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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밖은 위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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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밖은 위험해”

스페인 비자 3개월 내 거주증으로 변경해야 재입국 가능

집-> 계좌-> 휴대폰 순서로 정착 준비해야 쉬워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지난해 9월부터 연수를 받고 있다. 미국 연수는 축적된 경험들이 많아 LG상남언론재단의 오리엔테이션에 참고할 만한 조언들이 많지만 스페인은 매우 생소해 초반부터 현지 적응을 위한 정보 수집이 쉽지 않았다.

도착과 적응을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현지에서 사용할 스마트폰을 개통하는 절차라고 판단했다. 주한 스페인 대사관에서 받은 비자는 3개월 내 거주 허가증(Tarjeta de Identidad de Extranjero: TIE, 띠에)으로 반드시 교체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도 현지 연락처를 만드는 것은 필수였다.

코로나19에 대해 대중교통 탑승 시 마스크 착용 빼고는 무감각해 졌다고 싶을 스페인 분위기였지만 여전히 이민국 약속 잡기는 코로나19로 인한 행정적 지연으로 쉽지 않아져 이 일부터 처리해야 한다고 맘을 먹었다.


스페인 1위 통신사업자 텔레포니카의 모비스타 매장(왼쪽)과 프랑스 통신사 오랑주의 대리점

물론 현지에서 선불로 충전해 쓸 수 있는 유심(USIM) 카드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1년 연수를 받을 것이기 때문에 이 방법을 선택하진 않았다. 더구나 외국인들이 집을 빌리거나 자동차를 구독할 때 신용을 증명하기 위해 제시해야 하는 후불 요금 통지서를 제대로 받고자 한다면, 선불폰을 개통하는 것은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닐 수 있다고 판단했다.

스페인 통신 사업자인 프랑스 오랑주(Orange) 대리점을 방문했다. 여권을 제시하고 필요한 가입 절차를 입력했다. TIE가 없고 여권으로 일반 요금제에 가입한다고 하니 오랑주 직원은 당황했다. 특히 가입자들의 국가 표시하는 중 우리나라는 선택할 수 있는 국가에도 아예 빠져 있었다. 직원이 일본으로 대충 입력하고 다음 절차를 진행하려 했지만 진행이 불가능 했다.

스페인은 외국인에게 비자를 내줄 때 특정한 번호를 내준다. Numero de Identidad de Extranjero(NIE, 니에)라고 하는데 TIE는 NIE를 적은 실물 카드다. 보통 비자 발급시 NIE 번호가 나온다. 몇 마디를 더 나누다가 이 직원 역시 아르헨티나에서 온 외국인이란 걸 알게됐다. 본인의 거류증 카드인 TIE를 보여주면서 이 카드가 없으면 개통이 어렵다고 설명해 줬다. 결국 당분간 로밍 폰이 있으니 아쉽지만 물러섰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휴대폰이 필요한 이유는 거류증을 받기 위한 중요한 절차이기 때문이었다. 현지 번호가 없으면 약속을 잡을 수 없다. 순서를 바꿔 도전하기로 했다. 휴대폰->계좌->집 순서에서 집->계좌->휴대폰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스페인에서 외국인은 집구하기도 만만하지 않다. 대부분 직전 계약서, 보증인, 지불 능력을 검증하는 서류 등을 요구한다. 다행스럽게 LG상남언론재단의 영문 재정 보증서가 있었지만 대부분 집주인과 중개소에선 현지의 급여 명세서를 요구했다. 결국 현지 온라인 중개 업소인 포토카사(FOTOCASA)에 카드 번호를 오픈하고서야 급한대로 집을 구할 수 있었다.

집 계약은 여러모로 중요했다. 은행 계좌를 여는데 거주지가 필수이고 거주증을 받는데도 일부 지방정부에서는 전입 신고서에 해당하는 거주증명(empadronamiento, 전입신고서)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집 계약이 해결된 후 쉽게 은행 계좌를 열 순서였다. 스페인 1위 은행인 산타데르를 찾아가 여권과 집 계약서를 제출했다. 직원이 추가 서류를 요청했지만 집 계약서가 나오자 추후에 다른 서류들을 보충하기로 하고 쉽게 계좌가 만들어졌다. 다만 집주소로 카드를 보내주지 않고 은행에서 수령하고, 카드의 비밀번호는 은행이 정하는 우리나라 절차와 상식과는 다른 점들이 있었다.

계좌가 만들어졌으니 이번에 다시 휴대폰을 개통하기로 했다. 스페인 1위 통신사업자인 텔레포니카를 찾아갔다. 은행 계좌가 생기니 친절하고 빠르게 휴대폰이 개통이 가능했다. 전화번호가 생겨 다시 은행에 로밍 전화번호 대신 현지 전화번호를 등록하니 현지 핀테크 ‘비줌(Bizum)’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집주인과 렌트비도 편하게 온라인 송금 할 수 있었다.

중간 정리를 하자면 일단 집주소가 중요하다. 계좌를 만드는데 필수이고 계좌가 있어야 선불 요금제가 아닌 후불 요금제로 휴대폰 가입이 가능하다. 이 후불 요금제와 전기료 등을 꾸준히 내고 있다는 증명이 있어야 또 신용이 생긴다. 거류증을 받기 위한 세금도 은행 계좌로 지불해야하기 때문에 정착 과정에서 계좌 계설은 필수 절차다. 거류증이 없으면 스페인 이외 국가로 출국할 경우 재입국이 불가할 수 있다.


스페인 그라나다 산아가피토에 위치한 이민국. 사전 예약 없이 방문은 불가능하다.

다행히 휴대폰 번호가 생기자 이민국 예약 약속(Previa Cita)을 잡을 수 있었다. 서류를 잔뜩 갖춰 이민국에 갔다. 보통 스페인의 스페인어는 극 존칭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민국은 달랐다. 고압적인 명령어가 입구부터 난무했다. 서류 심사는 통과했고 한달 후에 거류증을 다시 예약 약속하면 되는 것인데 이 과정에선 나의 경우 전입 신고서를 보지 않았다. 일부 지역 특히 내가 살고 있는 그라나다 이민국은 전입신고서 제출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학교 담당자의 말이 맞은 셈이다. 그래도 이 거류증 수령 절차를 위해 집, 계좌, 휴대폰 등의 일을 시간에 맞춰 빠른 속도로 진행할 수 있었다.

다만 1개월 이후 보통 문자를 보내면 결과를 통보한다는 ARS 전화 번호에 수십번 문자를 보내도 결과가 오지 않았다. 그 사이 3개월이 지났다. 결국 스페인 이외 나라에 출국이 불가능해진 시점까지 다가왔다. 다행히 학교의 외국인 웰컴 센터에 문의했더니, 이민국과 경찰청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온라인으로 확인이 불가능한 경우가 종종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친절한 웰컴 센터 책임자는 다른 사람의 인증번호인 NIE번호를 활용해 TIE 수령 날짜를 앞당길 수 있다고 설명해줬다. 닐짜를 앞당겨 합법 체류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렇게 약속을 잡고 나와 있었지만 전화와 문자로는 발급 여부를 전혀 확인 불가능했던 나의 거류신분증 TIE를 받을 수 있었다. 입국한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시점이었다.
TIE가 있으면 살기가 여러모로 편하다. 차량 장기 렌트의 경우 온라인으로 접수 받는 구독 방식의 형태인데 대부분 TIE를 찍어 보내길 요구하기 때문이다. 결국 TIE를 받고 렌트 장기 구독 승인받고 빠르게 차량을 수령했다.

하지만 비자를 한번에 1년치를 받고 가는 미국에 비해 스페인의 제도는 이민자나 외국인에게 꽤 불편한 점이 많다. 이민자들의 지문을 관리하고 거주지를 파악하는데 필요하다고 보기엔 절차가 지나치게 성가시고 까다롭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비슷한 방식을 취하고 있는가를 보니, 유럽연합(EU) 대표 선진국인 독일에선 비자를 1년짜리로 내주는 방식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스페인에서 관련 업무를 처리하는 이민 관련 법률가들이 성업 중에 있다. 물론 법률가의 도움을 받았다면 쉬웠겠지만 이 과정을 직접 해본다는 것에 의의를 뒀다. 누군가가 스페인으로 연수를 온다면, 우선 계좌를 선불폰으로 휴대폰을 개통한 다음 독일 N26 등 인터넷 은행을 통해 계좌를 만들고, 다시 이후 후불폰으로 바꾸는 방식을 권할 거 같다. 그 기간 동안 거주지는 발품을 팔아 적당한 집을 찾은 다음 이민국에 가서 TIE를 신청하면 거류 당당한 거류 자격자가 될 수 있다. 결과는 온라인으로 확인할 필요도 없이 약속을 잡아 직접 TIE 수령할 수 있다고 경험을 살려 정리해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발품이나 네이버 까페 등에서 일일이 정보를 확인하기 쉽지 않으니 한번 쯤은 정리해 둘 필요성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