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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언론 지형과 브렉시트 – 영국 언론의 이념 지형이 여론 형성에 미친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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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언론 지형과 브렉시트 – 영국 언론의 이념 지형이 여론 형성에 미친 영향” MBC 차장 권희진 연수기관: 런던대 SOAS
1. 서론

역사에 기록될 세기의 파국을 국민이 선택했다고 평가 되는 영국의 EU 탈퇴 찬반 투표가 가결된 지 4년 후, 결국 지난 1월31일을 기해 영국이 EU를 떠났다. 영국민의 EU 탈퇴 결정 이후 시작된 영국의 정치, 경제적 혼란. 그리고 EU 탈퇴 마무리 과정에서의 극심한 혼란은 영국이 앞으로 겪게 될 많은 어려움 가운데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어떻게 영국 국민들은 국가 전체를 혼돈과 쇠퇴의 방향으로 몰아가게 될 자기파괴적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일까? 통합을 거부하고 혼돈을 선택한 결정의 배경에는 영국 사회의 내부 갈등과 정치권의 무능, 그리고 개별적 이익에 따라 갈등을 부추겼던 정파적 미디어의 영향 등 복합적 요인들이 있었다. 이 같은 요인들은 영국 사회에서 어떻게 발생해, 국가적 위기를 자초한 결정으로까지 자라났던 것일까? 향후 영국의 정치, 경제적 쇠퇴와 경우에 따라 연합 왕국의 분열까지 초래할 가능성이 높은 이 같은 상황으로 한 국가의 운명을 이끌어 간 미디어와 여론의 형성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한국 사회에서도 유의미한 선험적 참고 사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 브렉시트, 파국을 선택한 이유
1) 파국의 서막

영국 슈퍼마켓의 신선 식품들은 대개 유럽 대륙에서 도버 해협을 건너 들어온다. 특히 영국과는 일조량이 비교가 안 되는 스페인산 딸기와 복숭아 같은 과일은 물론이고 시금치 같은 EU 국가들의 신선식품이 매일 좁은 바다를 건너와 시중에 풀리는 것이다. 흐리고 비 오는 날이 많은 영국에서 신선한 야채며 과일을 값싸게 먹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사정이 좀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더 이상 단일 시장이 아니므로 품목별 무역 협상을 다시 해야 되고 통관 절차도 달라져서 신선식품들이 통관을 기다리다가 썩어버리고 도버 해협에서 런던으로 향하는 도로가 트럭으로 뒤덮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는 브렉시트 후폭풍의 일부일 뿐이다. 대책 없는 상태에서 브렉시트가 강행되면 영국인들은 2차 대전 이후와 비슷한 경제적 고통을 받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전쟁직후와 같은 생필품 부족에 시달릴 것이라는 것이다. 물자뿐 아니라 노동력의 감소와 갑작스런 이동 제한에서 오는 여러 문제들, EU 잔류를 주장하는 스코틀랜드의 독립 문제, 북아일랜드 문제 등 영국은 전대 미문의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상황을 초래하게 될 영국이 EU를 떠나겠다는 결정은 2016년 6월 23일 국민투표를 통해 내려졌다. 투표율 72.3%, 이 가운데 찬성이 51.9%, 반대가 48.1%였다. 국민투표 캠페인이 벌어지는 동안 찬반양론이 맞섰지만 브렉시트로 인한 막대한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영국 시민들이 EU 탈퇴라는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투표 결과는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그리고 예상됐던 우려는 빠르게 현실화됐다. 당장 파운드화가 폭락했고, 금융회사들이 영국을 떠나 유럽 대륙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영국 경제는 급속하게 악화됐다. 정치적 후 폭풍은 말할 것도 없었다. 브렉시트에 반대하던 세계적인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투표 결과가 나온 뒤 검은색 망사 스타킹에 치마 차림으로 탱크를 몰고 당시 캐머런 총리의 집으로 쳐들어갔다. 브렉시트에 반대했지만 총선 승리를 위해 정치적 도박을 감행했던 캐머런 총리는 국민투표 결과를 확인한 뒤 사의를 표명했고, 이후 영국의 정치 상황은 혼란을 거듭했다. 나가겠다고 해놓고 EU와는 지지부진하게 협상을 끌며 추태를 보인 것도 영국의 이미지를 상당히 구겼다.

한 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고, 민주주의의 제도적 기틀이 태동했던 나라 영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유럽의 값싼 노동력에 일자리를 잠식당한 노동 계층의 불만 등 여러 변수가 있지만 결정적으로는 이 같은 문제를 확대 재생산해서 분노를 극대화하며 국가 여론을 둘로 나누고 결국은 브렉시트 여론을 결집, 확산시킨 것을 바로 영국의 언론이었다.

2) 브렉시트와 한국 사회

사회적 격차와 이로 인한 갈등, 경기 침체, 이민자 문제, 그리고 갈등과 증오의 정치를 오히려 부추긴 미디어(특히 황색 저널리즘과 SNS와 같은 개인 미디어)의 영향력 확대. 이러한 사회적 상황과 요인들이 브렉시트라는 초유의 국민적 결정을 내리게 된 배경으로 거론된다. 영국이 경험하고 있는 이 같은 현상의 근본 원인들은 다양하기도 할뿐더러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근본적인 구조에서 기인한 문제들이기도 하다.

세계화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확대된 불평등의 문제, 그리고 기술발전의 결과와 경제성장 둔화의 결과로 나타난 실업 등 구조적 문제가 그것이다. 그러나 세계화와 기술의 발전 같은 역사적 흐름은 거스를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문제들은 내재되고 쌓여간다. 문제를 해결할 여론이나 정치는 무력하다. 이런 가운데 피해를 입는 계층의 불만은 커져간다. 사회적 갈등은 커지고 극단적인 목소리들이 힘을 얻는다. 그리고 선정적인 언론들의 보도, 혹은 가짜 뉴스들이 개인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면서 뒤틀어진 여론이 형성된다. 브렉시트와 같은 결정을 가능하게 한 여론 형성의 배경에는 가짜 뉴스의 확산이 있다는 지적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내재되고 쌓여왔던 사회적 불만들이 임계점을 넘어섰고, 결국 브렉시트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을 국민투표로 내려버리는 방식으로 분출됐다. 영국 사회가 지금 겪고 있는 이런 일들은 비단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 대륙에서도 이민자 문제와 실업문제가 맞물리면서 극우 정치세력이 성장하고 정치적, 사회적 혼란도 커지고 있다. 프랑스에서도 영국과 유사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고, 사회민주주의가 뿌리내린 북유럽 국가들에서 극우정당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산업구조로 인한 구조적 실업이 고착화되는 흐름에 대한 반발이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선행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통합’이라는 측면에서의 세계화를 반대한다. 이 같은 현상은 국가별, 지역별로 시차를 두고 나타난다.

3) 브렉시트 전개 과정의 함의

영국에서 벌어졌던 사건이 한국 사회에 중요한 함의를 갖는 이유는 영국이라는 한 국가 내의 분열과 갈등의 결과가, 통합을 향해 나아가던 유럽의 통합 노력에 결정적인 제동을 걸었다는 점 때문이다. 주지하듯 유럽의 통합이라는 담대한 시도는 2차례의 세계 대전의 전쟁터가 되면서 폐허로 변했던 유럽 대륙에 평화를 정착시키려는 목적에서 시작됐다.

2차 대전 당시 군수물자의 핵심 자원, 즉 석탄과 철강이라는 전쟁자원을 독일과 프랑스가 공동 관리한다면 전쟁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근본이었다. 경제적 협력을 확대해 상호 의존도를 높이면 전쟁을 방지할 수 있다는 개념이었다. 1946년, 영국의 윈스턴 처칠이 선창했던 ‘유럽 합중국’(United States of Europe)이라는 구호는, 유럽 통합의 모태인 석탄철강공동체(CSCE) 설립으로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유럽은 노동과 기술 등의 이동이 자유로운 공동시장을 거쳐, 공동화폐와 공동경제정책을 사용하는 경제통합 단계로까지 발전했고, 이를 토대로 정치적 통합까지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영국의 EU 탈퇴라는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가 등장한 것이다.

이 같은 유럽통합의 과정, 특히 낮은 단계부터 시작하는 경제통합의 과정은, 남북한이 상호 경제적 의존도를 서서히 높여가면서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된다. 2018년 7월 13일, 문재인 대통령은 ‘싱가포르 렉처’에서 “한국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를 기반으로 새로운 경제지도를 그리게 될 것이고, 남북은 경제공동체를 향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북핵 문제가 일단락되고 대북제재가 해제되면 유럽 식의 남북경제공동체를 통한 남북한의 경제적 통합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독일 식 흡수 통일 방식을 한반도에 적용하는 것이 상당한 비용과 충격을 유발할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실현 불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남북한 경제통합은 남북한의 실질적 통일을 위한 거의 유일한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남북한의 경제협력, 나아가 경제통합으로 가는 길에는 많은 장애요인이 있을 것이다. 특히 국제정치적 요소, 즉 동북아의 국제 질서라는 대외 변수 외에도 경제적 양극화, 지역적, 계층적 갈등, 정치적 조정 능력 부재 등의 내부 갈등이 그런 장애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분열과 대립을 조장하거나 방관하는 미디어의 태도 등은 한국 사회가 지금도 겪고 있는 문제들이고, 향후 경제통합이 진전될수록 이런 문제들은 더욱 두드러질 가능성이 높다.

3. 영국의 여론 지형
1) 영국 주요 언론의 이념적 스펙트럼

영국 언론의 스펙트럼에 대해서는 영향력 있는 주요 매체들의 상당 수가 대체로 보수적인 성향에 경도돼 있다는 분석이 정설이다. 신문과 같은 활자 매체만 따져보면 보수적 성향의 신문들이 압도적이라는 뜻이다. 이 같은 미디어 지형은 보수세력이 추진했던 브렉시트 캠페인에서 명확하게 드러났다.

YouGov라는 영국의 여론조사 기관은 영국의 미디어들이 대개 보수적 정치세력, 우파적 성향에 명백하게 경도돼 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1 데일리 메일, 텔레그래프, 그리고 더 선 같은 보수 성향의 매체들은 가디언과 같은 진보 성향 매체들을 압도하는 발행 부수와 여론에 대한 압도적 양향력을 갖고 있다. 가디언의 경우 하루 최저 13만8천 정도의 발행 부수를 기록하고 있지만, 더 선 같은 경우는 100만부를 넘는 압도적 발행부수를 기록하고 있다. 어느 방향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보도태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인정받는 공영방송 BBC의 경우에도 보수당의 목소리가 가장 많은 시간 전파를 탔다는 분석도 있다. 메이저 신문 가운데 하나인 타임즈지의 경우(우파의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 소유)도 원래는 중도 우파 정도의 스펙트럼을 갖고 있었지만 지난 두 번의 선거에서 보수당을 지지했다.

가디언 등 진보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칼럼니스트이자 노동당 활동가인 오웬 존스는 영국의 신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고자 하는 극소수의 극우 미디어 재벌들에 의해 경영된다”고 말했는데 이 말은 영국의 미디어 지형을 상당히 압축적으로 설명한다고 할 수 있다.

1 https://yougov.co.uk/topics/politics/articles-reports/2017/03/07/how-left-or-right-wing-are-uks-newspapers

좀 더 구체적으로 8개의 주요 신문을 분석하면, 가디언과 미러가 가장 좌측에 있고, 그 바로 우측에 인디펜던트지가 있다. (이제는 인디펜던트지의 종이 신문은 가판에서 사라졌다) 인디펜던트지는 중간을 기준으로 살짝 좌측으로 분류된다. 여기에서부터 우측으로 더 타임스가 있고, 텔레그래프, 더 선, 데일리 익스프레스 그리고 가장 우측에 데일리 메일이 있다. 우측으로 갈수록 대개 발행 부수는 크게 늘어난다. 보수적 매체의 수와 양적인 발행 부수 모두, 진보 매체를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매체별 성향에 대해서는 진보와 보수를 자처하는 계층 모두 크게 이견이 없다.

이처럼 활자매체만 놓고 보면, 우편향 매체들이 적어도 활자 미디어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이 쏟아내는 기사들은 SNS 등을 통해 퍼져나갔다. 활자매체 시장의 점유율이 온라인 여론의 점유율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다.

이 같은 미디어 지형은 브렉시트와 같이 정치적 사안으로 국론이 양극단으로 갈라지는 상황에서는 상당한 위력을 노골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여론의 물량적 토대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미디어 시장 자체의 불균형이 특정 사안에서 특정 정치세력의 지지로 이어지며 브렉시트를 둘러싼 국민 투표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미디어의 이 같은 명백한 당파적 경향은 영국의 코로나 사태 대응과정에서도 다시 한 번 확인된다. 영국은 보리스 존슨 총리를 비롯한 지도층의 대응 실패로 유럽에서도 최악 수준의 감염자 수와 사망자 수를 기록했다. 게다가 총리의 최 측근이자 보수당 편에서 브렉시트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여론 조작의 귀재라고 불리는 도미닉 커밍스가 의심증상을 보이는 가운데에서도 봉쇄 조치를 어기고 400Km 떨어진 자신의 집에 다녀오는 등 코로나 대응의 최종 책임자들이 잇따라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영국의 코로나 상황은 세계 최악 수준이다.

그런데 눈에 띄는 대목은 정치적 지향에 따라 보수당 존슨 정부의 대응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린다는 대목이다. 우파적 성향을 보이는 친 보수당 성향의 응답자 82%가 정부의 대응이 실효적이었다고 평가한 반면, 반대로 좌파적 성향의 응답자들은 14%만이 정부의 대응이 잘됐다고 평가했다.2 이미 정치적 성향에 따라 판단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정파적 언론 지형이 자신들의 입장에 따른 기사를 쏟아내고 이것이 여론을 형성하는데 실제로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구조인 것이다.

2 https://news.trust.org/item/20200604083213-unbew

2) 영국 언론의 이념적 좌표와 소유구조

영국의 미디어 소유구조를 이야기할 때는 흔히 5명의 억만장자가 영국 미디어의 80%를 가지고 있다고 표현된다. 뉴스 인터내셔날의 루퍼트 머독, 익스프레스의 소유주였던 리처드 데스몬드, 메일의 소유주인 비스카운트 로더무어 그리고 텔레그래프의 소유주인 바클리 형제 등 5명이 그들이다. 영국 주류 미디어의 소유가 이들 소수의 몇몇 억만장자에게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신문 시장의 70% 이상을 이들 몇몇이 장악하고 있는 것이고, 심지어 지역 신문들조차 독립적이거나 지역에 기반한 소유구조를 갖지 못하고 몇몇 신문 그룹에 의해 소유된 구조이다. 상당한 독과점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신문의 미디어로서의 영향력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화되고 있다고는 해도 어쨌든, 유통되는 뉴스의 생산지인 신문 산업을 몇몇 부자들이 주무르고 있다는 것이다.3

영국의 신문 산업도 2015년 이래 디지털 쪽은 성장을 했다고 해도 발행 부수는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 News UK와 DMG Media, 이렇게 두 개의 그룹이 발행부수의 60%를 차지하면서 이들의 지배력은 공고해지고 있다. News UK는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의 소유이고, DMG Media(Daily Mail and General Trust)는 비스카운드 로더무어의 소유이다. 데일리 메일은 가장 극우적이면서도 영향력이 큰 매체로 알려져 있다. 이들을 포함한 상위 5개 신문이 시장의 80%를 차지하는 여론의 독과점 구조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4 이 같은 미디어 지형 하에서 브렉시트를 둘러싼 찬반 캠페인이 전개됐고, 그 결과는 예상을 뒤엎고 이들 주류 매체들의 생각과 일치하는 브렉시트 가결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3 https://www.mediareform.org.uk/media-ownership/who-owns-the-uk-media
4 https://www.mediareform.org.uk/wp-content/uploads/2019/03/FINALonline2.pdf

4. 브렉시트 과정에서의 영국 여론의 움직임
1) 영국사회의 분열 상황은 어떻게 이용됐나?

브렉시트에 대한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의 결과는 영국사회가 지역, 소득, 교육수준 등에 따라 얼마나 분열돼 있는지를 보여줬다. 탈퇴 51.9%, 잔류 48.1%의 투표 결과는 사회 내부의 격차와 갈등이라는 영국 사회의 문제를 드러냈다.

표1. 연령층에 따른 투표성향

나이가 많을수록,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그리고 비 숙련노동자에 가까울수록 영국의 EU 탈퇴를 지지지하는 경향이 높게 나타난 것이다.

표2. 교육 수준에 따른 투표 성향

이처럼 브렉시트에 찬성하는 성향의 사람들은 대체로 영국 중부에 많이 포진돼 있었다. EU 내의 자유로운 노동력 이동으로 피해를 입게 됐던 저 숙련 노동계층이 많은 지역들이다.

표3. 지역별 투표 성향

2004년과 2007년 EU의 확대정책으로 동유럽 12개 국이 회원국으로 추가되면서 동유럽 국가로부터의 영국 이민은 크게 늘어났다. 그리고 이 같은 동유럽 저임금 이민자의 증가는 투표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5 EU 단일시장으로 인한 혜택의 비용인 이민자의 증가, 그로 인한 피해 계층의 발생, 이 같은 갈등을 정치권은 제대로 조정하지 못했다.6 이민자의 유입으로 피해를 입은 계층의 불만은 영국이 EU를 탈퇴해야 하는 주된 이유로 보수 미디어와 브렉시트 찬성파들 사이에서 활용됐다. 영국이 EU에 휘둘려선 안 된다는 정서적 바탕 외에, 이민자 증가로 인한 일자리 감소 등 경제적 피해를 강조했던 것이다.

2) 사회갈등의 요인으로 기능한 영국의 미디어

더 선’과 ‘데일리 메일’ 등 EU 탈퇴를 주장해온 매체들의 기사는 표지에서도 드러나듯 노골적이고 선동적이었다. 그런데 이런 매체들의 발행부수는 EU 잔류를 주장하는 ‘정통’ 매체의 4배에 달한다. 양적으로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다. 주요 신문 가운데 가장 오른쪽에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데일리 메일’의 경우, 브렉시트와 관련해 이민자들로 인한 피해를 부각시켜 ‘탈퇴’ 여론을 움직이는데 상당히 기여한 것으로 분석된다.7 이런 매체들의 호소력은 잔류를 주장하는 매체들보다 선정적이고 강력했다. 반면 EU 잔류를 주장하는 매체들의 영향력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8 상기한 것처럼 보수 미디어의 압도적인 양적 우위가 브렉시트 찬성 여론을 확산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던 것이다.

5 ‘The fundamental factors behind the Brexit vote’ Sascha O. Becker, Thiemo Fetzer, Dennis Novy 31 October 2016, https://voxeu.org
6 ‘Brexit: This backlash has been a longtime coming’, Kevin O’Rourke 07 Aug 2016, https://voxeu.org
7 Brexit, Agenda setting and Framing of Immigration in the Media: The Case of the Daily Mail, Deborah Sogelola, LSE Research online
8 Quantifying Media Influence and Partisan Attention on Twitter during the UK EU Referendum, Genevieve Gorell and others, Univ. of Sheffield, UK

3) 미디어가 여론을 움직인 방식

이런 분위기에서 탈퇴 진영은 영국이 EU에 남는 비용이 매주 3억5천만 파운드, 그러니까 5천억원을 매주 EU에 내고 있다는 가짜 뉴스를 홍보용 버스에 부착하는 대대적인 캠페인까지 벌였다. 이 돈을 재정난에 허덕이는 NHS에 투입해 영국민의 건강을 지키자는 것이었다. 사실이 아닌 내용이었지만 노동당 정부 시절 NHS 무상 의료의 좋은 시절을 맛봤던 영국민들을 자극하기에는 더없이 솔깃한 내용이었다. 사실과 다른 이런 내용의 캠페인은 탈퇴 파의 대표적인 구호처럼 쓰였지만 이에 대한 제지는 없었다. 그러니 시민들은 이런 말을 그대로 진실로 믿었다. 그리고 매주 천문학적인 비용을 영국인들이 EU에 지불하고 있다는 식의 이런 가짜 뉴스의 효과는 실제로 상당했다. 이런 선정적인 뉴스의 홍수, 정론 미디어의 무력함 속에서 영국이 EU를 통해 얻는 이득이나 EU를 탈퇴할 때의 끔찍한 결과는 부각되지 못했고, 이민자들로 인한 피해 같은 사안들만 부풀려지고 강조되면서 영국의 EU 탈퇴라는 예상 밖의 결정이 이뤄졌다.

4) SNS 등 개인미디어가 ‘탈퇴’ 여론에 끼친 영향

주목할 점은 이민자의 폐해를 강조하는 선정적인 매체들의 기사가 특히 트위터 등 개인미디어를 통해 퍼져나가면서 여론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가 ‘EU 탈퇴 정치세력’을 은밀히 지원했고,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영국의 ‘탈 EU’ 여론 공작을 펼쳤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이런 배경에는 특히 SNS를 통해 EU 탈퇴를 주장하는 기사들이 더욱 널리 확산됐다는 특징이 있다.9 선정적인 내용의 가짜 뉴스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한 여론 형성의 변수가 된 것이다. 보수 미디어에서 생산되는 압도적인 분량의 브렉시트 찬성 기사가 SNS라는 유통경로를 타고 번져나간 것이다.

9 Quantifying Media Influence and Partisan Attention on Twitter during the UK EU Referendum, Genevieve Gorell and others, Univ. of Sheffield, UK

5. 결론

뉴스 수용자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자신들의 이념 성향과 부합하는 매체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이 같은 경향은 SNS나 유튜브 등을 통해 자신의 구미에 맞는 뉴스만을 섭취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면서 더욱 강화되고 있다. 그 후폭풍을 감안하면 영국민들이 국민투표를 통해 EU 탈퇴를 결정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예상을 뛰어 넘어 영국의 국민여론은 어쨌든 EU에서 벗어나는 방향을 선택했다. 국민투표를 둘러싸고 찬반 양측이 치열한 여론전을 펼친 끝에 여론은 탈퇴 쪽으로 미세하게 기울었다. 이 같은 여론의 움직임을 가능하게 한 요인에는 탈퇴 진영의 효과적인 여론 전략, 또 탈퇴를 통해 대영제국의 영광을 되찾자는 식의 감정에 호소하는 선정적인 뉴스들의 여론 잠식 등 여러 변수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는 이 같은 뉴스들이 어디에서 애초 발원해서 퍼져나갔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진보적 매체에 비해 보수 매체가 압도적인 물량을 점유하고 있는 영국 미디어 생태계의 특징이 있다. 그리고 압도적인 부피의 보수 매체들이 실은 몇몇 억만장자들의 소유라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이들은 보수당의 정파적 이데올로기나 정파적 이익에 충실한 보도를 쏟아냈고, 이에 따라 여론이 움직였으며 그 결과 브렉시트가 결정됐다. 국가의 미래와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의 배후에 불과 몇 개의 신문, 몇 명의 개인이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영국의 언론지형과 그로 인한 여론 형성과 이후 여론의 선택, 그리고 브렉시트와 브렉시트가 초래할 혼란이라는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한국의 언론 지형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영국의 사례는 언론 지형의 분포도가 한 국가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세계사적인 대표 사례로 향후에도 거론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