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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서 아이 키우기 위해 알아야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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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마지막 연수기라니, 시간은 역시 빨리 흐릅니다. 아직 귀국이 2달 넘게 남아 그런지, 곧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게 실감 나질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런던을 떠난다는 게 꼭 아쉽지만은 않습니다. 고물가, 고환율, 생활의 불편함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실 가장 큰 건 아이 때문입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어린 아이를 키우기에 영국은 좋은 점이 많지만 불편함도 적지 않은 나라입니다. 저는 올해 만 4세가 된 남자 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런던 연수생활의 70% 이상을 육아에 집중해야 했습니다. 1년간 ‘몰입육아’를 하다 보니, 연수 중 가장 많이 배운 것도 ‘아이 키우기’와 관련된 내용들이었습니다. 이를 ▲교육 ▲의료 ▲문화·생활 카테고리로 나눠 런던에서 아이를, 특히 어린 아이를 키울 분들과 경험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교육 : 초등학생 제외하면 비싼 비용부담 각오해야

제가 주로 공유코자 하는 경험은 초등학생 미만, 즉 0세~4세 이하 자녀를 둔 분들에게 해당되는 부분입니다. 영국에서는 만 4세부터 학교를 보냅니다. 만 4세가 되면 초등학교(Primary School) 0학년(Reception)으로 입학하게 됩니다. 초등학교 ‘준비학년’ 개념입니다. 그 다음 1학년(만5~6세)부터 6학년(만10~11세)까지가 초등학생이고, 이후 중등학교(Secondary School)에서 11학년(만 15~16세)까지 다니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의무교육이고, 이후 대학(University) 진학을 원하면 13학년(만 17~18세)까지 2년을 더 다니고 대입시험(A-Level 등)을 치르는 구조입니다.

그렇다면 교육비는 어떨까요. 어린이집(Nursery)은 정부 지원이 일부 나오지만, 매우 비쌉니다. 저희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이 비싼 편에 속하는데, 주 5일 보낼 경우, 월 2188.75파운드(약 400만원)가 듭니다. 참고로 제가 사는 방 2개짜리 집 월세가 월 2400파운드입니다. 여기서 정부가 제공하는 주 15시간 지원을 받게 되면 1714.49파운드(약 315만원)를 내면 됩니다. 15시간 지원은 외벌이 부모를 대상으로 나옵니다. 부모가 맞벌이를 하게 되면 30시간 지원도 받을 수 있는데, 그러면 비용이 1312.68파운드(약 240만원)로 떨어집니다. 저는 15시간 지원에 월~목 주 4일을 보내기 때문에 월 1,432.47파운드(약 265만원)를 내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학기가 시작하는 9월 전에 아이가 만 4세가 되면 이처럼 엄청난 어린이집 비용부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물론 공립학교를 보낼 때 일입니다. 문제는 런던에도 ‘학군’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윔블던과 뉴몰든 지역의 경우, ‘공부를 시키는’ 초등학교가 꽤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한국인들이 많이 몰려 삽니다. ‘공부 안 시키는’ 초등학교에 가도 상관없다면 모르겠지만, 직접 방문을 해보면 생각이 달라질 가능성이 큽니다.

‘공부 시키는 학교’는 중등학교에도 존재합니다. 특히 성적을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중등학교(Grammer School)의 경우, 교육 수준이 매우 높으며 일부는 수백년의 역사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은 부모의 경우, 중등학교부터는 사립을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학교시설이 너무 낙후됐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국립 초등 및 중등학교는 오랜 시간 재정난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기간 물가와 인건비 등은 꾸준히 많이 올랐습니다. 그러다보니 화장실에 있는 변기가 고장나거나, 천정에서 물이 새도 빠른 수리와 리모델링이 이뤄지지 않습니다. 급식의 질도 낮은 편입니다. 그러다보니 학급별로 돈을 걷는다거나, 각종 성금모으기 행사를 개최하기도 합니다.

정부나 회사 지원이 충분한 주재원들은 대부분 초등학교 때부터 사립을 보냅니다. 여기에 본인 돈을 쓴다면, 비용은 1년에 3차례에 걸쳐 최대 3만 파운드(5500만원) 안팎까지 비용 감수를 각오해야합니다. 이는 제가 들었던 최대치고, 학교와 동네마다 제법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참고로 현재 집권당인 노동당은 사립학교에 매기는 부가가치세율을 크게 높인 바 있습니다.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결론은 간단합니다. 아이가 만 4세 이하면 어린이집에 큰 돈을 써야한다. 만 4세 이상이면 윔블던이나 뉴몰든 등 한국인이 많이 사는 지역에 있는 좋은 공립학교에 보내면 된다. 돈이 있으면 사립 보내는걸 추천한다. 왜냐하면 거주할 수 있는 지역의 선택권이 넓어지고, 좋은 공립학교의 인프라가 갈수록 낙후되는 추세기 때문이다.

의료 : 약국 먼저 가세요 (Pharmacy First)

아이가 어릴수록 부모는 아이가 받을 수 있는 의료서비스에 신경 쓸 수밖에 없습니다. 어린이집이나 학교를 다니다보면, 하루다 멀다하고 감기가 걸리는 걸 피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영국에선 열이 38도가 넘지 않는 한 등원·등교를 시키는 문화가 정착돼있습니다.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가보면 콧물 흘리고 기침하는 아이가 적지 않습니다. 게다가 영국의 겨울은 매우 춥고 매우 깁니다.

앞선 연수기에 이미 언급했지만, 영국의 의료서비스는 ‘공짜’입니다. 증상이 있으면 ‘우리 동네 보건소’ 개념인 GP(General Practitioner)를 방문하면 됩니다. 하지만 예약 잡기가 쉽지 않고, 잡더라도 만족할만한 진찰과 처방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환자가 어린아이라면 다를까요? 일단 증상이 경미하더라도 의사면담 예약은 신청당일이나 늦어도 이튿날에 잡아줍니다. 하지만 증상이 감기일 경우, 의사로부터 ‘격려’의 말과 함께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약에 대한 정보를 듣고 헤어지게 됩니다. 저희 아이도 코감기에 걸려 두 번 방문했는데, 두 번 다 “다 괜찮을 겁니다. 제가 보기에 아드님은 아주 멀쩡한데요”라는 격려의 말만 듣고 나왔습니다.

저희 아이는 런던에 와서 코감기만 6~7차례 가량 걸렸는데, 만약 중이염이나 폐렴과 같은 증상이 있었다면 항생제 정도는 처방을 해줬을 거라 짐작합니다.

결론은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NHS) 홈페이지에도 적혀있는 것처럼 감기 같은 심하지 않은 병의 경우 약국을 먼저 가는 게 정답 같습니다. 저와 제 아이 모두 영국 약국 약을 몇 가지 먹어봤는데, 유일하게 효과가 좋았던 것은 나잘 스프레이(코스프레이)였습니다. 이건 귀국할 때 몇 개 사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나머지는 한국에서 가져간 약으로 해결했습니다.

아이 건강에 예민한 부모라면 세계 최고 의료서비스와 접근성을 보유한 한국을 떠나는 게 고역일겁니다. 귀국을 얼마 앞두지 않은 제가 아쉬움과 아쉽지 않음을 반반씩 느끼는 이유도 바로 의료서비스 때문입니다.

문화·생활 : 아이가 곧 훈장이자 벼슬인 사회

교육과 의료가 갖고 있는 단점을 극복하고도 남는 장점을 보유하고 있는 게 바로 문화와 생활입니다. 영국을 모두 다닌 건 아니지만, 런던은 아이에게 매우 포용적인 도시입니다. 그 포용성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유모차를 가지고 갈 수 없는 곳이 없습니다. 거의 대부분 길이 유모차와 장애인용 휠체어가 다니기 편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일부 오래된 역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승강기가 있습니다. 유모차를 몰고 가더나 아이가 있으면 가던 차도, 버스도, 자전거도, 사람도 모두 멈춥니다.

아이는 거의 모든 박물관과 시설 입장이 무료입니다. 테이트모던을 포함한 거의 모든 박물관에 어린이 체험공간이 마련돼 있습니다. 자연친화적이면서 규모가 큰 놀이터(Playground)가 동네마다 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가던 사람이 아이에게 인사를 하고, 말을 걸고, 윙크를 합니다. 어린이용 뮤지컬과 전시회도 무수히 많습니다. 규모에 상관없이 모든 도서관에는 어린이용 코너와 크래프트(Craft·색칠하기 종이접기 등이 활동) 공간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식당이 합리적인 가격에 내용도 알찬 ‘키즈 메뉴’를 보유하고 있고,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즐길 수 있는 크래프트 종이와 크레파스를 제공합니다. 같은 이발소에서 저는 머리를 21파운드(약 4만원) 내고 자르지만, 아이는 12파운드(약 2만2000원)입니다.

이러한 아이 포용 문화의 예시는 무궁무진합니다. 사회 전체가 아이를 낳은 부모로 하여금 ‘아이 낳길 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 저출산 극복을 위한 가장 핵심 과제라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