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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cupy DC’ 거리시위 취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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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초 주말 저녁, 인터넷전화에 갑자기 회사 번호가 떴다.
허걱.
게다가 국제부였다.
다시 허걱.
물론, 국제부 선배의 목소리는 반가웠다.
“주현씨, 잘 지내나?”
“그럼요!”
“음… 뉴욕에서 시위가 점점 커지고 있잖아. 혹시 주현씨가 취재하러 갈 수 있는 상황인지 한번 물어보려고. 지금 워싱턴은 한미에프티에이(한미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상원 제출 건) 때문에 좀 바쁘거든. 혹시 주현씨가 가야할 수도 있어서 미리 물어보는 거야.”
“아… 뭐 워싱턴에서 뉴욕까지는 그리 멀지 않죠. 음… 근데, 무슨 시위 말씀하시는 거죠?”
“…………………(10여초가 흐른 듯했다) 아! 요즘 뉴욕에서 반월스트릿 시위 하고 있어.”
“어……… 그래요? 제가 놀러다니느라고 뉴스 잘 안 봐서요. 그랬군요….”
“어… 뭐 신경 안 쓰면 다 그렇지 뭐. 그래, 그럼 한번 생각해보고, 필요하면 다시 연락할게.”
 그리고, 회사에선 다시 연락이 없었다. 나중에 보니까 특파원 선배가 뉴욕에 가서 열심히 취재하고 1면부터 기사 쓰셨다.

 사실, 뉴스 없이 사는 일은 행복한 일이다. 아니, 뉴스 신경 안 쓰고 사는 일은 행복한 일이었다. 지난 8월부터 지금까지. 하지만, 이렇게 세상에 둔감한 건 좀 아니지 않나 싶었다. 그래도 직업이 기잔데.
기사를 검색해보니 뉴욕을 비롯해 여러 도시들에서 전국적인 시위 물결이 일고 있었다. 워싱턴 디시(DC)는 어떤가 해서 찾아봤더니 상대적으로 조용한 듯 했으나, 그래도 시위가 열리긴 하는 모양이었다. 10월 6일 워싱턴 디시 지하철역 메트로센터에 내렸더니, 13번가 저 어디선가부터 시끌시끌했다. 백악관을 비롯해 연방 부처의 건물들과 가까운 프리덤 플라자(FREEDOM PLAZA)였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연령층이 다양하다는 점이었다. 약 2천여명의 시위대(기자 추산) 가운데서도 중·노년층이 눈에 많이 띄었다. 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오늘 아침 뉴저지에서 오늘 새벽 6시30분에 출발해 차를 몰고 왔다는 마이클(51)은 친구와 함께‘TIME TO TAKE POWER. DUMP THE WAR(A 자리엔 유대인의 상징인 다윗의 별이 그려져있었다) LOBBY. END THE WAR$ NOW’라고 적힌 펼침막을 들고 서 있었다.

그는“가장 큰 문제는 기업의 탐욕과 막대한 전쟁비용”이라며“전쟁 때문에 나라 빚이 불어나고 전쟁을 멈춰야 국민들을 위해 돈을 쓸 수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 기업의 탐욕이 일상 생활에 실제로 미치는 악영향이 구체적으로 뭐냐고 물었더니“뱅크 오브 아메리카(BOA)가 내년 초부터 현금카드에 매달 5달러씩 물린다고 한다. 그게 바로 기업의 탐욕 아니냐”고 말했다.

 3년 전 사립학교에서 은퇴했다는 교사 출신 낸시 맥루어(65)도 후배 교사 머레인 올슨(61)과 함께 프리덤 플라자에 왔다.‘MONEY FOR JOBS & SCH00LS-NOT WAR’라는 팻말을 든 그는“전쟁은 기업들 배를 불리고 결국 기업의 지배력을 늘린다”며 “정부는 건강보험, 교육 등에 돈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부시정부 때부터 학교에 들어가는 예산을 줄였고 오바마 대통령 들어서도 변하지 않았다”며 “선생님들이 담당해야 하는 학생 수는 점점 늘어가고 교육의 질은 하락하는데 정부는 전쟁 하느라 돈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티파티 같은 데서는 교사들은 일 하는 데 비해 너무 돈을 많이 받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사립학교 교사들은 공립학교랑 달리 연금도 못받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교육은 미래에 대한 투자다. 미래에 대한 투자는 돈이 들어갈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곁에 있던 머레인도 “미국에선 1%만 점점 부유해질 뿐 나머지 99%는 모두 가난해진다. 이제 변해야 한다”라고 거들었다.

디시에서 가까운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에서 왔다는 대학생 트렌다(21)는 “3학기 전보다 일년치 대학 등록금이 1만달러가 더 올랐다. 99% 국민들은 도저히 버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특이하게도 훌라후프를 들고 있는 트렌다에게 왜 집회에 그걸 들고 나왔느냐고 물었더니, 영화를 전공한다는 그는“다른 사람들이 악기 같은 걸 들고 나오는 것처럼 나도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훌라후프를 가져왔다”고 다소 아리송한 예술적 답변을 했다. 이날 이라크 아브그레이브 수용소에서 고문당하는 포로를 본따 오렌지색 죄수복에 까만 두건을 뒤집어쓰고 시위 분위기를 돋운 케빈(55)은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마사지사로 일하다가 이번에 전국적으로 벌어진 시위 물결에 몸을 실었다.

그는 자신의 복장에 반전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설명하면서“미군들은 이라크 포로들을 고문할 때 합법적(legal)이라고 생각했지만 고문은 고문이었다”고 말했다. 시위하느라고 돈을 못 벌면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어차피 돈 없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오케이”라고 답했다. 그는“이렇게 부자 나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의료보험 혜택도 못받고 푸드 스탬프로 살아가는 게 말이 되냐”며 “계속 시위를 하는 도시로 이동하며 투어를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2008년 가을 본격적인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는 잠잠했던 사람들이 왜 3년이나 지나서 이제야 거리로 나온 것일까? 궁금해 물었다. 중동 민주화 혁명 때문이었다는 답들이 여럿 나왔다. 뉴저지 주립대학에서 재즈를 공부하고 있는 알렉스 실로비츠(23)는 “중동 민주화 혁명이 영감을 줬다”고 말했다. 그는 “도저히 바뀌지 않을 것 같았지만 이집트 사람들은 민주화를 이뤘다. 그게 정치적 민주화였다면 우리가 원하는 것은 사회적, 경제적 민주화”라며 “30년 동안 교사로 일한 아버지보다 대기업 신입사원인 30세 여동생이 5배나 많은 연봉을 받는다. 그건 너무나 불공평한 일”이라고 말했다. 침낭을 짊어지고 6일째 시위가 벌어지는 도시를 다니며 노숙을 해온 그는 “오늘 저녁 6시에 중동 전문가로 유명한 저널리스트 크리스토퍼 헤지스(Christopher Hedges)가 프리덤 플라자에서 발언을 한다. 시간이 되면 꼭 와서 들으라”고 했다. (나중에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크리스토퍼 헤지스는 중동, 발칸반도 등에서 20년 넘게 취재를 하며 크리스찬 사이언스 모니터, 뉴욕 타임즈 등에 글을 썼고 테러리즘에 대한 기획기사로 2002년에 풀리처상을 정수상했으며 같은 해에 국제사면위원회(AMNESTY)로부터 인권보도상을 받기도 한 쟁쟁한 기자였다)

 한국에서 살면서 모든 이슈가 ‘정치’로 모아지는 것을 경험했던 나로서는, 미국 사람들이 경제 정책 방향을 제대로 못 잡는‘정부’보다 시장의 욕망에 충실한 ‘월스트리트’를 비판하는 게 다소 의아했던 게 사실이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선 모든 중요한 역사는 여의도가 아니라 청와대 앞 광화문 광장에서 쓰여진 것이 아니었던가.

 대학을 졸업했지만 수만달러에 이르는 학자금 빚을 갚지 못하고 있다는 한 시위자는 “정책이 잘못됐고 의회가 월스트릿에 놀아나는 것은 알고 있지만 정부는 시장보다 훨씬 힘이 약하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렇게 시위를 통해 정부가 우리의 뜻을 대표하도록 압력을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99%를 대표하는 강한 정부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낸시는 “오바마는 힘이 약해서 스스로 반기업적인 정책을 펼 수 없다.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그가 제대로 일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길거리에서 만난 시위대들은 워싱턴 디시가 다른 도시들보다 잠잠하다는데 동의했다. 알렉스는 “워싱턴 사람들은 경력 쌓느라 바빠서 그런 것 같다”고 냉소어린 설명을 내놨고, 케빈은 “여기는 합법적 부패(legal corruption)가 만연한 곳 아니냐. K스트릿을 봐라”고 말했다. (케이 스트릿은 의회와 정부가 자신들에게 유리에게 정책을 채택하기 위해 각종 기업과 이해관계 단체들이 고용한 로비스트가 몰려있는 거리다). 이번 시위를 조직하는 데 참여한 한 반전단체 활동가는“워싱턴 디시는 본래 상주 인구가 적고 공무원들이 많은 곳이니 디시 사람들이 참여하는 건 좀 어렵다”고 설명하다가 “게다가 공무원은‘굿 잡’이잖아?”라며 여운을 남겼다.

 그렇다면 이처럼 월스트릿반대운동 열기가 뜨거운데도, 왜 이와 정반대인 티파티 운동 역시 인기가 있는 걸까? 알렉스는 “폭스뉴스 같은 걸 봐라. 시위대를 반애국자로 몰아붙인다. 그런 일방적인 텔레비전 뉴스가 사람들 눈을 감게 한다”고 말했다. ‘YOU SEE HIPPIESS. WE SEE PATRIOTS’라고 적힌 손팻말을 직접 만들어서 프리덤 플라자에 온 웬디는 “보수적인 미디어들은 우리를 히피라고 부르면서 우리 활동을 폄하한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이뤄낼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공연’뒤 시위대들은 광장에서‘99%’ 형태로 둘러앉아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다(THIS IS WHAT THE DEMOCRACY LOOKS LIKE)” “전쟁 종식, 세금 인상(END THE WAR, TAX RAISE)” 등을 외치다가 한시간 가량 백악관 앞 등을 돈 뒤 거리시위를 마무리했다. ‘깔끔한 ’수도에서 모처럼 등장한 대규모 시위대를 보면서, 거리를 지나던 시민들은 대부분 휴대폰을 꺼내들어 이 광경을 찍었다. 시위대가 점령한 차선 옆을 지나던 차량들은 이따금씩 경적을 울리며 격려했고 그때마다 시위대들은 환성을 터뜨렸다.

 이들은 과연 월스트릿을 이길 수 있을까? “아이 돈 노우!” 반전단체인 ‘THE WORLD CAN’T WAIT’의 디렉터인 데브라 스윗은 거듭 고개를 흔들었다. “아이 돈 노우!” “170여개 되는 시민단체들이 5월에 모여서 계획하긴 했지만 이렇게 전국적으로 시위가 벌어질 줄은 몰랐다. 또 지난 3주 동안 뉴욕에서처럼 이런 식으로 전개될 줄도 몰랐다. 우리도 놀랐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집트의 무바라크 30년 독재가 그렇게 무너질 줄 이집트 사람들은 알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