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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일 만에 보금자리에 안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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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간의 연수생활을 위해 미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를 꼽으라고 한다면 집 구하기, 차량 구입, 살림살이 장만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중에서도 집을 구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요즘엔 하루라도 빠른 정착을 위해 미리 한국에서 집을 구하고 입국하시는 분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저도 처음엔 ‘다른 건 몰라도 집 문제만큼은 미리 해결하고 가자’는 생각에 한국에서 인터넷을 통해 열심히 집을 찾아봤습니다. 아파트를 찾아주는 사이트도 많이 있었고 아파트 또한 많았지만, 검색을 하면 할수록 결정하기가 점점 어려웠습니다. 일단 사이트에 등장하는 아파트들의 사진이 비슷비슷해 사진만으로는 차별성을 착지가 쉽지 않았고 각 아파트의 사양들도 대동소이해 보여 장단점을 파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아파트 거주자들이 올려놓은 평가 글들도 꼼꼼하게 들여다 봤지만 이 역시 큰 도움은 되지 못했습니다.

제가 연수중인 학교는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durham)시에 있는 듀크대인데 이곳의 한국인 연수생들은 채플힐(chapel hill)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처음엔 채플힐 위주로 알아봤었는데 채플힐은 아이들 학군이 좋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집들이 다소 낡았고 월세가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아이가 없기 때문에 굳이 채플힐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더럼(durham)이나 랄리(raleigh), 캐리(cary) 같은 인근 도시까지 선택의 폭을 넓혔는데, 선택의 폭이 넓어지다 보니 결정하기가 더 어려웠습니다. 고심 끝에 7~8곳 정도의 후보 리스트를 뽑은 뒤 현지에 가서 직접 눈으로 보고 결정하기로 하고 다소 불안한 마음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입국 첫 날, 미리 예약해둔 호텔로 향했습니다. 한국에서 미리 리스트를 뽑아 왔기 때문에 호텔에서 1주일 정도 머물며 하나하나 둘러볼 작정이었습니다. 처음엔 낯선 땅에서 저희 두 사람이 직접 집을 보러 다닌다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친구 소개로 알게 된 현지 교민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일단 그 분과 함께 한국에서 뽑아온 리스트에 있는 아파트들을 찾아가 봤습니다.

약 나흘에 걸쳐 10여 군데를 둘러봤고, 이 가운데 후보를 3 군데 정도로 압축했습니다. 그런데 3곳 모두 단점이 있었습니다. 우선 한 곳은 빽빽한 나무들이 집 앞을 가로막고 있어 낮에도 햇빛이 거의 들지 않았습니다. 또 한 곳은 주변 환경은 좋았지만 집 지은 지가 오래돼 많이 낡아 보였습니다. 마지막 한 곳은 채광도 좋고 집 구조도 좋고 주변 환경까지 다 좋았는데 입주를 하려면 한 달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아무리 집이 마음에 들더라도 한 달이나 호텔 생활을 하며 기다린다는 건 무리였습니다.

그러던 중 집을 함께 알아봐 주시던 교민께서 저희 부부에게 솔깃한 제안을 하셨습니다. “내가 곧 이사를 가는데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 월세 계약이 한달 정도 남았으니 한달 간 서브리스를 할 생각이 없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는 고심 끝에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도 1년간 지낼 곳인데 급하다고 마음에 안 드는 곳에 들어가기 보다는 다소 불편하더라도 한달 간 임시 거처에서 지낸 뒤 마음에 드는 곳으로 들어가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는 그 분과 한 달간의 서브리스 계약을 맺는 것과 동시에 마음에 들었던 아파트를 찾아가 한달 뒤에 입주하기로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한 달 만에 이사를 가야 한다는 건 분명 번거로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최선의 선택을 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1주일 간의 호텔 생활을 청산하고 서브리스 아파트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대개 미국 집들이 그렇듯이 저희가 들어간 그 아파트도 거실과 방바닥이 모두 카펫으로 돼 있었는데 원래 알레르기가 있는 제 아내의 알레르기 증세가 카펫으로 인해 훨씬 더 악화된 겁니다. 더 큰 문제는 한 달 뒤에 입주하기로 한 아파트 역시 카펫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한 달은 어찌어찌 참아보더라도 1년을 이렇게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이 때부터 저희 부부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집을 처음부터 다시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제법 노하우가 생겨 다른 사람으 ㅣ도움 없이도 직접 집을 보러 다닐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카펫이 아닌 나무 마루(hardwood floor) 집을 찾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아파트 찾아주는 사이트를 뒤져 어렵사리 나무 마루 집을 찾아내 전화를 하면 “우리 아파트엔 카펫 집 뿐이다. 나무 마루 집은 없다”고 하거나 “나무 마루 집이 있기는 한데 두 달 뒤에나 입주가 가능하다”는 등 부정적인 답변이 돌아오기 일쑤였습니다. 또 마루가 깔려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 보면 “지금은 거주자가 살고 있기 때문에 집 내부를 보여줄 수 없다. 집을 안 보고 그냥 계약을 하든가, 아니면 집이 비게 될 때까지 기다려라” 이런 경우도 있었습니다.

결국 인터넷 사이트에만 의존할 수가 없어 직접 차를 몰고 돌아다니며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차를 몰고 가다가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새 아파트처럼 보이면 일단 해당 아파트의 임대 사무소(leasing office)로 들어가 나무 마루 집이 있는지 물어보는 식이었습니다. 요즘엔 미국에서도 나무 마루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추세여서 새 아파트의 경우 나무 마루를 까는 곳들이 꽤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숱한 임대사무소를 전전한 끝에 저희는 노스캐롤라이나의 주도인 랄리(raleigh)라는 도시에서 마음에 쏙 드는 아파트를 발견했습니다. 나무 마루가 깔려 있는 건 물론이고 주변 환경이나 채광 등 모든 면에서 만족할 만한 집이었습니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계약을 했고, 한달 뒤 입주하기로 계약했던 아파트에는 ‘사정이 생겨 입주할 수 없게 됐다’고 통보했습니다. 비록 보증금 150달러를 날리긴 했지만 후회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저희 부부는 입국한 지 약 40일이 지나서야 비로소 보금자리에 안착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 생활을 계획하고 계신 분들 가운데 집먼지나 진드기 등으로 인한 호흡기 질환이나 알레르기성 질환이 걱정되신다면 나무 마루 집을 한번 고려해보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나무 마루 집을 찾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아파트 찾아주는 사이트에 나와 있는 아파트 사양(amenities)을 보면 나무 마루 집인 경우 ‘hardwood flooring’이라고 기재돼 있습니다. 간혹 ‘hardwood flooring’과 ‘carpeting’이 병기돼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 거실만 나무 마루이고 방은 카펫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간혹 인터넷 사진을 보면 나무 마루가 깔려 있는데 사양에는 ‘hardwood flooring’이라고 기재돼 있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엔 실제로는 카펫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확한 걸 알고 싶으시면 해당 아파트측에 이메일로 문의하시는 게 가장 좋습니다. 이메일로 문의하시면 보통 하루 이틀 내에 답변이 옵니다. 문의 하실 때는 거실만 나무 마루인지, 거실과 방 모두 나무 마루인지 확인하시는 게 좋습니다. 간혹 주방 부분에만 나무 마루를 깔아놓고는 ‘hardwood flooring’ 운운하는 경우도 있으니 유의하셔야 합니다.

아울러 나무 마루 집도 단점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우선, 일반적으로 나무 마루 집이 카펫 집보다 월세가 다소 비쌉니다. 또 겨울에 카펫 집보다 추울 수 있습니다. 미국의 집은 우리나라와 달리 바닥 난방이 돼 있지 않고 벽이나 천장에서 히터가 나옵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바닥에서 냉기가 느껴지게 마련인데 바닥이 카펫이 아니라 나무 마루라면 냉기가 더 심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다행히 제가 살고 있는 집은 채광이 워낙 좋고 외풍이 거의 없어 추위 때문에 고생하지는 않았습니다. 나무 마루 집의 경우 특히 채광이 중요한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나무 마루 집의 또 한가지 단점은 카펫 집에 비해 상대적으로 층간 소음에 취약하다는 점입니다. 미국의 소도시에 있는 저층 아파트들은 우리나라의 아파트와 비교하면 매우 허술하게 지어져 있어 기본적으로 층간 소음에 취약한 편입니다. 그나마 바닥에 카펫이 깔려 있으면 카펫이 충격을 완화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나무 마루는 그렇지 못해 소음이 더 크게 들립니다.

따라서 나무 마루 집을 고려하고 계신다면 이런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나무 마루 집을 선택하는 게 더 나은 것인지 신중하게 따져보시고 결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