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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퍼런스(Conference) 다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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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시절인 1995~99년까지 4년간 미국 하원의장(Speaker of the House)을 지낸 사람이 공화당의 뉴트 깅그리치(Newt Gingrich) 의원입니다. 깅그리치 전 의장은 1994년 복지재정 삭감을 포함한 10개 조항의 보수파 강령을 담은 `미국과의 계약(Contract with America)`이란 책을 써 그해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압승해 상원, 하원을 장악하게 한 일등공신으로, 이듬해 하원의장에 선출됐습니다. 하원의장은 미 대통령 유고시 부통령에 이어 두 번째로 이어받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자리입니다. 깅그리치 하원의장 시절 공화당은 다수 의석을 무기로 민주당 클린턴 행정부의 정책에 사사건건 반대하고, 성추문사건을 이유로 미 역사상 2번째로 현직 대통령을 탄핵 상황에까지 몰고 갔습니다.

하원의장을 끝으로 정계에서 은퇴했지만, 그는 여전히 미국 정계에, 특히 보수 진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약력을 살펴보니 현재 보수 성향의 미국기업연구소(AEI: The American Enterprise Institute for Public Policy Research) 선임연구원과 스탠퍼드 대학 부설 후버연구소(Hoover Institution) 객원연구원, 폭스TV 해설자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은퇴한 정치인이라 하지만, 현실에서 깅그리치와 같은 거물 정치인을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거물인사를 쉽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워싱턴DC에 몰려있는 각종 싱크 탱크(think tank)에서 날마다 열리는 회의(conference)나 강연회에 참석하는 것입니다.

지난 3월27일 낮 깅그리치 전 의장을 처음 봤습니다. 워싱턴DC 17번가에 있는 AEI 12층 회의실에서 그는 ‘미국을 위한 변화’라는 강연을 했습니다. 원래 강연 제목은 ‘오바마의 도전(The Obama Challenge: What Is the Right Change to Help All Americans Pursue Happiness and Create Prosperity)’이었습니다. 얼핏 보면 민주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짐작할 수도 있을 겁니다. 깅그리치가 강연을 하게 된 계기는 오바마 후보가 9일전인 지난 3월18일에 다음달 22일 열릴 펜실베이니아주 예비선거를 앞두고 필라델피아에서 한 연설이었습니다. 오바마는 이날 연설에서 위기에 처한 미국 경제와 의료보험, 교육 문제와 같은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깅그리치는 1시간 5분간에 걸친 강연을 통해 오바마의 문제 분석에 대해 일부 비판을 가하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전하는 데 초점을 맞춰 참석자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았습니다. 저도 거물 정치인답게 큰 그림을 그리는 그의 능력과 청산유수 같은 언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깅그리치 전 의장의 이날 강연은 미국의 의회 및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의 활동 등을 주로 소개하는 케이블채널인 C-SPAN이 생중계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C-SPAN이 그날 밤 강연 내용을 재방송(케이블 방송이 다 그렇듯 밤이 되면 낮에 한 것이나 과거에 했던 프로그램을 재탕, 삼탕합니다)했는 데, 강연을 듣는 제 모습이 5초 이상 클로즈업됐다는 사실입니다.

서두가 길었습니다. 지난번에 약속한대로 워싱턴DC에서 열리는 각종 회의와 강연에 대해 저의 경험을 중심으로 소개하겠습니다.

워싱턴DC 몰려있는 각종 싱크탱크에서는 매일 다양한 주제의 회의와 강연이 열립니다. 컨퍼런스와 강연을 찾아다니다보면 워싱턴이 세계 정치의 중심지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국제정치, 경제, 사회, 환경, 테러, 대선, 각국 선거 등 다루는 주제뿐만 아니라 강연자와 토론자, 청중들을 봐도 그렇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분위기에 젖는 동안 ‘내가 살아 있구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제가 본격적인 컨퍼런스의 청중 대열에 끼게 된 것은 지난해 9월말부터인 것 같습니다. 연수지역으로 워싱턴을 정하면서부터 염두에 뒀지만, 초기 정착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생각보다 좀 늦어졌습니다. 컨퍼런스 참관은 워싱턴DC 지역으로 연수 오는 기자들에겐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살아있는 학습의 장입니다. 미국 외교정책 전반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기회이자 사람을 사귈 수 있고, 영어도 배울 수 있는 장이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기대한 만큼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는 자신 있게 말씀드리지 못하지만 국제부 기자로서 현실감각을 잃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발품을 팔고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제가 주로 다니는 곳은 SAIS와 브루킹스연구소, 우드로윌슨센터(WWC), AEI,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등입니다. 싱크탱크는 아니지만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운영하는 코러스(KORUS)포럼에도 자주 가는 편입니다. 행사는 매달 각 기관의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에 공지되기 때문에 미리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부 기관의 경우 사전 등록을 받기도 하는데, 다과 준비하기 위해 미리 참석자 인원을 파악하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사전 등록을 하지 않아도 참관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저는 1주일에 최소한 2회 이상 참석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9월 하순부터 지금까지 1주일에 적게는 2회, 많게는 5회 정도 참석한 것 같습니다. 처음엔 한국 관련 행사에 초점을 맞췄으나, 관련 행사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 뒤 다양한 주제로 관심의 지평을 넓히게 됐습니다.

제가 다니고 있는 SAIS나 각 싱크탱크의 경우 기관의 성격 면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강연 주제는 크게 다를 바 없는 것 같습니다.

SAIS의 경우 강연이 자주 열리 편은 아니지만 가끔 무게 있는 인사들이 등장합니다.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안보보좌관, 조지프 리버먼 상원의원, 찰스 랭글 하원의원, 존 케리 전 민주당 대선 후보 등이 강연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SAIS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브루킹스 연구소는 편리한 접근성 때문에 제가 가장 자주 가는 곳입니다. 이곳에는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자주 언급하는 마이클 오핸런 연구원이 있습니다. 그는 현재 미국 대선 관련 프로젝트인 ‘오퍼추너티 08‘도 책임지고 있습니다. 각 방면에 정통하고 언변이 좋다보니 종횡무진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1월 말에는 코러스 포럼에서 북한 핵문제에 대해 강연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기억나는 강연은 서브 프라임 모기지 위기로 촉발된 미국 경제 위기상황에 관련한 지난해 12월19일 재무장관을 역임한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의 ’경기후퇴 위기와 정책 대응‘이었습니다. 강연 내용도 그러거니와 지금까지 유일하게 강연 자료를 미리 받아본 경우라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웠습니다. 이곳 컨퍼런스는 강연 자료가 현장에서 제공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강연 자료는 행사 후 홈페이지에서 제공되는데, 사전 보도자료에 익숙했던 저로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컨퍼런스가 열리는 1~2시간은 온갖 신경이 머리와 귀에 집중돼 가끔은 현기증이 날 정도였습니다.

보수 성향의 AEI에서는 네오콘(Neocon) 인사를 자주 보게 됩니다. 이번 깅그리치 강연에서는 SAIS 학장으로 있다가 조지 부시 현 행정부에서 국방 부장관과 세계은행 총재를 지내고 현재 AEI 객원연구원으로 있는 대표적인 네오콘인 폴 울포위츠가 청중으로 참석했습니다. C-SPAN 화면을 보고 안 사실이지만, 바로 제 뒤편에 앉아 있더군요. 아마도 제 얼굴이 클로즈업된 것이 울포위츠가 제 주위에 있은 덕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울포위츠 전 총재는 지난해 12월10일 이곳에서 열린 전 국방차관 더글러스 페이스 강연에서도 본 적이 있습니다. 이 자리에는 피터 로드먼 전 국방 차관보 등 네오콘들이 총출동한 것 같았습니다. AEI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명사들이 출연하는 ‘브래들리 강의’가 열리는 데, 다른 행사와 달리 5달러의 참가비를 받더군요.

한국대사관에서 하는 코러스포럼은 주로 화요일이나 목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진행됩니다. 가장 큰 특징은 한반도 관련 강연 위주라는 점입니다. 점심시간을 끼고 있는 덕분에 한국식 점심을 먹을 수 있습니다. 본사 특파원은 물론 타사 특파원들과 안부도 나누는 자리가 됩니다. 강연도 듣고 점심도 먹고, 강사를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는 1석3조의 효과가 있습니다.

각종 컨퍼런스를 다니다보면 새삼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많이 열리는 컨퍼런스 가운데 한반도 관련 행사는 매우 적다는 사실입니다. 국제사회 속의 한국의 위치를 다시금 확인하는 셈인 데, 한편으로는 당연하다고 여기면서도 조금은 씁쓸한 생각이 듭니다.

컨퍼런스에 참석하면 국제 현안에 관한 정보와 미국의 외교정책 전반에 대한 내용과 다양한 자료 확보, 운 좋으면 유명 인사를 직접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만 꼭 마냥 마음이 편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처음에는 청중 가운데 아시아계가 저 뿐인 것을 발견하고 놀라기도 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행사 전에 발표 자료가 제공되지 않아 겪는 고통도 상당합니다. 그럼에도 각종 컨퍼런스를 찾아다니며 그 속에 파묻혀 있는 시간은 워싱턴DC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족을 단다면 각종 싱크탱크는 점심식사를 해결하는데도 도움이 됩니다. 이 점에서는 브루킹스가 가장 마음에 듭니다. 브루킹스의 경우 재정이 탄탄해서인지 컨퍼런스를 할 때마다 식사 때가 임박한 경우에는 샌드위치 중심의 간단한 식사가 제공됩니다. 이 때문에 특별히 관심 있는 주제가 아니더라도 11시30분 즈음에 시작하는 행사에는 점심을 해결할 요량으로 자주 가볼까 고려중입니다. 식사 때가 아닌 때는 간단한 쿠키와 커피나 음료가 제공됩니다.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오후 늦게 하는 행사의 경우 와인과 치즈 정도는 제공하는 데, 참석하기가 약간 부담이 됩니다. 왜냐면 참석자들과 와인과 치즈만 먹으면서 담소를 나눠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는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여간 배짱이 큰 사람이 아니고서는 쉽지 않을 겁니다. 막상 마음먹고 가도 와인만 한잔 마시고 총총걸음으로 빠져나오기 일쑤입니다.

컨퍼런스에 참석하다보면 워싱턴 중심가를 구경하는 재미도 덤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저는 평소에 백악관 근처에 있는 지하철역인 패러것 웨스트에서 내려 SAIS까지 걸어다닙니다. SAIS는 지하철역에서 17번 스트리트를 따라 북쪽으로 한 10분 걸어가면 나옵니다. 학교 쪽으로 조금 걷다보면 왼편에 얼마 전 뉴욕 주지사 성매매 사건으로 유명해진 메이플라워 호텔이 있습니다. 호텔을 조금 지나면 AEI가 있고, 길 건너편에는 월간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발간하는 국립지리학회(내셔널 지오그래픽 소사이어티)가 있습니다. SAIS에서 20여분 거리에 있는 우드로윌슨센터를 가려면 백악관 뒤편인 라파예트 스퀘어를 지나게 됩니다. 계절에 상관없이 항상 관광객으로 붐비는 백악관을 볼 때마다 여러 가지 상념이 교차합니다. 특히 반전, 반핵, 평화시위를 위해 상설돼 있는 천막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다음 번엔 제가 살고 있는 버지니아주와 관련한 글을 소개할까 합니다. 버지니아주는 건국 초기 대통령을 8명이나 배출한 곳인데, 초대 조지 워싱턴, 3대 토머스 제퍼슨이 살던 집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