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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양극화 시대, 언론의 신뢰회복 방안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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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양극화 시대, 언론의 신뢰회복 방안 연구 한겨레 이정애 연수기관: USC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현지시각 1월20일)한 지도 어느덧 1년 가까이 됐다.
미국의 이번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논란 속에서 치러졌다. 전대미문의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 사태와 경찰에 의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망(살해)이 촉발한 인종차별 반대 시위는 대선의 각종 정책 이슈를 삼켜버리다시피 했다.
‘문제적 인간’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찬반 투표라도 되는 듯,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도 극단적으로 갈라진 진영 간 대결 구도로 치러졌다. 코로나19 상황으로 비중이 커진 우편투표를 놓고 조작 논란까지 더해져, 결과를 두고도 쉽사리 최종 승복이 이뤄지지 않은 선거였다.

지난 8월 초, 미국 캘리포니아주 북부 크레센트 시티의 한 도로에 트럼프를 지지하는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그 아래로, ‘미국을 구원하라. 민주당원(조 바이든 대통령을 의미?)을 탄핵하라’라는 빌보드가 붙어있다. 대선이 끝난 지 9개월이 지났지만, 미국은 아직도 극단적으로 갈렸던 대선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진 이정애 한겨레 기자

지난 8월 초, 미국 캘리포니아주 북부 크레센트 시티의 한 도로에 트럼프를 지지하는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그 아래로, ‘미국을 구원하라. 민주당원(조 바이든 대통령을 의미?)을 탄핵하라’라는 빌보드가 붙어있다. 대선이 끝난 지 9개월이 지났지만, 미국은 아직도 극단적으로 갈렸던 대선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사진 이정애 한겨레 기자

이번 대선은 미 언론들에게도 큰 도전이었다. 대선 직전 미국 언론의 신뢰도는 이미 전 세계 최하위 수준이었다.1) 이미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의 승리라는 결과 예측 보도에 참패하며 미 언론들은 조롱거리로 내몰린 상태였다.

강력한 팬덤을 등에 업은 현직 대통령(트럼프)은 이번 대선 기간 내내 뉴욕타임스와 시엔엔(CNN) 방송 등 자신에 대한 비판적 보도를 하는 주류 미디어를 ‘가짜뉴스’ ‘기득권’으로 낙인찍어 비난했다. ‘대안’을 외치는 크고 작은 온라인 매체들은 ‘걸러지지 않은 진실’이라는 명분을 내걸어 미디어 불신을 부추기며, 진영 논리에 치우친 검증되지 않은 ‘가짜뉴스’를 쏟아내며 ‘게이트 키퍼’ ‘감시견’이라는 전통 미디어의 위치를 크게 위협했다.
가짜뉴스는 이미 2016년 대선 때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에서 전통 언론사들의 뉴스를 압도하며 선거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2) 가짜뉴스가 ‘민주주의의 적’이란 아우성이 나올 정도로 극성을 부린 이번 대선은 전통 미디어들에게 큰 위기인 동시에, 떨어진 미디어의 신뢰를 끌어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1) 영국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 가’ ‘ 내놓은 디지털 뉴스리포트 2019’ ‘에서 미국에서는 뉴스 전반에 대해 불신 응답이’ 43%, (45%) 로 프랑스에 이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 Study: On Twitter, false news travels faster than true stories, 2018년 3월.
https://news.mit.edu/2018/study-twitter-false-news-travels-faster-true-stories-0308

‘가짜뉴스’를 걸러내라

이번 대선에서 미국 언론들은 독자(시청자, 청취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그야말로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선포하다시피 했다. 주요 매체들은 대선 초기부터 각 후보 진영의 주요 주장과 공약 사항 등이 사실에 부합하는지 확인하는 ‘팩트체크’에 공을 들였다.
정보를 제공한 후 판정을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는 데 그치지 않고, 기자가 취재에 근거해 사실을 확인하고 판정이라는 결론을 제시하는 데까지 나간 것이다. 언론의 팩트체크 시도가 이번 대선에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지만, 때를 가리지 않고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트위터에 쏟아내는 대통령 후보 덕분에 그 노력은 더 가속될 수밖에 없었다.

2007년 9월19일, ‘팩트체커’라는 이름으로 팩트체크에 선도적으로 나섰던 워싱턴 포스트는 이번에도 이른바 ‘피노키오 지수’를 도입해 사실 판정에 나섰다.3) 시엔엔 방송과 뉴욕 타임스도 각각 ’팩트 퍼스트4) ‘ ’트래킹 바이럴 미스인포메이션5) ‘ 등의 이름을 내걸고 팩트 체킹에 나서는 등 미국 언론 대부분이 상시적 팩트체킹에 나섰다.

이번 대선에선 누구도 전에 겪어본 적 없는 코로나19가 모든 대선 이슈를 압도하면서, 언론들의 사실 검증도 이에 집중됐다. 효과적 코로나19 대응 방법을 두고 후보들이 상반된 주장을 쏟아내면서, 언론들의 팩트 검증도 폭증한 것이다.

마스크 착용에 따른 코로나19 확산 차단 효과 검증과 말라리아 치료제인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의 코로나19 치료(예방) 효과에 대한 진위 여부 체크 등이 대표적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코로나19를 치료할)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을 것‘(3월19일), ’하이드록시클로로퀸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일부 좋은 결과가 있는 것 같다.‘(4월3일)는 등의 트럼프 발언이 나온 뒤 팩트 체킹을 한 뒤 ’완전한 거짓‘(피노키오 넷)이란 판정을 내렸다.6)

트럼프가 ’일선 의사와 간호사들도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복용하고 있다‘며 치료 효과를 거듭 주장하자, 시엔엔 방송 등도 이에 대한 팩트 체킹에 나섰다. 방송은 5월20일, 트럼프의 주장과 검증 결과, 결과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며 ’현재 미국에서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일선 의료진의 코로나19 감염을 성공적으로 막을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몇 가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밝히면서도 식품의약국(FDA)이 이를 예방 및 치료제로 승인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장박동 이상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으니 처방 없이 복용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는 점을 지적했다.7)

트럼프 및 우파 진영에서 우편투표를 통한 부정 선거 가능성을 제기한 데 대해서도 언론의 사실 여부 검증이 집중됐다. 트럼프가 “부재자 투표는 괜찮다”면서도 “우편투표는 이미 대재앙으로 판명 났다” “외국이 선거에 개입할 수 있는 손쉬운 방식”이라고 문제를 삼자 진위 여부를 따지고 나선 것이다. 시엔엔 방송은 선거 전문가들을 취재해 “우편투표든, 부재자 투표든 뭐라고 부르든 두 제도는 근본적으로 같다”며8) “미국에서 치러지는 부재자 투표와 우편투표는 모두 안전하다”고 지적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2016~2018년 총선거에서 우편 투표한 1460만표 중, 중복 투표하거나 사망한 사람이 대신 투표한 사례는 0.0025%(372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분석해 트럼프의 주장에 대해 ’완전한 거짓‘을 뜻하는 ’피노키오 넷‘ 판정을 내리기도 했다.9)

3) 팩트체크 결과를 피노키오 아이콘의 수로 표시한 것으로, ‘대체로 사실’ ‘사실 반-거짓 반’ ‘대체로 거짓’ ‘완전한 거짓’을 각각 1~4개의 피노키오 모양의 아이콘으로 표시했다. 이외에도 ‘제페토 체크마크’는‘사실’을, 뒤집힌 피노키오 모양의 아이콘은 ‘이전의 입장과 상반된 진술’을 의미한다. 또한 ‘판단 보류’인 주장에 대해선 ‘저울’ 모양의 아이콘을 달아준다. 완전한 거짓을 뜻하는‘피노키오 넷’ 이상을 받은 주장이 20회 이상 반복될 경우, 피노키오가 끝없이 쏟아지는 형태의 ‘무한 피노키오’ 아이콘을 2018년부터 달기 시작했다.
4) https://edition.cnn.com/specials/politics/fact-check-politics
5) https://www.nytimes.com/live/2020/2020-election-misinformation-distortions
6) https://edition.cnn.com/2020/05/20/politics/workers-taking-hydroxychloroquine-fact-check/index.html)
7) https://edition.cnn.com/factsfirst/politics/factcheck_baa3e161-1a47-4a11-b0eb-71dbeb2ac0de
8) https://edition.cnn.com/factsfirst/politics/category/mail-in_voting
9) https://www.washingtonpost.com/politics/2020/09/11/trumps-fusillade-falsehoods-mail-voting/

‘팩트’가 마음을 바꾸는 건 아니다

대선 기간 동안, 미국 언론들의 팩트 체킹 강화 등의 노력이 언론 신뢰의 회복이란 결과로 이어졌을까. 결과부터 얘기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영국 로이터저널리즘 연구소가 최근 내놓은 ’디지털 뉴스리포트 2021‘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뉴스 전반에 대해 신뢰한다’는 응답이 29%에 불과했다. 조사 대상 46개국(평균 44%) 가운데 가장 낮은 수치다.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이보다 15%포인트나 높아 44%에 달했다.
눈에 띄는 건 ‘뉴스 전반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응답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크게 갈렸다는 점이다. 이 조사에서, 스스로를 ‘우파’라고 밝힌 이들의 75%는 언론 보도가 불공정하다고 응답해, 스스로를 ‘좌파’(34%)라고 밝힌 이들보다 2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아래 그래픽 참조)

비영리 재단인 나이트재단이 지난해 12월 펴낸 보고서에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언론 매체가 대선 결과를 책임있게 보도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비교적 그렇다’라는 답변 포함)고 답변한 민주당 지지자들의 비율은 93%였지만, 공화당 지지자의 경우 그 비율이 21%에 불과했다. 공화당 지지자들은 이번 대선에서 ‘민주적 투표 절차가 잘 작동했다고 여기냐’는 질문에도 오직 11%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무려 92%의 민주당 지지자가 그렇다고 답변한 것과 상반된다.10) 정치적 견해에 따라,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판단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다. 이는 정확한 ‘팩트’를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사람의 생각을, 마음을 바꿀 수 없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여기엔, 독자(시청자)가 정치적 견해에 따라 선호·신뢰하는 언론이 크게 갈린다는 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많은 미국인들이 주로 시엔엔 방송과 폭스뉴스 등을 통해 정치 관련 뉴스를 접하는데, 민주당 지지 성향의 시청자들은 대개 시엔엔 방송(67%)을, 공화당 지지자들은 폭스뉴스(65%)를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공화당 지지자들의 경우, 다른 매체에 비해 폭스뉴스 의존도(60%)가 높았다. 이들이 시엔엔 방송을 통해 정치 및 선거 뉴스를 접한 비율은 24%에 불과했다.11)

독자(시청자)의 정치적 견해에 따라 선호·신뢰하는 매체가 이처럼 크게 갈리는 상황에서, 비선호·비신뢰 매체의 보도에 대해 ‘OOO 보도는 일단 거른다’거나 ‘OO 보도는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선입견이 작용한다면, 아무리 공들인들 팩트 체크는 무용지물일 뿐이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도 공들인 팩트 체크가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한 듯하다. 1월 6일 미 의회 난입 사태는 이를 입증한다. 트럼프 탄핵안 상정에 반대하는 극우주의자들은 대선 직후부터 ‘우편투표 등 선거 부정으로 트럼프가 대선 승리를 뺏겼다’는 음모론적 가짜뉴스를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공유하며 ‘행동’에 나섰다. 대선이 끝난 지 1년도 더 지났지만, 바이든을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여론은 여전하다. 트럼프는 이런 여론을 등에 업고 여전히 ‘지난 대선은 사기였다’며 집회와 모금 활동을 열고 2024년 재출마를 벼르고 있다. 그는 반복적으로 가짜뉴스를 올리다 트위터 계정이 영구 폐쇄되자, 자체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을 출시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아울러 페이스북, 넷플릭스, 시엔엔 등에 맞먹는 ‘트럼프 미디어 앤 테크놀로지 그룹‘도 출범시키겠다고 밝혔다.

10) In Election 2020, how did the media, electoral process fare? Republicans, Democrats disagree, Knights Foundation, 2020년 12월
11) U.S. Media Polarization and the 2020 Election: A Nation Divided. 퓨리서치센터, 2020년 1월24일.
https://www.pewresearch.org/journalism/2020/01/24/u-s-media-polarization-and-the-2020-election-a-nation-divided/

‘참여’와 ‘대화’가 변화를 만든다

전통 미디어들을 비판하며 ‘대안’ 미디어를 외치는 트럼프를 보고 있노라면,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새 매체들이 쌍방향적인 시민참여를 확대해 민주적 소통의 활성화 도구가 될 것이라는 기존의 기대들이 무색해진다. 자신의 견해에 부합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취하게 만들어 도리어 더 큰 불통과 사회 분열을 초래한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구의 한 계층이 객관적 저널리즘에서 멀어지고 정파적 견해에 부합하는 매체만 선호·신뢰하며 극단적으로 여론이 갈리는 상황이 지속되는 것은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에 저해 요소가 될 뿐이다. 건전한 공론장을 만들어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언론의 역할 중 하나다. 팩트 체크조차 제대로 수용되지 않는 이런 상황에서 언론은 더 무엇을 해야 하나.

영국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의 ‘디지털 뉴스리포트 2021’가 올해 처음으로 조사한 언론의 중립성과 관련한 조사는 이에 대한 해답을 찾을 실마리를 준다. 이 조사를 보면, ‘언론이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는 인식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언론사는 다양한 견해를 반영해야 하며, 결정은 사람들이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74%에 달했다. 온라인과 사회관계망서비스가 성장 속에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해 과거보다 노골적으로 정파적 입장을 취하는 언론이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는 듯 보이지만, 침묵하는 다수는 여전히 언론의 중립성과 객관성을 지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전통적으로 언론 매체들이 객관과 중립을 표방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신뢰도가 바닥까지 떨어진 것은, 사람들이 지금의 언론을 그만큼 중립적이지 않다고 여기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016년 미국 대선 때부터 나타난 ‘트럼프 현상’이 보여주듯, 적잖은 시민들이 지금의 언론매체 종사자 다수가 상대적으로 부유하고, 진보 성향의 엘리트라 ‘우리처럼 평범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얘기는 잘 전달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지니고 있다. 이런 오해(?)를 불식하고 객관적, 중립적이라는 인식을 되찾아야 한다.
언론의 중립성을 묻는 이 조사에서 66%는 ‘언론이 모든 이슈에 대해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를 위해 다른 견해를 모두 들을 수 있도록 ‘동등한 시간을 배분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72%에 달했다. 하지만 그저 찬반이 엇갈린다는 이유만으로 근거가 턱없이 부족하거나 매우 근본적인 전제(예를 들어 ‘인간은 평등하다’)마저 부정하는 주장에 대해 같은 시간을 배분할 수는 없는 일이다. 비단 지면·방송시간의 제한이라는 물리적 한계 때문만은 아니다. 이러한 기계적 중립이 기후변화와 같은 이슈에 적용될 때, 강력한 과학적 증거에 의해 뒷받침된 하나의 관점이 근거 없는 허무맹랑한 관점과 동등 수준에서 비교돼 사람들의 마음에 잘못된 인상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절대적 객관·중립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손을 놓을 수는 없다. 적어도 소비자들에게 ‘객관적, 중립적이려고 노력한다’는 인상이라도 줘야 한다.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독자는 언론이 전달해주는 정보와 기사를 그저 받아들이는 수동적 객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위에 언급했다시피 ’팩트‘만으로는 결코 사람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 아무리 좋은 떡이라도 먹기 싫으면 그만이다. 팩트를 받아들이고 싶게끔, 일단 들어는 보고 싶게끔 만드는 게 우선돼야 한다.
하버드 대학교 버크만센터의 요하이 벤클러 교수는 이와 관련해 언론의 객관성을 ‘투명성’과 ‘책임성’으로 새롭게 해석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인식의 양극화라는 하나의 결과가 정당한 뉴스 출처에 대한 신뢰를 깨뜨리는 것이라면, 독자들을 보도 과정에 참여시켜 검증 과증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나를 믿어라(Trust)” 하지 말고, “내게 보여달라(Show me)”는 독자들을 취재 과정에 참여시켜, 왜 자신들의 보도를 믿어야 하는지, 어떻게 취재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들은 최근 ‘사용자의 참여’를 미래 전략의 핵심으로 놓고 있다. 여기서 참여란 ‘뉴스 조직이 수용자를 적극 고려하고 소통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뉴욕타임스는 사내 ‘독자 경험부서’를 창설하고 편집국 부서간 활발한 의사소통과 다양한 협업, 취재 보도과정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이 부서는 다양한 독자들의 요구 사항을 상품과 디자인, 기사에 녹여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주류 미디어들 외에도 다양한 스타트업 매체들도 이런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스타트업 매체 ‘히어켄’의 제니퍼 브랜들은 공영 라디오 청취자들이 뉴스룸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고, 그들이 원하는 이슈들을 제안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개발했다. 2016년 미 대선 당시 언론들이 많은 이들의 외면을 받게 된 계기 중 하나가 바로 많은 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이슈들이 주류 언론에서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는 평가에 따른 것이다.

덴마크의 지역공영방송 ‘티브이2/퓐’이 독자의 질문을 반영한 보도를 하고 있다.

덴마크의 지역공영방송 ‘티브이2/퓐’이 독자의 질문을 반영한 보도를 하고 있다.유튜브 화면 갈무리

덴마크의 지역공영방송 ‘티브이2/퓐’(TV2/Fyn)은 실제로 코로나19로 인한 봉쇄 기간 동안 이런 플랫폼을 활용해 가시적 성과물을 내놨다. 기사 및 뉴스 사이트에 삽입된 질문지를 통해 시청자들로부터 질문을 받아 취재할 아이템을 선별하고 시청자를 직접 참여시켜 기사를 생산하는 것이다. 한 예로 ‘코로나19 집단면역이 형성될 때까지 그냥 기다리면 안 되냐’고 묻는 독자를 직접 보도에 등장시킨 뒤, 전문가 등의 인터뷰 등을 통해 그의 질문에 ‘위험성이 높다’는 결론을 주는 보도를 하기도 했다. ‘독자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취지로 이 방송은 3주 동안 시청자들로부터 약 400개 가까운 질문을 받아, 50개 이상의 독자 참여 보도를 만들어냈다. 시청자 참여로 만들어진 기사의 체류 시간은 같은 기간에 생산된 다른 기사들에 비해 평균 32%, 기존의 일반 기사에 대한 체류 시간보다는 무려 109%나 길었다.12)
남캘리포니아의 공영 라디오 방송국인 ‘케이피시시’(KPCC)의 기자들도 이미 지역사회 주민들을 초청해 기자들이 다뤘으면 하는 질문들을 공유하는 실험을 2년 넘게 진행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 직후인 2017년 1월 출범한 비영리 스타트업 ‘스페이스십 미디어’는 아예 ‘차이(분열)를 메우는 저널리즘’을 표방하고 나섰다. 소규모 그룹으로 각종 현안에 대해 다른 생각을 지닌 이들의 실제 대화를 조성해, 이를 저널리즘으로 보강하는 ‘대화 저널리즘’을 펼치고 있다. 엘리트주의적 관점에서 언론이 취재한 정보들을 시민들에게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고 시민이 정보와 관련된 토론에 참여하고 이를 토대로 직접 행동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적극적인 취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앨러배마 미디어 그룹과 손잡고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 후보에게 투표했던 앨라배마 지역의 여성들과 클린턴 후보에게 표를 던졌던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 여성들의 토론장을 만들어, 이들이 트럼프 또는 클린턴을 지지했던 이유를 분석 보도한 게 대표적이다. 이 대화에 참여한 이들은 나와 생각이 달랐던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그간 인식하고 있던 사실 가운데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도 하고,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고 얘기했다. 독자의 참여를 유도해, 사실 인식의 양극화를 줄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언론들이라고 그간 독자(시청자)와의 간극을 좁히고, 사회와 정치 관련 보도에 참여시켜 공론장을 활성화하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시민편집인’이나 ‘신문주주 독자 모임’ ‘열린편집위원회’, ‘독자편집위원회’ 등을 통해 독자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다만, 이런 노력들은 이미 만들어진 생산물(기사)에 대한 독자의 ‘피드백’을 받는 선에 그치는 한계가 있었다. 콜센터나 이메일, 댓글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것만으로, 독자들이 내 의견이 신문에 반영된다는 효능감을 가질 리 만무하다. 넉 달 여 앞으로 다가온 대선으로 한국 언론들은 또다시 신뢰도 테스트를 받게 됐다. ‘따옴표 저널리즘’ ‘경마 저널리즘’에서 벗어나 취재 아이템 선정과 보도 방식 등에 보다 적극적으로 독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실험에 나서야 한다.

12) https://wearehearken.com/2020/03/30/case-tv2-fy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