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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다큐 상영에서 극우 인터뷰까지: 옥스퍼드에서 마주한 유럽 정치와 신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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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생활이 열달째로 접어들면서 이제 이 도시의 흐름에 거의 익숙해졌다. 연구실 사람들이나 college 사람들과도 안면이 트이면서 낯설고 어색했던 감정들도 대부분 사라졌다. 많은 걸 배우고, 더 많이 보고 듣고 싶은 마음.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여기 연구원으로 온 이상 뭔가 이곳에 기여하고 가고 싶은 마음이 교차하는 하루들이었다. 그러던 차에 내가 소속된 옥스퍼드 이주 정책 연구센터에서 내가 한국에서 만든 난민 관련 다큐멘터리 상영회 겸 간담회를 여는 것을 제안해 왔다. 시사기획 창에 가서 가장 먼저 만든 다큐가 “나의 난민 너의 난민”이라는 다큐멘터리였다. 레바논에 있는 시리아 난민촌, 태국에 있는 미얀마 난민촌을 돌아보고 독일 사회로 가서 난민 문제에 대한 해법까지 찾아보는 프로그램이었다. 다른 어느 때보다 최선을 다해서, 성심껏 만들었던 다큐였기에 옥스퍼드에 있는 사람들은 이 다큐를 어떻게 볼까. 정말로 궁금했다. 옥스퍼드 대학교 공식 행사로 내가 만든 다큐 상영회와 간담회를 연다니! 세계 각국 사람들과 소통할 생각에 설레었다.

한국 다큐를 보는 두 가지 시선

상영회 전날. 다른 어느 때보다 긴장했다. 이곳에 와있는 세계 각지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까 궁금했고, 영어가 완벽하지 않은 데 즉석에서 이런저런 질문들에 원활하게 답하는 것이 잘 될까 걱정됐다. 행사 당일, 좌석이 꽉 찼다. 관객들은 눈을 반짝이면서 45분 내내 집중해서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그리고 다큐가 끝나자 마자 많은 질문들을 쏟아냈다. -한국은 난민이나 이주노동자에 대해 배타적인 편인 것 같은데, 왜 그런 것이냐. 근원적인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냐. 이 다큐가 방영되고 난 뒤 한국 시청자들의 반응은 어땠냐. 독일이 이주민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나라 가운데 최선이라고 생각했나, 독일을 선택한 이유는 뭐냐. 너무 인류애를 강조한 다큐 아닐까? 난민에 너무 우호적인 다큐 아닐까? 네가 지금 보는 영국 사회는 어떠냐? 이주민 문제에 대응을 잘하고 있는 것 같냐?- 쉽사리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 쏟아졌다. 모든 질문에 할 수 있는 한 성의를 다해서 답했다. -한국은 ‘단일민족 국가’를 강조하는 사회고, 여러 지리적·구조적인 이유 때문에 외국인들에게 배타적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뿌리깊은 ‘배타적임’에 균형추를 맞추려면 프로그램에 인류애적인 시선이 더 필요하리라고 판단했다- 이런 취지로 답했다. 영국 사회의 고민에 대해서는 답하기 쉽지 않았다. “이민자들과 관련된 정책을 다양하게 펼치고 있는 것을 잘 안다. 너희 사회만의 고민과 갈등이 크다는 것을 날마다 느낀다. 그 속에서 현명한 길을 찾아가길 바란다.” 이렇게 답했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를 하라기에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난 이상, 본인이 추구하는 바,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갈 자유와 권리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이 다른 사회에 부담이 된다면 그 부담을 줄이는 방법을 함께 모색하는 것이 인류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본다. 더 많은 사람이, 더 인간답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

간담회 참가자들의 국적, 종교, 인종 모두 다양했다. 날카로운 비판, 따뜻한 격려 모두 나왔다. 상영회가 끝난 이후 몇몇 참가자들과는 좋은 친구가 됐다.

그렇게 두 시간여의 다큐 상영회 겸 간담회가 끝나고 난 뒤, 참석했던 사람들 몇몇이 따로 와서 따뜻하게 나를 안아줬다. 정말 고생했다고, 기자로 더 성장해서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말해주는 데, 인종도 종교도 국적도 다른 그들에게서 뭐라 말할 수 없는 따뜻함을 느꼈다. 새삼 기자가 된 사실에 감사했고, 이곳에 와서 세계 각지의 사람들과 내가 고민해 온 문제를 함께 나눌 수 있음에 감사했다.

내가 속한 이주연구센터는 학기마다 다양한 세미나들을 연다. 이곳에서는 이민 문제가 다른 어떤 문제보다 중요한 핵심 사회 이슈인 만큼, 매 세미나에서 다루는 주제들이 굉장히 다양하고 깊이있다.

극우 정당 돌풍

영국에서는 지난 5월 1일에 지방선거가 있었다. 5월 2일, 선거 결과를 보며 깜짝 놀랐다. 과히 극우 정당의 돌풍이라고 할 만큼, 영국 개혁당의 선전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23개의 지방의회에서 1600명 넘는 의원을 선출하고, 6명의 시장도 뽑았다. 국회의원 보궐선거도 함께 진행했다. 당초 노동당의 선전이 예상됐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영국의 대표적인 극우 지도자 나이젤 파라지가 이끄는 영국 개혁당이 압승했다. 영국 개혁당은 677석을 확보하고 10개 지방의회를 장악했다. 전국 득표율도 30%가 넘었다. 개혁당 최초로 시장을 배출했고, 보궐선거 국회의원 의석도 확보했다. 다음날 신문을 펼치자, 나이젤 파라지가 가뜩이나 큰 입을 더 크게 벌리며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1면 톱을 차지하고 있었다. ‘영국의 양당 정치는 끝났다. 유권자들의 불만과 변화 열망이 엄청나다’는 분석이 한동안 온 언론에서 쏟아졌다, 반이민, 반EU를 전면에 내세운 영국개혁당의 목소리는 왜 이렇게 많은 영국인들을 끌어들이는 것일까.

선거 다음날, 영국 신문은 거의 나이젤 패라지의 얼굴로 도배되어 있었다. 정치적인 성향을 떠나서, 그가 정말 말을 잘하고 사람들의 감정을 잘 자극하는 뛰어난 선동가라는 데는 다들 동의하는 것 같다.

이곳에서 영국 극우 정당의 영향에 관한 논문을 쓰고 있다.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보수정당 지지자, 노동당 지지자, 보수에서 극우로 전환한 지지자, 극우정당 지지자를 각각 5명씩, 모두 20명의 영국인들을 인터뷰하고 있다. 극우정당 지지자, 보수당 지지자가 모두 15명. 인터뷰 대상자의 절대 다수가 보수적인 성향의 영국인이다 보니, 영국 사회의 새로운 모습을 계속 보게 된다. 영국 생활은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에서의 경험이 전부였던 나에게 지금 만나는 영국인들의 모습을 사뭇 새롭고, 때로 충격적이다. 옥스브리지 두 도시는 영국 안에서도 진보적인 성향이 두드러지는 도시다. 만나는 연구진들, 동료들 대부분 노동당 지지를 공공연하게 선언하니, 어지간한 ‘영국인들은 다 이렇게 개혁적인 성향인가 보다’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이 도시의 틀을 벗어나서 영국 곳곳에 살고 있는 여타 시민들을 인터뷰해 보니, 이제껏 내가 알던 영국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그들은 이민자들이 싫다고, EU가 싫다고, 사회주의자들이 싫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영국개혁당은 절대로 극우정당이 아니고, 상식적인 우파정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슬람이라는 종교, 이민자들이 이 나라를 망치고 있는 만큼 더 강력한 이민 통제정책이 나와야 하고, 그건 노동당도 보수당도 아닌 영국개혁당만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두 달 가까이 이들을 인터뷰하며, ‘예상보다 영국의 극우층, 보수층의 기반은 훨씬 더 강력하구나. 이 시대가, 이 사회가 지금 이런 아젠다를 원하고 있구나’ 느꼈는데 선거결과를 보며 그 영향을 실감했다. 예상보다 훨씬 더 ‘샤이 극우’ 혹은 ‘샤이 보수’가 많은 것이 아닐까. 공공연하게 말하지만 못할 뿐, 그들의 속마음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노동당 스타머 총리는 “개방된 국경의 실패한 실험을 끝낸다” 면서 강력한 이민 통제 정책을 내놨다. 여기서 지내는 1년 동안, 영국 사회 뿐만 아니라 유럽 사회 전반에 퍼지고 있는 반이민 경향, 그리고 정치적인 우경화를 피부로 느끼게 된다. ‘왜 지금 극우가 인기인가. 왜 이 시대가 그들을 원하고 있는가.’ 이 주제로 동료들과 자주 대화한다. 아마 한국에 갈 때까지, 아니 가고 나서도 계속 고민해야 할 문제인 것 같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이곳 사람들을 다양한 정치적인 성향에 따라서 인터뷰하고, 그들이 하는 가장 큰 고민 가운데 하나인 이민 문제를 듣다 보면 외부자들을 향한 내부자의 시선이 관용적여지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날마다 깨닫게 된다. 특히 보수당과 극우정당 지지자들의 상당수는 인터뷰 도중에 다른 종교, 이슬람에 대한 뿌리깊은 혐오와 공포를 가감없이 표현하곤 했다. 실제 친구로 만나는 사람 가운데는 그런 혐오를 표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익명을 보장하는 인터뷰를 하니 그들 속마음을 더 생생하게 듣게 됐다. ‘british’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냐는 질문에 한 50대 여성 백인 영국인은 오직 white christian 만이 영국인이 될 수 있다고 정의하기에, 정말 놀랐다.
이곳에 오고 나서 한국에서보다 훨씬 다양한 종교를 보고 듣고 만난다. 이슬람을 믿는 친구들도 상당히 많다. 한 무슬림 친구의 소개로 옥스퍼드 이슬람 센터에 구경을 간 적이 있는데, 센터 규모가 정말 크고 건물 시설도 다른 어떤 연구기관보다 좋아서 많이 놀랐다. 이슬람센터라고 해서 종교 연구에만 집중하는 건 아니고, 이곳을 허브로 삼아 중동 지역학 연구를 활발하게 하는 것 같았다. 시크교, 힌두교, 유대교 등등 내가 한국에서는 도무지 접해보지 못한 종교를 신실하게 믿는 친구들도 종종 만난다. 제각기 섬기는 신은 다르지만, 어쨌든 세상을 관장하는 절대자-신이 있다고 굳게 믿고, 신들의 가르침에 따라 살려고 한다. 각각 나름의 의식이 있고, 경전도 따로 있다. 서로 모여 삶을 나누고, 공동체를 형성하며 지낸다.
하지만 영국 사회를 지배하는 가장 힘 있는 종교는 누가 뭐래도 영국 성공회다. 성공회는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의 중간 성격을 가진 종교다. ‘헨리 8세가 합법적으로 이혼하기 위해서 카톨릭으로부터 독립해서 만든 종교’라고 자조적인 정의를 내리기도 하지만, 성공회는 영국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종교임에 틀림없다. 영국의 국교이고, 국왕의 대관식도 성공회 전통에 따라 이뤄진다. 영국 전역에 교구와 교회가 있을 정도로 조직도 촘촘하다. 내가 여기서 출석하고 있는 영국 교회도 겉으로 보기엔 일반 개신교와 다를 바 없어서 장로교나 침례교일 것이라고 생각했는 데, 알고 보니 이 교회도 성공회 소속이었다. 성공회 안에도 정통 성공회와 현대식 성공회가 따로 있는데, 나는 현대식 성공회 교회에 나가고 있었던 셈이다.

옥스퍼드 대학교 college들에서는 학기 중에 매일 아침 저녁으로 evensong이라는 성공회식 예배를 연다. 얼핏 보면 카톨릭 미사와 매우 유사한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디테일에 차이가 있다. 옥스퍼드 학생들도 꽤 참여하고, 지역 주민이나 관광객들도 간간히 참여한다.

카톨릭 신도들도 꽤 있다. 다만, 영국 카톨릭 신자들의 경우 성공회로부터 역사적으로 박해를 당했다는 인식이 강한 듯 하다. 아일랜드 분쟁 등에서 비롯된 뿌리 깊은 ‘피해자 의식’과 함께, 성공회에 비해 숫자적으로 소수자이다보니 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이곳 초등학교들도 성공회 재단이 세운 학교들이 많은데, 아들은 우연찮게 카톨릭 재단이 운영하는 초등학교에 다니게 됐다. 이 학교의 학부모들은 집과 거리가 정말 먼데도 기어코 이 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연유를 물었더니,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란다. 아이들이 카톨릭을 배울 수 있는 문화 속에서 자라고,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카톨릭을 받아들였으면 좋겠단다. 옥스퍼드의 40여개 콜리지들은 모두 성공회 배경인데, 그 가운데 하나의 콜리지 (Blackfriars)만 카톨릭 배경을 유지하고 있다. 이 콜리지는 구성원들 사이의 공동체 의식이 얼마나 강한지 학생회 안에서 속속들이 잘 알고, 서로들 감싸준다. 성공회가 주류인 사회 속에서 카톨릭 신자로 살아가는 것이 녹록지 않은 만큼, 그들 나름대로 꿋꿋하게 단결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는 것 같았다.

아들이 다니는 학교의 교실 안이다. 이렇게 교실 한 켠에 성모마리아상을 두고 학생들이 수시로 기도하게 한다. 수업 교과 과정에 ‘RE’라는 종교 교과목을 아예 따로 두고, 카톨릭에 대해 가르친다.

이곳에 와서 신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정말 자주 생각한다. 신의 이름으로 전쟁을 하고, 서로 미워하기도 하지만, 신의 이름 아래 수많은 선행과 희생, 그리고 사회를 향한 헌신도 이뤄진다. 누군가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히잡을 쓴 저 사람들’, ‘라마단을 믿는 저 무리들’을 싫어하고 혐오하기도 하지만, 표면적으로 이 사회는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우산 아래서 큰 갈등없이 함께 포용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떤 존재를 믿든. 서로를 존중하고 감싸 안고, 신의 이름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보려 하는 것은 가능한 것일까.

다름을 향한 질문-이해를 향한 걸음

이방인으로서 이곳에서 보낸 열 달은 영국 사회를 이해하는 시간이자, 내가 살아온 한국 사회를 다시 들여다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양한 정치적 목소리, 종교적 신념, 이민자에 대한 갈등, 하지만 그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공동체의 따뜻함. 이 모든 면들을 접하며 여러 가지를 묻게 된다. -우리는 왜 서로를 두려워하며, 때로 혐오하는가. 반면 왜 누군가는 전혀 다른 존재를 껴안고 안아줄 수 있는가.- 이 모든 질문 앞에서 내 안의 고정 관념과 깊은 편견을 날마다 마주한다. 믿는다는 것은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반드시 같은 신을 믿지 않아도, 서로의 신념과 삶의 모습을 경청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신의 뜻을 닮아가는 것 아닐까. 난민과 이주 문제를 다룬 다큐를 상영하고, 극우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다른 신을 믿는 친구들과 밥을 먹으면서 인간은 어느 한 편에만 머물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는 정말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정답은 모르겠지만, 그 질문을 던지고 귀 기울이는 일이야말로 기자인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귀한 작업인 것 같다. 다시 돌아갈 한국에서도 또 다른 경계를 향해 조심스레 나아가고, 누군가를 더 깊이 이해하는 기사들을 써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