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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옹성 같은 미국의 공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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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좀 편해졌는데..미국가서 베이비시터 할 일 있어?”
해외 연수 최종합격을 전해들은 아내의 반응이었다. 뛸 듯이 기뻐할 것은 기대하지 않았지만, 찬물을 끼얹는 듯한 반응에 속으로 내심 섭섭했던 기억이 난다.

난 결혼이 늦어 6살배기 아들과 4살배기 딸이 있다. 아들녀석은 올해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에 입학했고, 딸내미도 약간의 국가 보조금을 받으면서 유아원에 다녔다. 한국나이로 6살,4살인 두 아이는 각각 10월, 12월생이라 미국나이론 4살, 2살이다. 미국 신학기 등록마감인 8월말에는 아들은 2달이 부족해 입학자격이 없다.(딸은 2살이라 day care center를 알아봐야 한다.) 그럴 경우 상황이 심각해진다. 멀쩡히 한국에서 다니던 유치원조차 못다녀 2달 차이로 정규교육에 배제되는 것도 분명 속상한 일이다.

하지만 와이프에게 대 놓고 얘기는 안했지만 내 현실적 고민은 따로 있다. 바로 프리스쿨의 살인적인 비용이다. 유치원은 정규교육에 포함돼 공짜지만 프리스쿨은 월 tuition이 1명당 1,000달러를 훌쩍 넘긴다고 들었다.(실제로 그렇다). 월 2000달러에 달하는 교육비를 줄이는 것은 미국 연수생활의 질을 결정할 최대 변수가 된 셈이다.

이때부터였다. 내가 연수지로 정한 노스캐롤라이나 교육청 홈페이지는 물론 인근 프리스쿨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한 것은…

내 목표는 간단했다. 아들녀석을 유치원에 밀어넣고, 딸은 저렴하고 훌륭한 시설을 갖춘 프리스쿨에 사전 등록하는 것. 와이프에게도 “겨우 이딴 문제를 갖고 연수 떠나기도 전에 초를 치냐”는 호통과 함께 걱정말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안타깝게도 내 호언장담중 이뤄진 것은 채 50%가 안된다. 그것도 큰소리 친 것의 대부분은 한국에서 서류준비 등 절차상 성공이었을 뿐 미국에서는 참담한 실패를 맛봤다. 해외 연수자 중에는 고참기자들이 많다. 자녀 중 유치원생이나 프리스쿨 입학대상이 많지가 않아 참고할 만한 연수기도 없어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

맨 처음 거주예정지로 정한 노스캘롤라이나 채플힐의 교육청 홈페이지를 뒤져 유치원등록 담당자를 찾았다. 명칭이 Coordinator of Student Enrollment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에게 내 아이 생년월일을 얘기하고, 9월 유치원 입학이 가능한지를 문의했다. 나이규정이 엄격하다면 예외규정이 무엇인지도 물었다.
돌아온 답변은 의외로 희망적이었다. 한국의 교육시스템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얘기와 함께, 노스캐롤라이나 교육법(According to Northcarolina education law)에 따라 예외규정이 있다는 것이다. 이 규정에 따르면 현재 다니는 유치원 재적증명서, 내년 초등학교 조기입학 허가서 등을 첨부하면 유치원 조기입학이 가능할 수 있다.

유치원 재적증명서야 어려울게 없지만, 초등학교 입학 admission서류를 준비하는데 적잖은 수고를 들였다.
이번 기회에 알았다. 공무원들이 새로운 서류에 도장찍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한다는 것을…한국 교육법에 의거해 내년 초등학교 입학이 가능하다는 서류를 만들어갔는데..한번도 본적이 없는 서류에 교육청 공무원은 도장은 고사하고 사인조차를 거부했다.
“자국인이 타국 교육법에 따라 교육기회를 못얻는 것을 보고만 있을 것이냐. 문제 될게 없으니..국민의 권익을 위해 사인을 해달라”는 간청에 마치못해 사인을 해줬다.

법무사에게 공증까지 받아 이제 아들 유치원 문제는 8부능선은 건넌줄 알았다. 그런데 또 다른 변수가 생겼다. 노스캐롤라이나 교육담당자에게 확인사살 차원에서 더 필요한 서류가 있느냐고 문의했는데….며칠전에 다른지역으로 전근갔다며 새로운 담당자 이름과 이메일 어드레스를 알려줬다.
새로운 담당자는 필요한 서류를 완벽히 준비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것이 여러 번의 이메일교신을 일단 차단하기 위한 형식적인 답변인 것을 나중에야 알게됐다.

미국 도착후 며칠후 서둘러 초등학교 및 유치원 등록을 관할하는 지역 교육청으로 갔다. 미국은 한국의 병설유치원과는 좀 다른 개념으로, 공교육인 초등학교의 한 과정이다.
유치원 입학 담당자와 면담을 했는데..그는 조기입학(2달 일찍에 불과하지만)의 예외조항에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었다. 그래서 오후 면담약속을 잡고..집에서 그동안 전 담당자와 주고받은 이메일을 프린트해 보여줬는데도 요지부동이었다. 그는 전 담당자일뿐이고,,자기로선 예외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무슨 교육법이 담당자에 따라 바뀌느냐” 며 몇차례 더 방문해 귀찮게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무엇보다 한국의 교육제도를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에는 분통이 터졌다.

이런 불만을 속시원하게 항의도 제대로 못했다는 게 당시엔 화가 많이 났다.
담당자는 대신 조기입학 테스트를 권했다. 솔깃해 들어봤는데., 정신분석학자 등 미국의 전문가에게 몇단계 테스트를 통해 입학가능 소견서를 받아오라는게 요지였다. 테스트는 무슨 언어로 하느냐고 했더니,, 당연히 영어란다. 욕이 튀어나오는 걸 간신히 참았다. 그런 테스트는 나조차 통과할 자신이 없다. 또 소견서를 가져와도 학교장의 심사를 또 거쳐야 한다는 소리에 미련을 접었다. 결국 유치원 입학 실패담만 주절주절 늘어놓은 꼴이 됐다.

유치원 입학기준은 미국 주마다 조금씩 다르다. 노스캐롤라이나를 비롯해 대부분의 주는 8월31일 현재 만 5세가 안되면 입학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국의 공교육 재정은 넉넉치 못한 탓이다. 이 곳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학부형의 기부를 강요하는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일부 주(州)에 따라 10월,11월생까지는 한두달 앞선 입학을 허가해주기도 한다. 몇 달 차이로 그 다음해 학기까지 공교육에서 소외되는 불이익을 막기 위한 취지다. 캘리포니아 코넷티컷 하와이 등이 그러한 주들이다.

회사 내부심사와 1월말 언론재단 서류제출(미국학교 어드미션 및 인비테이션 레터포함) 등 빡빡한 일정을 감안할 때 지역까지 골라서 간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연수 합격이 기정사실화 된다면 적어도 출국 1년전쯤부터 차근차근 준비하면 가능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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