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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시대, 미국 로스앤젤레스 입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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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기에 꼭 미국에 가야겠니?”

미국 연수 출발을 앞두고 지인들은 하나 같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세계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가장 많이 나오고 있는데다, 겨울을 맞아 확진자 수가 수직 상승하다시피 하고 있으니 나 역시 걱정스럽지 않은 건 아니었다. 기자 생활 17년 만에 맞은 온전한 휴식의 시간, 따가운 햇살이 쏟아지는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의 서던캘리포니아대학(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USC)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세미나도 듣고 외국인 동료들과 더불어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물거품처럼 사라질 판이다. 한 달 두 달 미룬다고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난다는 보장이 없다. ‘그냥, 일단 가자.’ 2020년 12월12일, 드디어 출국 일이다. 인천공항 제2청사. 연말이 다가오는 토요일 저녁이면 따뜻한 나라로 떠나는 관광객들로 북새통이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배웅하러 온 사람들도 거의 없는 듯, 대한항공 카운터엔 딱 출국 수속을 하려는 이들 몇 명만이 보였다. 넓디넓은 공항 복도엔 ‘AI 안내 로봇’만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스크 착용을 강조하는 장내 방송이 유독 크게 울려퍼졌다. 바이러스의 공습으로 인류의 활동이 통제된 미래 사회의 풍경을 엿본 것만 같았다.

인천공항 출국부터 로스앤젤레스 공항 입국 과정은 무척이나 빠르게 이뤄졌다. 코로나19의 역설이었다. 내가 탄 대한항공의 탑승객은 “평소 이맘 때의 절반 수준”이라고 항공사 출국 수속 직원이 전해줬다. 덕분에 이코노미석에서 벌어지는 팔걸이를 두고 벌어지는 불편한 신경전도 자취를 감췄다. 미국행 준비를 할 때 여러모로 도움이 됐던 네이버 카페 ‘미국여행,유학,취업,이민,영주권,시민권 준비자들 모임’(미준모, 미국 정착 초기에 운전면허 취득을 비롯해 궁금한 점이 있을 때마다 도움을 많이 받은 사이트니, 가입하면 도움이 될 듯 하네요.)에서도 ‘눕코노미(이코노미석에서 자리가 남아서 누워서 왔다는 누리꾼들의 은어)로 왔다’는 미국 입국 후기가 이어졌다. 코로나19 확산 사태의 심각성을 다들 인지한 듯, 식사 때를 제외하고 마스크를 벗은 이들은 보지 못 했다.

LA국제공항도 한산했다. 외국인 입국자들보다, 미국 시민권자·영주권자들의 입국 수속 라인이 훨씬 길었다. 본격적인 크리스마스 연휴 이동 전이기도 하지만, 관광 등을 위한 일시적 방문객이 많지 않은 탓인 듯 했다. 입국장 바닥엔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한 간격이 표시돼 있었다. 20분 정도 줄을 서 기다린 뒤, 2분 만에 입국 심사 인터뷰가 끝났다. DS-2019 서류 위에 ‘Research on American Politics’ 방문 목적을 본 뒤에 “정말 흥미로운 시기에 미국에 왔다”란 한 마디로 입국 절차가 끝났다.

공항 입국 심사는 전보다 대폭 축소됐다. 세관 직원들과 입국자들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인 듯 했다. 대표적으로, 세관 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됐다. 미국행 비행기 안에서 승무원들이 푸른 글씨로 된 세관신고서(Custom Declaration)를 미리 나눠주곤 했다. 미국에 얼마의 돈을 갖고 들어오는지, 주류 등 면세 허용 범위를 초과해 갖고온 품목을 갖고 온 것은 없는지 등을 적어내는 종이다. 하지만 이번엔 이걸 작성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남해바다 멸치와 고춧가루 등을 32kg 가방 하나 잔뜩 갖고 와 긴장했는데, 무사 통과였다. 무작위로 이뤄지던 짐 검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검색견을 끌고 다니는 보안 요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만약 누군가 마약을 갖고 들어오기라도 했다면 걸러낼 수 있을까.’ 코로나19 팬데믹이 공항 보안에 구멍을 내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이 스치기도 했다.

미국에 도착한 12월12일, LA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는 1만1476명으로, 누적 확진자 수는 51만2872명까지 불어났다. 사망자 수도 70명 증가한 8269명이었다. 확진자 수를 보여주는 그래프는 오른쪽 상향 방향으로 가파르게 솟아, 이 글을 쓰고 있는 29일 현재 공개된 확진자 수는 74만6089명까지 늘어났다.

서던캘리포니아의 중환자실(ICU)은 이미 포화 상태로 신규 환자 수용 능력은 0%로 떨어졌다. 방송에선 병상 부족으로 병원들이 위급성, 회복 가능성을 판단해 환자를 선별해 받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18일, 토렌스 지역 한 병원 응급실 간호사는 라디오에 나와 절박한 목소리로 이 현실을 증언했다. “우리도 사람이다. 밀려드는 환자에 인간으로서 버틸 수 있는 한계를 이미 지나선 것 같다”는 그의 말에서 절망이 묻어났다. 그는 “우리를 영웅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선물을 보내지 않아도 좋다”며 “정말 우리를 도와주고 싶다면, 제발 제발 집에 머물러 달라”고 호소했다.

LA카운티에는 지난 7일부터 ‘자택대피령’(Stay At Home order)이 내려진 상태다. (그리고 29일, 중환자 병상을 15% 확보할 때까지 이 조처를 무기한 연장한다는 발표가 이뤄졌다.)식료품 구매 등 필수 활동을 제외하고 집에 머물라는 얘기다. 실내 운동시설이나 이발소, 미용실 등은 영업을 중단했고, 식당에선 주문 뒤 받아가는 것만 가능하다. 코스트코와 한인 마트 등 대형 마트들은 인원 수를 제한해 손님을 받고 있다. 코스트코에선 코로나19에 취약한 시니어(65살 이상)의 쇼핑 편의를 위해 정식 영업 개시 한 시간 전인 오전 8~9시 특별 입장 시간을 두기도 했다. ‘손님에게 마스크 착용을 권유했다가 폭행을 당했다’더라는 얘기를 전해듣긴 했지만,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을 직접 보진 못 했다.

대학들은 이미 2021년 가을 학기 전까지는 온라인 강의를 진행하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학교 출입문은 폐쇄됐고, 교직원들도 대부분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학교엔 허락받은 필수 인력들이 돌아가며 출근을 한다고 했다. ‘J1 방문연구자’로 등록하기 위해 지난 18일 USC에 갔을 땐, 사전에 받은 ‘QR코드’로 방문객 인증을 거쳐야 했다. 만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코로나19 감염 여부 및 최근의 건강 상태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해야 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미국에선 코로나19 검사조차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곤 했다. 팬데믹이 1년 간 지속되면서, 그 사이 검사 능력은 꽤 많이 개선된 듯, 원할 경우 큰 어려움 없이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LA 카운티 보건국 누리집을 검색하면, 코로나19 검사를 받을 수 있는 ‘드라이브 인’ ‘워크 인’ 검사소를 언제든지 찾을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 연휴 등을 앞뒤로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머물고 있는 집 아주 가까운 곳에 예약이 어렵긴 했지만, 불가능하진 않았다. 지난 23일 오전 7시40분, 집 근처 10분 거리 브레아몰에 위치한 ‘드라이브 인’ 검사소를 찾았더니, 두 개의 차선에 자동차 서너 대가 검진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게다가 의료보험이 없어서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제약업체 등에서 온라인 신청시 무료로 진단 키트를 집으로 보내주기도 했다. 궁금해서 ‘픽처 제네틱스’라는 업체가 제공하는 ‘홈 키트’를 받아 코로나19 검사를 해봤다. 온라인 누리집에서 간단한 신원 및 몇 가지 질문에 답을 한 뒤 신청하니 하루 만에 핵산증폭방식(NAAT)의 검사 키트가 우편으로 배달돼 왔다. 박스 안에 든 면봉으로 양쪽 콧구멍을 찌른 뒤, 진단시약에 담가 다시 박스에 담아 보내면 이메일 안에 검사 결과를 통보해주는 방식이다. 밀폐된 공간에서 10시간 넘게 비행하고 온 탓에 ‘혹시나’하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다행히 ‘음성’ 판정을 받았다.

어떻게 보면 미국이 한국보다 더 강력한 자택대피령을 실시하고 있는데도 어째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줄어들지 않고 있는 걸까.’ 실제로 자택대피령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두고 정부에선 이동 자제를 촉구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여행길에 올랐다. 또 LA 시의 경우, 해외에서 입국하는 이들에게 2주 격리를 ‘권고’하며 입국시 서약서를 작성하도록 하고 있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당국은 ‘서약서 미작성시 500달러의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놨지만, 이건 말 그대로 ‘걸리면 문제가 될 것’이란 얘기에 그쳤다.
출국 전엔 LA행 항공기 안에서 승무원들이 이 서약서 작성을 하도록 종이를 나눠준다고 들었지만, 내가 입국할 때 승무원은 ‘안 해도 된다’고 했다. LA공항 입국 심사시에도 서약서 작성 여부를 묻지 않았다. 입국 뒤 동선 체크 같은 건 아예 이뤄지지 않았다. 구청이나 보건소가 해외 입국자의 자가격리 여부를 상시적으로 체크하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달랐다.

확진자와 접촉한 뒤 당국에 보고하거나 자발적으로 자가격리에 들어가는 경우도 드물어 보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확진자가 나올 경우 당국에서 접촉자를 체크해 자가격리할 수 있도록 통보하지만, 이곳에선 사생활 존중을 이유로 확진자의 동선이 전혀 공개되지 않고있다. 물론 이곳에서도,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동선 통제 노력이 없는 건 아니다. ‘CA NOTIFY’ 어플리케이션이 한 예다. 휴대폰을 개통하면, 이 앱을 휴대폰에 깔아달라는 알림 문자가 도착한다. 블루투스를 켜놓고 위치를 표시하면 내 주변에 확진자의 존재 여부를 알려주는 앱이다. 확진 판정을 받은 이들이 ‘지역 사회 감염 확산을 막는다’는 대의에 동의해, 자발적으로 자신의 확진 여부를 공개하면, 확진자의 정보는 비공개하되 이를 주변 사람들에게 공유하는 방식으로 운용되는 앱이다. 문제는, 휴대폰에 이 휴대폰을 설치하는 것이 의무가 아니라는 점이다. 설령 이 앱을 설치한다고 해도, 이 앱을 통해 자신의 확진 여부를 공개하는 것 역시 강제할 수 없다. ‘지역사회 감염 확산 방지에 자발적으로 동참해달라’는 얘긴데, 솔직히 크게 효과가 있는 것 같진 않다. LA카운티가 미국에서 가장 확산세가 거세다는 뉴스가 이어지고, 한 동네 지인이 코로나19에 확진됐다는 소식을 들었는데도, 이 앱은 오늘도 ‘지금까지는 코로나19 노출 가능성이 보고되지 않았다’고 한가하게 얘기하고 있다.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선 확진자가 밀접 접촉한 이들에게 자발적으로 확진 사실을 공개하고, 밀접 접촉자들이 신속히 검사를 받고 즉시 자가격리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확진자란 ‘낙인’, 생계에 직접적 타격이 되는 자가격리 2주가 따르는데, 선의를 앞세워 자발적 선택을 하지 않는다고 나무라기는 쉽지 않다. 재택근무가 가능한 이들이라면 몰라도, 이것이 불가능한 영세 자영업자들이 확진자 접촉만으로 자발적 자가격리 2주를 하기로 결정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미 지난 3월 이후 몇 달 간 계속된 자택대피령으로 생계에 큰 타격을 입었던 이들은 ‘코로나19 감염 만큼이나 무서운 게 일하지 못 하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마찬가지’란 한탄이다. 실제로,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한 뒤에 ‘줄곧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나에겐 코로나19를 의심할 만한 특별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발적 자가격리는 물론 감염 검사를 하지 않은 영세 자영업자들을 보기도 했다. 소리 없는 감염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