통일 모델을 한반도 통일에 그대로 대입하기는 어렵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이런 한계점과 특징에도 불구하고,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면 우리의 통일은 아주 요원한 일이 될 것이고, 설령 통일을 어렵게 이룬다고 해도 남북한 주민들이 균형점을 찾고 조화롭게 어울려 상생하기 힘들 것이 뻔하다. 또,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소속 김필로 박사는 지난해 9월 워싱턴 DC에서 열린 ‘북한의 정치ㆍ경제 변화와 한반도의 미래’ 토론회에서 “북한 주민 대부분이 통일을 염원하고 있고, 북한 정권의 ‘주체사상’에 대해 지지하는 젊은 층 숫자가 점차 줄고 있다. 심지어 정권에 비판적인 말이나 행동을 한 적이 있다는 사람이 62%에 달했다. 또 북한 정권의 사회 통제가 잘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반뿐이었다.”고 발표했다. 김 박사는 지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탈북자 66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라며 응답자의 88%가 북한에서 남한의 드라마나 영화, 음악을 접했다고 밝혔다. 물론 여러 심각한 이유에서 북한을 떠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라 한계가 명확하지만, 2011년부터 5년간 응답자들의 답변이 유의미하게 증가했다는 것은 주목 할만 하겠다. 한계와 오류를 고려해 보수적인 결론을 끌어내더라도 북한 주민들 일부는 이미 남한의 문화를 접하고, 자유에 대한 갈망을 품고 있다는 것이며 이는 분명 북한 내부의 변화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작지만 북한 내부의 변화도 시작됐다고 본다면 우리도 서둘러 준비해야 한다. 먼저, 남북한 주민들의 건강격차를 줄여 우리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게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다음으로 독일이 통일과정과 통일 이후에 양측의 격차를 줄여가는 데 있어 가장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이 들었던 부분을 찾아 그 분야에 집중한다면 우리 모두가 바라는 통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개의 전혀 다른 체제가 균형점을 찾아 사회통합을 이루려면 무엇보다 두 나라 국민이 모두 건강해야 한다. 다른 지역에 살았다고 해서 인간의 권리 가운데 가장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생명권, 건강권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서로에 대한 이질감과 괴리감을 극복할 수 없다. 따라서 남한은 통일 이전까지는 북한 주민들의 기본적인 영양섭취나 의료체계 개선을 도와야 한다. 통일 직후에 예상되는 보건의료 분야의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통일 후 갑자기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될 북한 주민들의 의료 수요에 대비해야 한다. 국내에 거주하는 탈북자 대상 연구를 보면, 탈북자들은 의료 서비스 이용도가 매우 높다고 한다. 국내 다른 취약계층과 비교해도 탈북자들의 의료 서비스 이용빈도는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분석되는 것을 볼 때 통일이 된다면 의료 수요가 크게 증가할 수 있다는 데 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독일의 통일 과정에서 보면, 1990년 동서독 통일 당시 서독의 공공병상 비중은 전체 의료의 63%에 달했지만, 남한의 공공병상의 비중은 20%에도 미치지 못하고, 의료기관 수의 비중은 10%에 못 미치기 때문에 남한은 의료재원 중 공공재원이 차지하는 비중을 획기적으로 늘려 통일시대를 대비해야 한다. 통일 이전 북한을 지원하는데 있어서도 인도적인 차원의 단발적인 의약품이나 식량 지원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의료인들의 교류를 통한 의료 기술 교육, 학술적 차원의 공동 연구, 병원 설립과 보건의료 시스템 개선 등 보다 지속적이고 근본적인 지원과 교류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북한 정권이 폐쇄적인 태도를 버리고 적극적으로 열린 태도를 보일 때 가능한 시나리오겠지만 말이다.


III. 결 론

북한의 계속되는 핵실험과 국제사회를 향한 군사적, 정치적 도발로 인해 미국과 남한뿐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가 북한에 대한 경제적 제재를 강화하고 있는 시점에 북한을 지원하는 문제를 논의하기는 쉽지 않다. 존스홉킨스 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 SAIS의 북한 전문가 알렉산드르 만수로프 교수의 말을 빌자면, 현재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안정성과 자신감을 되찾았고, 국제사회의 높아진 제재를 고려하고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북한을 방문하고 와서 “페니실린으로는 핵실험을 할 수 없다.”며 국제사회가 북한에 필수 의약품 거래마저 끊어서는 안 된다고 제재 완화를 촉구한 노벨상 수상자들의 주장도 주목해야 한다. 북한 정권은 절대 도와주고 싶지 않고, 도와줘서도 안 되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북한에서도 가장 취약한 계층인 어린이와 여성, 노인이 받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들의 영양 결핍과 발달지연 문제는 어제오늘의 새로운 이야기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만성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는 어린이들이 오히려 늘고 있고, 전체 어린이의 3분의 1에서 4분의 1에 달한다는 것은 결코 가볍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이미 북한 주민들의 영양실조로 인한 성장저하는 외국인들의 눈에는 ‘남한 국민과 북한 주민이 같은 민족이라고 도저히 볼 수 없다.’는 결론에까지 이르렀다. 또, 이런 만성 영양결핍은 단순히 발달 지연의 결과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면역력 약화에 의한 조기 사망률도 현저히 높인다. 북한의 5세 이하 어린이의 조기 사망률이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은 무겁게 봐야 한다


통일은 두 개의 이질적인 체제가 외형적으로만 통합하는 것이 끝이 아니다. 단순히 두 개의 정치 체제가 하나가 되고 같은 국기를 사용한다고 해서 저절로 사회가 통합되고 국민들이 동질감을 느끼며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남북한 전 구성원이 문화적, 심리적 괴리감 없이 같은 민족임을 느끼고, 공동체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북한 주민도 남한 국민과 똑같이 건강해야 한다. 병들고 아픈, 제대로 먹지 못해 성장하지 못한 상태의 북한 주민들은 통일을 이룬다고 해도 함께 살기 어렵다. 인도적 차원에서의 문제일 뿐 아니라 남한에 경제적으로도 큰 부담이 되는 것은 물론이요, 건전한 사회통합을 이루는 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통일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고, 우리 정부의 경우 통일이 결국 우리 민족을 살리는 길이며 ‘통일 대박론’까지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는 통일 준비에 더욱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이 북한 주민들의 건강권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할 때, 먼저 식량과 비료 지원, 근본적으로는 농업기술 교육과 농기기 지원 등이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남북한 주민의 건강 격차를 줄이기 위해 북한 주민들의 현 건강 상태를 면밀하게 살피고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방법을 강구하는데 있어 독일의 사례도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동독의 경우 통일 전부터 통일 이후 20년 가까이 자살률이 매우 높았다. 북한도 인구 십만 명당 37.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고, 이는 세계 2위의 자살률이다. 북한 주민들의 주요 사망원인 가운데 6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자살이다. 공식적으로 집계되지 않은 사람들의 자살까지 포함한다면 그 숫자는 얼마까지 높아질지 예상하기 힘들다. 통일된 독일이 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했는지, 어떤 대책으로 동독 지역의 자살률을 낮추는 데 성공했는지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여러 전문가들이 이미 언급한대로 독일과 우리나라의 경우 상황이 많이 달라 동서독 통일보다 남북한의 통일이 훨씬 어려울 것이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또, 남북한 모두에서 통일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고, 분명히 존재하는 정치, 경제, 문화, 보건 분야의 격차와 사회 이질감을 효과적으로 줄여나간다면 통일, 그리고 통일 이후 바람직한 사회통합과 연착륙이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또, 앞에서도 살펴봤지만, 북한 정권은 전 주민에 대해 완전한 무상진료를 시행하고 있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탈북자나 북한에 거주한 경험이 있는 NGO들의 증언은 이와 완연히 다르다. 북한의 의료체계는 사실상 완전히 붕괴한 것으로 보이며 이미 의사들이 진료에 대한 대가를 받고 있고, 진료비를 내지 않으면 환자를 그냥 돌려보내고 있다. 특권층을 제외한 일반주민들은 1.2차 의료 서비스 등 기본적인 혜택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재난 상황에 따른 인도적 지원뿐 아니라 보다 지속 가능하고 장기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북한 주민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고, 책임감을 느낄 수 있는 개발 지원이 절실한 실정이다. 우리가 이렇게 도와줄 방법을 찾고 계획을 세운다고 한 번에 모든 것이 해결될 수있는 문제는 아니다. 독일의 통일은 동독 주민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과 목소리가 높아졌기에 가능했다. 지금은 남한과 국제사회가 북한 주민들을 돕고 싶어도 북한 정권의 폐쇄성 때문에 도울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양쪽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남북한의 건강격차를 줄이고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는 것, 보건의료 시스템을 회복시키는 것이 시급하다. 따라서, 남북한 정부 차원에서 관심을 갖고 보건 분야의 교류, 협력 채널을 만들고 지지해 줄 필요 있다. 단발적인 원조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어렵고, 보건 분야 인력 교류, 학술적 교류, 약품과 의료기기 지원, 교육과 훈련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동안 활발하거나 대규모는 아니었지만, 개성공업지구를 통한 남북 보건의료 분야의 교류와 협력이 개성공단 전면 폐쇄로 아예 불가능하게 됐다. 교류를 시도할 수 있는 다른 창구를 찾아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우선 취약계층은 아주 심각한 식량 부족을 겪고 있는 지역의 10세 이하 아동, 임산부 및 수유 여성, 60세 이상 노인과 특정 취약집단인 중증 결핵 환자(5만2천 명) 및 고아(만 2천 명)를 대상으로 정하고 이들부터 적극적인 지원과 모니터를 지속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의 국내 연구들 가운데 상당수는 통일을 준비함에 있어 북한 정권이 스스로 붕괴해 대규모 난민이 발생할 것을 가정한 연구들이 많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북한 정권이 스스로 붕괴하는 시나리오는 빠른 시간 내에 현실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한 보건의료 지원사업 역시, 김정은 정권이 안정된 상황이라는 가정 아래, 정부를 창구로 하는 접근과 민간 단체, 국제 기구들의 도움을 받는 접근 방안을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IV. 참고자료

1. Espen Bjertness, Ahmed Ali Madar, “North Korea: A Challenge for Global Solidarity”, The Lancet, 2014년 4월
2. Richard Knight, “Are North Koreans Really Three Inches Shorter Than South Korean?”, BBC News, 2012년 4월
3. Benjamin Mack, “North Korea’s Crumbling Healthcare System”, Business Insider, 2014년 6월
4. Global Alliance for Vaccine Immunization, “Comprehensive Multi Year Plan for Immunization” DPRK편, 2011년 5월
5. Prableed Bajpai, “Will North Korea Collapse Under Kim Jong-un?”, 2016년 4월
6. 통계청, http://kosis.kr/bukhan/index.jsp<북한의 주요 통계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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