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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국제정세 속 한미 동맹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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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국제정세 속 한미 동맹 현주소 연합뉴스 차장 박인영 연수기관: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Ⅰ. 서론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은 올해는 한미 양국에 특별한 한 해이지만 최근 국제 정세가 요동치면서 동맹 관계는 어느 때보다 거센 파도를 만났다. 중국의 부상과 북핵 문제 등 양국이 협력해 대응해야할 사안들이 많지만 동맹 관계를 위협하는 현안들도 겹겹이 쌓여있어 이 시기를 거친 뒤 한미 동맹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여기에 즉흥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라는 변수는 상황을 더 복잡하게 몰아가고 있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정치적 이단아 트럼프 대통령이 세간의 예상을 깨고 승리를 거머쥔 이후 지구촌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던 듯하다. 백악관에 입성한 그는 전임자들의 정책을 ‘실패’로 규정하고 하나하나 뒤엎으면서 워싱턴을 뒤흔들더니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우며 미국이 오랫동안 지켜온 자유 진영의 리더 역할도 내던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임 버락 오바마 정부가 이란, 러시아, 중국, 프랑스, 독일, 영국과 공동 서명한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가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지 못한다며 2018년 탈퇴했다. 이후 이란을 압박하기 위해 추가 제재를 가하고 이란 권력서열 2위였던 이란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암살해 국제사회를 경악케 했다. 2019년에는 러시아와의 핵개발 경쟁을 막기 위해 30여년간 활용한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에서도 러시아의 준수 불이행을 이유로 탈퇴했다. 교토의정서를 대체하는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 절차도 올해 11월까지 완료할 예정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동 대응이 중요한 지난 5월에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중국의 손아귀에 있다며 관계 단절을 선언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일 년에 4억5천만 달러를 내는데 중국은 4천만 달러밖에 내지 않으면서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1)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렇게 기후변화 관리, 군비 통제와 핵확산 억제 등을 목표로 하는 국제사회의 약속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모두 휴지조각이 됐다.

미국의 동맹관도 180도 달라졌다. ‘부유한 동맹국들이 미국에 비용을 전가하고 무임승차하고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은 그의 외교 정책에 그대로 반영됐다.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공동의 가치를 우선시했던 미국의 전통적 동맹관이 돈의 논리를 앞세운 트럼프 대통령의 ‘금전적 동맹관’에 자리를 뺏겼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의리도 헌신짝처럼 내던지는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관은 작년 10월 시리아 북부에서 터키군의 공격을 받는 쿠르드족을 남겨두고 미군을 철수시킨 결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쿠르드 민병대는 미군의 지원 아래 시리아 극단주의 테러 단체인 이슬람국가(IS) 격퇴전의 선봉에 나서 1만여 명의 전사자를 내면서 IS의 확대를 막았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IS가 격퇴되자 터키군의 공격 위험에 처한 쿠르드를 버리고 일방적으로 미군을 철수시켜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나머지 인류와 문명을 위해 우리가 중동에 남아서 쿠르드를 보호해야 한다는 합의가 어디 있느냐”고 되레 큰소리쳤다.2)

철저한 장삿속에 입각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정책 탓에 대서양 건너 유럽의 오랜 동맹들과의 관계도 급랭했다. 지난해 창설 70주년을 맞은 미국과 유럽의 집단안보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회원국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무리한 방위비 증액 압박과 시리아 북동부 미군 철수 결정 등으로 내부 갈등에 휩싸였다. 6월에는 취임 이후 줄곧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앙숙 관계였던 트럼프 대통령이 독일의 방위비 지출에 불만을 토로하며 일방적으로 독일 주둔 미군 감축을 공식화해 동맹 관계에도 금이 갔다.

미국의 동맹관 변화를 마주하면서 오랜 우방들은 최근 관계 재설정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는 분위기다. 한국도 동맹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한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떠밀리다시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에 나서야 했고 주한 미군 주둔비용 분담금 증액을 놓고도 해를 넘겨 미국과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도 급격히 악화해 1·2위 경제 대국의 갈등이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불공정한 무역관행 시정을 요구하며 중국산 제품에 대규모 관세를 부과하면서 무역 분쟁에 불을 댕겼다. 작년 말 양국의 무역 협상이 1단계 합의에 이르면서 분쟁도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으나 최근 코로나19 대유행 책임론과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제정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하면서 ‘신(新)냉전‘ 체제로 들어선 분위기다. 미국은 홍콩의 특별지위를 박탈하겠다고 위협하고, 중국은 내정간섭을 용납할 수 없다며 맞선다. 양국은 대만, 남중국해, 신장 위구르 자치구 문제에서도 각을 세우고 있다.

미중 모두 우방 줄 세우기 조짐을 보이면서 그 사이에 낀 한국의 고민도 깊어졌다. 여기에 북미 대화 교착 상태가 길어지면서 남북 관계도 급랭했다. 변덕스러운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과 미중이 패권 경쟁에 들어가면서 국제사회의 기존 질서가 흔들리고 한미 동맹을 위협하는 요인들도 늘어가고 있다.

이 보고서에서는 최근 불확실한 국제 정세 속에서 한미 동맹을 시험하는 당면 현안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미국 전문가의 견해 및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미국 내 분위기를 조망하고자 한다. 한미 양국이 다뤄야 할 중요한 현안들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최근 양국의 입장차가 큰 사안들에 집중하면서 이에 대한 미국의 시각을 살피려 한다. 견고한 한미 동맹을 유지하려면 한미 관계의 균형점을 모색하고 동맹의 균열을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미국의 시각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1) Lauren Egan, “Trump says U.S. will be ‘terminating’ relationship with WHO,” NBC News, May 29, 2020,
https://www.nbcnews.com/politics/white-house/trump-says-u-s-will-be-terminating-relationship-who-n1218441
2) Nina Golgowski “U.S. Never Agreed To Protect Kurds For Life, Trump Says Of Syria Withdrawal”, HuffPost, October 21, 2019,
https://www.huffingtonpost.ca/entry/trump-kurds-protection_n_5dae0f80e4b0422422c9fcf5?utm_hp_ref=ca-us-politics

Ⅱ. 방위비 분담금 협상 장기화와 한미 갈등
1.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 경과

지난해 시작된 한국과 미국의 제11차 한미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 협상이 해를 넘겨 6월 현재까지 타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양측은 작년 9월 서울에서 1차 협상을 시작한 이후 분담금 인상 비율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협상 타결이 지연되면서 주한미군 소속 한국인 근로자의 절반가량이 지난 4월 1일부터 무급 휴직에 들어갔다가 미국 측이 한국의 근로자 ‘인건비 선(先)지급’ 제안을 수용하면서 75일 만에 복직하기도 했다.

방위비 분담금 협정은 지난 1991년 제1차 협정을 시작으로 2019년 10차까지 이어졌다. 제10차 협상 당시에도 미국 측의 대규모 증액 요구로 타결이 지연되다 해를 넘겨 한국이 9차에 비해 8.2% 인상된 총액 1조389억원을 분담하는 것으로 타결됐다. 미국은 제11차에서는 당초 방위비 분담금 협정에 포함되지 않았던 미군의 한반도 순환배치 비용과 역외 훈련비용 등까지 한반도 방위비용에 포함시켜 전년 분담금의 5배가 넘는 50억 달러에 이르는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맞서 한국은 미국산 무기 구매, 평택 미군기지 건설비용, 국제 분쟁에서 미군 지원 등 그동안 SMA에 포함되지 않은 한국의 기여를 내세우고 있다.

양국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협상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3차 회의에서는 미국 협상단이 한국 측에 수정안 제시를 요구하며 90여분 만에 퇴장했다. 4월 초에는 양측 협상단이 양국 외교·국방 장관의 지휘 아래 잠정 합의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국의 분담금을 13% 인상하는 내용의 잠정 합의안은 트럼프 대통령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이와 관련, 코로나19 백악관 브리핑에서 “그들(한국)이 우리에게 일정한 금액을 제시했지만 내가 거절했다”고 직접 밝혔다.3)

미국 측은 ‘최종 제안’이라며 한국에 2019년 분담금에서 50%가량 인상된 13억달러를 제시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4)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당초 요구액에는 크게 못 미치지만, 양국 협상단의 3월 잠정 합의안보다는 훨씬 큰 금액이다. 한국 정부는 잠정 합의안에서 추가 인상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어서 여전히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자 미국에서는 협상 교착 국면이 오는 11월 미국 대선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대선을 앞두고 방위비 협상에서 양보하기가 어렵고 한국 정부도 국내 여론을 고려할 때 대폭 인상을 받아들이기 힘든 만큼 대선이 지난 뒤 새로운 국면에서 협상을 진행하는 게 낫다고 여길 수 있다는 것이다.

3) Jeff Mason, “Trump says he rejected sum South Korea offered for defense costs,” Reuters, April 20, 2020
4) Phil Stewart, Idrees Ali, “Inside Trump’s standoff with South Korea over defense costs,”, Reuters, April 10, 2020

2. 재선가도 ‘적신호’ 트럼프, 韓 방위비 증액 압박하며 파상공세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는 현재 적신호가 켜진 상태다. 정부의 코로나19 부실 대응 논란이 여전하고 경제마저 곤두박질치면서 6월 중순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에 뒤지고 있다.5) 엎친 데 덮친 격으로 5월 미네소타 주에서 백인 경찰의 가혹 행위로 비무장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봉쇄 조치와 이로 인한 대규모 실직 사태로 타격이 컸던 유색 인종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는 상황에서 경찰의 공권력에 비무장 흑인이 또다시 사망하자 미전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이는 곧 유혈 폭동으로 비화했고 중국을 비롯한 각국이 미국의 인종차별 문제를 비판하면서 국제적 망신살까지 뻗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 진압에 군을 동원하려 했다가 ‘충성파’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마저 반기를 들면서 체면을 구겼다.

취임 이후 최악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동맹의 방위비 분담금 대폭 증액’이라는 공약에서 실질적 성과를 거둬 유권자들의 불만을 잠재워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미국은 조만간 일본 및 나토와의 방위비 협상에서도 대규모 증액을 요구할 계획이어서 한국의 방위비 분담액을 대폭 늘려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계산도 깔려있다. 이런 까닭에 트럼프 행정부는 제11차 협정을 위한 협상이 시작된 이후 대통령부터 국무·국방 장관에 이르기까지 한국 정부를 전방위로 압박하며 파상공세를 펴고 있다.

한국이 분담금 대폭 증액에 합의하지 않았음에도 ‘상당한 돈을 내기로 합의했다’는 주장을 펴는 등 자신의 희망사항을 기정사실화해 일방적으로 발표해버리는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공격적 협상술도 어김없이 동원됐다. 그는 지난 5월 텍사스 주지사를 접견한 자리에서 방위비 협상과 관련, 양국 간 공식 합의가 없었음에도 한국이 상당한 돈을 내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6) 트럼프 대통령은 제11차 방위비 협상 개시 전인 지난해 8월에도 한국이 분담금을 대폭 증액하기로 합의했다는 내용의 트윗을 불쑥 올렸고 올해 4월 한 인터뷰에서도 “그들은 돈을 더 내기로 합의했다”7)고 했으나 한국 정부가 “방위비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밝혀 양측이 합의에 도달하지 않았음을 알렸다.

지난 1월에는 미국의 외교·국방 수장이 나란히 언론사 공동 기고문이라는 이례적인 형태로 한국 정부를 압박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에스퍼 국방장관은 6차 회의 직후인 1월 한 일간지에 ‘한국은 부양 대상이 아닌 동맹’이란 제목의 공동 기고문을 냈다. 여기에서 두 장관은 “한국은 한반도 미군 주둔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관련된 비용의 3분의 1만 부담한다”면서 “미국 납세자들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부담을 지고 있다”고 주장했다.8) 미국의 이런 공격적 협상태도의 배경에는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조속히 끝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협상 장기화가 주한미군 준비태세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는 만큼 미국도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방위비 증액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주한미군 감축 카드를 꺼내 들 가능성도 거론된다. 실제로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독일의 국방비 지출 수준을 문제 삼으며 주독 미군 감축을 결정했다. 그는 6월 오클라호마 주의 선거유세에서 독일이 “내야 하는 돈을 내지 않고 있다”며 지난해 기준 독일의 국방비 지출이 국내총생산(GDP)의 1.36% 수준에 그친 데 불만을 토로했다. 방위비 문제가 주독 미군 감축의 이유임을 인정한 셈이다. 이런 가운데 리처드 그리넬 전 주독 미국대사가 한국을 포함한 해외 주둔 미군의 감축 가능성을 언급해9)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물론 한미 관계는 트럼프 대통령의 앙숙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독일과는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시하는 국방비 지출 비중도 한국은 GDP 대비 2%가 넘고 최근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전략이 관심을 쏟고 있어 쉽사리 주한 미군 감축을 결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더구나 주한미군의 경우 미국 국방수권법(NDAA)에 그 규모를 현행 2만8천500명보다 줄이는 데 예산을 편성하지 못하게 하는 조항도 포함돼있다.

그러나 신(新)고립주의를 표방하며 ‘세계 경찰론 폐지’를 내세워온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수없이 주한미군의 주둔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했었다. 시리아에서 갑작스럽게 미군을 철수시켰던 그가 최근 “많은 이들이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머나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오래된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미국 병력의 의무가 아니다”10)라고 강조한 것도 한국으로서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5) Kevin Breuninger, “Joe Biden’s lead against Trump in the 2020 election is growing wider, polls show,” CNBC, June 4, 2020
6) The White House, “Remarks by President Trump in Meeting with Governor Abbott of Texas,” May 7, 2020
7) Steve Holland, “Trump says China wants him to lose his re-election bid,” Reuters, May 1, 2020
8) Michael R. Pompeo and Mark T. Esper, “South Korea Is an Ally, Not a Dependent,” The Wall Street Journal, January 16, 2020
9) James Randerson and Miriam Webber, “US to pull troops from Germany, ex-ambassador Grenell confirms,” Politico, June 11, 2020
10) The White House, “Remarks by President Trump at the 2020 United States Military Academy at West Point Graduation Ceremony,” June 13, 2020

3. 방위비 협상 교착 바라보는 美 조야의 우려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 장기화와 관련, 연수지 워싱턴 DC에서 감지되는 미 조야와 언론의 시각은 트럼프 행정부의 과도한 분담금 증액 요구에 대체로 비판적이다. 동맹을 ‘무임승차자'(freeloaders)로 바라보는 트럼프 대통령의 왜곡된 동맹관에 우려를 보이면서 그가 미군이 동맹국에 주둔해야 하는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며 답답해하는 이들이 많았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사업가였던 1990년 성인 잡지 플레이보이’와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지난 30여년간 공개 석상에서 최소 118여 차례에 걸쳐 주한 미군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동맹들이 미국을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11)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1월 한국의 방위비 증액을 압박한 미 국무·국방 장관의 공동 기고문이 공개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강압적 외교정책’을 비판하면서 한국 정부에 대한 미 행정부의 전방위적 방위비 압박을 예로 거론했다.12) 이 기사에서 해리 카지아니스 미 국익연구소 한국 담당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우선 미국에 왜 동맹들이 존재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며 “그는 동맹들을 마치 자신들을 보호해달라며 미국에 아부해야 하는 마피아 파트너인 것처럼 다룬다”고 비판했다.

앞서 지난해 11월에도 WP는13) 오랜 동맹인 한미 간에 마찰을 빚는 것은 전통적 동맹들을 지원하는 것이 미국민 입장에서 ‘나쁜 딜’이며 배은망덕한 국가들이 빚을 다 갚아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점에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달 뉴욕타임스(NYT)도14) 미군을 ‘용병’으로 전락시킨 트럼프 대통령의 터무니없는 요구는 “동맹에 대한 모욕”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비합리적 보상 요구가 동맹을 훼손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미 싱크탱크 민주주의수호재단의 데이비드 맥스웰 선임연구원은 동맹을 무임승차자로 바라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점을 문제 삼았다.15)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국무부 부장관을 지낸 리처드 아미티지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보좌관을 지낸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WP에 기고문16)을 싣고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협상 실패를 구실로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를 결정할 수 있다며 “이는 미국 외교정책의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 조야에서는 미국의 과도한 방위비 증액 요구로 인한 한미 갈등이 어느 때보다 협력이 절실한 시점에 동맹을 약화시킬 가능성에 대해 걱정하는 분위기다. CSIS의 존 햄리 회장은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대해 “한국이 미국에 무언가를 빚지고 있다는 전제로 시작해선 안 된다“면서 협상에 따른 양국 갈등이 지속하는 상황에 대해선 “동맹 약화가 우려된다”17)고 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북한과 긴박한 핵 협상, 불안정한 동북아, 수십년 만의 최악의 한일 관계의 시기에 한미 양국 정부 간 불필요한 위기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며 이러한 갈등은 적대국이 전시에 양국 동맹이 제대로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을 갖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18)

CSIS의 빅터 차 한국석좌는 5월 한 세미나19)에서 방위비 분담금을 둘러싸고 ‘달러’와 ‘센트’를 놓고 싸우는 것과 같은 기술적 문제에서 벗어나 한반도 상황과 관련, 큰 그림에 초점을 둬야 한다고 했다. 미 의회조사국(CRS)은 한미관계에 관한 보고서20)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급격한 증액 요구는 다른 동맹국의 가치에 대한 그의 비판과 맞물려 미국의 안보 약속에 대한 서울의 우려를 키웠다”고 분석했다.

미 정치권에서도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미 동맹 훼손을 우려하며 조속한 협상 타결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미 협상단이 잠정 타결한 ‘13% 인상안’을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한 사실이 알려진 지난 4월 미 상원 외교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로버트 메넨데즈 의원을 비롯해 상원 군사위원회 간사인 잭 리드 의원, 엘리엇 엥걸 하원 외교위원장, 애덤 스미스 하원 군사위원장 등 4명은 폼페이오 장관과 에스퍼 장관에 공개서한을 보내 협상의 조속한 타결을 촉구했다.21)

민주당 소속 아미 베라 하원 동아태소위원회 위원장과 빅터 차 CSIS 한국석좌는 6월 초 한 일간지에 공동 기고문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에 한국과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 문제를 조속히 매듭짓고 동맹과의 협력을 강화, 북한 문제 등 당면한 한반도 도전과제에 집중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22)

11) Victor Cha and Andy Lim, “Database: Donald Trump’s Skepticism of U.S. Troops in Korea Since 1990,” CSIS, February 25, 2019
12) Anne Gearan and John Hudson, “Trump’s strong-arm foreign policy tactics create tensions with U.S. friends and foes,” The Washington Post, January 19, 2020
13) The Editorial Board, “American steadfastness is in doubt in South Korea thanks to Trump’s policies,” The Washington Post, November 23, 2019
14) The Editorial Board, “Trump’s Lose-Lose Proposition in Korea,” The New York Times, November 21, 2019
15) David Maxwell, “U.S.-ROK Relations, An Ironclad Alliance or a Transactional House of Cards?” The National Bureau of Asian Research, November 2019
16) Richard L. Armitage and Victor Cha, “The 66-year alliance between the U.S. and South Korea is in deep trouble,” The Washington Post, November 25, 2019
17) ‘美CSIS 회장 “주한미군 용병 아냐…10억달러도 괜찮은 금액”‘, 연합뉴스, 2019.11.27
18) Michael O’Hanlon, “What is going on with the United States alliance with South Korea?” The Hill, November 22, 2019
19) CSIS 화상 세미나 ‘Korea Chair Capital Cable #2,’ May 21, 2020
20) Mark E. Manyin, Emma Chanlett-Avery and Brock R. Williams, “South Korea: Background and U.S. Relations,”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April 22, 2020
21) “Leading National Security Democrats Raise Alarm Over Trump Admin’s Dispute with South Korea over Cost-Sharing Deal,” United States Senate Committee on Foreign Relations, April 15, 2020
22) Ami Bera and Victor Cha, “Burden-Sharing Talks are Distracting Washington and Seoul from the North Korean Threat,” The Washington Post, June 1, 2020

Ⅲ. ‘신냉전’ 치닫는 미중과 어려운 선택 직면한 한국
1. 패권 노리는 중국과 견제나선 미국

최근 1년 사이 미국과 중국의 극한 대립이 무역 분쟁을 넘어 정치·사회·외교 전방위로 확대되면서 패권 경쟁이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패권국 미국이 2인자 중국의 도전을 받으면서 각국은 숨죽여 추이를 지켜보는 분위기다.

트럼프 취임 이전 미국의 대중 정책은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시키고 자국 시장을 개방함으로써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편입시켜 중국의 체제 변화까지 끌어낸다는 전략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중국은 미국의 포용 정책을 적극 활용해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면서 오히려 공산주의 정치 체제를 강화하고 군사력 증강에 몰두했다. 더구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집권 이후 1인 권위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시 주석은 중국 주도로 세계 교통·무역망을 연결하는 경제 구상인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앞세워 유라시아를 넘어 세계로 뻗어 나가는 대외 전략도 구축했다. 중국이 막대한 해외 투자력과 거대 시장을 무기로 미국 중심의 기존 국제질서를 뒤엎고 세계 질서를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야심을 드러내면서 미국의 위기감도 커졌다.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대중 정책은 이미 2016년 미국 대선 이전부터 어느 정도 예견됐었다. 사업가 시절부터 그는 미국의 대중 무역 정책과 이를 이용해 이익을 챙기는 중국에 반감을 드러냈다. 취임 이후에도 중국이 미국을 상대로 불공정한 무역 관행으로 이익을 챙긴 것은 이를 허용한 역대 미 행정부의 책임이라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임자들을 비판했다. 그는 지난 2017년 11월 베이징을 방문해서도 불공정한 대중 교역은 역대 미 행정부의 탓이라고 비난했고23) 지난해 프랑스에서 열린 G7에서도 전임자들의 대중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중국의 부상을 막아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이 정책에 고스란히 반영되면서 트럼프 행정부는 2017년 12월 발간한 첫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24)에서 중국을 기존의 ‘협력적 파트너’에서 ‘전략적 경쟁자’로 수정했다. 또 양국 사이에 “강대국 간 힘의 경쟁(great power competition)”이 시작됐다고 지적하고 중국을 미국의 가치와 이익에 반해 세계를 재편하려 하는 ‘수정주의 국가'(revisionist power)로 규정했다.

23) Jordyn Phelps, “Trump: ‘I don’t blame China’ for US-China trade imbalances,” ABC News, November 9, 2017
24) The White House “National Security Strategy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President Donald J. Trump, December 18, 2017

2. 코로나19, 홍콩보안법이 기름 부은 미중 ‘신냉전’

지난해 말 1단계 무역 합의로 잠시 주춤하는 듯 했던 미중 갈등은 최근 코로나 사태를 둘러싼 책임 공방이 격해지면서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여기에 중국이 5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외세의 홍콩 내정 개입과 국가 분열, 국가정권 전복, 테러 활동 등을 금지·처벌하고, 홍콩 내에 이를 집행할 기관을 두는 내용 등이 담긴 홍콩보안법 제정에 박차를 가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로 6월 현재 미국 내 사망자가 10만명이 넘고 경제지표가 곤두박질치면서 곤경에 처하자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 ‘우한 바이러스’라고 부르며 중국 중앙 정부의 늑장 대응과 은폐 시도가 세계적인 감염 사태를 불러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에 대한 강경 대응으로 미국에서 커져가는 반중 정서에 편승해 지지 세력을 결집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실제로 코로나19 확산을 둘러싸고 중국에 대한 미국의 여론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 1만여명 중 중국에 비호감을 표시한 비율은 66%로, 2005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높았다. 코로나19에 대한 중국의 정보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응답자도 미 공화당 지지자 78%, 민주당 지지자 54%로,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중국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

유권자의 이런 반중 정서를 선거전에서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움직임은 트럼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 모두에게서 나타나고 있다. 어느 후보가 그동안 중국에 더 강경했는지가 최근 트럼프와 바이든 TV 선거 홍보의 주요 전략으로 부상하기도 했다.25)

11월 미국 대선에서 누가 최종 승자가 될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당분간 미중 관계에서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중국의 부상을 막아야 한다는 견해가 공화당과 민주당에서 초당적 공감대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미 의회는 지난해 11월 국무부가 홍콩의 자치 수준을 매년 평가해 홍콩이 누리는 경제·통상에서의 특별 지위를 재검토하도록 하고 홍콩의 기본적 자유를 억압한 책임이 있는 이들의 미국 비자 발급을 금지하는 ‘홍콩 인권법안’을 통과시켜 중국의 반발을 불렀다.

이어 5월에는 중국의 이슬람 소수 민족에 대한 인권 침해와 관련, 중국 당국자들을 제재할 수 있도록 한 ‘2020년 위구르 인권정책 법안’을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하기도 했다. 이렇게 미 의회도 최근 중국을 겨냥한 주요 법안을 발의·통과시키며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압박 정책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런 와중에 미중은 중국,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대만 등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남중국해에서도 위력 시위를 펼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코로나19 대유행을 틈타 남중국해에서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경제적 이득을 얻으려 한다고 비판한다.26) 미국이 중국 정부와 대립각을 세워온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대만에 지속적으로 무기를 판매하는 데 대한 중국의 반발도 거세다.

양국의 대립은 경제를 넘어 이념적 대립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백악관은 지난 5월 중국의 최대 연례 정치 행사인 양회 개막일 전 발간한 ‘대중국 전략보고서’27)에서 시 주석의 직함을 ‘대통령'(President)에서 ‘공산당 총서기'(General Secretary)로 바꿔 표기했다. 북한 등 비정상 국가의 정부를 지칭할 때 쓰는 ‘regime'(정권)이라는 단어로 중국 정부를 지칭해 공산주의 국가라는 점도 강조했다.

보고서는 또 미국이 ‘가치에 대한 도전'(Challenges to Our Values)에 직면했다고 적시, 양국 갈등이 단순한 무역 분쟁의 차원을 넘어 이념적 대립으로까지 확대됐음을 시사했다. 이는 1979년 양국 수교 후 지켜온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 기조의 폐기를 의미하면서 동시에 사실상 미중 ‘신냉전’을 선포한 것으로 볼 수 있다.28) 여기에 미 법무부는 5월 말 25억 달러(약 3조원) 규모의 북한 돈세탁에 관여한 혐의로 중국 국적자 5명을 포함한 30여명을 기소했다. 표면적으로는 북한에 대한 제재 조치였지만 중국 금융기관들이 연루돼 미 정부의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 가능성도 거론되면서 미중 갈등 전선이 확대될 가능성이 커졌다.

25) Asma Khalid, “Biden And Trump Battle Over Who Is ‘Weak On China’,” NPR, April 22, 2020
26) Barbara Starr and Ryan Browne, “US increases military pressure on China as tensions rise over pandemic,” CNN, May 15, 2020
27) National Security Council, “United States Strategic Approach to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The White House, May 20, 2020
28) ‘미·중 신냉전의 시작인가?’,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 세종논평, 2020. 5. 27

3. 미중 격돌에 ‘새우 등 터질라’ 고민 깊은 한국

한국 경제는 최대 수출 대상국인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고, 동맹인 미국과는 밀접한 안보·경제 관계를 유지해왔다. 또 작년 2월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후 냉랭해진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진전에 미중 양국의 협조도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미중 어느 한 편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미중 갈등이 심각해지면서 양국이 대립하는 주요 사안과 관련, 한국이 선택을 강요받는 곤란한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미 두 강대국들이 주변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줄 세우기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홍콩보안법 초안 표결을 앞두고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는 중국 관영방송에서 “한국 측에 홍콩 관련 국가안전법에 관한 배경을 적극적으로 소개할 것이고 한국 측의 이해와 지지를 얻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그동안 중국 국내 문제에 대한 외부의 어떤 언급도 내정 간섭으로 몰아세웠던 중국 정부가 난데없이 한국에 ‘이해와 지지’를 당부한 것은 사실상 중국 편에 서라는 압박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에 질세라 미 국무부는 중국의 홍콩보안법 표결 직전 워싱턴 DC의 미국 주재 주요 동맹국과 협력국 외교단을 대상으로 자국의 입장을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해 사실상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의 지지를 요청했다.

한국이 트럼프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합류할 것을 촉구해온 미국은 최근 반(反)중 경제블록인 경제번영네트워크(EPN·Economic Prosperity Network)에 참여하길 바란다는 메시지도 보내고 있다. 중국도 한국의 일대일로 참여에 대한 바람을 거듭 피력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국을 방문한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중국은 일대일로 구상이 한국의 발전 계획과 연결돼 적극적으로 제3국 (진출) 협력을 모색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29) 미국은 6월 초 키이스 크라크 국무부 차관이 한국 외교부 관계자에게 EPN 구상을 포함해 미국이 관심을 갖는 다양한 국제 경제 이슈에 관해 설명하고 한국의 관심을 부탁했다.30)

29) ‘한중, 서울서 외교장관회담…”한중관계 완전한 정상화 공감”(종합3보)’, 연합뉴스, 2019. 12. 4
30) ‘미, 한국에 ‘반중국 경제블록’ 설명하며 “관심 가져 달라”(종합)’, 연합뉴스, 2020. 6. 5

4. ‘한국, 또 줄타기?’ 못마땅한 美 조야

미중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으려는 한국의 중립적 혹은 중국에 다소 기운 듯한 모호한 태도는 최근 미국에서 부쩍 부각되고 있다. 중국이 홍콩보안법 초안을 통과시킨 직후 미국, 영국, 캐나다와 호주 등 4개국 외무·국무장관들은 공동 성명을 내고 이를 규탄했고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연합 주요국들도 우려를 표시했다.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을 추진 중이던 일본은 4개국 공동 성명 참여는 거부했으나 별도 성명을 통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쿵쉬안유 주일 중국대사를 불러 이런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6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의회에서 “주요 7개국(G7)은 글로벌 여론을 이끌 임무가 있으며 일본은 홍콩의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에 대한 성명 발표를 주도하기를 원한다”고 밝히며 뒤늦게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반면 한국은 지난 6월 초 외교부 대변인이 정례브리핑에서 “일국양제와 홍콩의 번영과 발전이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원론적 입장을 내는 데 그쳤다. 이에 대해 마크 내퍼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는 최근 워싱턴의 한 세미나31)에서 “전례 없는 입장”이라며 한국 정부에 감사의 뜻을 표했지만 이웃 나라 일본의 적극적인 대응에 비해 너무도 미온적인 한국의 반응이 더 두드러져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중 갈등 상황에서 다른 나라들에 비해 유독 미국 편에 서기를 주저했던 한국의 경향에 대해서는 미국 전문가들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한반도가 역사적으로 대륙인 중국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양국이 긴밀한 관계를 이어왔다는 사실도 안다. 그런 만큼 그동안 미중 갈등 상황에서 대체로 중립적 태도로 일관해온 한국 정부가 앞으로 어떤 대응에 나설지 주시하는 분위기다.

마이클 그린 CSIS 부소장은 지난해 9월 미 의회 산하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가 개최한 2019 미중 관계 검토 청문회에서 “시 주석 집권 이후 중국은 한국이 미국과의 동맹에서 이탈하도록 강압적인 압력을 가해왔다”며 “한국이 중국의 요구에 굴하지는 않았으나 중국의 압력에 맞설 필요성에 대해서는 일본과 호주 정부에 비해 신중한 편”이라고 진단했다.32)

카네기국제평화기금 보고서도33) “워싱턴의 많은 전문가는 한국 정부가 중국 정부로 너무 기울어질 경우 미국의 대중 대비태세를 약화하고 중국이 한미 양국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견해 차이를 악용할 우려가 있다는 시각이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빅터 차 CSIS 한국석좌는 미국과 중국이 그동안 정책적으로 대립한 10개 사례에 대한 분석에서 양국이 한국 정부에 선택을 요구했을 때 한국이 미국의 입장을 지지한 것은 단 한 차례에 불과했고 대부분 중립적 입장을 취하거나 아예 중국의 입장을 선택했다며 “그런 점은 동맹을 관리하는 입장에서 우려해야 할 부분”이라고 했다.34)

미국 정부도 중국과의 패권 경쟁이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대응을 지켜보는 분위기다. 지난 6월 초 이수혁 주미대사가 미중 사이에 낀 한국의 상황과 관련 “우리가 선택을 강요받는 국가가 아니라 이제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국가라는 자부심을 갖는다“35)고 말한 데 대해 국무부는 “한국은 수십 년 전 권위주의를 버리고 민주주의를 받아들였을 때 이미 어느 편에 설지 선택했다”는 반응을 내놨다.36)

이 대사의 카운터파트 격인 데이비드 스틸웰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도 직접 나서 한국은 1980년대에 민주주의를 선택했다는 점을 환기하면서 민주주의가 옳은 선택이라고 강조했다.37) 스틸웰 차관보의 발언은 미중 갈등에서 한국이 권위주의 정권인 중국 대신 동맹이자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여서 사실상 ‘미국 편에 서라’는 압박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한국 내에서는 균형 잡힌 국익 외교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미중이 사실상 본격적인 패권 경쟁에 돌입해 동맹국 줄 세우기에 나선 상황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고민해볼 문제다. 한국의 중립적 대응이 동맹 미국에는 배신감과 실망감을 안겨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앞서 2017년 사드 배치 논란을 두고 미 조야에서는 한미 동맹의 결속력을 의심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한국 국내 사정으로 배치가 계속 지연되자 미국은 한국 정부의 의지를 의심했다. 문 대통령이 방미 일정 중 직접 미 의회를 찾아 한국의 입장을 설명했지만 의구심을 완전히 가라앉히지는 못했다. 결국 사드가 배치되고 이로 인해 한국이 중국에게 치졸한 보복을 당했지만 미국은 침묵을 지켰다.

미국의 이런 반응에는 한국 정부가 마지못해 사드를 배치한 듯한 인상을 준 것이나 이후 한국 정부가 밝힌 ‘3불'(사드 추가배치 불가·미국 MD체제 불참·한미일 군사동맹 불가) 방침에 대한 불만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 미국 일각에서는 한국의 3불 방침을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 전략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상징적 행보로 받아들이기도 했다.38)

호주, 일본, 인도 등이 미국과 더불어 중국 견제에 의기투합해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서는 상황에서 유독 한국만 주저하는 데 대해 답답해하는 모습도 보인다. 미 전문가들은 한반도 비핵화에 중국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동의하면서도 한국이 미국과 아시아 우방들과 함께 중국에 대항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오히려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에 훨씬 덜 협조적으로 나올 것으로 전망했다.39)

31) CSIS 화상 세미나 ‘Korea Chair Capital Cable #3,’ June 4, 2020
32) Michael J. Green, “U.S.-China Relations in 2019: A Year in Review,” Testimony before the U.S.-China Economic and Security Review Commission, September 4, 2019
33) Bryan Port, “Defense Readiness and the U.S.-ROK Alliance,” 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 March 18, 2020
34) CSIS 화상 세미나 ‘Korea Chair Capital Cable #3,’ June 4, 2020
35) ‘이수혁 “한국 이제 미중 사이에서 선택할수 있는 나라 ‘자부심'”(종합)’, 연합뉴스, 2020. 6. 4
36) ‘미 국무부 “한국, 수십년 전 어느 편 설지 이미 선택”‘ 연합뉴스, 2020. 6. 6
37) ‘미 차관보, 주미대사 발언에 “韓, 민주주의 택한다면 옳은 선택”(종합)’, 연합뉴스, 2020. 6.10
38) Michael J. Green, Patrick Buchan and Sue Mi Terry, “Ironclad: Forging a New Future for America’s Alliance,” CSIS, October 18, 2019
39) CSIS와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주최한 온라인 한미전략포럼에 참석한 마이클 그린 CSIS 부소장 발언. 2020. 6. 26

Ⅳ. 표류하는 비핵화 협상과 대북정책 둘러싼 한미 시각차
1.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미국과 한반도 상황

북미 정상이 지난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아무런 합의 없이 돌아선 지 1년이 넘었지만 한반도 정세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잇단 대화로 무르익는 듯했던 한반도 화해 분위기도 싸늘해졌고 덩달아 남북관계도 경색됐다.

지난해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 직전까지만 해도 북미 양측이 비핵화와 상응조치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에 합의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미국이 영변 핵 시설 폐기와 제재 완화를 맞바꾸자는 북한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양측은 좁히기 힘든 견해차만 확인하고 돌아섰다. 지난해 6월 30일 남북미 정상이 판문점에서 회동했으나 실질적 성과 없이 깜짝 이벤트로 끝났다. 북미는 다시 작년 10월 초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한 차례 실무협상을 진행했지만 북측이 비핵화 논의의 선행 조건으로 체제안전 보장과 미국의 ‘실제적’ 조치를 요구하면서 또다시 성과 없이 끝났다.

이후 북한은 작년 말 노동당 전원회의 보고에서 선제적 비핵화 조치로 진행해 온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중단’ 결정을 폐기할 것임을 시사해 긴장감을 높였다. 잇따라 단거리 미사일을 쏘고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ICBM 엔진 시험으로 추정되는 ‘중대 시험’도 진행했다. 북한은 3월 한 달에만 세 차례 단거리 발사체 실험을 하며 미국과의 기싸움을 이어갔다.

이런 와중에도 남북·북미 정상은 친서 교류를 이어가며 신뢰 유지에 노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1월 김 위원장에게 생일 축하 친서를 보냈고 북한의 발사체 실험 이후인 3월 중순에도 북미관계 구상과 코로나19 방역 협조 의향을 담은 친서를 보냈다. 남북 정상도 코로나19를 계기로 친서를 교환했고 북한은 비록 발사체 시험을 이어가며 한미를 압박하기는 했으나 대화의 여지는 남겨두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톱다운’식 접근으로 북미 관계 진전을 견인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는 재선 성공에 올인하면서 북미 대화 연내 재개는 사실상 어려울 전망이다. 대북 업무를 담당했던 국무부 핵심 인사들도 줄줄이 자리를 옮겼다. 대북 실무를 총괄하던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는 작년 12월 국무부 부장관으로 승진해 북한 문제에만 집중할 수 없게 됐고 알렉스 웡 국무부 대북특별부대표 겸 북한 담당 부차관보는 올해 유엔 특별 정무차석대사로 승진했다. 마크 램버트 전 국무부 대북특사도 유엔 다자간 연대 특사로 중국 견제 역할을 맡으면서 북미 대화의 미국 측 주역들이 모두 흩어졌다. 여기에 코로나19 대응과 미중 갈등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어젠다에서 북미 대화는 뒷전으로 밀려난 상황이다. 북한도 과거 미국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에는 대체로 협상에 응하지 않았던 경향을 고려하면 조만간 북미 정상이 협상 테이블에서 마주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대화 교착 국면이 길어지는 데 대한 불만이 폭발했는지 북한은 최근 대남 압박 수위를 한껏 높이더니 6월 중순엔 아예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시켰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사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담화를 내고 청와대가 이례적으로 “무례한 어조”, “몰상식한 행위”라고 맞받으면서 남북 관계도 강대강 대치를 향해가는 분위기다.

2. ‘선 비핵화‘ 포기 않는 미국과 남북협력 마음 급한 한국

올해 들어 한국 정부는 교착 상태에 빠진 북미 대화가 재개되기를 마냥 기다리기 보다는 독자적인 남북 협력을 모색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피력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속에서도 한국이 독자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대북 협력사업부터 차분하게 추진하면서 북한의 호응을 유도하겠다는 것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1월 신년사40)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하기 위해 김 위원장의 남한 답방을 재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어 며칠 뒤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남북관계에서 최대한 협력 관계를 넓혀 가면 북미대화를 촉진할 뿐만 아니라 필요한 경우에 대북 제재의 일부 면제나 예외 조치를 인정하는 데 필요한 국제적 지지를 넓히는 길이 될 것”이라며 “북미대화만 바라보지 말고 남북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고도 했다.41)

올해 정부의 대북정책 초점도 남북 간 독자적 협력 공간을 모색하는 데 맞춰졌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1월 종교·사회단체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부는 북미관계가 해결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미국 팰로앨토에서 한미일 외교장관 연쇄 회담 후 기자들과 만나 “특정 시점에 따라서는 북미가 먼저 나갈 수도 있고 또 남북이 먼저 나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42) 한국이 이런 정책 결정에 이른 것은 지난해 비핵화 협상이 표류하고 남북관계까지 냉각하면서 북미 대화만으로는 비핵화 진전을 이루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남북관계 개선 의지와 달리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재선 가도에 도움을 줄만한 성과가 보장되지 않으면 올해 애써 북한과의 대화를 추진할 이유가 없다. 그는 자신의 대북 관여정책 이후 북한이 핵실험과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ICBM 실험을 중단한 것을 치적으로 내세워 온 만큼 대선 전까지는 비핵화 협상 진전보다는 북한이 재선가도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북한을 상대로 ‘김 위원장이 미 대선에 개입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경고성 메시지를 보낸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보인다.

미 정부는 비핵화가 선행되지 않는 한 북한에 대한 입장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친서 외교’로 우의를 유지하는 동안에도 미 국방부는 지난 4월 펴낸 ‘핵 억지’ 관련 보고서에서43) 북한을 여전히 이란과 나란히 ‘불량 정권'(rogue regime)으로 칭하고 북한이 지속해서 핵·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추구해 지역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에스퍼 국방장관도 3월 독일 뮌헨안보회의와 작년 12월 미국외교협회(CFR) 강연에서 북한과 이란을 ‘불량 국가’로 규정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3월 주요 7개국(G7) 화상회의에서 경제 제재를 통해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는 최대 압박 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동참을 촉구했다.44) 5월에는 국무부가 북한과 이란 등의 제재 회피에 대응하기 위해 부처 합동으로 ‘국제해상 제재 주의보’를 발령했고 법무부는 북한 국적자와 중국인 국적자 30여명을 25억달러 규모의 돈세탁 관여 혐의 등으로 기소하며 제재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이런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시도에 미국이 제동을 거는 듯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 1월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문 대통령의 남북협력 추진 구상과 관련 “향후 제재를 촉발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려면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서 다루는 것이 낫다”고 말한 것이 발단이 됐다. 한국이 남북협력 사업을 추진하려면 미국과 먼저 협의해야 한다는 의미로, 주재국 정상의 발언에 공개적으로 제동을 거는 듯한 모양새여서 청와대, 정부와 여당이 잇따라 불쾌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한미 간 엇박자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청와대가 남북협력 구상에 대해 양국 간에 이견이 없다는 해명으로 진화에 나서면서 잠잠해졌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취임 3주년 특별연설 이후 질의에서도 “이제는 북미 대화만 바라보지 말고 남북 간에 있어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은 찾아내서 해나가자”며 남북 관계 해법으로 독자적 협력 의지를 밝혔다. 이에 대해 미 국무부는 남북 협력에 대한 지지를 밝히면서도 비핵화 진전과 보조를 맞춰가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45)

40) ‘文대통령 “김정은 답방 노력…거듭 만나고 끊임없이 대화 용의”(종합)’, 연합뉴스, 2020. 1. 7
41) ‘문 대통령 “남북관계 협력시 제재완화 국제 지지 얻을 수 있어”‘ 연합뉴스, 2020. 1. 14
42) ‘강경화 “남북이 북미보다 먼저 나갈수도…’예외인정 사업’ 논의”(종합)’ 연합뉴스, 2020. 1. 15
43) Department of Defense, “NUCLEAR DETERRENCE: America’s Foundation and Backstop for National Defense’, April 7, 2020
44) ‘폼페이오, G7에 북 비핵화 단합강조…’우한 바이러스’ 논란도(종합2보)’ 연합뉴스, 2020. 3. 26
45) ‘美국무부 “대북 유연 접근법 의향…남북협력-비핵화 진전 보조”‘ 연합뉴스, 2020. 5.11

3. 한미 대북 정책공조 엇박자 우려하는 美 조야

비핵화 협상에 대한 미국 전문가들과 언론의 시각은 북한의 비핵화 없이는 제재 완화도 없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원칙과 대동소이하다. 수미 테리 CSIS 선임연구원은 지난 2월 상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1년 평가’ 청문회에서 “북한은 제재 완화를 담보하면서 국제사회가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으로 수용하길 기다리고 있다”며 “미국이 섣부른 제재 완화와 같은 합의를 서둘러선 안 된다”고 했다. 또 “우리는 지속적 대북 압박으로 뒷받침되는 외교를 계속 추구해야 한다”며 “목표는 북한뿐만 아니라 조력자와 사업 파트너까지 조준해 포괄적 제재 집행을 계속 강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46)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같은 청문회에서 “과거 비핵화 합의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핵 위협 감소를 위한 외교적 시도를 계속해야 한다”면서도 진전을 위해 기존의 협상 기준을 낮춰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미국은 (한국과) 군사훈련 자제 및 취소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했다.47)

미 조야에서는 재선 성공이 당면 과제인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11월 선거 전까지는 북한에 대한 ‘최대의 압박’을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 보인다.48) 그런 만큼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한국 정부의 노력이 자칫 한미 간 대북 정책공조 균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감지된다.

한국 정부가 북한 비핵화보다 남북 관계 개선에 우선순위를 두면서 대북 관여가 비핵화 진전과 보조를 맞추지 않고 가속할 경우 한미 동맹에 긴장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49) 미 의회조사국이 12월 발간한 보고서도50) “문재인 정부에서 서울은 워싱턴보다 평양에 더 많이, 더 일찍 양보하는 데 우호적이었다”며 “국제사회와 미국의 (대북) 제재는 문재인 정부가 미국의 승인 없이 더 많은 것을 하는 것을 막는데, 이것이 주기적 긴장의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46) Sue Mi Terry, “North Korea Policy One Year After Hanoi,” Statement before the Senate Foreign Relations Subcommittee on East Asia, the Pacific and International Cybersecurity Policy, February 25, 2020
47) Bruce Klingner, “Stalled Denuclearization Talks: Waiting for the Phone to Ring or the Other Shoe to Drop,” Testimony before the Subcommittee on East Asia, the Pacific, and International Cybersecurity Policy of the Senate Committee on Foreign Relations, February 25, 2020
48) Rob York and Harry Kazianis, “US-Korea Relations: Failing to Find Common Cause,” Comparative Connections, Vol. 22, No. 1, pp 43-52.
49) Sue Mi Terry, “Adapting the South Korea-U.S. Alliance to Meet the Challenges of the Twenty-First Century,” CSIS, pp 116-117
50) Emma Chanlett-Avery, “U.S.-South Korea Alliance: Issues for Congress,”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December 10, 2019

Ⅴ. 결론

70년 전, 한반도 공산화를 막기 위해 나란히 피 흘려 싸웠던 한국과 미국은 최근 어느 때보다 큰 위기를 맞은 듯하다. 막대한 시장과 경제력을 등에 업은 중국이 패권을 노리고 군사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위협하고 있다. 여기에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해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수호자 역할을 내던지고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편협한 거래적 외교 정책51)을 펼치면서 한미 관계도 삐걱대고 있다.

한국은 그동안 경제와 북핵 문제 탓에 미중 사이에서 중간자적 입장을 견지하면서 양국 갈등에 대응하려 노력해왔다. 그러나 미중이 본격적으로 신냉전으로 들어서면 한국도 곧 피할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될 것이다. 국내에서는 중립적 외교 노선이 해법으로 제시되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미국은 한국의 이런 태도에서 동맹 관계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는 분위기다. 오히려 그동안 미국이 중국과 대립해온 여러 사안에서 한국이 모호한 태도를 보이거나 중국에 동조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인식 탓에 한국이 미국과 멀어지고 중국과 가까워진다는 이른바 ‘중국 경사론’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듯하다.

인간관계에서 오랜 세월 동고동락한 친구와 지인이 격한 싸움을 벌일 때 양쪽 눈치를 살피며 이익만 챙기겠다는 친구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국가 간의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사드 배치 논란 당시 좌고우면하는 한국을 보면서 미 조야에서 한미동맹 균열설이 일었던 것도 이런 맥락이었을 것이다.

미중 사이에서 한국 정부는 개방형 시장경제, 투명성, 민주주의 등 중요한 원칙을 지키면서 경제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국익 보호 외교를 모색하고 있지만 현 상황에서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이다. 지금껏 그래왔듯 미중 어느 쪽에도 관여하지 않겠다는 자세만으로는 자칫 양국 모두에게 외면당할 수도 있다. 형세의 유불리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이상적인 해법이겠지만 이솝우화에서 날짐승과 들짐승 모두에게 배척당하는 박쥐와 같은 처지가 될 수도 있다. 그런 만큼 한국 정부는 양자택일의 상황은 최대한 피하면서도 피치 못할 선택의 순간에 대비해 내부적으로는 전략적 우선순위를 정립하고 최종적으로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국익에 최대한 부합하는지 검토해둬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고려돼야 할 점은 오래 전 민주주의를 선택한 한국이 1인 지도 체제 아래 사회주의 체제의 확산을 꾀하며 군사굴기(堀起)에 몰두하는 중국과 신뢰에 기반을 둔 지속가능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한국이 미중 갈등에서 중국의 입장을 지지한다면 한미 동맹 균열이 불가피할 텐데 과연 중국과의 원만한 관계가 한미 관계를 위태롭게 하면서까지 추구할 가치가 있는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충분한 대책 없이 중국과 손을 잡았다가 낭패를 본 국가들의 사례는 이미 곳곳에서 눈에 띈다. 중국은 지난 10여년간 상환 능력이 없는 아프리카·아시아 각국에 수천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한 뒤 이들의 채무를 이용해 전략 목표를 실현하는 이른바 ‘채무 함정식 외교’를 펼쳐왔다.52) 스리랑카 정부는 중국에서 돈을 빌려 남부에 함반토타 항을 조성했다가 빚을 갚지 못하면서 중국에 무려 99년간 항구 운영권을 넘겨야 했다. 아프리카 동부 지부티는 2017년 대외채무가 GDP의 100%에 이르면서 자국 영토에 중국의 해군기지 건설을 승인해야 했다. 아프리카 55개국을 거느린 아프리카연합(AU)은 중국 자본 2억 달러를 들여 중국 국영회사가 지은 에티오피아에 본부 건물 곳곳에서 도청장치를 발견했다. 중국에 5년여간 매일 해킹당한 사실도 뒤늦게 알았지만 ‘차이나 머니’ 의존도가 높은 아프리카 각국은 냉가슴만 앓다 입을 다물었다.53) 이렇듯 중국과의 긴밀한 의존 관계에는 대체로 큰 대가와 횡포가 따른다. 때늦은 후회를 하는 나라들의 사례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오래 함께 가야하는 친구 사이일수록 할 말은 분명히 해야 한다. 한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무리한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에 단호하게 대응해 국익에 가장 부합하는 합의를 끌어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공동의 가치를 위협하는 존재가 등장했을 때 친구가 내민 손을 외면한다면 금이 간 우정이 예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우리가 주변 강대국들의 횡포와 북핵의 위협에 대응해야 할 때 동맹 미국이 우리 곁에 서주기를 기대하듯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연합전선에 한국이 동참하기를 기대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동맹에 대한 의리를 국익보다 우위에 둬야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과의 관계를 지키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눈앞의 실리를 따르는 것보다 중요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한국은 그동안 중국의 몽니에 소극적으로 대응해온 감이 없지 않았다. 한국 영토에 사드가 배치됐을 때 중국은 치졸한 보복을 퍼부었고 미국이 한국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할 가능성에 대해 주한 중국대사는 한국 의원들 앞에서 “어떤 후과(後果)를 초래할지 여러분들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라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54) 중국 지도자의 한국 대통령 특사에 대한 하대 논란이55) 끊이지 않는 것도 중국이 한국을 대등한 상대국으로 여기지 않음을 보여준다. 강대국과의 관계에서 한결같이 저자세를 취하는 국가가 존중받지 못한다는 사실은 중국이 한국을 대하는 태도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한국은 한반도 비핵화뿐 아니라 패권 야심을 드러내며 군사력 강화에 속도를 내는 중국의 잠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지금까지 살펴봤듯 한국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진전을 위해 미 조야의 대북공조 엇박자 우려에도 남북 협력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중국과의 관계 유지에도 정성을 쏟았다. 그러나 북미대화를 촉진하려던 한국 정부의 노력에 북한은 “조미(북미) 사이의 문제, 더욱이 핵 문제에 있어서 논할 신분도 안 되고 끼울 틈도 없는 남조선 당국이 조미대화의 재개를 운운하는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를 치는데 참 어이없다”고 비웃었다.56)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중국과 밀착해 적극적인 애정 공세를 펼치는 북한의 행태를 보면 한국을 과연 진지한 대화상대로 여기는지 의심스럽다.

‘한반도 운전자론’을 내세운 문재인 대통령도 “북한 핵문제는 북미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듯57) 결국 한반도 비핵화 협상의 주체는 북한과 미국이다. 미국이나 북한 어느 한쪽이 움직이지 않는 한 비핵화 협상은 진전될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미국과 굳건한 동맹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현재 상황에서 한국에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동맹으로서 미국과의 신뢰를 회복하고 양국의 긴밀한 대북 정책 공조를 통해 비핵화를 위한 북한과 중국의 행동을 끌어내는 것이 중국의 도움과 북한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는 것보다 현실적인 방안으로 보인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포함해 G7 확대를 추진하는 데 대해 일본이 한국은 남북 화해를 우선시하고 친 중국 성향을 보인다며 반대한 사실이 알려졌다.58) 이렇듯 한국을 견제하는 주변국들은 한미 동맹에 균열을 일으킬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중국, 일본과 북한에 한미 동맹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올 빌미를 주지 않도록 한미 양국이 어느 때보다 신뢰 회복과 동맹 관리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51) Joseph S. Nye, Jr. “Do Morals Matter? Presidents and Foreign Policy from FDR to Trump”(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20) pp 168-180
52) Parker, Sam and Gabrielle Chefitz, “Debtbook Diplomacy” Paper, Belfer Center for Science and International Affairs, Harvard Kennedy School, May 24, 2018
53) Mailyn Fidler, “African Union Bugged by China: Cyber Espionage as Evidence of Strategic Shifts,”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March 7, 2018
54) ‘추궈훙 中대사 “美, 한국본토에 中겨냥 전략무기 배치하면 후과”‘, 연합뉴스, 2019.11.28
55) ‘시진핑, 일대일로 접견서 日특사와 마주 앉아…”일본 배려”‘, 연합뉴스, 2019. 4. 25
56) ‘북 외무성 “남한, 비핵화 소리 집어치워야…낄 틈 없다”(종합)’, 연합뉴스, 2020. 6.13
57) ‘문 대통령 “선제타격으로 전쟁나는 방식 결단코 용납못해”‘, 연합뉴스 2017. 12. 6
58) ‘”일본, 한국 G7 참가 반대”…美 ‘트럼프 대통령이 결정할 것'(종합)’, 연합뉴스, 2020.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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