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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럼버스의 날? 원주민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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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럼버스의 날? 원주민의 날?

미국에 있는 지인이 10월 콜럼버스의 날(Columbus Day) 휴일을 맞아 자신이 사는 보스턴으로 놀러오라고 했다. 그는 올해 콜럼버스의 날이 10월 12일 월요일이니 주말을 붙여서 여행하면 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의아했다. 분명 두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 학사 일정표에는 10월 12일이 공휴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10월 12일에 학교가 쉬기는 했다. 그것은 콜럼버스의 날 때문이 아니라 학교 재량 휴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에서는 ‘Teacher in Service day’라고 해서 학교가 재량껏 쉬는 날을 정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초등학생인 두 딸은 캘리포니아 주 월넛크릭 시의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디아블로 마운틴(Mt. Diablo) 지역 교육청에 소속된 학교다. 미국 공립학교는 주소지에 따라 가까운 학교로 배정된다. 애들 학교의 1년 학사 일정표를 처음 봤을 때 무엇보다 관심을 가진 것은 미국의 공휴일이었다. 매번 여행 때문에 학교를 무작정 빼먹을 수 없어 최대한 공휴일에 맞춰 일정을 짜려고 했기 때문이다. (다들 쉬는 날 여행을 가려면 숙박비가 비싼 점은 감수해야만 한다. 또 유명한 휴양지는 서둘러 예약하지 않으면 원하는 숙소를 구하는데 애를 먹기도 한다.)

미국에는 연방 정부가 정한 공휴일이 있다. 대부분의 주가 연방정부가 정한 공휴일을 토대로 휴일로 정하고 쉬고 있다. 다만 몇몇 휴일은 주마다 기념하는 여부가 다르다. ‘콜럼버스의 날’이 대표적이다. 콜럼버스의 날은 이탈리아 출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1492년 10월 12일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으로 도착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콜럼버스의 상륙 이후 원래 살고 있던 원주민들이 노예로 전락하며 겪은 숱한 고통 때문에 콜럼버스의 날에 대한 반발 분위기도 만만치 않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라는 표현에도 수긍하지 않는 맥락도 마찬가지다. 원주민들이 이미 아메리카 대륙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발견’은 가당치도 않다는 논리다. 실제로 몇몇 주나 시는 ‘콜럼버스의 날’이 아니라 ‘원주민의 날’(Indigenous Peoples Day)라고 부른다. 사우스 다코다(South Dakota)가 1989년 콜럼버스의 날을 원주민의 날로 대체한 첫 번째 주다. 콜로라도 주의 주도인 덴버는 2015년에 10월 12일을 원주민의 날로 선언하고 콜럼버스가 아닌 학대받은 원주민들을 기리고 있다. 원주민의 날을 기념하는 도시만 해도 1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올해는 미국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원주민의 날을 기념하는 선언서를 발표했다. 콜럼버스의 날과 원주민의 날을 각각 기념하는 선언서를 동시에 내놓은 것이다.
흑인 인권 운동가인 마틴 루서 킹을 기리는 기념일(Martin Luther King day)도 잡음을 빚은 공휴일이다. 흑인 노예의 역사와 흑인 인권 등을 대하는 시선에 온도차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뉴햄프셔 주는 ‘시민권의 날’(Civil Rights Day)로 부르다 1999년에서야 ‘마틴 루서 킹의 날’의 명칭을 채택했다. 미국 50개주 모두가 마틴 루서 킹의 날을 공식적으로 기념한 것은 2000년에 이르러서였다. 마틴 루서 킹의 날이 1983년 연방 공휴일로 지정된 지 17년 만이었다. 올해에는 노예해방 기념일(6월 19일)이 연방 공휴일로 지정됐다. 노예 해방 일은 미국의 11번째 연방 공휴일로 자리 잡았다.

애들 학교 일정표 상에 나오는 법정 공휴일은 대부분 월요일이나 금요일이었다. 특정한 날을 기념해야 하는 공휴일-새해 첫날, 크리스마스, 독립기념일-은 날짜가 고정됐다. 특정한 날을 기리는 공휴일이 토요일이나 일요일과 겹치면 대체 휴일도 있다. 디아블로 마운틴 교육청에 소속된 학교의 학사 일정표에는 독립 기념일(Independence day)이 7월 5일(월요일)로 적혀 있었다. 7월 4일이 원래 독립 기념일인데 올해는 일요일이라 월요일에 쉬는 식이다. 크리스마스(12월 25일)와 2022년 새해 첫날(1월 1일) 휴일도 일정표상에는 12월 24일(금요일)과 12월 31일(금요일)로 각각 적혀 있었다. 크리스마스와 새해 첫날이 모두 토요일과 겹쳤기 때문이다. 반면 1월 세 번째 월요일, 5월 마지막 월요일 등 요일이 고정된 날들도 많았다. 이렇다 보니 공휴일의 대부분이 주말 앞뒤로 붙어있는 꼴이었다. 주말 여행을 갈 때 시간을 조금이라도 넉넉하게 주려는 나름의 배려가 아닐까 하고 추측해본다.

# 미국 연방 공휴일(https://www.federalpay.org/ 참고)

* New Year’s Holiday (새해 첫날 : 1월 1일)
한국의 신정. 1885년 연방 정부 공휴일로 지정.

* Birthday of Martin Luther King (마틴 루터 킹 탄생일 : 1월 셋째주 월요일)
흑인 인권 운동가인 고(故) 마틴 루서 킹 목사를 기리는 날. 킹 목사는 1929년 1월 15일 애틀란타에서 태어났는데 기념일은 매년 1월 셋째주 월요일로 정해짐. 1983년 공휴일로 지정.

* President’s day (대통령의 날 : 2월 셋째 월요일)
일상적으로 대통령의 날(President’s day)로 불리지만 공식 명칭은 ‘워싱턴 탄생일’(Washington’s Birthday)임.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생일(2월 22일)을 기념하는 날로 1879년 공휴일로 지정됨. 이후 일부 주에서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생일(2월 12일)을 기념함. 모든 대통령의 기려야 한다는 여론에 ‘대통령의 날‘로 부르고 기념일도 2월 셋째 월요일로 정해짐.

* Memorial day (전몰 장병 기념일 : 5월 마지막 월요일)
전몰 장병을 기리는 날. 원래는 현충일(Decoration Day)로 부르다가 바뀜. 1967년 공휴일로 지정.

* Juneteenth (노예 해방의 날 : 6월 19일)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1863년 노예 해방을 선언하고 2년여가 지난 1865년 6월 19일 텍사스주가 마지막으로 노예 해방령을 선포한 것을 기념하는 날. 6월(June)과 19일(Nineteenth)을 뜻하는 단어를 합쳐 ‘준틴스'(Juneteenth)로 부름. 노예 해방의 날을 연방 공휴일로 지정하는 법안은 올해 미국 의회 상원과 하원을 통과함. 이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법에 서명함.

* Independence day (독립 기념일 : 7월 4일)
1776년 7월 4일 독립 선언문에 서명하고 미국이 주권 국가가 된 것을 기념. 1870년 연방 공휴일이 됨.

* Labor day (노동절 : 9월 첫째 월요일)
미국의 노동절(근로자의 날). 1894년 연방 공휴일로 지정.

* Columbus Day (콜럼버스의 날 : 10월 둘째 월요일)
이탈리아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상륙(1492년 10월 12일)한 것을 기리는 날. 1937년 연방 공휴일로 지정됨. 콜럼버스 데이는 원래 10월 12일이었으나 이후 10월 12일에서 가장 가까운 월요일을 휴일로 지정.

* Veterans day (재향 군인의 날 : 11월 11일)
현재와 과거 미국이 참전한 모든 전쟁의 재향 군인을 기리는 날. 처음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군을 추모하려는 목적에서 시작됨. 1926년 연방 공휴일로 지정.

* Thanksgiving day (추수감사절 : 11월 넷째 목요일)
초기 정착민의 추수 감사 축제에 기원을 두고 있음. 1941 연방 공휴일이 됨.

* Christmas (크리스마스 : 12월 25일)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 1885년 연방 공휴일로 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