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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재’라는 미명의 ‘북핵 방치’ : 미국은 비핵화 의지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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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재’라는 미명의 ‘북핵 방치’ : 미국은 비핵화 의지가 있는가 한국일보 권경성 연수기관: 조지워싱턴대 한국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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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한의 세 가지 정체성

북한은 패배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반세기 가까이 지속된 냉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간 체제 경쟁이 지난 세기 말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며 자본 진영 승리로 사실상 귀결됐다. 북한은 낙오자이기도 하다. 가파른 속도로 이뤄진 인류의 기술적 진보가 상당 부분 이념적 서방의 성취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편승도, 소외도 선택지가 아니었다. 지금 저 변방국의 정체성은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교란자’다.

오늘날 핵(核)의 무기화는 금단의 영역이다. 미국과 러시아 등 강대국끼리 자제를 약속했다. ‘핵전쟁’은 결국 인류가 함께 망하는 길이라는 분별을 공유한 결과다. 그러나 북한은 합의에 순순히 따를 생각이 없다. 그야말로 ‘내로남불’이라 여긴다. 격변기에 줄을 잘못 섰고, 거기서부터 게임이 꼬였을 것이다. 지금은 거의 망쳤다. 역전은 언감생심이다. 하지만 끝나지는 않았다. 생존하면 회복도 가능할지 모른다.

더러 무능과 야만, 악(惡)은 호환된다. 전부 나쁘다. 북한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미국의 인식이다. 워싱턴 외교안보 엘리트 주류 시각에 북한은 예외적이다. 애초 ‘글러 먹은 녀석’이다. ‘미국 같은 힘센 나라한테 해코지 당할까 겁나서라며 거짓말을 일삼지만, 핵을 손에 넣고 싶어하는 꿍꿍이는 뻔하다. 진지하게 상대할 가치가 없다. 21세기다. 전체주의 유교 왕국1)은 버티지 못한다. 몰아붙이면 무너진다.’

핵심 수단은 제재(sanctions)였다. 일체 무역ㆍ금융 거래를 법으로 막았다. 1948년 정부 수립 이래 냉전기를 거쳐 지금껏 북한은 한순간도 미국의 제재 대상이 아닌 적이 없었다. 1990년대 초반 북한이 핵에 손댄 뒤 지속적으로 넓고 촘촘해진 대북 제재망(網)은 이제 국제 레짐(regime)이 됐다. 웬만한 조치와는 교환될 수 없는 중요한 비핵화 지렛대라는 것이 워싱턴의 공감대다.2) 더 이상 변수가 아니라 상수다.

때리기보다 말려 죽이는 편이 더 나았다. 덜 위험하고 보기에도 점잖았다. 여력을 북한에 남겨 두지 않을 테니 당연히 제재가 핵과 길항하리라고 미국은 기대했다. 붕괴나 항복도 시나리오에 있었을 것이다. 역내 핵 보유국 확대를 반길 리 없는 중국이 압박을 거들 것으로 믿었다. 무엇보다 자국은 ‘신의 가호’를 입은 나라였다. 하지만 낙관은 독이 됐다. 핵 개발 시간과 의지를 북한에 준 것이 제재였다.

대북 정책은 미국의 초상(肖像)이라 할 만하다. 우선 철저히 수직적인 세계관이다. 그 위계상에서 꼭대기는 미국의 차지다. 미국은 늘 옳고, 그래서 다르다. 반면 북한은 언제나 틀리다. 그래야 한다. 보이는 대로 믿는 대신 믿는 대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미국은 물론, 북한도 상황ㆍ능력별 국익을 추구하는 합리적 국가로 여기는 것이 현실주의다. 국제정치학계의 주류지만, 워싱턴에서는 발붙이기 어렵다.3)

미국의 넓은 오지랖은 저 ‘예외주의’의 산물이다. 우월하지 않다면 번거로운 일을 도맡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지나치게 자의적이라는 것이 문제다. 미국은 전후(戰後) 질서를 빚은 세계의 입법당국이다. 권력에 도전하는 불온성을 범법으로 해석할 수 있다. 대표적 범죄자가 북한이다. 미국이 경찰인 세계에서는 범죄가 범죄자를 규정하는 순리가 흔들리기 일쑤다. 대신 범죄자의 행동이 전부 ‘범죄적’이다.

 

독선은 관성을 낳고 만다. ‘도덕ㆍ규범 환원론’은 정책당국자들로 하여금 현실의 수평적 동학을 외면하게 만든다. 대북 제재는 악당에게 가하는 처벌이다. 속은 시원하다. 선악관에 부합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르다. 그러나 자주 환원주의는 교조로, 당위는 경직으로 흐른다. ‘도덕주의 기반 강압(moralistic coercion approach)’은 북핵 발아를 미연에 막도록 해 줬을지 모를 냉철한 타산 기회를 미국에게서 박탈했다.4)

정권이 교체된 만큼 민주당 조 바이든 미 대통령에게 선차적 극복 대상은 전임자였을 것이다. 요컨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북 접근은 무모했고, 그래서 실패했다. 자연스러운 분석이다. 일거에 해소하기에 북핵은 이미 고질이었고 북미 모두 얼마간 고집을 꺾으며 손해를 감내해야 했는데, 막상 또 그러자니 국내적으로 돌아올 할 정치적 부담이 리더 둘 다 만만치 않았다. ‘계산’이 어설펐던 것이다.

그렇다고 사실상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흉내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미 수중에 들어간 핵을 빼앗는 일의 난도는 손에 못 쥐게 막는 일에 비할 바가 아니다. 물밑 사정이 어떤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한가해 보이는 것은 어떻든 사실이다. 북한 문제가 미 외교안보 정책의 최우선 순위여야 한다고 조언한 이는 정권을 넘겨줄 무렵 오바마였다. 6년 전이다.

바이든을 직시한 이가 있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다. 지난해 한 신문 칼럼을 통해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면전에서 “영혼이 없다”고 핀잔 준 일을 언론에 공개한 바이든의 독선적 미국 예외주의 신봉자 같은 면모를 지적했다.5) 오바마와 트럼프가 미 대통령으로서는 예외적인 현실주의자로 평가된다는 점에서 바이든이 계승한 이는 ‘정통 예외주의자’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일지도 모른다.

제2장에서는 사실상 제재에만 매달리며 북핵을 방관하다시피 하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의 현주소를 다뤘고, 3장에서는 제재의 부당성을 정당성과 타당성 측면으로 나눠 살펴봤다. 제재 집착의 뿌리에 미국의 오랜 선악 이분법적 세계관이 자리잡고 있다는 주장과 제재 일변도 정책이 한계가 명확한 데다 도리어 부작용을 일으키기 십상이고 실제 그렇다는 주장을 3장에서 논변했다. 4장에서는 그러면 미국이 왜 그렇게 적절하지 않은 방식에 의존한 대북 정책을 펴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시도했는데, 정권이 바뀌어도 ‘미국 예외주의’는 지속돼 왔다는 기존 연구 결과에 착목했다. 이어 5장에서 미국의 어떤 대북 정책이 바람직할지 실마리를 찾아봤다.

1) 오공단(Oh, Kongdan)ㆍ랄프 해식(Ralph C. Hassig) 저, 강석진ㆍ최경준 역. 『북한, 비정상의 정상국가』(도서출반 이조), 2018.

2) GW(The George Washington University)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US-ROK Strategic Communication: Track II Dialogue on the US-China Strategic Rivalry and the US-ROK Alliance”, 2022.

3) 이혜정. “북한 예외주의 대 현실주의: 미국의 한반도 정책”, 『창작과 비평』, 47권 3호, 2019.

4) Yoon, Young-kwan. “In defense of a bold U.S. approach toward North Korea”, The National Interest, October 22, 2021,https://nationalinterest.org/print/blog/korea-watch/defense-bold-us-approach-toward-north-korea-195401 (검색일 2022년 7월 8일).

5)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 “바이든의 말들이 드러내는 것”, 『한겨레』, 2021년 4월 5일,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989606.html (검색일 2022년 7월 8일). 칼럼에서 지젝은 “살인자들은 적들의 종교나 인종이나 영혼의 유무를 신성한 대의로 내세운다”며 바이든의 말을 통해 그의 교조주의와 인종주의, 개입주의 성향이 드러난다고 비판한다.

2. 무관심?

“북한 문제는 현재 미국의 ‘11번째 의제’가 되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의제가 10개 있을 때 말이다.”이성현 미국 하버드대 페어뱅크 중국연구소 방문학자는 올 초 한국일보 기고에서 이렇게 전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현안 우선순위에서 대북 정책이 까마득히 뒤로 밀린 현실을 다소 과장해 소개한 것이다.6)

실제 임기 두 번째 해 중반까지도 겉으로 나타나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태도는 무관심 그 자체다. 올 5월 한일 순방 기간 바이든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전달한 메시지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났다. “안녕(Hello). 끝(Period).” 단 두 마디였다. 미 유력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그의 두 단어 대답은 북한 지도자와의 관여(engagement)를 적극적으로 모색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태도와 선명하게 대조적”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가 김정은을 세 차례나 만나고, ‘러브 레터(친서)’로 우호적인 관계를 과시한 반면, 바이든은 김정은이 ‘진실하고 진지하게’ 나오지 않는 이상 그와 만날 일이 없을 것이라며 확연히 다른 접근법을 취했다”는 것이 신문의 부연이다. 7)

당국자가 밝힌 정부 입장에도 전향적인 내용은 눈에 띄지 않는다. 올 3월 워싱턴 민간단체 ‘신미국안보센터(CNAS)’가 주최한 대담에서 정 박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북한을 대미 대화로 유도하기 위해 대북 제재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강하게 반대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북한과의 대화 및 외교를 바라지만, 그렇다고 북한의 나쁜 행동을 묵인하지는 않겠다고도 했다. 8)

사실 이미 예상됐던 상황이다. 상당 기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이나 사회 갈등 같은 국내 현안에 바이든 행정부가 관심을 집중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던 데다, 자유주의 국제 질서 및 동맹 관계 복구,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회복 등 전 정부 일탈이 남긴 부정적 유산의 수습 방안이 최우선 외교적 관심사일 것이라는 관측이 집권 전부터 일반적이었다. 9) 설상가상으로,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40여 년 만에 최대폭으로 치솟은 물가 등에 발목을 잡힌 바이든 대통령인 만큼 북핵 대처에 신경 쓸 여력이 더더욱 없으리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워싱턴 엘리트 그룹 내 기류나 여론 지형도 북핵 문제를 유화적으로 다루기 어렵게 만드는 장애물이다. ‘민주주의 가치 외교’를 표방한 바이든 정권의 행보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맞물리며, 그렇지 않아도 대세였던 기존 ‘반북 컨센서스’가 미국 내에서는 더 강고해지는 분위기다. 켄 고스 미 해군분석센터(CNA) 적성국 분석 담당 국장은 6월 20일 미 조지워싱턴대 한국학연구소와 한국 통일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웨비나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북한과 관여할 방법을 찾아 나서야 하지만 국내적으로 치러야 할 정치적 대가를 감당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10)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느냐”는 질책은 자연스럽다. 7월 2일 미 관영 방송 ‘미국의 소리(VOA)’가 방영한 대담에서 마이클 오핸런 미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단순히 언제 어디서든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전략적이지도 않고 김정은을 설득해 회담에 임하게 만들 것 같지도 않다”며 “바이든 행정부가 보다 창의적이고 유연한 대북 외교 전략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1) 민간연구소 ‘불량국가 프로젝트(The Rogue States Project)’의 해리 카지아니스 대표 역시 4월 VOA 인터뷰에서 “대화 제안을 넘어선 구체적 정책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꼬집었다. 12) “바이든 행정부의 접근이 너무 소극적이고 관여를 위한 공개 제안에 실질적 내용이 거의 없다는 평가가 있다”는 미 의회조사국 보고서의 우려가 등장한 것은 올 2월이었다. 13)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의도하지 않았어도 결과적으로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인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가 바이든 행정부에서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WP에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무(無)대책이 갈수록 이른바 ‘전략적 인내 2.0’ 또는 ‘전략적 무시’로 흐르는 것 같아 보인다”고 말했다. 14) 오바마 행정부 8년간 이어진 대북 정책 기조인 ‘전략적 인내’는 제재 등 경제적 압박을 지속하며 북한의 변화를 기다린다는 것이 뼈대다. 사실상 ‘방치’로 북한의 핵 능력 증강을 부추겼다는 빈축을 사고 있다. 6월 15일 서울에서 열린 토론회의 발표자로 나선 이정철 서울대 교수는 “외교의 효과가 없다거나 적절한 관여가 시작될 조건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과도 기간 제재를 수단 삼는 것은 전략적 인내의 철학”이라며 “‘제재 만능론’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15) ‘적대적 무시’의 미래는 실패의 반복일 수밖에 없다는 충고도 나왔다. 16)

지금처럼 북핵을 뒷전에 뒀다가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경고다. 중국과 러시아라는 강대국만을 방위 전략의 고려 대상으로 삼을 경우, 미국이 조만간 최대 수준의 핵 위협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17)

6) 이성현. “미국의 관심은 대만인데, 북한 얘기만 해서야”, 『한국일보』, 2022년 1월 4일,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10309590001592?did=NA (검색일 2022년 7월 8일).

7) Kim, Min Joo, and Lee, Michelle Ye Hee. “Biden visit showcases hardened stances on North Korea”, The Washington Post, May 24, 2022, https://www.washingtonpost.com/world/2022/05/24/biden-north-korea-south-korea/ (검색일 2022년 7월 8일).

8) 조은정. “정 박 국무부 부차관보 “대북 제재 완화 강력 반대… 북한의 나쁜 행동 묵인 안 해””, 『VOA Korea』, 2022년 3월 11일, https://www.voakorea.com/a/6480269.html (검색일 2022년 7월 8일). 박 부차관보는 “상대방이 관심을 보이지 않을 때 대화를 제안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며 이해를 구하기도 했는데, 북한의 전향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딱히 다른 인센티브 구상이 없다고 인정한 셈이다.

9) 임수호.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전망과 시사점”, 『INSS(국가안보전략연구원) 전략보고』, No. 107, 2020년 12월.

10) https://youtu.be/AwW-W_ErxD8 (검색일 2022년 7월 8일).

11) https://youtu.be/6RHjryqqTzc (검색일 2022년 7월 8일).

12) 박형주. “바이든 ‘대북정책’ 발표 1년… “외교적 접근 긍정적이나 구체적 행동 결여””, 2022년 4월 29일, 『VOA Korea』, https://www.voakorea.com/a/6549341.html (검색일 2022년 7월 8일).

13)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Diplomacy with North Korea: A Status Report”, February 3, 2022, https://sgp.fas.org/crs/row/IF11415.pdf (검색일 2022년 7월 8일).

14) Kim, Min Joo, and Lee, Michelle Ye Hee. 앞의 글.

15) https://www.youtube.com/watch?v=Sqr5yEA0mow&feature=youtu.be (검색일 2022년 7월 8일).

16) 김연철. “적대적 무시의 미래”, 『한겨레』, 2022년 7월 10일,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50365.html (검색일 2022년 7월 10일).

17) Katz, Katrin Fraser, and Cha, Victor. “North Korea’s missile message: How Kim’s new nuclear capabilities up the ante”, Foreign Affairs, April 29, 2022, https://www.foreignaffairs.com/articles/north-korea/2022-04-29/north-koreas%02missile-message(검색일 2022년 7월 8일).

3-1. 부당성 1: 옳지 않다

북한이 핵 무장을 단념하게 만들기 위해 현재 활용되고 있는 사실상 유일한 지렛대는 제재다. 수출ㆍ수입을 끊고 달러 금융 거래를 막는 경제적 압박이다. 공화당 정권에 견줄 때 상대적으로 미 민주당 정권이 무력보다 대화를 선호해 왔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강압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협상 상대가 말을 듣게 하려면 강력한 제재가 밑받침돼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기도 했다.

“내 주된 표적은 북한 공산주의 정권 자체다. 맞서는(oppose) 것이 먼저지만, 근본적으로(basically) 북한을 축출하는(depose) 것이 목적이다.” (데이비드 애셔 미 허드슨 연구소 선임연구원, 전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선임자문관)18)

“우리는 핵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맞다. 그것은 위협이다. 하지만, 진정한 문제는 북한이다. 솔직히 말해서, 자유롭고 통일된 한국이 존재할 때까지 우리는 결코 핵ㆍ미사일 프로그램의 끝을 보지 못할 것이다.” (데이비드 맥스웰 미 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연구원, 전 한미연합사령부 작전참모) 18)

들어 보면 상당수 워싱턴 외교안보 엘리트들의 목표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미션(mission)’이 완수되려면, 악의 근원이 사라져야 한다. 제거해야 할 최종 대상은 북한이다. 다분히 종교적이고 근본주의적이다. 제재에는 증오가 묻어 있다.

2018년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을 두 달쯤 앞두고 훗날 국립외교원장을 지낸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양측 간 협상을 막을 핵심 장애물로 미국 측의 ‘북한 악마화’를 꼽았다. 20) 북한이라는 악을 없애는 것이 신으로부터 인류의 안녕을 수호하라는 소명을 부여받은 미국의 종교적ㆍ도덕적ㆍ역사적 책무라는 엘리트 그룹의 인식은 냉전기부터 미국의 대북 정책 기저에 놓인 기본 토대였을 것이다.

위뿐 아니다. 혐북(嫌北) 정서는 미국 사회 바닥에 착근해 있다는 것이 재미 북한 전문가인 박한식 미 조지아대 명예교수의 주장이다. 21) 북한 전문가로 유명해진 뒤 일면식 없는 사람들에게서조차 자신이 악마인 북한을 편들고 찬양하며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활동을 한다는 비난을 듣기 일쑤였고, ‘밤길을 조심하라’는 협박도 적지 않았다고 그는 증언한다.

미국인의 대북 적대감은 유난하다. 지난해 10, 11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재단’이 미국 국민 2,523명을 상대로 벌인 ‘국가 안보’ 관련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설문 대상자의 78%가 북한을 ‘적국’으로 인식한다고 대답했다. 22) ‘호불호’ 응답 대상국 12개 나라 중에는 중국과 러시아도 있었지만 북한을 적국으로 꼽은 사람의 비율이 가장 컸다고 한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력 고도화로 가시화한 북한의 미 본토 공격 가능성의 영향이 없지 않겠지만 여전히 희박하다는 점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보다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를 미국인들이 더 걱정한다는 내용의 여론 조사 결과23) 도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 가능하다.

적이 악마로 치환되는 미국적 사고 회로는 연원이 깊다. 미국은 종교적 선민(選民) 의식을 토대로 세워진 나라다. 건국 초기 미국인은 자신들이 이스라엘 유대인 다음으로 신이 선택한 민족이라 믿었다. 부패와 타락에 물든 구대륙(유럽)을 떠나 신대륙(아메리카)에 예루살렘을 건설하고 싶었다. 매사추세츠만 식민지 행정 수반을 맡게 돼 영국에서 미국 대륙으로 향하던 청교도 존 윈스럽은 1630년 3월 미국행 아르벨라호 선상 설교에서 미국이 전 세계인이 주목하는 ‘언덕 위의 도시(City upon a Hill)’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24) 신약성서 마태복음 ‘산상수훈’ 표현을 은유로 사용한 것이다. 훗날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수식어 ‘빛나는(shining)’을 덧붙여 저 도시의 특별함을 더 부각시키기도 했다.

어둠이 있어야 빛도 있다. 미국인들이 자국 밖에 끊임없이 타자를 설정하며 ‘선(善)의 대리자’인 자신들이 외부의 악을 물리치는 서사로 역사를 꾸며 온 것은 선민 의식의 영향이 분명했다. 25) 미국은 줄곧 타국들과의 관계를 도덕주의 관점에서 재정의하려는 ‘도덕화(moralising)’ 유혹에 노출됐고 실제 강박적으로 그렇게 해 왔는데, 자주 경쟁 상대방(opponents)을 악마화(demonising)함으로써 자국의 행위들을 합리화(rationalising)하는 방식이었다. ‘적의 악마화’를 빼고는 미국 외교 정책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 캐롤라인 케네디 영국 헐대 교수의 연구 결과다. 26)

아마 이런 ‘마니교식 선악 이분법(Manichaeism)’을 자국 외교 정책에 가장 적극적, 극적으로 구현한 미 지도자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일 것이다. 2001년 9ㆍ11 테러 사태 뒤 다분히 전략적으로 악을 선의 대립쌍으로 배치한 부시 전 대통령은 1930년대 ‘파시즘’을 소환해 ‘이슬람파시즘(Islamofascism)’ 같은 말을 만들고, ‘이슬람 칼리프 국가’, ‘호전적 지하디즘(Jihadismㆍ이슬람 근본주의 무장 투쟁)’ 등 종교적 수사(修辭)를 활용하는 식으로 악마화 추진 연료를 주입해 적과 ‘성전(聖戰)’을 치르는 데 필요한 대중적 동력을 확보했다. 네오콘 세력이 주도한 신(新)보수주의 정책이었다. 이란, 이라크와 함께 북한이 3대 ‘악의 축(Axis of evil)’에 포함된 것도 부시 정권 때였다.

문제는 현실의 경계 구분이 마니교도들의 인식같이 그렇게 깔끔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상주의자(관념론자)’들의 머릿속에서처럼 선악이 분명한 것도, 이를테면 기독교만, 미국만 늘 선한 것도 아니다. 대북 관계에서 합의를 어긴 것은 항상 북한이었고 자기들은 배신한 적이 없다는 생각은 미국인들의 착각에 불과하다. 1994년 제네바 합의에 명시된 북한과의 정치적 관계 개선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쪽도, 양측 간 적대 관계 종식이 약속된 2000년 북미 공동 코뮈니케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쪽도 미국이었다.27) 현실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미국 외교사(史)에서 냉전적 사고 방식이라 불릴 법한 마니교적 선악 이분법이 보수 진영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강경파 관념론자의 존재는 초당적이다. 관건은 이들이 득세하느냐 여부이고, 염려는 현실주의자들의 몫이다. 바이든 행정부 외교안보 정책팀 고위 라인에 마니교적 성향이 강하다는 지적은 이미 정권 출범 초기에 제기됐다.28) 미 언론인 로버트 라이트29) 는 2020년 말 WP 칼럼에서 “현실주의자들은 국가들을 선과 악의 블록으로 나누려는 유혹에 저항한다”며 부시 정권 네오콘과 마니교적 이분법 및 개입주의 성향을 공유하는 바이든 외교안보팀의 진보적 관념론자들은 그러나 반대로 행동할 가능성이 크고 그들이 양극화할 세계에서 기후 변화나 무기 확산 같은 글로벌 의제들을 더 해결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네오콘과 달리 자기들은 협력적 국제 거버넌스가 필요한 진보적 의제들을 다룬다고 생색을 내지만 권위주의 진영 결속으로 이어져 냉전 시대 같은 균열을 초래할 것이 뻔한 민주주의 동맹 가치 외교에 정작 매진하는 그들의 모습에는 도덕적 우월감에 빠져 결과야 어떻게 되든 관심이 없는 나르시시스트의 무책임이 역력하다는 것이 라이트가 강력히 시사하는 바다. “대화를 거부하는 쪽은 북한인데 어쩌라는 것이냐”는 바이든 외교안보팀의 수세적이고 방관자적인 태도에 대해서도 비슷한 해석이 가능하다.

선악 이분법과 더불어 라이트가 꼽은 바이든 외교안보팀의 예상 약점 중 또 한 가지는 ‘인지적 공감(cognitive empathy)’의 결여다. 30) 다른 나라들의 입장에서 한 번 세상을 바라봐 보려는 ‘역지사지’의 태도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가령 제재 고집도 그렇다. ‘정권 교체’를 겨냥한 제재가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데도 관념론자들은 그들을 해방한다는 명목으로 오히려 엉뚱하게 제재 대상국 인민을 수렁으로 몰아넣는 일을 무신경하게 망설이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질책이다.

북한이 주로 반발하는 지점도 변함없는 미국의 일방성이다. 지난해 9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종전(終戰) 선언을 제안한 지 며칠 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담화를 내어 “종전이 선언되자면 쌍방간 서로에 대한 존중이 보장되고 타방(상대방)에 대한 편견적인 시각과 지독한 적대시 정책, 불공평한 이중기준부터 먼저 철회되어야 한다”고 기존 입장을 확인했다. 31) 대미 메시지 성격의 이 담화는 요컨대, “자기들은 걸핏하면 폭격기 같은 전략 핵무기로 우리 북한을 위협하거나, 대북 제재로 숨통을 조이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시험도 당당하게 하면서 마찬가지로 생존권과 발전권을 갖고 있는 우리에게는 왜 아무것도 허용하지 않느냐”는 얘기다.

18) 6월 18일 ‘VOA Korea’가 방영한 ‘워싱턴 톡’ 대담, https://www.youtube.com/watch?v=skZAFC_n-qM&feature=youtu.be

19) 6월 4일 ‘VOA Korea’가 방영한 ‘워싱턴 톡’ 대담, https://youtu.be/hcd0W3HIW38 (검색일 2022년 7월 8일).

20) 권경성ㆍ신은별, ““북, 생존 보장되면 핵 포기 가능” “북 핵실험장 부순 건 프로그램 폐기 뜻””, 『한국일보』, 2018년 4월 24일,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804240489003468 (검색일 2022년 7월 8일).

21) 박한식ㆍ권준택ㆍ김경애. “한국전쟁 70년… 미국의 ‘북한 악마화’ 넘어서야 끝난다”, 『한겨레』, 2020년 6월 9일, https://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948637.html (검색일 2022년 7월 8일).

22) 박형주. “미국인 78%, 북한 ‘적국’ 인식… “군사력 동아시아 집중해야””,『VOA Korea』, 2021년 12월 2일, https://www.voakorea.com/a/6335502.html(검색일 2022년 7월 8일).

23) 박동정. ““미국인들, 우크라이나 사태보다 북한 미사일 더 우려””, 『VOA Korea』, 2022년 1월 25일, https://www.voakorea.com/a/6410420.html(검색일 2022년 7월 8일).

24) 차태서. “예외주의의 종언? 트럼프 시대 미국패권의 타락한 영혼”, 『국제ㆍ지역연구』, 28권 3호, 2019.

25) 김남국. “미국 신고립주의의 기원”, 『한겨레』, 2016년 7월 31일,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754585.html (검색일 2022년 7월 8일).

26) Kennedy, Caroline. “The Manichean emptation: Moralising rhetoric and the invocation of evil in US foreign policy”, International Politics, Vol. 50, 2013. 저자인 케네디 교수는 존 F 케네디 전 미 대통령의 딸인 현 주(駐)호주 미국대사와 동명이인이다.

27) Yoon, Young-kwan. 앞의 글.

28) Wright, Robert. “Biden’s foreign policy team is full of idealists who keep getting people killed”, The Washington Post, December 15, 2020,https://www.washingtonpost.com/outlook/2020/12/15/biden-foreign-policy-interventionism-war/ (검색일 2022년 7월 8일).

29) 종교와 과학을 진화심리학 관점에서 다룬 ‘신의 진화’(2009) 등 저술들로 대중에게 익숙하다.

30) Wright, Robert. 앞의 글.

31) 손덕호. “김여정 “적대시 철회 의미에서의 종전선언은 흥미 있는 제안”[전문]”, 조선비즈』, 2022년 9월 24일, https://biz.chosun.com/policy/politics/2021/09/24/B57TTVPLZVBKDI26ELRGJSN55Y/ (검색일 2022년 7월 8일).

3-2. 부당성 2: 맞지 않다

1년 반 동안 이어진 자리 공백을 메우며 7월 10일 부임한 필립 골드버그 새 주한 미국대사의 이력 중 눈에 띄는 것은 아무래도 대북 제재 관련 경험이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09~2010년 국무부의 유엔 대북 제재 이행 담당 조정관으로서 북한의 제2차 핵 실험에 대한 대응으로 채택된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제1874호의 이행을 총괄하고, 관련 국제 협력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았었다. 직접적인 한반도 문제는 다뤄 본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시각을 드러내는 임명이라는 것이 내정 사실이 알려진 1월 하순쯤의 대체적 평가였다. 북한의 핵 능력 증강에 대북 제재의 정비 및 강화로 맞서겠다는 방향성을 미국이 예고했다는 것이었다. 32) 이후 실제 발언도 비교적 강경했다. 4월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북한을 가리켜 ‘불량 정권(rogue regime)’이라고 호명하는가 하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가 미국의 ‘비확산’ 목표와 부합한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CVID는 북한이 과거부터 거부감을 보여 온 표현이다. 33)

제재가 북한에 고통을 가하고 있다는 가설은 당연히 사실일 것이다. 통계 수치로 이를 입증하려는 시도는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34) 코로나19 팬데믹을 피하지 못한 북한이 최근 “모든 가정에 식량 구할 시간을 단 하루만 주고 두 달 동안 모두 거리 통제에 들어가는 바람에 코로나19에 걸려 죽는 사람보다 굶어 죽는 사람이 더 많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도 한다. 35) 그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재를 해제해 달라고 북한이 미국과 국제사회에 집요하게 요구해 왔다는 사실도 방증이다.

협상 국면이던 2019년 봄 리용호 당시 북한 외무상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직후인 3월 1일 회담이 열린 베트남 하노이의 한 호텔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유엔 제재 결의 11건 가운데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채택된 5건, 그중 ‘민수 경제와 인민 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하라”는 것이 자기들의 바람이라며 전면 해제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고 호소한 장면은 상징적이다. 북한의 4차 핵 실험이 이뤄졌던 2016년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가 실효적 단계에 진입한 해로 평가된다.36)

북측이 말한 대로 지금까지 유엔 안보리가 채택해 온 대북 제재 결의안은 2006년 7월 1695호부터 2017년 12월 2397호까지 모두 11건이다. 1695호에는 강제적 내용이 포함되지 않아 북한의 첫 핵 실험에 대응한 2006년 10월 1718호부터 10건이 실질적인 제재 결의로 간주돼 왔다. 북한의 핵ㆍ미사일 시험이 몰렸던 2016, 2017년 두 해에만 결의가 6건에 이르렀는데, 북측이 5건을 꼽은 것은 기존 결의에 따라 북한 기관 및 개인을 단순히 제재 리스트에 포함한 정도에 불과한 2017년 6월 2356호 한 건을 제외했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됐다.37)

32) 유신모. “신임 주한미국대사에 필립 골드버그 내정”, 『경향신문』, 2022년 1월 26일, https://www.khan.co.kr/politics/defense-diplomacy/article/202201261911001 (검색일 7월 10일).

33) 오수진. “골드버그 신임 주한 미국대사 오늘 부임… 1년 6개월 공백 해소”, 『연합뉴스』, 2022년 7월 10일, https://www.yna.co.kr/view/AKR20220709034800504?input=1195m(검색일 2022년 7월 10일).

34) 김병연. “김정은을 가둔 새장이 열렸다”, 『중앙일보』, 2022년 3월 30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59438 (검색일 7월 8일). 서울대 국가미래전략 원장인 필자는 2022년 말이면 북한 경제 규모가 2017년에 비해 30%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하고, 최악의 식량난이던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에 버금가는 충격이라고 설명한다.

35) 조한범. “北 ‘7차 핵실험’ 임박…미국 대북 독자제재 가동”, 『YTN』, 2022년 5월 28일,https://www.ytn.co.kr/_ln/0101_202205281038078378 (검색일 2022년 7월 8일).

36) 나호선ㆍ차창훈. “제재이론과 대북제재 효과에 대한 비판적 검토: 피제재국 대응을 중심으로”, 『동북아연구』, 35권 1호, 2020.

37) 김정원. “북한이 미국에 해제 요구한 ‘민생 제재 5건’은”, 『한국일보』, 2019년 3월 1일,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3011712087953 (검색일 2022년 7월 8일).

그간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는 핵 비확산 규범에 위배되는 핵 실험이나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시험을 북한이 감행했을 때 이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채택돼 왔다. 핵ㆍ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와 직접 연관성이 인정되는 무역, 금융 거래만 대상이 됐던 2016년 이전 제재까지는 북한에 그렇게 큰 타격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 전문가 사이에서 공통적인 평가다. 분기점은 2016년이다. 4차 핵 실험(2016년 1월)을 계기로 부과된 2270호부터 북한 경제 전체의 숨통을 조이는 포괄적 제재로 성격이 바뀌었다. 북한의 핵 무장이 가시화한 만큼 핵 개발에 전용(轉用)될 수 있는 품목이 북한으로 유입되는 것을 완전히 차단하겠다는 취지였지만 북한 주민의 삶에 미치는 악영향이 없을 수 없었다

제재의 초점은 외화 및 유류가 북한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데 맞춰져 있다. 2017년 8월 2371호까지는 주력이 수출 통제였다. 석탄, 철광석 등 북한산 광물과 수산물의 수출이 전면 금지됐다. 6차 핵 실험의 결과물인 2375호(2017년 9월)는 북한 돈줄을 끊으려 섬유 제품 수출까지 봉쇄했고, 정유 제품, 원유 등 유류의 대북 유입 제한에도 착수했다. 같은 해 말 채택된 2397호는 차량, 전자기기 부품 등 생산재를 회원국이 북한으로 수출하지 못하게 막아 북한이 돈이 있어도 그것들을 못 사도록 수입선을 틀어막았다. 이런 일련의 대북 제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강력한 제재”(임수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라는 설명이다.38)

북한 경제가 입은 타격은 상당했다. 제재로 수출이 막힌 상황에서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국경 봉쇄로 수입까지 끊기며 2020년 기준 수입과 수출 규모가 각각 1990년의 31.8%, 5.1% 수준까지 쪼그라들었다. 39) 물론 북한은 내핍에 이골이 난 나라다. 2019년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뒤 배수진을 치고 ‘자력갱생’을 강조하고 있지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1990년대 동유럽이나 구 소련의 몰락은 예측된 일이 아니다. 북한 정권이 건재한 것처럼 보인다고 겉모습을 완전히 신뢰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이 나오는 이유다. 40) 충격이 누적돼야 비로소 제재의 효과가 나타나는 법이라고 제재론자들은 믿는다. 내핍이 결국 내란으로 이어진 역사적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41) ‘전략적 인내’도 어느 정도는 그런 낙관에 기댄 대북 정책이었다.

하지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게 당연할 정도로 제재가 무결한 외교 정책 도구는 물론 아니다. 제재 전문가인 다니엘 드레즈너 미 터프츠대 교수는 워싱턴의 제재 활용 빈도가 남용이라 해도 될 만큼 갈수록 높아지는 것은 제재가 효과적이어서가 아니라 현재 미국의 군사력과 외교적 영향력이 도전받지 않는 초강대국이던 시절만 못해서라고 꼬집는다.42) 화살이 몇 개 남지 않은 화살통에서 미 대통령이 가장 쉽게 꺼낼 수 있는 화살이 제재일 뿐이라는 것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대북 제재는 미국 입장에서 쓰기가 더 용이한데, 북한의 경우 이미 국제 무역 구조에서 고립돼 버린 터라 러시아 제재 때처럼 서방 동맹ㆍ우방이 도리어 피해를 입는 ‘제재의 역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43)

문제는 지금껏 적용 과정에서 드러난 제재의 한계와 부작용이 너무 명확하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제재는 무역ㆍ금융ㆍ투자 제한 및 자산 압류, 원조 중단 등 경제적 강압 수단을 활용해 대상국의 정책 변경을 유도하는 전략적 행위로, 징벌적 성격도 갖고 있다. 44) 기존 연구 결과들을 종합하면 제재 성공의 관건은 피제재국을 도울 나라(흑기사)가 있느냐와, 제재로 인해 경제적으로 곤경에 놓일 대중의 불만이 정권을 압박할 수 있는 정치 체제가 피제재국에 갖춰져 있느냐, 이 두 가지가 핵심이지만, 둘 다 충족되기 힘든 조건이다. 무역ㆍ투자 규제를 무력화할 흑기사 노릇을 미국의 경쟁 강대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하는 사례가 많았고, 여론보다 정권의 판단에 정책 결정이 더 크게 좌우되는 권위주의 국가가 제재 대상국이 되는 경우가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권 교체는커녕 정책 변경조차 이끌어 내지 못하고 제재국이 역풍만 맞는 일이 허다했는데, 제재의 고통이 무고한 인민들에게 전가돼 인도주의적 위기를 부른다거나 제재국에 대한 반감이 강한 저항으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게다가 현실적으로 어떻게든 벌을 피하려 작심한 범죄자를 막아낼 수 있는, 기술적으로 완벽한 방패는 존재하기 어렵다. 제재 회피는 필연적이다. 벌을 주는 쪽이 더 힘들고 품이 많이 든다는 것도 제재의 역설 중 하나다.

북한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단 2016년을 기점으로 제재가 본격화하기 전까지는 중국을 통한 북한의 제재 우회가 가능했다. 45) 이 시기 중국은 겉으로는 대북 제재 결의 채택을 찬성해 ‘책임 대국’의 이미지를 국제사회에 심고 싶어한다는 인상을 주면서도 뒤에서는 제재 이행을 방해해 북한의 체제 붕괴를 막고, 경제적 대중(對中) 의존도를 심화시키는 식으로 자국 이익을 챙겼다. 북한을 돕는 척하며 북한산 지하 광물을 헐값에 조달하는 등 독점 무역 이익을 누리기도 했다.

중국이 미국 편을 들기 시작한 2016년 이후에는 강화된 제재에 북한 경제 사정이 가파르게 기울었다. 하지만 제재의 고통은 엘리트층을 괴롭히기보다 주민들에게 전가되는 경향이 강했다. 포괄적 수입 금지 탓에 영농에 필요한 농자재 및 농기계 확보가 곤란해지면서 식량 생산에 차질이 빚어졌고, 46) 금융 제재는 금융망을 통해 송금되는 인도주의적 대북 지원액을 대폭 줄였다. 북한 사회의 인권 증진을 위해 가한 대북 제재가 북한의 열악한 인권 사정을 더 악화시키는 아이러니가 야기된 것이다.47)

더욱이 대북 제재는 북한 정권의 권력 기반을 침식시키는 대신 핵 개발 정당화의 명분으로 활용됐고, 오히려 정권의 공고화와 북한의 핵 능력 강화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역설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48)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북한에 일방적으로 취하고 있는 적대적 태도 탓에 자기들의 경제적 후생이 희생되고 있다고 북한 주민들이 여길 경우 제재가 강해질수록 북한 내부가 정권을 중심으로 더 결집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식의 사후 분석이 가능한 대목이다.49)

아직 양적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해도 2016, 2017년 잇단 핵 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 뒤 북한이 사실상 핵 보유에 성공했다는 데에 북 안팎의 평가가 다르지 않은 만큼, 목적이 북핵 개발 억지였던 근 30년간의 대북 협상과 제재는 실패로 귀결된 셈이 됐다. 북한을 압박하기에 제재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일각의 불만이 여전하지만 제재의 근본적 한계를 도외시한 결과론일 수 있다. 정책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면 제재가 아무리 고통스러웠더라도 그 제재는 실패한 것이다. 효능(potency)과 효과(effectiveness)가 혼동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50)

미래는 더 어둡다. 지속적으로 가해진 초강력 제재가 북한을 고립시키며 더 이상 관여할 수단이 남지 않게 되는 결과가 빚어졌다. 51) 제재가 제재의 효용을 고갈시켜 버린 셈이다. 세력 구도상 계속 북한 편에 설 가능성이 큰 중국과 러시아만 서방이 바라봐야 하는, 역시 역설적인 상황이 됐다. 그러나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 제재 레짐이 태생적으로 불완전한 데다, 이런 결함이 앞으로는 더 두드러질 조짐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동맹 외교에 자극을 받은 중러가 탈미(脫美) 다극(多極) 국제 질서 구축에 갈수록 적극 박차를 가하면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6월 30일 자국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국제법률포럼의 영상 인사말에서 “현재 국제 관계는 다극 체제로 만들어져 가고 있으며, 이는 되돌릴 수 없는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등을 겨냥해 “그들이 규범에 기초한 질서라 부르는 외피 아래에서 세계적인 절차들을 임의대로 통제하고 지시하려 한다”고 핀잔하기도 했다. 52)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같은 달 22일 자국 베이징에서 열린 브릭스(BRICS) 53) 국가 비즈니스포럼 개막 기조연설을 통해 “세계 경제를 정치화ㆍ도구화ㆍ무기화하고 국제 금융ㆍ화폐 시스템의 주도적 지위를 이용하는 자의적 제재는 자해적일 뿐 아니라 세계인에게 재앙을 초래한다”고 일갈54) 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미국도 ‘강 대 강’이다. 북한의 7차 핵 실험 준비 정황이 감지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염불(북한 비핵화)’보다 ‘잿밥(중러 비난)’에 관심이 많다. 정작 명분인 정책 변화 유도보다 범죄자 낙인과 자유주의 국제 질서 교란 세력의 처벌을 통한 서방 진영 내부 대중영합에 제재를 활용하려는 기색이다. 55) 박원곤 교수는 “북한이 7차 핵 실험을 하면 미국은 설사 통과가 안되더라도 다시 강력하게 대북 제재를 부과하려 할 것”이라며 “북중러의 불법성을 강조하는 측면에서라도 관련된 작업의 수위를 지속적으로 높여 갈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56)

38) 한반도평화포럼 4월 월례토론회,https://www.youtube.com/watch?v=Jwjc7nBefZI&feature=youtu.be (검색일 2022년 7월 8일).

39) 9 최지영. “경제지표를 통해 본 북한 경제위기 진단”, 국가안보전략연구원ㆍ북한연구학회 학술회의 발표 자료, 2022년 4월 27일.

40) GW(The George Washington University)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and Seoul National University’s Institute for Peace and Unification. “Delving into Kim Jong-un’s ten years: economy and politics”(North Korea Economic Forum), February 9, 2022, https://www.youtube.com/watch?v=4VbbyyjNOtI&feature=youtu.be (검색일 2022년 7월 8일).

41) 1 김병연. 앞의 글. “아랍의 봄의 시발점이 되었던 튀니지에서도 시위의 도화선은 경제 문제였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근인도 소련 해체 후 핵을 폐기했기 때문이 아니라 경제 실패와 부패 때움이었다. 김정은 핵에 집착할수록 경제가 어려워져 오히려 그의 권력 유지에 해가 된다.”

42) Drezner, Daniel W. “The United States of Sanctions: The Use and Abuse of Economic Coercion”, Foreign Affairs, September/October 2021, https://www.foreignaffairs.com/articles/united-states/2021-08-24/united%02states-sanctions(검색일 2022년 7월 10일).

43) 한반도평화포럼 4월 월례토론회에서 임수호 책임연구위원.

44) 나호선ㆍ차창훈. 앞의 글. 해당 논문의 내용을 토대로 다시 개념을 정리했다.

45) 나호선ㆍ차창훈. 앞의 글.

46) 남성욱. “식량난에 대한 북한의 이중적 태도”, 『北韓』, 통권 571호, 2019. 나호선ㆍ차창훈 앞의 글에서 재인용.

47) 나호선ㆍ차창훈. 앞의 글.

48) 나호선ㆍ차창훈. 앞의 글.

49) 박영석ㆍ강문수ㆍ연원호ㆍ김범환ㆍ한하린. “대북제재의 게임이론적 접근과 북한경제에 미치는 영향”, 『KIEP(대외정책연구원) 정책연구 브리핑』, 2022년 5월 30일.

50) Drezner, Daniel W. 앞의 글.

51) 한반도평화포럼 4월 월례토론회에서 최지영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52) 길윤형. “푸틴, 미국 ‘일극체제’ 깨뜨리는 “다극체제화는 불가역적 과정”, 『한겨레』, 2022년 6월 30일,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1049240.html(검색일 2022년 7월 8일).

53) 브라질과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 경제 5개국.

54) 정의길. “중ㆍ러, ‘브릭스’ 발판 미 중심 질서 균열내기… 회원국 확대 추진”,『한겨레』, 2022년 6월 24일,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1048318.html (검색일 2022년 7월 8일).

55) 미국 외교안보 엘리트 그룹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악의적 활동을 지원한다는 기록을 계속 남기기 위해서라도 제재를 추진해야 한다”(데이비드 맥스웰 미 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연구원)는 주장이 나온다. https://youtu.be/hcd0W3HIW38 (검색일 2022년 7월 8일).

56) 노민호. “‘무용론’에도 대북제재 강화 추진하는 미국… 실효성과 한국의 과제는”,『뉴스1』, 2022년 6월 1일,https://www.news1.kr/articles/?4699211 (검색일 2022년 7월 8일).

4. 오만의 역사

현대 미국의 사상적 기반은 단 하나다. ‘실용주의(프래그머티즘)’다. 이 철학에서는 유용성이 진리와 선의 판단 기준이다. 확실한 것은 없다. 일종의 상대주의이자 회의론인 실용주의는 관용의 동의어다. 2002년 퓰리처상 수상작 ‘메타피지컬 클럽(Metaphysical Club)’의 저자 루이스 메넌드 미 하버드대 교수(영문학)에 따르면, 실용주의는 “사람들의 신념이 쉽게 폭력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고안된 것”으로, “확신은 인간을 폭력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 1870년대 실용주의 창시자들의 모토였다.57)

미국인들에게 실용주의는 태도다. 실용적 태도는 결과에 집중하는 것이다. 유연성과 효율성 등이 실용주의 계열의 가치다. 추상보다 구체, 관념보다 현실과 가깝다. 상업 광고로 예를 들면, 주로 연상 작용을 유도하고 이성 대신 정념에 소구하는 이미지 광고가 주류인 한국과 대조적으로, 미국의 경우 광고 메시지가 상품이나 서비스의 기능 위주에, 논리로 설득하는 편이다. 소셜 미디어의 경향도 그렇다. 트위터의 건재가 근거 사례가 될 수 있다. 인상이지만 가령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 달리 트위터는 미국에서 여전히 정보 유통 매체에 가깝다. 정파적 주장들이 대세인 한국 트위터 세계와 다르다.

태생을 고려할 때 유연성을 해치는 경직된 신념은 실용주의와 어울리지 않는다. 전략적 선택지의 범위를 제한해 목표한 결과의 달성을 방해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워싱턴 외교안보 엘리트들이 보여 온 근본주의적 태도는 전통적으로 미국이 지향해 온 다원주의적 가치와 모순적이고, 둘의 결합은 기묘한 측면이 있다. 냉전기를 거치며 미국 외교는 줄곧 배타적인 세계관에 기반해 독선적이고 경직된 방식으로 입장을 관철해 왔다.

대결보다 타협을 우선시한 미국 연방의 실용주의적 지적 토대는 외교 정책에서 어쩌다 실종된 것일까. 놀라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실용주의의 어원은 행동ㆍ실행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프라그마(pragma)’다. 그만큼 행동과 실천을 중시하는 철학이다.58) 조바심이 들면 의심과 논쟁이 거추장스러울 수 있다. 선악관처럼 체계화해 믿어 버리면 훨씬 효율적이다. 팩트 파악보다 짐작이 빠르다. 민주주의 정치와 자본주의 경제가 종교적이고 추상적인 신념과 추정의 세계에서 생산적이고 화사할 수 있다는 것을 미국은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오리엔테이션(방향 설정)’이 잘못됐을 때 탄탄하고 강한 ‘로지스틱스(전술적 수행)’는 오히려 해로울 수 있다. 엉뚱한 방향으로 더 빨리 질주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미국의 대북 정책이 대표적 사례인지 모른다.

부시 정부나 오바마 정부가 협상을 포기한 결과는 북의 핵 능력 증강이다. 59) 북한은 ‘인류의 적’이었고, 때문에 협상이나 승부를 할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예외였고, 제거해야 할 대상에 불과했다. 이런 ‘불량 국가’ 개념과 담론이 등장한 배경에는 자유주의를 국제사회의 규범으로 자리잡게 만드는 과정에 개입된 미국의 폭력적 가치 강요가 있었다. 민병원 이화여대 교수가 잘 정리했다.60) 요컨대 이렇다.

20세기 들어 전쟁이 동등한 지위의 ‘정당한 적’과의 결투에서 ‘인류의 적’을 상대해야 하는 국제공동체의 거창한 사업으로 인식됐고, 이런 적 개념의 변화로 인해 적과 범죄의 구분이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목표도 승부가 아니라 제거로 바뀌었다. 공유된 이념으로서의 자유주의와 ‘권력 정치’라는 현실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있었는데 질서와 규범을 구축하고 관리한 주체들이 사실상 강대국들이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들어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 요구가 강화되면서 17세기 베스트팔렌 합의, 즉 주권 평등과 내정 불간섭의 원칙이 점차 약화됐다.

부시 행정부 이후 전개된 미국의 일방주의적 외교 정책은 반다원주의적 자유주의를 지향했고, 불량 국가 담론은 이런 방향성에 저항하는 국가들을 견제하기 위해 개발된 논리였다. 보기에 따라서는 위선도 되는 셈이다. 이렇게 자국의 이익을 키우려 임의로 재단한 세계관에 포섭될 수 있는 나라는 한정적이다. 냉전기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이 ‘악의 제국’으로 불렀던 구 소련의 후신인 러시아는 미국 등 서방의 제재를 곱게 보지 않는다. 자국 전략 산업인 에너지 첨단 산업에 서방 기술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조치에 특히 불만이다. 미국이 러시아의 국가 경쟁력을 해치려는 의도를 갖고 있고 제재는 이를 가리기 위한 핑계일 뿐이라는 판단에서다.61)

언제 테러를 저지를지 모르는 비이성적 행위자인 불량 국가들의 위협은 소련이라는 거대한 적이 사라진 단극 체제에서도 변함없이 진행돼 온 미국의 군비 증강을 합리화해 준 중요한 근거였다. 62) 특히 2015년 이란과의 핵 합의로 러시아를 겨냥한 유럽의 ‘미사일 방어(MD)’ 체계를 이란 위협을 근거로 합리화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북핵 위협이 갖는 레토릭으로서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그러던 터에 터진 3차 북핵 위기 63)는 미국이 잠재적이지만 가장 핵심적인 위협으로 규정하고 있던 러시아 및 중국을 직접 자극하지 않으며 힘의 우위를 확대 유지해 나갈 수 있도록 명분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효용이 있었다. 64) 반면 그 효용이 초래할 위험은 낮게 평가됐는데, 강력한 대북 제재와 악화한 북중 관계가 핵 무장 완성 전에 북한을 붕괴시킬 것이라고 미국이 낙관했기 때문이다.65) 그렇게 북핵은 방치됐다.

미국 예외주의’는 미국이 인류사에서 특별한 역할을 가진 비범한 국가로서 단순히 타국들과 다를 뿐만 아니라 더 우월하다는 믿음을 뜻한다. 66) 자신의 체제 전반을 인류가 따라야 할 범세계적 표준으로 인식하고 이를 미래 지구 질서 건설에 반영하려는 예외주의의 욕망이 20세기 이후 자유 세계 체제를 만들어 온 ‘패권국’ 미국의 이념적 동력이었다.67)

미국으로 하여금 이분법적 세계관과 전략상 오판으로 북핵 위기를 자초하게 만든 것은 워싱턴 외교안보 엘리트들의 독선과 관성이고, 그 둘을 관통하는 열쇠어가 저 오만한 자국 예외주의, 절대적인 자기애다.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이에 대한 애착은 시대착오적이다. 미국인들은 예전 같지 않다. 자신감을 잃어 가고 있다. 2019년 미국인 대상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약 60%가 2050년쯤 세계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위치가 지금만 못할 것으로, 73%가 소득 양극화가 심해질 것으로 각각 전망했다. 68) 예외주의에 대한 회의감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가 특수주의적, 현실주의적 노선을 표방한 트럼프의 당선이었다.

미국인들의 인식은 실제 국제 현실과 부합한다. 비자유주의 국가들이 부상하면서 세계는 다극화하고 있다. “세계의 중심이 다원화된 상황에서 미국은 자신이 여러 국가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충고69)는 적절하다. 하지만 워싱턴 외교안보 엘리트들의 생각은 다른 듯하다. 그들은 여전히 신의 가호를 받은 미국이 흥망성쇠의 예외라 맹신하고 있고 백악관 관료는 늘 회전문을 통해 들어가는 그들 차지다. 70)

대북 정책의 적극성 면에서 결과적으로 판이했고 북핵 능력의 고도화를 저지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바이든 행정부의 비판ㆍ극복 대상이 되기는 했지만, 71) 미국을 상대화하려는 반(反)예외주의 편에 섰다는 점에서 오바마와 트럼프는 예외적으로 덜 오만한 미국 대통령이었고, 그만큼 접근 자세 면에서는 전향적으로 북한과 관여할 준비가 돼 있었던 미국 지도자였다고 할 수 있다. 오바마는 2009년 주요 20개 국(G20)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예외주의는 미국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가 72), 트럼프는 2017년 기자회견에서 푸틴을 살인자라 부른 기자에게 “살인자는 미국에도 많다”며 “미국은 순결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했다가73) 공통적으로 ‘비애국적 태도’ 논란을 빚었다.

바이든의 소극적 대북 접근 방식을 오바마에 빗대는 논평이 많지만, 관여에 실패한 것을 오바마의 의지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미국 예외주의를 옹호하는 워싱턴 외교안보 엘리트 그룹이 오바마의 차별적 외교 독트린을 잠식했다거나, 74) 대화 국면의 개폐를 북한이 주도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75)

세계를 민주 세계와 비민주 세계로 나누는 이분법적 세계관이나 전형적인 워싱턴 주류 백인 정치 엘리트 76)라는 출신 면에서 오히려 바이든이 같은 당 오바마보다 직전 전임자 둘을 건너뛰고 자신과 비슷하게 반대편에 모질었던 부시와 더 유사한 대북 정책을 구사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퇴행이 아닐 수 없다.

57) 루이스 메넌드(Louis Menand) 저, 정주연 역. 『메타피지컬 클럽』(민음사), 2006.

58) 양성희. “실용주의”, 『중앙일보』, 2007년 12월 21일,https://www.joongang.co.kr/article/2987443#home (검색일 2022년 7월 8일).

59) 이혜정. 앞의 글.

60) 민병원.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위기와 롤즈의 정치적 자유주의: 불량국가 담론과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한국정치연구』, 제29집 제3호, 2020.

61) 한반도평화포럼 4월 월례토론회에서 박정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신북방경제실장.

62) 안경모. “2018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구조적 분석: ‘제재의 정치’와 북한의 미래”, 『한국과 국제정치』, 제37권 제4호, 2021.

63) 2012년 김정은 정권의 출범 및 2013년 핵무력ㆍ경제 건설 병진노선의 등장 이후 전개된 북핵 위기 국면을 가리킨다. 안경모, 앞의 글.

64) 안경모. 앞의 글.

65) 안경모. 앞의 글.

66) 차태서. 앞의 글.

67) 차태서. 앞의 글. 물론 민주주의나 자유, 인권, 다양성 등 보편적 가치를 미국이 앞장서 확산하게 만드는 예외주의의 긍정적 측면에 주목할 수도 있다.

68) Parker, Kim, Morin, Rich, and Horowitz, Juliana M. “Looking to the Future, Public Sees an America in Decline on Many Fronts”, Pew Research Center, March 21, 2019,https://www.pewresearch.org/social-trends/2019/03/21/public-sees%02an-america-in-decline-on-many-fronts/(검색일 2022년 7월 8일).

69) 슬라보예 지젝. “바이든은 민주주의를 갱신하지 못한다”, 『한겨레』, 2020년 11월 15일,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970006.html(검색일 2022년 7월 8일).

70) 이수진ㆍ이신화. “Post-American World에서 미국 예외주의 다양성: 오바마 독트린 실패의 교훈과 바이든 행정부의 도전”, 『미국학논집』, 제52권 제3호, 2020.

71) 바이든 행정부는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에 대해 “아무것도 안 해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none of none)”고,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압박과 최대 관여’를 두고서는 “무모한 일괄타결을 노렸다(all for all)”고 각각 평가하며 중간 포지션(something in the middle) 전략을 쓰겠다고 천명했다.

72) 차태서. 앞의 글.

73) 지젝, 앞의 글(2021).

74) 이수진ㆍ이신화. 앞의 글.

75) 유신모. “전략적 인내의 부활이 두려운가”, 『경향신문』, 2020년 8월 14일,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008140300045(검색일 2022년 7월 8일).

76) 지젝은 오바마가 상원의원이던 시절 바이든이 그를 지지한답시고 한 말(“오바마는 의견 전달이 명료하고 명석하고 깨끗하고 잘생긴 최초의 주류사회 흑인”)을 인용하며 바이든의 인종주의를 지적하기도 한다. 앞의 글(2021).

5. 알리바이를 넘어서

김정은 정권이 핵을 포기하게끔 근본적으로 바꾸는 건 북 내부, 특히 엘리트층의 변화인데, 제재는 그것을 촉진시키기 위한 수단이라는 게 미 강압론자들의 믿음이다. 제재 완화의 효용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변화를 담보할 수 없는 상태에서 북한을 협상장으로 끌어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결국 미국이 만들어야 하는 것은 북한 내부 변화를 일으키는 데 필요한 조건이다. 반면 완화론자들은 상대적으로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다. 미국의 대북 정책이 지금보다 창의적이고 유연해야, 즉 더 전략적이어야 북한을 움직일 수 있다고 이들은 조언한다. 제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지금처럼 강압 일변도로 제재를 사용하면 미국에 맞서 북한 편에 서고 있는 중러의 협조를 기대하기가 어려운 만큼 지금은 관여를 위해 필요하면 제재를 풀어 줄 수도 있다고 말해 볼 타이밍이라는 것이다.

일단 제재의 우선 목적은 피제재국이 거래 과정으로 진입하게끔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77) 경제적 손실 자체가 아니라 제재 대상국을 협상 테이블에 나오게 할 수 있느냐 여부가 제재 성공의 관건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협상장으로 북한을 이끌어 내는 것이 대북 제재의 1차적 목표였다면 2016, 2017년 합의된 제재는 그 목표를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78)

그러나 막상 협상에 들어갔을 경우에는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보상이 없다면 제재 대상국이 협상을 계속할 유인, 즉 인센티브(incentive)도 없다는 것이다. 79) 효과적인 인센티브 중 하나로는 제재 완화의 약속이 꼽힌다. 제재 압력의 부분적 완화를 동반하는 보상이 거래 과정을 촉진하고 다른 양보의 기대를 증가시켜 줄 수 있기 때문이다. 80)

2019년 10월 실무 회담이 결렬된 뒤 북미 간 핵 협상이 장기 교착 상태인 만큼 미국 입장에서 압박을 유지하는 전략은 아직 유효한 것이 사실이고, 이미 부과된 제재가 강력한 데다 사실상 국제 무역 및 금융망에서 배제되다시피 한 북한에 더 이상 추가할 마땅한 제재도 없는 만큼 기존 제재를 빈틈없이 이행하는 일부터 제대로 하자는 의견이 미 외교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대체적이다. 81) 미국 정부의 의지 부족 및 단속 소홀을 틈탄 북한과 중국의 제재 회피ㆍ우회가 여전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시간은 방어하는 쪽을 편들지 않는다. 미국과 중러가 맞서는 신냉전 구도가 북한 입장에서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사실상 핵 보유가 묵인되고 경제적 돌파구도 얻는 북한으로서는 베스트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82) 게다가 올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를 계기로 러시아와 미국 등 강대국들이 앞다퉈 핵 사용 문턱을 낮추고 있다. 이제는 핵이 쓸 수 없는 무기가 아닌 것처럼 분위기가 바뀌는 형국이다.83) 그리고 유혹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은 북한도 예외가 아니다.84)

그래서 시급한 것이 ‘동결’이다. 북한의 양적ㆍ질적 핵ㆍ미사일 역량이 현재 수준에서 더 커지지 않도록 핵 실험 및 미사일 시험 발사와 핵분열 물질 생산 등을 중단시키는 것이다. ‘미래 핵(기술 고도화)’과 ‘현재 핵(생산)’ 포기 단계를 먼저 거쳐야 ‘과거 핵(보유하고 있는 완성품 형태의 핵 물질ㆍ미사일)’ 폐기 단계에 진입할 수 있을 전망이다. 합의 없는 협상 교착 기간 동안에는 북한의 핵ㆍ미사일 역량 증강을 구속할 수 있는 수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핵 능력이 강화될수록 핵 무장국으로서 북한의 위상도 점차 굳어지게 된다. 이를 감안해 하루바삐 협상이 용이한 핵 동결부터 추진하되, 동결과 교환할 반대급부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나온다.85)

사실 동결은 미국이 선호하는 출발점이다. 86) 현 국무장관인 토니 블링컨이 2018년 싱가포르 합의를 앞두고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제안한 핵 협상 방안의 초점도 동결에 맞춰져 있었다.87) 문제는 한국과 다를지도 모르는 미국의 속내다. 한국이 포기하지 못하는 협상 목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다. 반면 미국은 현실과 타협할 가능성이 있다. 사실상 핵 보유국 문턱을 넘어선 북한을 상대로 무리하게 비핵화를 고집하다 상황을 악화시킬 바에야,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ICBM 개발을 막는 선에서 현상 유지를 하며 비핵화는 형해화한 장기 목표로 미뤄 버리는 것이 미국 국익을 위해서는 더 나은 선택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그렇다 해도 현재로서는 다른 뾰족한 대책이 없다. 일단 마중물을 부어야 한다. 잠정적인 부분 타협이 불가피하다. 협상은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 당시 시도됐던 부분적 제재 해제와 부분적 비핵화를 교환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88) 오핸런 선임연구원은 7월 2일 ‘VOA’ 대담에서 “이라크 사담 후세인이나 리비아 무아마르 카다피의 죽음을 목격한 북한이 모든 핵폭탄을 한꺼번에 포기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먼저 생산 능력을 없애고 실험을 중단하면 그 보상으로 부분 제재 해제가 주어질 것이라고 그들을 확신시킬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89)

현재 북한 정권이 코로나19 위기를 대내 명분으로 삼아 미국에 핵 협상을 재개하자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만큼 호응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것이 일부 전문가의 충고다. 고유환 통일연구원 원장은 6월 20일 통일연구원ㆍ조지워싱턴대 공동 웨비나에서 “북한이 준비된 핵 실험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협상을 재개해 (제재와 코로나19 등 탓에) 지금 처한 곤경을 타개하기 위한 돌파구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며 “한미가 주목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90)

77) 이상숙.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의 효과성 측정: 비핵화 협상과 관계를 중심으로”,『정책연구시리즈(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2018년 12월.

78) 이상숙. 앞의 글.

79) Drezner, Daniel W. 앞의 글.

80) Cortright, David, and Lopez, George A. Smart Sanctions(Boston: Roman & Littlefield Publishers), 2002. 이상숙 앞의 글에서 재인용.

81) 6월 18일 ‘VOA Korea’가 방영한 ‘워싱턴 톡’ 대담.

82) 한반도평화포럼 4월 월례토론회에서 임수호 책임연구위원.

83) 이태규. “푸틴의 ‘핵사용’ 위협… 따라하는 북한, 일본ㆍ대만 핵무장 도미노”.『한국일보』, 2022년 5월 4일,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50415410000801(검색일 2022년 7월 11일).

84)“러시아의 전술 핵 위협을 북한이 따라 할 수 있고, 북한 핵 실험 허용이 향후 중러 핵 억지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 마커스 갈로스카스 미 애틀랜틱 카운슬 선임연구원의 우려다. https://youtu.be/6RHjryqqTzc(검색일 2022년 7월 8일).

85) 전봉근. “2022년 북핵 동향 평가와 북핵협상 재개 전략: 북핵 동결을 위한 ‘잠정합의’ 추진 방안”, 『IFANS(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주요국제문제분석』, 2022년 1월 28일.

86) 차두현.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 제언: 대핵(對核) 능력 발전과 적극적 북한 변화 유도”, 『이슈 브리프(아산정책연구원)』, 2022년 6월 30일.

87) Blinken, Antony J. “The best model for a nuclear deal with North Korea? Iran”, The New York Times, June 11, 2018, https://www.nytimes.com/2018/06/11/opinion/trump-north-korea-iran-nuclear-deal.html(검색일 2022년 7월 8일).

88) 6월 15일 열린 ‘6ㆍ15 남북공동선언 22주년 기념 토론회’에서 이정철 교수,https://youtu.be/Sqr5yEA0mow (검색일 2022년 7월 8일).

89) https://youtu.be/6RHjryqqTzc (검색일 2022년 7월 8일).

90) https://youtu.be/AwW-W_ErxD8 (검색일 2022년 7월 8일).

6. 설령 북한이 의지가 없어도

“자기가 문제를 풀기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고 유권자들에게 말할 수 있다. 설령 그 무언가가 작동하지 않고 있더라도 말이다.”

드레즈너 터프츠대 교수는 정치인들이 제재를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비꼰 것이다. 정황을 종합하면 바이든 행정부에는 북핵 문제를 해소할 의지가 강하지 않은 것 같다. 제재는 그저 북핵 방치 혐의를 피하기 위한 알리바이에 불과할 수 있다. 그게 아니라, 정말 제재만을 지렛대로 비핵화를 견인할 수 있다고 미국 정부가 믿는다면? 무능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북미 간 대화 국면이 열렸지만 협상이 순조롭지는 않던 2019년 새해 인터뷰 때 백학순 당시 세종연구소장은 미국의 비핵화 회의론에 이렇게 반박했다. “소련 붕괴 직후인 1992년 이미 북한은 핵 포기를 전제로 한 구상을 마련했다. ‘21세기 생존과 발전’ 전략’이 그것이었다.” 91)

이후 북한은 핵 무기 개발 착수에 앞서, 대미 관계를 개선해 안보 불안을 해소하고 싶다는 뜻을 몇 번이나 미국에 전했지만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이제 조금은 입장이 바뀌었다. 미국이 당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알리바이만으로 버티기에 북핵 위협은 실질적이다. 자국 이익뿐 아니라 동맹의 생존도 챙기겠다는 공약이 허언이 아니기를 미국에 바란다.

비핵화를 위해 북한의 포기 의향보다 중요한 것은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한미의 의지다. 회의론자들은 마음도 없이 북한이 핵 협상에 나온다며 아예 회유를 선택지에서 지워 버리려 하는데, 상대방이 마음을 고쳐 먹게 하는 것도 외교가 할 일이다. 대북 관여에 적극 나서야 할 때다.

91) 권경성. “[2019 한반도 정세, 싱크탱크에 듣는다] “1월 김정은 답방ㆍ2월 북미회담 성사돼야 비핵화 협상 돌파구”,『한국일보』,2019년 1월 1일, https://www8.hankookilbo.com/News/Read/201812281400743187 (검색일 2022년 7월 8일).

참고문헌

권경성. “[2019 한반도 정세, 싱크탱크에 듣는다] “1월 김정은 답방ㆍ2월 북미회담 성사돼야 비핵화 협상 돌파구”, 『한국일보』, 2019년 1월 1일,https://www8.hankookilbo.com/News/Read/201812281400743187 (검색일 2022년 7월 8일).

권경성ㆍ신은별, ““북, 생존 보장되면 핵 포기 가능” “북 핵실험장 부순 건 프로그램 폐기 뜻””, 『한국일보』, 2018년 4월 24일,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804240489003468 (검색일 2022년 7월 8일).

길윤형. “푸틴, 미국 ‘일극체제’ 깨뜨리는 “다극체제화는 불가역적 과정”, 『한겨레』, 2022년 6월 30일,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1049240.html (검색일 2022년 7월 8일).

김남국. “미국 신고립주의의 기원”, 『한겨레』, 2016년 7월 31일,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754585.html (검색일 2022년 7월 8일).

김병연. “김정은을 가둔 새장이 열렸다”, 『중앙일보』, 2022년 3월 30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59438 (검색일 7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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