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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속 미국, 그 속의 민낯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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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속 미국, 그 속의 민낯은

1. 코로나 백신을 맞은건 지난 4월 말이었다. 미국에 온 지 다섯 달이 지난 뒤였다. 그 기간 동안 미국 생활은 공포였고 괴로움이었다.

작년 12월 미국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는 미국에서 코로나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을 때였다. 미국 전역에서 코로나 환자가 쏟아지고 있었고 더 이상 치료도 힘들 정도로 중환자실 병실이 가득 찼다는 소식이 이어졌다. 생필품을 사러 마트에 가기도, 아이와 가까운 놀이터에 나가는 것도, 어느 한 곳 맘 편하게 가기가 어려웠다. 오랫동안 미국 생활을 했던 사람들도 나중에 말하기를, 이 미국도 망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던 미국이 3, 4월을 거치면서 서서히 바뀌어 나갔다. 백신을 맞는 사람이 늘면서 공공장소에서 모임도, 가게 안에서 식사도, 여행도 풀리기 시작했다. 경제를 이렇게 둘 수 없다는, 그리고 개인의 자유를 언제까지 제한할 것이냐는 비판이 거셌던 것에 대한 반응이었다.

2. 5월 초, 백신도 맞았으니 드디어 용기를 내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록키 국립공원이 있는 콜로라도 덴버로 향했다. 그리고 도착 직후, 햄버거 가게에 들어갔다가 섬찟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 50명 가까이 되는 손님들이 한 순간에 나를 쳐다봤다. 거의 대부분이 백인이었는데, 그 사람들 모두가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었다. 나만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 순간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백신을 맞지 않았거나 위험한 사람이라는걸 자인하는게 아닐까, 그리고 그것 때문에 혹시 어떤 곤혹, 더 나아가서 인종차별을 당하게 되는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그래서 슬쩍 마스크를 벗어서 손목에 감고 태연한 척 연기를 하게 됐다.

이어서 찾아간 야구장, 농구장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백신 접종을 했다는 증명이 있는 사람만 입장이 가능했다. 그런데 일단 그렇게 안에만 들어가면, 전과 별로 다르지 않은 상황이 이어졌다. 입장 때는 마스크를 쓴다지만, 맥주와 안주를 먹으면서 마스크를 벗기가 일쑤였고, 심지어 경기장 안 스크린에는 공개적인 키스타임까지 이어졌다. 회복중이라는 자신감이 더해진 미국은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3. 한국에 있는 지인들은 계속 미국 생활 괜찮냐고, 위험하진 않냐고 걱정을 해왔다. 하지만 백신을 맞은 늦봄 이후로는 미국 생활은 예전과 크게 다른 것이 없을 정도로 평온했던 게 현실이었다. 못 가는 곳이 없었고 못 하는 일이 없었다. 경제도 사회도 전과는 좀 달랐겠지만, 큰 무리 없이 굴러가고 있었다. 이렇다 보니까 반대로, 한국 걱정을 더 했던게 사실이다. 경제는, 특히 자영업자들은 괜찮은지, 또 전처럼 자유롭게 살 수 없는 지인들은 괜찮은지 궁금했다.

더 나아가서 미국의 저력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한국에서 경제적 성공을 거두고 미국으로 건너와서 투자를 할 기회를 찾던 한 지인은 미국이 코로나 상황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보면서 깨달은 바가 크다고 했다. 최단 시간에 백신을 개발하고 대량 생산에 나선 것이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생명공학, 의학은 물론이고 각종 과학기술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넓고 다양하게 확보하고 있었고, 결정적인 순간에 이 기술들을 한 데 모아서 백신으로 개발해내는 역량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미국이 아닌 다른 어떤 나라도 이런 저변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걸 이번에 깨달았다고 했다.

4. 한국도 최근에는 백신 접종률이 70%대에 근접하면서, 곧 ‘위드 코로나’를 시도한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의 고통이 이렇게 끝났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하지만 한 고비를 넘김과 동시에 우리도 국가의 기본적인 기초체력을 어떻게 하면 더 키울 수 있을지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 비상체제에 익숙해서 그냥 넘겼던 개인들의 희생과 피해를 어떻게 하면 보듬을 수 있을지, 개인의 선택과 자유를 어떻게 더 보장할 수 있을지도 고민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