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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를 통해 본 미래 사회와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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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연수를 시작하면서 꼭 참가해 보겠다고 생각해 일정에 넣은 행사들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CES였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CES (Consumer Electronics Show)는 전세계 IT, 가전 등의

최신 기술력을 한 눈에 볼 수 있으며 미래 기술의 방향을 전망해 볼 수 있는 장으로 매년 1월 라스

베이거스에서 개최됩니다. 올해는 4천7백여 개의 전시 업체, 18만명이 넘는 참가자가 모였고 전시

공간은 290만 스퀘어 피트로 사상 최대의 규모로 집계됐습니다.

 

올해 CES에 미디어 자격으로 참여하면서 5G로 연결된 AI 기기들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글로벌 기업들의 기술력은 어디까지 왔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몸 담고

있는 미디어는 어떤 식으로 자리 잡아야 할지도 함께 고민해 봤습니다.

1. 자율주행 자동차는 하나의 예시일 뿐

 

CES에 참가한 기업들의 지향점은 인간이 아침에 눈을 떠 저녁에 잠이 드는 순간까지, 아니 잠을

자는 동안에도 AI가 지속적으로 인간을 보조하는 기술의 개발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입니다.

 

알람이 울려 일어나면 하루 일정을 AI 스피커가 자동으로 알려주고, 행선지를 차량 공유앱에 입력

하면 자율주행 셔틀이 집 앞까지 찾아 옵니다. 차 안에서는 회의 자료를 살펴보거나 영화를 보면서

휴식을 취하죠. 집에서는 냉장고에 어떤 음식이 비어 있는지를 파악해 자동으로 주문하고 모바일로

주문한 상품은 자신이 지정한 집안 어딘가에 택배 로봇이 배달을 해 주기 때문에 도난 당할 우려도,

다른 장소로 찾으러 갈 필요도 없습니다. 저녁 메뉴는 AI가 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는 음식점을 검색

해 추천을 해 주는데, 추천을 받아들이면 자동으로 주문을 넣어 주고 신용카드 결제도 당연히 알아

서 해 줍니다. 집에 돌아올 때 쯤엔 집안 온도가 원하는 수준으로 맞춰져 있고 굳이 열쇠를 꺼내지

않아도 나를 인식해 문을 열어줍니다. 물론 집안 청소는 로봇이 이미 자동으로 해 놓은 상태겠죠?

우리가 편해지고 싶은 마음에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실제로 구현될 날이 머지 않아 보였습니

다.

 

이번 CES에서 많은 관람객들을 모았던 곳 가운데 하나가 5인승 자율주행 드론 ‘벨 넥서스’를 선보

인 벨 헬리콥터 부스였습니다. 우버와 공동 개발한 자율주행 드론이었는데 우버는 2023년에 항공

택시 서비스를 상용화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상태입니다. 자율주행 자동차를 넘어 자율주행 드론

이 현실화된다면? 미래 사회를 그린 영화에는 어김없이 등장하는 고층빌딩 사이를 날아다니는

운송 수단, 그것도 자동으로 알아서 목적지를 찾아가는 운송 수단이 머잖아 상용화할 수도 있겠다

는 생각도 했습니다.

2. 스마트 세상,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렇게 스마트한 세상에서 정작 인간은 무엇을 할까요? 기업들이 고민하는 보다 핵심적인 질문은

여기에 있어 보였습니다. 자율주행 자동차를 가정해 봅시다. 차가 자동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자동

차에 탄 사람은 운전 대신 다른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잠이나 자야지 하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세상은 우리를 그렇게 놔두지 않을 것 같습니다.

 

현대자동차는 자동차 안에 스포츠 활동이 가능한 장치를 넣기도 했습니다. 노를 젓는 운동기구를

차안에 넣어서 차를 타는 동안 신체를 단련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입니다. 정보와 오락을 동시에

공유하는 인포테인먼트로 방향을 잡은 벤츠, 디즈니와 손을 잡겠다고 발표한 아우디도 같은 고민

을 하고 있는 것이겠죠.

 

자동차의 디자인이나 차량 성능 개선을 넘어서 자동차 안에서 구현될 인간의 활동에 집착하는 것

도 바로 그런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자동차가 TV이자 영화관이자 쇼핑몰이자 체육관이

되는 종합플랫폼인 셈입니다.

 

비단 자동차만은 아닐 겁니다. 인간이 해야 할 일을 기계와 로봇, AI가 대신해 줄수록 인간이 활용

할 수 있는 시간은 많아지고 그 시간을 선점하는 기업이 미래 산업을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미래 미디어도 인간이 어떻게 시간을 활용하도록 할 것인가, 인간에게 어떤 새로운 경험과 유용성

을 제공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운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보입니다.

3. 기업들이 집착하는 것은

 

이번 CES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지켜 봤던 대목은 대부분의 기업들이 협력 관계를 강조

했다는 것입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원수지간이나 다름 없었던 삼성과 애플

의 협력관계 구축이었습니다. 삼성전자의 스마트 TV에 애플 아이튠스 무비 TV쇼와 에어플레이2

를 동시에 탑재한다는 것인데 많은 놀라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런 협업의 이유는 앞서 말씀드린 내용에 포함돼 있듯 이제는 한 개 주력 분야의 성공만으로 기업

의 생존을 보장하기 어려운 시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입니다. 가령 자율주행 자동차에서 VOD를 보고

쇼핑을 한다고 가정할 때 자동차 회사가 영상 콘텐츠를 만들고 쇼핑을 위한 유통망까지 확충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경쟁력도 없고요.

 

반대로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 입장에서도, 또 유통 회사 입장에서도 자동차까지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자동차와 영상 콘텐츠 제작사, 쇼핑 업체가 협력하지 않으면 안되는 세상이 도래

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온라인 유통을 넘어 오프라인 업체들을 사들이며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

는 아마존이 그래서 더욱 무서운 기업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여기에 네트워크, 게임, 영상장비, 보안 등의 업체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협력 관계는 어쩌면 기업

의 생존을 위해 필연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글로벌 기업들의 합종연횡은 엄청나게 활발
히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4. 지금 우리는?

 

항공 택시가 개발되고 있는 마당에 우리 나라에서는 차량 공유 서비스 관련 갈등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상상력을 동원해 저만치 앞서 나가고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과거 산업의

틀, 당장의 이해관계를 벗어나지 못한 채 논란으로 시간만 허비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

니다.

 

미래 사회에 대한 대비, 이를 테면 미래 산업 정책 활성화를 위한 법 제도 개선이나 개인정보 보호

방안 마련 같은 것도 사실 거의 없는 상태나 다름없습니다. 해외 글로벌 기업들이 국가 간 장벽이

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시장을 장악하고 나면 그 때는 우리 나라의 산업 기반 자체가 붕괴될 것 입

니다. 지금은 서로 경쟁하는 해외 기업들이 서로 힘을 합쳐 전 세계 시장을 석권하는 세상, 생각만

해도 섬뜩하지 않으십니까?

 

혁신과 협력 없이는 이들 몇몇 기업에 대한 종속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이번 CES는
경고하고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