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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는 레벨이 전혀 다른 미국의 금융감독 규제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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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는 레벨이 전혀 다른 미국의 금융감독 규제 방향 한국경제신문 조진형 연수기관: 조지워싱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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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라임 사태가 던진 질문

한국 헤지펀드 라임의 폰지 사기 사건의 내막을 파헤치고 그 진실을 처음 보도했던 2019년 7월. 그들의 은밀한 사기 수법만큼 당혹스러웠던 건 한국의 금융감독 시스템의 민낯을 마주했다는 점이었다.
금융감독원은 몰랐다. 헤지펀드 1위 라임자산운용이 수조원의 펀드 투자자 자금을 끌어모아 돌려막기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본지 기사가 나오기까지 눈치도 못 챘다. 라임 일당은 겉으로는 최첨단 금융기법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펀드 수익률을 조작하고 뒷주머니를 챙기기 바빴다. 결국 금융소비자 자금 1조6000억원이 묶였다. 대부분 공중으로 사라졌다. 한국 금융시장 제도권에서 벌어진 사상 최대 규모의 사기 사건이다. 그 후폭풍으로 옵티머스 사기 사건까지 덤으로 드러났다.
돌이켜보면 자본시장 근간을 뒤흔든 라임, 옵티머스 사건의 뒤처리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금융감독 체제는 바닥까지 드러냈다.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금융위원회는 별 의미 없는 사후약방문 규제 대책을 쏟아냈다. 감독 일선을 맡고 있는 금융감독원은 사모펀드 전수조사에 나섰다. 금융감독 시스템 자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시인하면서 비효율적인 마지막 감독 수단을 끄집어낸 것이다.
금융감독 담당자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면서 라임 옵티머스 사태에 책임이 있는 금융회사의 CEO를 해임하려는 제재안에만 몰두했다. 원죄가 있는 은행이나 금융투자회사들의 행태도 가관이었다. 저마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방어와 변명에 급급했다. 모든 이슈가 피해 보상으로 귀결되면서 사태의 본질은 뒷전으로 밀리는 꼴이 됐다. 결과적으로 금융회사 소비자뿐 아니라 주주들까지 적잖은 피해를 본 셈이었다.
금융감독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면 그 원인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재발 방지 차원에서 본질적으로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하는 게 상식이다. 이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때 금융시장은 한층 탄탄해지고 활발해지면서 금융소비자뿐 아니라 주주, 임직원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발전한다.
하지만 위기 직후 드러낸 한국의 금융감독 시스템은 실망 그 자체였다. 갑자기 이런 궁금증으로 바뀌었다. ‘선진국의 금융당국이라면 어땠을까’라는. 미국 월가에서 작동하고 있는 선진 금융감독 규제는 어떤 매커니즘으로 어떤 식으로 작동하고 있을까. ‘금융감독 규제 방향에서의 한미 비교 연구’를 연수 주제로 정한 배경이다.

본론 미국 금융감독은 이렇게 작동한다

미국 금융감독의 기본 골격

미국의 금융감독 체제는 우리나라와 기본 골격이 다르다. 다양한 감독기관이 존재한다. 언뜻 보기에 상당히 복잡한 구조처럼 보인다. 동일한 금융권역 내에서도 여러 감독기구가 중첩적인 감시 기능을 수행한다. 연방정부와 주(州)정부도 각각 감독권을 행사한다.
은행, 저축기관, 신용조합 등과 같은 예금 취급 금융기관은 연방준비제도(FRS), 통화감독청(OCC),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신용조합감독청(NCUA) 등 4개의 연방감독기구의 감독을 받는다. 국법 은행은 OCC가, 주(州)법 은행은 FRS와 FDIC가 주요 감독권을 가지고 있다. 주 정부는 주법 은행에 대한 감독 권한이 있다.
증권 등 자본시장 감독기구도 한두개가 아니다. 연방 감독기구인 증권거래위원회(SEC)를 필두로 시스템리스크 전담기관 금융안정감시위원회(FSOC)와 금융소비자 보호 전담기관 금융소비자보호국(CFPB) 등이 각각 작동한다. 주정부에서도 별도의 증권감독 기관이 있다.

감독기관은 이렇게 다양하지만 실제 운영은 복잡한 구조로 이뤄지지 않는 게 미국 금융감독 체제의 특징이다. 감독당국 간 업무의 중복과 혼선을 방지하기 위해 통일적인 감독기준 및 절차가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감독기관은 효율적인 업무협조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고민하고 노력하면서 감독의 질을 높인다고 한다.
이 같은 금융감독 체계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0년 제정된 ‘도드-프랭크 월가개혁 및 소비자보호법’(도드-프랭크법)에 기반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감독 체계를 보다 효율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오바마 정부 시절 도드-프랭크법 입법 절차가 시작됐다. 기존에는 각 주 감독기관과 FDIC, FRB 등이 중복적으로 감독했지만 사모펀드와 헤지펀드 등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에 대해서는 아무도 현황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보험사에 대한 연방 차원의 감독기관이 없어 감독의 일관성이 떨어졌고, 무엇보다 금융 시스템 전반에 대한 거시건전성 감독기관이 없어 시스템리스크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다는 반성이 일었다.
도드-프랭크 법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약 80년 만에 미국 금융정책의 무게추를 규제 완화에서 강화로 바꿔놓았다. 금융 규제가 거의 없었던 미국에서 541개 조문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포지티브 규제를 시행하면서 새로운 금융규제의 방향을 제시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재발 방지를 위해 네거티브 규제 중심의 법 체제에 포지티브 규제를 가미했다. 1933년 ‘글라스 스티걸법’ 이후 은행, 증권, 보험 등 전 금융부문에 걸쳐 가장 포괄적인 금융규제 개혁이 이뤄진 것으로 평가된다.

금융위기 재발 방치책 ‘도드-프랭크법’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의 금융감독 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공감대를 만들었다. 우선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회사’(Systemically Important Financial Institution, SIFI)에 대한 규제, 감독을 강화할 필요성이 생겼다. SIFI 부실화로 인한 신용경색과 실물경제 침체 현상을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당초 미국 정부는 모럴해저드 현상을 예방하기 위해 특정 금융회사를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으나 리먼브라더스 파산 신청의 엄청난 파급효과를 경험하면서 씨티, BOA,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 SIFI에 대해 공적자금을 투입할 수밖에 없었다. 세금이 대거 들어간만큼 SIFI에 대한 규제 ․ 감독 강화는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금융소비자 및 투자자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서브프라임 대출 등을 통해 부채 상환 능력이 떨어지는 금융소비자들에게 무분별한 대출이 이뤄지면서 금융위기 직후 1000만명 넘는 시민들이 집을 팔아 주택담보대출을 갚을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일반 투자자 또한 충분히 설명을 듣지 못하고 위험 투자에 나섰다가 손실을 입었다는 민원도 급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달라진 금융감독 눈높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2010년 제정된 게 도드-프랭크법이다. 총 16장 541개 조로 구성되어 10개 법을 새로 만들었다. 또 은행지주회사법, 증권법 등 미국 금융시스템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법을 포함해 50여개 법을 개정했다. 금융위기 재발 방지라는 분명한 목표를 위해 감독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개편하는 데 초점을 뒀다.
SIFI에 대한 규제 감독의 강화를 위해 ‘볼커룰’이 도입됐다. 볼커룰은 대형은행이 자기자본으로 위험한 투자를 하지 못하도록 규제한다.
다양한 감독기관들이 신설됐다. 우선 금융시장 전체의 시스템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FRB, FDIC, OCC 등 14개 금융감독기관이 참여하는 금융안정감시위원회(Financial Stability Oversight Council, FSOC)가 신설됐다.
저축기관감독청(Office of Thrift Supervision, OTS)이 폐지됐고, 그 기능은 FRB와 연방예금보험공사 등으로 이관됐다. 보험산업에 대한 보다 효율적인 감독을 위해 재무부 내에 연방보험국이 설치됐다. 또한 예금보험료를 내지 않는 금융회사들을 효과적으로 청산하기 위해 FDIC가 비부보 금융회사도 정리할 수 있도록 규정을 개정했다.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 FDIC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경영진이 교체되어야 한다는 조항을 추가하고 지원된 공적자금은 사후적으로 100% 회수하기로 했다.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우선 대출과 신용카드 등 은행 업무 관련 소비자 보호 기능을 모두 담당하는 독립적 소비자금융보호국(Consumer Financial Protection Bureau, CFPB)을 신설했다. 일반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금융시장의 투명성을 높이는 조치들이 주로 취해졌다. 장외파생상품도 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감독을 받게 됐다. 그 동안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사모펀드, 헤지펀드, 신용평가사에 대한 규제 감독도 신설됐다. 운용규모 1억 달러 이상의 헤지펀드와 1.5억 달러 이상의 사모펀드는 SEC에 투자자문사로 등록해야 하고 운용자산, 레버리지, 거래 리스크 등을 주기적으로 보고하도록 했다. 서브프라임 부실사태를 초래한 단기실적 위주의 보수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모든 금융회사는 경영진의 보상체계, 보상수준, 일반직원과의 보수격차, 보상위원회 보고서 등을 공시하도록 했다.
과거의 금융규제는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의 분리, 금융감독기구 설립 및 재편, 금리 규제 등 주로 은행이나 증권의 기본업무를 대상으로 했다면 2010년 도드-프랭크법 제정 이후에는 당시 새로 등장한 헤지펀드 및 사모펀드와 파생금융 시장 등이 규제대상에 포함되었다. 게다가 신용평가제도 금융, 회사 보수체계 부실금융회사 정리체제 등으로 감독 대상이 확대됐다. 미시적 금융감독뿐 아니라 거시금융 감독체계라는 새로운 개념이 금융감독의 큰 화두로 떠오르게 됐다.
과거의 금융규제가 주로 한 국가내에서 독자적으로 이루어졌다면 국제기구와 각국 간 협력체를 중심으로 규제 공조 체제를 강화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다.

금융 규제 재강화 움직임, 그 중심엔 FSOC

도드-프랭크법은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 금융감독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하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2010년 도드-프랭크법 제정 당시부터 공화당이 반대 입장을 분명히 나타냈다. 법안이 하원, 상원을 통과하고 발표된 후에도 공화당은 민주당이 독단적으로 이 법을 제정했다고 반발하면서 폐지를 적극 주장해왔다. 그러다가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취임하면서 도드-프랭크법의 칼날은 점점 무뎌졌다. 트럼프 정부는 단계적으로 금융규제 완화 대책을 추진했다. 법률 개정을 통해 볼커룰을 완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조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정권이 바뀌자 다시 규제 강화 분위기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금융안정감시위원회(FSOC)의 위상을 제고하고 비은행금융회사의 SIFI 지정 권한을 통해 비은행부문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SOC 의장을 맡고 있는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작년 초 FSOC 중심의 시스템리스크 감시 체계를 강화하고 비은행 감독 및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 은행위원회 의장은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과 같은 비은행금융회사를 SIFI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거시적인 금융감독의 핵심 역할을 하는 중추기관인 FSOC의 권한은 지속 확대되는 추세다. FSOC 역할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미국진보센터(Center for American Progress)는 ‘FSOC의 5가지 정책 우선순위’라는 보고서(2021년 3월)를 통해 FSOC 역할 강화를 주장하기도 했다. 그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FSOC 역할 강화에 대한 목소리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게 한다.

(1) FSOC 및 OFR의 예산 및 인력 강화

트럼프 정부가 축소한 FSOC의 예산 및 인력을 강화할 것. 오바마 정부에 비해 FSOC의 예산 25%, 인력 60% 이상이 감축됐음.

(2) 2019년에 제정된 비은행 SIFI 지정 가이던스 폐지

비은행 SIFI 지정을 비용편익분석 등 복잡한 과정을 거친 뒤 가능하게 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지정이 어렵게 한 지침을 폐지할 것.

(3) 기후변화 관련 금융리스크 취약성 해결

FSOC가 기후변화와 관련된 리스크를 모니터링‧관리할 것.

(4) 그림자금융 취약성 해결

코로나19 위기에 따라 확장되고 있는 그림자금융 관련 리스크를 모니터링‧관리할 것.

(5) 광범위한 금융데이터를 바탕으로 정책 수행

FSOC를 구성하는 다양한 기관들의 데이터를 OFR에서 취합하여 포괄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책을 수행할 것.

요즘 트렌드는 자본시장 감독 강화

미국 금융당국은 비은행 부문 취약성을 경고하는 메시지를 곳곳에서 내놓고 있다.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작년 3월 말 처음으로 개최된 FSOC 본회의에서는 헤지펀드 및 MMF 등에 대한 규제 필요성을 주로 논의했다. FSOC를 구성하는 주요 연방금융감독기구 수장들은 코로나19 기간 중 취약성을 보인 비은행 부문에 대해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데 동의했다.
미 연준은 2021년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서 비은행업권의 취약성을 리스크 요인으로 지목했다. 은행업권은 충분한 자본을 보유하고 레버리지 비율을 자체적으로 잘 관리하고 있으나, 비은행업권의 레버리지 비율은 당국의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냈다.
특히 파생상품 투자 비중이 높아 레버리지가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해 기업환경이 악화되면서 대출채권담보부채권(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CLO)와 회사채가 더욱 취약해졌다고 경고했다. 헤지펀드의 레버리지 비율은 역사적 평균을 다소 상회하는 수준이지만 이용 가능한 데이터가 제한적이고 시차가 존재해서 위험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했다. FSOC 의장인 옐런 재무장관은 FSOC 본회의 모두발언에서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헤지펀드 관련 데이터 공유를 확대할 수 있도록 헤지펀드 워킹그룹의 활동을 재개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바이든 정부 들어 비금융권 규제 강화를 예고하는 건 근래 들어 자본시장 사건 사고가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헤지펀드, 사모펀드 규모가 급증하면서 금융시장 전체 시스템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실제 사례가 속속 발생하고 있다.
작년 1월에는 게임스탑 등 소위 밈주식(meme stock) 관련 공매도 포지션을 취했던 헤지펀드들이 대규모 손실을 보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게임스탑의 사업 전망이 비관적이라 판단하며 주가 하락에 베팅했던 헤지펀드가 많았다. 하지만 미국 개인 투자자들의 역공은 매서웠다. 개인 투자자들은 유동주식 대비 공매도 비중이 높은 종목을 골라 집중 매수에 나섰다. 결과적으로 개인 투자자들은 공매도 헤지펀드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게임스탑을 비롯한 일명 ‘밈 주식’의 주가가 폭등했다. 당시 게임스탑 주가가 17달러에서 최고 347달러까지 1915% 급등하기도 했다. 잘 나가던 헤지펀드들은 문을 닫았다. 대표적으로 120억달러를 운용하던 멜빈캐피털이 공매도 포지션을 취했다가 결국 문을 닫았다. 막대한 손실을 감당하지 못해 청산 절차를 밟았다.

작년 3월 터진 아케고스캐피털 사태는 더 심각했다. 투자회사 한곳의 일탈이 세계 자본시장을 뒤흔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건이었다. 한국계 미국인 빌 황(사진)은 자신이 설립한 패밀리오피스 투자회사인 아케고스캐피털로 무리하게 레버리지를 일으켜 투자했다가 글로벌 투자은행(IB)에 100억달러가 넘는 막대한 손실을 안겼다.

아케고스캐피탈은 파생상품인 총수익스와프(TRS)와 차액거래(CFD) 계약을 통해 보유자산 100억 달러의 5배가 넘는 500억 달러 상당을 주식에 투자했다. 그러나 2021년 3월 23일 아케고스캐피탈이 자금을 빌려 투자한 주식이 급락하게 되자 자금을 빌려준 은행들은 현금을 추가로 요구했다. 펀드의 투자 원금에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될 경우, 이를 보전할 수 있도록 증거금을 더 요구하는 ‘마진 콜’이 발생했다. 결국 아케고스캐피탈은 이를 감당하기 못해 디폴트를 선언했다. 크레디트스위스는 55억달러에 달한 손실을 봤다. 모건스탠리의 손실액은 9억1100만달러, 일본 노무라증권은 28억5000만 달러의 손실을 봤다.
빌 황이 투자했던 미국 주식, 중국 주식 등의 주가는 갑자기 손절 물량이 쏟아지면서 급락했다. 미국 뉴욕남부지검은 올해 4월 은행에 거짓말을 해 수십억달러의 대출을 받은 뒤 상장 기업의 주가를 부풀리는 데 사용했다며 빌 황 등을 증권사기 및 공갈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이들이 금융회사들을 속여 거액을 차입했고, 이를 자신들이 보유 중인 주식에 대한 파생상품에 투자함으로써 주가를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한때 아케고스캐피탈의 레버리지 비율은 1000%에 달하기도 했다.
비은행권 손실이 금융시스템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줄줄이 터진 것이다. 이로 인해 비은행 SIFI 지정 요구는 갈수록 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결론 한국과 무엇이 다른가

금융감독 1순위 목표는 ‘시스템 안정’

미국 금융감독 체제가 발전해온 과정을 보면 가장 큰 목표는 금융시스템 안정에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금융소비자도 중요하지만 금융시스템 안정을 우선할 수 없다는 전제는 분명하다. 초대형 금융회사 감독도 중요하지만 그 본질은 그 회사로 인한 금융시스템 영향을 감독한다. 금융시스템이 위기에 빠지면 경제 전체가 마비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 따른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대대적인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단행한 것이다.
한국에선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도 금융감독 체제에 큰 발전을 하지 못했다. 금융소비자 보호에만 머문 채 금융 시스템에는 소홀히 해왔기 때문이다. 금융 시스템의 이상징후를 사전에 감지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지 못했다. 라임, 옵티머스 폰지 사기 사건만 하더라도 그 자체를 사전에 감지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사태가 터진 후에도 본질적인 제도 개선은 내팽겨치고 금융소비자 보상 문제에만 신경 쓰면서 여론전을 벌여왔다.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등은 책임 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금융회사 CEO 제재에만 열을 올리면서 금융감독 불신만 키웠다. 결국 해당 금융회사들이 금융감독기관 제재가 부당하다고 줄줄이 소송전에 나서는 결과를 초래했다.

협력하고 경쟁하는 ‘거미줄 금융감독’ 체제

앞서 설명했듯 미국은 수많은 감독기관들이 씨줄날줄처럼 금융회사나 이들의 행위를 감시한다. 우리나라엔 금융위원회를 필두로 금융감독원, 예금보험공사, 한국은행 등이 있지만 감독 기능은 사실상 금융감독원에 쏠려있다. 정책을 담당하는 금융위원회가 감독을 위임한 금융감독원과 제대로 소통되지 않는 일이 자주 발생하면서 큰 구멍을 드러냈다. 미국 FSOC처럼 금융 거시감독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미국은 수많은 감독기관들이 서로 경쟁과 협력을 하는 구조와 거리가 멀다.
은행 보험 증권 서민금융 등 금융 전영역을 감독하는 금융감독원의 행태는 미국 감독기관과 다르다. 권위주의적이고 제재를 위한 제재가 많다는 게 가장 큰 차이다. 미국 감독기관들은 위기와 사고 예방에 주력한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위기나 사고 가능성을 스크린하고 있다가 징후가 보이면 금융회사들에 알려주고 빠르게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반면 한국 금융감독원은 정상적인 금융거래도 불법 소지가 있다면서 무리한 제재를 단행하기 일쑤다. 한국투자증권 발행어음 대출 논란이 대표적이다. 금융회사들이 의아한 건 금융시스템에 영향을 주거나 고의성이 다분한 불법 행위가 아닌데도 수년간 내버려두다가 갑자기 철퇴를 때리는 감독 행태가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점이다. 가벼운 이슈지만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면 앞으로는 하지 말라고 하면 될 일도 과도한 제재부터 남발하면서 ‘군기잡기’에 몰두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금융감독 직원들의 전문성이나 책임도 남다르다. SEC는 제너럴리스트보단 프로페셔널리스트 직원을 키운다. 어떤 사건을 조사하고 발표할 때마다 조사를 담당한 직원 이름을 모두 실명으로 공개한다.

진짜 권위 지키는 금융감독 수장…지성과 상식으로 시장과 소통

금융감독 전문성은 감독기관 수장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미국 금융감독 기관장들은 어떤 금융감독 이슈가 발생하면 “무엇이 옳은지 시장에 물어보자”는 식으로 문제 제기를 한다.

게리 겐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사진)은 작년 5월 미 하원 금융위원회에서 당시 벌어졌던 금융 사고들을 언급하면서 원인을 분석하고 규제 필요성을 시장에 던졌다.
헤지펀드와 개인투자자 사이에서 ‘공매도 전쟁’이 발생한 게임스탑 사태 관련해선 단기매매를 부추기는 거래 시스템이 그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온라인 증권거래업체 로빈후드는 개인투자자들의 주문정보를 한데 모아 시타델증권 에 보내고 수수료 수익을 챙겼다. 시타델증권은 개미의 정보를 기반으로 초단타 매매를 벌여 이익을 얻었다. ‘투자자주식정보판매(PFOF)’라 불리는 관행이다. 개인들은 무료로 거래를 할 수 있는 이점이 있어 단기매매를 부추긴 측면이 있었다. 겐슬러 위원장은 “현재 미국의 주식거래 시스템이 투자자들에게 공정하고 경쟁적인지 의문”이라며 “개인 투자자들에게 더 나은 투자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했다. 공식 거래소에서는 매수 호가와 매도 호가를 모두 공개해 최적의 매매가를 공표하지만, 시타델 등 대형 증권사는 공개하지 않아 시장 투명성을 떨어트린다는 게 요지다. 게임스탑 사태를 계기로 규제를 예고하고 시장 참여자들과 충분히 소통한 뒤 규제안을 만드는 게 선진 금융기관의 방침이다.

겐슬러 위원장은 아케고스캐피탈 사태 관련해서도 “감독당국이 거래자들이 파생상품의 거래정보 공개 확대 의무화 여부를 검토하게 됐다”며 “주요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전체 금융시스템에 어떤 위험을 초래하는지 고려할 필요가 있고, 시장점유율이 높은 단일 회사가 실패할 경우 전체 잠재적 시스템의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감독 수장이 핵심 이슈에 대해 시장과 직접 소통하고 토론하면서 합리적인 규제 방안을 끌어낸다. ‘뒤통수’ 치듯 무리한 기습 제재를 남발하면서 그게 권위인줄 착각하는 한국과는 차별화된다.

정작 전 세계 금융당국 가운데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곳은 미국이다. 미국 감독기관이 정해 놓은 것을 지키지 않는 금융회사는 파산하기도 할 정도로 엄벌한다. 불법을 저질렀을 때 처벌 수준은 한국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드러난 역사상 최대 규모의 폰지 사기 주범 버나드 메이도프는 징역 150년 형을 받았다. 한국에선 주가 조작으로 한몫 챙긴 후 감옥에서 몇 년 살고 나오는게 이익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금융 범죄에 관대하다.

네거티브 규제 중점의 규제 효율…데이터도 시장과 공유

법적 체계의 차이도 금융감독의 질을 달리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의 법 체제는 포지티브 규제를 바탕으로 한다. 포지티브 규제는 법률이나 정책에 허용되는 사항을 나열하고 그 밖의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미국은 반대다. 법률이나 정책에서 금지한 행위가 아니면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를 바탕으로 한다. 그러면서 포지티브 방식으로 약점을 보완하는 형태를 갖추고 있다.
포지티브 규제를 고집하면 법 집행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때때로 큰 구멍이 발생한다. 시장에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헤지펀드와 같이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면서 새로운 시장이 열릴 때마다 대형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하면 이해가 쉽다. 그때마다 초대형 규제안이 나오면서 시장 자체를 다시 죽이는 우를 반복했다.
그리고 미국 금융감독의 바탕은 투명성이다. 공정공시뿐 아니라 감독기관이 각종 금융시장 관련 데이터를 시장에 공개한다. FSOC SEC 등은 매년 시장 데이터와 활동 내용을 담은 연간 보고서(annual report)를 내놓는다. 한국 감독기관은 투명성과 거리가 멀다. 각종 데이터나 때때로 정보를 시장에 공유하는 일이 금융감독의 권력을 내려놓는 일이라는 그릇된 관념을 가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금융사 수준도 달라…상세 조사 결과 담은 백서 공시

미국에선 금융감독기관뿐 아니라 금융회사 수준도 한국과 다르다. 대형 금융 사고와 연관된 금융회사들은 자체적으로 백서를 만들어 투자자들에게 공시한다.
아케고스캐피탈 사고 때 가장 큰 손실을 봤던 크레디트스위스는 조사 결과에 따른 핵심 원인과 배경, 개선책 등을 상세하게 담은 백서를 작년 7월 말 내놓았다. 전체 160페이지 분량(옆에 사진은 백서의 목차 일부)이다.
빌 황과 거래를 다시 재개하게 된 배경을 팩트 중심으로 투자자들에게 설명한다. 앞으로 이 같은 리스크에 노출되지 않도록 지배구조와 보고 체계, 내부통제시스템 등을 어떻게 손볼지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다. 보여주기 식이 아니라 처절한 자기반성을 바탕으로 한 실질적인 보고서다. 한국 금융회사들과 수준 자체가 다르다. 라임 옵티머스 사태 이후 금융회사들은 보상만 얘기할 뿐이었다. 어떻게 그런 사기 상품을 대거 팔았는지 원인을 분석하고 근본적인 개선책을 얘기한 곳은 없었다. 피해자들은 도대체 누구의 잘못인지,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조차 모른다.

참고 자료

2021 FSOC ANNUAL REPORT

Testimony of Gary Gensler Chair,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Before the House Committee on Financial Services, May 6, 2021

CREDIT SUISSE GROUP SPECIAL COMMITTEE OF THE BOARD OF DIRECTORS REPORT ON ARCHEGOS CAPITAL MANAGEMENT, July 29, 2021

SEC Division of Examinations Announces 2021 Examination Priorities, SEC, March 3, 2021

SEC Requests Comment on Potential Money Market Fund Reform Options Highlighted in President’s Working Group Report, SEC, Feb. 4, 2021

SEC Requests Comment on Potential Money Market Fund Reform Options Highlighted in President’s Working Group Report, SEC, Feb. 4, 2021

Who Regulates Whom? An Overview of the U.S. Financial Regulatory Framework, CRS, March 10, 2020

미국 사모펀드 시장 감독강화 움직임, 자본시장연구원, 2022. 3월

미국의 금융규제 변화와 최근 재강화 움직임, 워싱턴주재원, 2021. 3월

美 바이든 정부 금융안정감시위원회(FSOC)를 통한 비은행 규제 강화 전망, 예금보험공사, 2021. 5월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주요 금융규제체계 개편 추진 현황 및 전망, 한국은행 워싱턴주재원, 2018. 8월

’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금융규제체계 변화 및 시사점, 예금보험공사, 2012. 9월

도드프랭크 금융규제 개혁과 그 이후, 정신동, 2018. 4월

세계적인 금융규제 강화 움직임의 최근 동향 및 평가, 한국은행, 2010. 3월

미국의 금융감독체계 개편과 한국에 대한 시사점, 서울사회경제연구소, 2009년 10월

각종 외신 및 한국 신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