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보기

하루 4.2달러… ‘뚜벅이 뉴요커’로 살기

by

하루 4.2달러… ‘뚜벅이 뉴요커’로 살기


뉴욕 지하철 내부모습

뉴욕 맨해튼에 집을 얻으면서 자동차 구입은 포기했다. ‘사악한’ 월세를 내면서 자동차 유지비용까지 감당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맨해튼의 아파트, 콘도 형태 집들은 빌딩 거주자라도 매달 주차비를 별도 지불해야 한다. 교통 체증과 시간당 35달러에 육박하는 시내 주차비 등을 감당하면서 차를 가지고 다닐 이유도 없다.

정착 초기 미국에서 자동차 없이 생활하는 게 가능할까 걱정도 많았지만 실제 살아보니 불편함은 전혀 없다. 이케아, 코스트코 등 맨해튼에서 좀 거리가 있는 대형마트나 우드버리 등 교외 유명 아울렛을 이용할 때 빼고는 차를 굴릴 일이 없다.


뉴욕 메트로카드

뉴욕에는 지하철이나 버스, 페리, 자전거 등 다양한 대중교통망이 촘촘하게 갖춰져 있다. 구글맵을 이용하면 목적지까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교통수단은 다양한 옵션들이 나온다. 이들 가운데 가장 애용하는 수단은 ‘지하철’이다. 시간, 비용 면에서 가장 합리적인 교통수단이다. 버스와 비교하면 제 시간에 맞춰 오는 데다 ‘교통지옥’인 맨해튼 시내를 이동하는 데 지하철만큼 빠른 수단이 없다.

뉴욕생활 초기에는 맨해튼 거리 풍경을 보려고 버스를 이용했다. 물론 버스가 지하철보다 훨씬 깨끗하고 쾌적한 편이다. 하지만 두 블록마다 정거장에 서야 하고, 노약자 탑승을 배려하는 시간까지 감안하면 차라리 걸어서 가는 게 더 나을 때가 있다. 약속이 있을 때 버스를 타면 늦기 일쑤다. ‘MY MTA’ 앱을 통해 현재 버스 위치 등을 검색할 수 있지만 지연 도착이 다반사인데다 다양한 거리행사들로 주말, 연말시즌에는 우회도로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 잘 확인해보고 타야 한다. 지난 몇 달간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은 뒤 이제는 지하철을 이용한다.

살인적인 물가를 자랑하는 뉴욕에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한번 타는데 드는 비용은 2.75달러다. 2시간 이내에선 무료 환승이 가능하다. 거리와 상관없이 1회 탑승비용 치곤 조금 비싼 편이지만 일정기간 티켓을 구입하면 맨해튼, 브루클린, 퀸스, 브롱스 등을 오가는 모든 지하철, 버스를 7일(34달러) 또는 30일(127달러)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매달 30일권을 끊어 하루 4.2달러로 뉴욕을 누빈다.

‘뚜벅이 뉴요커’에게 지하철만큼 가성비 좋은 교통수단은 없다. 매일 열차를 타면서 전세계 다양한 사람들을 보면서 구경하는 재미도 있어 전혀 지루하지 않다. 지난 여름 뉴욕으로 연수를 오기 전부터 지하철 내 각종 사고들이 발생해 걱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가장 편한 교통수단이 됐다.

내가 사는 맨해튼 어퍼웨스트 지역에선 주로 A,B,C,D,1,2,3라인을 주로 이용한다. 아침 출근 시간은 물론 밤 11~12시 늦은 시간까지도 지하철은 늘 사람들로 붐빈다. 보스톤, 시카고, 워싱턴DC 등 미국 주요 도시의 지하철 가운데 제일 지저분한 지하철인 것은 맞지만 뉴욕 지하철만큼 촘촘한 라인과 가격 메리트를 가진 교통수단은 없다.

특히 ‘익스프레스 라인’을 이용하면 뉴욕 내 이동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다. 뉴욕 지하철은 노선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맨해튼 동서 또는 남북을 가로지르는 라인으로 크게 나뉜다. 뉴욕 지하철은 주요 정거장만 정차하는 익스프레스와 모든 정거장을 서는 로컬라인으로도 구분된다. 주중에만 운영하는 라인도 있기 때문에 매일매일 지하철 상황을 확인하고 이용해야 뉴욕에서 약속시간을 지킬 수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지하철 교통상황은 구글맵이나 뉴욕지하철 맵으로 실시간 확인하면 된다.

내가 사는 곳을 기준으로 1, B, C라인이 로컬, 2, 3라인은 익스프레스다. 어퍼웨스트인 96번가에서 로어맨하탄인 월스트리트까지 익스프레스 라인을 타면 22분내에 도착한다. 버스로 1시간 이상 자동차로 40분이 넘게 소요되는 거리다.

다만 뉴욕 지하철 내에선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각 역마다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지만 역과역 사이 구간을 달리는 열차 안에선 인터넷을 전혀 이용할 수 없다. 뉴욕살이 정착 초기에는 이 같은 복잡한(?) 지하철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고, 낭패를 본 적이 있다. 자주 이용하던 로컬 열차가 한 정거장도 못가고 철로 중간에서 10여 분을 멈춰 섰다. 인터넷이 제대로 터지지 않는 구간이라 영문도 모른채 열차가 움직이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참을 멈춰선 뒤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다음 정거장부터는 익스프레스 라인으로 운영된다며 로컬 라인을 이용하는 승객은 이번 정거장에서 내려서 버스나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라는 안내방송이 흘러 나왔다. 황당했지만 어떤 누구도 불평불만을 쏟아내지 않고 내려서 각자 갈 길을 갔다. 얼마나 이런 상황이 빈번하게 일어났길래.

뉴욕의 지하철은 서울과 비교하면 매우 열악한 환경인 것은 맞다. 지하철이라 교통체증이 없을 것 같지만 여러 노선들이 같은 열차라인을 사용하고, 승강장도 같이 쓰기 때문에 지연운행이 잦고, 늘 사람들로 붐빈다. 지하철 계단을 내려오는 순간 코를 찌르는 하수구 냄새와 정체 모를 액체들이 지하철 플랫폼 곳곳에서 목격된다. 열차 내부에는 노숙자들이 누워 자기도 하고, 낯선 사람들이 돈이나 음식, 물 등을 달라고 구걸하는 장면들도 쉽게 볼 수 있다. 아침마다 뉴스에선 지하철 플랫폼 내 밀침사고, 흉기사고 등이 나온다. 대부분 승강장에서는 벽쪽이나 기둥쪽으로 선다. 지하철이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늘 마스크를 쓰고 주변을 경계하면서 열차가 승강장에 들어올 때까지 한쪽 벽에 바짝 붙어있는다. 뉴욕시도 지하철 안전에 만전을 기하며 주요 역에 경찰들을 배치하고 있다. 경계심을 가지고 주변을 살펴보면서 지하철을 이용한다면 크게 위험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