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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손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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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파워가 살려낸 한국어 강좌

최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이오와 대학의 한국어 강좌가 때 아닌 봄날을 맞았다는 것인데요. 1990년대 초반 설립된 이 강좌가 수강생 부족으로 매학기 존폐논란에 휩싸였지만 올해는 4개 코스 모두가 정원을 훌쩍 넘기는 성황을 이룬 것입니다. 초급과정은 물론 수강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었던 고급 과정도 모두 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뒀습니다.(아이오와 대학에는 중국어와 일본어 관련학과가 따로 개설돼 있지만, 한국어는 아시아어 학과에 포함돼 있습니다)

왜 일까요. 한국어 배우기 열풍의 중심엔 중국에서 몰려온 유학생들이 있었습니다. 한류에 열광하고 있는 중국 학생들이 한국어 강좌에 몰려든 것입니다. 중국인들의 유별난 한국 드라마, 대중음악 사랑이 한국어 배우기로 이어졌습니다.

대학 인근 장로 교회에서 운영하는 영어 컨버세이션 클래스에서 만난 한 중국 여학생은 “한국 드라마와 음악에 미친 친구가 있는데 한국 사람 처럼 보이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중국 식당에서 만난 아르바이트 여학생은 “‘고맙습니다’와 ‘감사합니다’의 차이가 뭐냐”고 묻더군요. “한국 드라마 좋아하느냐”고 되물었더니, “한국에서 온 것은 뭐든 다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대학에도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면 읽을거리성 기사는 만들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손 중국

하지만 좀 더 시각을 넓혀보고 싶었습니다. 원래 기사를 키우고, 굳이 의미를 찾아내는 일이 한국에서 제가 하던 일이니까요. 실제 한국어 강좌의 성황소식을 접하면서 중국의 부상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군요. 물론 정색하고 분석하려는 것은 아니고요, 현지에서 접하는 소소한 현상들을 보면서 ‘차이나 파워’에 대해 새삼 곱씹게 됐습니다. 중국 학생들이 미국 대학에 몰려드는 현상의 이면을 살핀다면 어느 정도 확대해석이 가능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국으로 부상했으며, 중국과 미국이 세계질서를 좌우하는 ‘G2시대’가 이미 도래했다는 세평은 모두에게 새삼스럽지 않을 겁니다.
일단 통계가 이런 관측을 뒷받침 해 줍니다. 아이오와 대학에서 발간하는 ‘Global Engagemaent’라는 애뉴얼 리포트에 나온 해외 유학생의 분포도를 보면 중국 출신 학생들의 수가 압도적입니다. 2011년 3463명(학부, 대학원 과정 포함)의 유학생 중 중국인은 50%에 해당하는 1737명(한국 383명, 타이완 98명, 일본 45명)으로 집계됐습니다. 2010년 2982명의 유학생 중 중국학생의 수는 1312명(한국 351명, 타이완 109명, 일본 45명) 이었습니다.

눈여겨볼 점은 중국 학생들이 제발로 아이오와 대학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대학 당국이 직접 나서 중국 학생들을 데려오고 있다고 하더군요. 아이오와 대학 총장이 직접 중국 등을 돌면서 학생들을 모집해 오고 있다고 합니다. 일부에선 수준이 모자란 학생들도 입학했다는 소문이 돕니다. 실제 토플성적을 충족시키지 못한 채 일단 미국에 온 뒤 점수를 채우고 입학하는 중국 학생들의 사례도 봤습니다.

얼마 전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라는 책에서 ‘미국 정부 재정이 악화되면서, 공교육이 붕괴되고 있다’는 취지의 내용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 책이 어느 정도까지 사실을 반영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주 정부의 열악한 재정지원에 허덕이는 것으로 추정되는 대학 당국(아이오와 대학은 주립대 입니다)이 중국 학생들에 손을 뻗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이오와 대학 한 원로 교수님의 전언입니다. “아이오와가 고향인 학생들의 등록금은 1년에 8000달러다. 그런데 중국 학생들(다른 외국 학생들을 포함)은 1년에 2만8000달러를 낸다. 학부생들에게는 장학금도 일체 없다. 그 돈을 다 현금으로 내는 것이다. 중국 학생들이 현지 학생들을 먹여 살리는 셈이다”

미국내 다른 대학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미시간 주립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이곳에서 저널리즘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한 한국유학생은 “미시간 대학에 제일 많은 게 중국인이다. 설사 영어실력이 모자라도 일단 뽑고 본다. 실력이 모자란 학생은 영어실력이 갖춰질 때까지 ESL강좌를 수강하도록 하는데, 대학 당국이 여기서도 돈을 꽤 번다”고 했습니다.

대학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목도하면서 결국 미국의 경제회생 여부도 중국에 상당부분 좌우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국이 미국의 주요 채권국이라는 사실도 되새김질하게 되더군요.

#커지는 미국의 중국 관심

자연히 큰 손 중국에 대한 의도적인 관심도 엿보입니다. 우선 제가 속해있는 동아시아 센터의 슈퍼바이저도 중국 교수입니다. 동아시아 센터에선 공자학원이라는 별도의 학원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센터에서 올 하반기 마련한 공개강연도 중국에 관련된 것이 가장 많았습니다. ‘중국 당국의 검열(언론 등)’이라는 민감한 주제도 있었지만, ‘청왕조에 대한 새로운 시각’ ‘필리핀에서 중국인으로 살기’ 등 외국인의 입장에서 보기엔 생뚱맞은 주제의 강연도 있었습니다.

어쩌다 연구소에 앉아있을 때면 중국에서 온 비지팅 스칼라들에 둘러싸이게 됩니다. 일부는 저의 국적을 오해하고, 중국말로 인사도 합니다. 연구소에 중국 관련 잡지들이 곳곳에 널 부러져 있는 풍경이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미국 학생이 중국에서 온 비지팅 스칼라로부터 중국어를 배우는 장면도 봤습니다.

반면 아시아의 맹주였던 일본에 대한 주목도는 현저하게 낮아졌으며, 새로운 경제강국이라는 한국에 대한 관심은 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LG나 삼성의 TV들이 일본의 소니나 도시바 제품보다 비싼 값에 인기리에 팔리는 것을 보고 뿌듯하기도 했습니다만, 그게 한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지는 않아 씁쓸하더군요.



#G2 시대를 대비해야 하나.

작금의 상황에서 우리의 처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중국이 미국의 큰 손으로 등장했고, 경제적으로도 언젠가는 미국을 제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는 이 시점에 언제까지 대미 의존적인 외교 전략을 고수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예전에 미국 경제가 기침을 하면 한국 경제가 감기에 걸린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한데, 지금은 한국의 최대 무역상대국은 중국입니다. 그런데, 그 중국이 이제는 미국경제를 일정 부분 좌지우지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아직까지 자신들을 G2로 규정하는 세간의 시선에 손사레를 치는 중국이 언젠가는 전면에 나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구요. 그때는 미국과 중국의 파워게임에 세계정세가 휘둘리게 게 될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도 그때를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은 한국경제에 미치는 미국의 자장이 훨씬 더 크지만 그 상황이 영속적이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전제로 한다면, 미중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는 게 외교의 최우선 과제로 대두될 날이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시대 때는 중국, 6,25이후엔 미국을 열심히 모방했던 한국입니다. 이젠 둘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유지해야 할까요. 정색하고 한미, 한중 관계를 살펴보겠다는 것은 아니구요, 그냥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서 떠오른 단상들을 적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