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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열기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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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열기 속으로

연수 중인 보스턴대 경영대학의 ‘한국학생 클럽’ 구성원들과 뜻 깊은 시간을 가진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 이들이 Business Idea Case Competition을 여는데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참석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대회 주제는 . 2021년 한국 산업계와 증권가를 뜨겁게 달군 바로 그 화두인 메타버스를 미국 현지 경영학도(일부 공학도 포함)들은 과연 어떻게 접근할지 무척 궁금했다. 흔쾌히 요청을 수락하고 지난 11월 18일 늦은 저녁시간 학생들의 열정적인 발표가 있었던 캠퍼스로 향했다.

한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 뿐만 아니라 미국서 나고 자란 이민 2∙3세 학생들의 모임인 이들은 먼저 몇 가지 발표 규칙을 정하고 알려줬다. 첫째, 모든 발표는 영어로 할 것. 둘째, 6명이 한 팀을 꾸리고 최소한 3명이 발표에 임할 것. 셋째, 각 팀은 발표 주제를 다음 둘 중 하나(▲메타버스를 활용한 구체적 창업 아이디어 또는 ▲삶의 질을 높이는 메타버스 활용법)에서 고르고 명시할 것.


총 6개 팀 36명 학생이 발표자로 나섰다. 먼저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메타버스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아이디어를 낸 팀이 3곳.

총기사고가 났을 때 학교 또는 거주 시설에서 어떻게 대피할 수 있는지, 구체적 경로와 대피요령을 메타버스로 교육시키자는 ‘메타에듀’팀. 이들은 미국에서 매일 8명의 학생이 총기사고로 숨진다는 통계를 내세우며 이런 서비스가 반드시 필요함을 역설했다. 실제 미국서 고등학교 다시던 시절 총기사고가 났을 때 무척 당황해 우왕좌왕했던 발표자 본인의 경험담을 통해 가상공간에서의 사전 훈련이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심사위원으로서 ‘설득력’ 항목의 점수를 높게 줬다.

ELMO(Elevating Moment of Love One)라는 이름으로 나선 팀은 일명 ‘메타버스 장의사’였다.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낸 사람이 가상의 세계에서 이들을 다시 만난다는 설정. 한국서 한 공중파 방송이 실제 구현해보기도 했던 그 아이디어인데, 이들은 설득력 측면에서 높은 공감을 얻었지만 이미 이런 서비스가 있는지 여부 등 시장조사가 미흡했다는 아쉬운 평가를 받았다.

마지막 팀 ‘도미(DORMIE)’는 메타버스 기술로 대학생 기숙사 투어 서비스를 구현해보겠다는 이들. 사실 미국서 대학 유학생활을 해본 경험이 없는 필자로서는 이런 수요가 있는 줄도 몰랐지만, 플로어의 많은 학생들 사이에서 아! 하고 공감하는 탄성이 나왔다. 이들이 실제 꽤 살만한 기숙사를 구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발품을 팔고 있으며, 제한된 정보와 예산, 시간 속에 기숙사 구하기가 참 어렵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들은 학교측과 연계해 학교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기숙사 방의 구조와 주변 시설 등을 가상공간에서 구현하고, 지금 실제 살고 있는 학생과의 채팅을 통해 룸메이트 매칭까지 할 수 있게 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과거 입주자의 별점과 코멘트도 가상 시설 구석구석에서 볼 수 있게 하겠다는 등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이들은 비영리 사업 아이템을 학교에 제공해 공익에 이바지하겠다는 큰 포부까지 내놔 박수를 받았다.

구체적 창업 아이디어에 중점을 두고 발표를 한 또 다른 3개 팀..

‘메타 아카데미’라는 이름의 한 팀은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그 층도 매우 넓은 영어교육 시장을 메타버스 기술로 잡아보겠다는 뜻을 펼쳤다. 가상의 캐릭터 선생님(아바타)이 오픈 월드에서 로그인한 학생을 맞고, 이들이 자유롭게 채팅을 통해 실력을 쌓아가는 영어교육의 장을 만들어보겠다는 것. 아이디어의 목표와 비전에 대한 설명은 매우 뚜렷했지만, 역시나 이는 경쟁자가 너무 많은 시장인데다 비슷한 아이디어로 이미 많은 수익모델이 나와있는 만큼 안타깝게도 큰 박수는 받지 못했다.

‘메타어스(Meta-Earth)’팀은 메타버스 기술로 방구석 세계여행을 가능케 하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구글맵을 스캐닝∙맵핑해 세계 주요 랜드마크를 실제 여행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고, 드론과 소나(Sonar)센서 등을 활용해 쉽게 가보지 못하는 높은 산과 계곡, 바닷속까지 탐험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엄청난 야심을 보였다. 다만 아이디어를 실제 구현하기까지는 많은 난관이 있을 걸로 예상됐다.

이밖에 라이더(Lidar) 스캐너로 건물 내부를 정확히 찍어 허위 매물 제로(Zero)에 도전하는 ‘메타버스 부동산 중개업자’를 표방한 팀도 있었다.


필자와 지도교수 등 심사위원들은 토론할 것도 없이 도미(DORMIE)팀에 1등 상을 주기로 한 마음 한 뜻으로 결정했다. 학생들의 절박한 수요를 제대로 포착했다는 점과, 몇 가지 현존하는 기술을 버무린다면 당장이라도 이 수요를 유쾌한 방식으로 풀어낼 것으로 기대됐기 때문이다.

메타버스를 선점한 기존 빅테크기업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스스로 이를 활용한 사업 아이디어를 짜고 객관적인 평가를 받아보는 학생들의 열정과 젊음이 무척 부럽고 기특했다.(한 명도 빠짐없이 흠잡을 데 없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다는 점도 부러운 대목.) 내가 저 나이로 돌아간다면 과연 어떤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을지 즐거운 상상을 하며 돌아왔다. 평가자의 위치로 행사에 참석했지만 오히려 배운 게 훨씬 많았던, 연수생활 중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기록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