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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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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처음 온 게 1993년이니 거의 23년 만에 다시 미국 땅을 밟게 됐다. 물론 중간 중간 출장
이나 가족들 보러 간 적은 많았지만, 다니러 간 것이 아니라 1년 정도 살러 간 것이 그렇다는
얘기다. 학생 때는 모든 것이 쉬워 보였지만 40대 중반이 넘어, 더구나 가족들과 함께 낯선 땅에
와 적응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 학교 때는 조지아, 동부 쪽에서 살았는데
이번에는 UCLA, 서부 쪽이라 느낌도 완전히 달랐다. 미국이 워낙 넓어서 좀 과장을 한다면 다른
나라 같다는 느낌이랄까?


일단 날씨부터가 너무 달랐다. 캘리포니아 날씨는 신이 축복해 준 날씨라고 하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덥지도 춥지도 않고 비도 거의 안 오고(한 달 넘게 살면서 하루, 그것도 아주 잠깐 보슬비
정도만 내렸음) 천국 같은 날씨다. 운동 좋아하는 사람들은 1년 내내 아웃도어 스포츠를 즐길 수
있을 정도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똑같은 날씨가 반복돼서 지겹다고 하는 경우도 간혹 있었지만
나에겐 이런 날씨에 살아볼 수 있다는 게 행운이라고 확신하며 매일매일을 감사하며 지내고 있다.
특히 따가운 햇볕 때문에 덥다고 느끼기도 전에 그늘만 들어가면 선선하게 부는 바람은 캘리포니아
가 주는 선물이다.


연수 와서 가장 먼저 해야 될 일은 역시 운전면허 따기다. 미국은 아시다시피 주민등록증이나 외국
인등록증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운전면허가 자기 자신을 증명해 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신분증이
다. 한국에서 국제운전면허를 거의 발급받아 오지만 신분증으로서는 전혀 역할을 못한다. 사진이 들
어 있어 신분을 증명해 줄 수 있는 건 여권 밖에 없어서, 여권을 매일 들고 다녀야 하는 불편을 없
애기 위해선 하루빨리 운전면허를 따야 한다. 미국 내 18개 주는 한국면허를 그대로 인정해 주지만,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2/3 가량의 주는 시험을 봐야 한다.


필기시험은 다행히(?) 한글로 볼 수 있다. 문제는 거의 상식 수준이지만 최근에 출제 경향이 좀 바
뀌었고 미국만의 교통 법규가 있기 때문에  기출 문제를 한번쯤은 봐두는 게 좋다. 한인 마트(요즘
은 완전 시골을 제외하곤 거의 웬만한 큰 도시엔 다 있어서 찾기 쉽다)나 한국 식당, 한국인이 운영
하는 미용실 등에 가면 전화번호부처럼 생긴 책이 있는데 거기에 기출문제가 포함돼 있는 경우가 많
다.


필기시험을 합격하고 나면 실기시험을 봐야 한다. 우리처럼 정해진 코스는 없고 시험관을 옆에 태
우고 인근 동네 한 바퀴를 돌면 된다. 시험을 본 한국 사람들의 케이스를 종합해 보면 대체적으로
(꼭 그런 것은 아니고) 첫 번째 시험은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교통 법규를 잘 지켜도 어
떤 이유를 들이대서라도 불합격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야 더 조심히 운전한다는 것이 시
험관들의 논리다. 가장 중요한 키 포인트는 차선을 바꿀 때 반드시 왼쪽과 오른쪽 모두 고개를 거의
완전히 돌려 뒤를 돌아보고 차선을 바꿔야 한다는 점. 우리나라에선 대부분 백미러에 의존해서 차선
을 바꾸는데 이 곳에선 반드시 고개를 확 돌려 뒤를 돌아봐야 사각지대를 없앨 수 있다며 중요시 여
긴다. 약간 과장되게 느껴질 정도 고개를 돌렸다는 점을 시험관에게 인지시켜줄 필요가 있다. 깜박
이가 말을 듣지 않을 때 사용하는 수신호(왼쪽 팔을 펴면 좌회전, 위로 올리면 우회전, 팔을 아래로
내리면 멈춤)는 우리에게는 좀 낯설기 때문에 반드시 외우는 게 좋다. 차를 본격적으로 운전하기 전
에 브레이크와 파킹 브레이크, 깜박이, 와이퍼 등을 한번 움직여 보라고 하는데 나는 디프로스터
(defroster, 서리제거 장치)를 못 알아들어 1점을 감점 받았다. 또 차선을 바꿀 때 필요없이 속도를
너무 줄여 감점 5점, 1차선에서 우회전을 하면서 1차선으로 진입하지 않았다고 또 감점, 쓸데없이
아무 곳에서나 속도를 낮췄다고(사실은 조심 운전한 것인데) 감점 등 모두 16점을 감점받아 첫 시험
에서 탈락했다.(15점까지 합격이라 너무 억울했음)


여러 번 떨어진 사람들도 있다고 하는데 대체적으로 대도시 시험 장소를 피해 소도시에서 시험을 보
는 게 유리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시험을 볼 때 주행하는 차량이 적으면 훨씬 유리한데 아무래도
소도시가 주행 차량 수가 적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시험 장소를 고를 수가 있
는데 그 때 가급적 집에서 좀 멀더라도 소도시를 택하는 것이 낫다는 게 정설이다. 또 꼼꼼한 여자
시험관보다는 남자 시험관이 편하다는 말도 있는데 복불복이다. 하지만 시험관을 잘 만나는 건 대단
히 큰 행운인 건 분명하다. 시험관들은 대개(미국 공무원들이 대다수 그런 것처럼) 불친절하고 영어
못 알아듣는다고 무시하고 짜증내고, 오만하기 짝이 없는데 운이 좋은 사람들은 언어 통역이 필요하
냐며 물어주는 친절한 시험관을 만나기도 한다.


캘리포니아에서는 2016년 7월부터 필기시험을 볼 때 주소지 증명을 해야 하는데 예를 들면 집 계약
서나 가스나 전기, 인터넷, 전화요금 빌지를 가져가야 한다. 이것도 공무원마다 기준이 달라 어떤
사람은 어떤 서류를 인정해 주고 어떤 사람은 안 해주고, 어떤 공무원은 DS2019를 요구하기도 하고
어떤 공무원은 요구하지 않는 등 일관성이 없는 경우가 있으니 다시 시험장에 오고 싶지 않으면 갖고
있는 모든 서류(I94-입국 증명서는 필수)를 지참해서 가는 게 좋다. 필기시험을 합격하면 곧바로 사
진을 찍는데 이 사진이 면허증에 들어가는 사진이니 몰골을 좀 신경써서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실
기시험을 볼 때는 캘리포니아 면허가 있는 사람을 데려가야 하는데(사실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국제
면허를 발급받아 오기 때문에 필요 없지만 어쨌든) 몇 번 떨어지면 자꾸 데려가는 것이 미안한 만큼
신경 써서 빨리 붙어야 겠죠?    


지난주에는 이대호가 활약하고 있는 시애틀 매리너스가 LA 엔젤스로 원정경기를 와서 미국 온 뒤 처
음으로 야구장을 갔다. 티켓 예매는 다양한 곳에서 할 수 있는데 최소한 3-4군데 사이트를 직접 비교
해 보고 구매하는 것이 좋다. 똑같은 자리인데 가격이 10달러 이상 차이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빅 게임이 아니라면 5-10달러 정도의 외야석이나 내야석 뒤쪽 자리 표를 사서 4회나 5회가 지난 뒤
슬쩍 비어 있는 앞자리로 옮겨서 관람하는 것도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물론 이대호 같은
한국 선수를 가까이서 보거나 응원하고 싶으면 덕아웃에서 가까운 비싼 티켓을 사서 보는 편이 좋지
만, 최소 50달러를 넘고 비싼 건 900달러를 육박하는 티켓도 있어 잘 선택해야 한다. 야구 표를 예매
하면서 주차도 미리 확보하는 것이 좋다. 엔젤스 홈구장은 애너하임이라는 비교적 크지 않은 도시에
있어서 주차하기가 어렵지 않았지만 다저스 홈구장 같은 경우는 최소 35달러 이상을 줘야 주차 티켓을
구할 수 있다. 미리 주차 티켓을 구하지 않은 채 야구장을 갔다면 인근의 사설 주차장을 이용하면 되
는데 운이 좋으면 싸게 주차할 수도 있다.


집을 계약할 때는 대부분의 아파트나 주택회사들이 비자가 없으면 계약을 안 해준다고 하는데 잘 찾
아보면 1개월치 DEPOSIT만 내면 계약을 해주는 곳도 있으니 비자 없다고 포기하지 말고 전화나 이메
일을 통해 계속 찾다보면 쉽게 계약이 가능하다. 미국에 들어가기 전에 집 계약이 돼 있으면 서류 작
성에도 편하고 미국 도착해서 레지던스나 호텔 같은 곳을 전전하지 않아도 되고 각종 서류 발급도 빨
리 받을 수 있으니 한국에서 미리 집을 구해놓는 것도 나쁘지 않다. 차도 마찬가지인데 필자같은 경우
는 MISSUSA라는 사이트를 통해 한국 딜러를 소개받아 미국 들어가기 전에 미리 계약을 해서 LA 공항
도착하자마자 차를 인계받은 게 여러 모로 편했던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