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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멜팅 팟 미국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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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지역으로 미국 동남부의 조지아주를 선택했을 때 뉴욕에서 박사과정에 있는 한 후배의 첫마디는 인종
차별에 대한 걱정이었다. 그가 공부하면서 겪었던 미국사회의 차별, 특히 남부지역의 백인우월주의가 떠올
랐을 것이다. 실제 미국에서 영어가 서툰 이방인으로서 겪게 되는 크고 작은 차별은 특이한 경험이 아니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다. 여기에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발생한 총기사건을 보면 그 차별이라는 것이 다
른 인종에 대한 단순한 무시가 아니라 증오의 수준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 여전히 남아 있는 남북 전쟁의 흔적


아이러니다. 종교 박해를 피해 첫 이주가 시작됐고, 이후 조세를 통한 착취와 권리의 차별을 거부하고 독
립을 선언한 나라에서 어느 시대보다 잔인한 노예제도가 있었다니 말이다. 불과 150년 전까지 그랬다.



150년 전 전쟁은 끝났지만 이곳 조지아에는 곳곳에서 civil war 즉 남북전쟁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전쟁에
서 사망한 사람들의 묘는 누군가에 의해 관리되고 있고 기념일에는 화사한 꽃이 장식돼 있다. 실제 남북
전쟁은 남군의 마지막 보루 애틀란타가 함락되면서 사실상 종식되었는데 이때 많은 희생을 치른 북군은 철
도와 공장을 포함해 애틀란타 전역을 철저하게 파괴했다. 물론 수많은 희생자도 발생했다. 남북을 합쳐 62
만명. 노예를 부릴 만큼 부유했던 지주들 그리고 직업 군인이 아니라 농부 대장장이 같은 보통 사람들(?)
까지 총을 들고 나갔다. 이 지역 사람들의 경우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아니면 그리 멀지 않은 친인척이 포함
된 전쟁의 상처가 있을 것이다.


그 때문인지 남부에 대한 이들의 애착은 대단하다. 총기 난사범이 남부 맹방기(the Confederate Flag)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장면이 공개되면서 월마트를 포함해 많은 기업들이 남부 맹방기 사용 중단을 선언했
다. 하지만 조지아 주지사는 남부 깃발이 자신들의 자랑스러운 역사의 부분이라며 계속 사용하겠다고 선언
했다. 실제로 거리 곳곳에서는 여전히 남부기를 달고 다니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차별 가해자와 피해자


인종 차별에 대한 나의 불쾌한 경험은 애틀란타 스톤 마운틴이라는 곳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에서 나오는
5살 딸 아이를 보고 미국 아이가 “나는 중국인이 무서워”라는 말을 반복한 것이다. 이를 지켜보던 아이의
엄마가 이를 말리지 않고 ‘깔깔대고’ 웃었고 이것이 오히려 아이의 행동을 북돋아 주는 꼴이 됐다. 내가
카메라를 빼들고 나서야 한 남성이 다가와 아이의 엉덩이를 때리며 아이를 끌고 가는 것으로 사건은 중단
됐다.


다행히(?) 영어를 못 알아들은 우리아이는 상처를 입지 않았지만 나에겐 미국의 차별을 각인시켜주는 일이
었다. 여기서 이상한 점은 그 미국 가족이 흑인이라는 점이다. 자신들의 할아버지 아버지가 겪었던 야만스
러운 차별, 아니 지금도 자신들이 겪고 있을 그 차별을 다른 인종에게 똑같이 행동하는 것이다. ‘그래 흑
인들은 당해도 싸’라는 천박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사실 이런 차별은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가 동남아
노동자들에게 내던지는 격한 언어나 내면에 갖고 있는 그들에 대한 선입견은 우리 역시 그 흑인 가족의 천
박함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말이다.


미국에서 살게되면 한번쯤 인종차별 아니면 이와 비슷한 차별을 당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너무 슬퍼할 필요
는 없다. 다행인 것은 미국인들의 진심이 어떻든 자녀 교육에 신경을 쓰는 집안은 인종 차별을 포함한 비도
덕적 행동이나 언어를 사용하지 않도록 PC(politically correct) 대한 교육을 엄격하게 받는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미국 백인 가정은 우리나라보다 자녀교육이 더 엄격하다.) 만약 미국인으로부터 차별을 받았
다면 그 집안의 교육 수준이 엉망이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사라진 노예제도 그러나 여전한 차별


총기 난사로 흑인 9명이 숨진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톤은 조용한 관광도시다. 독립전쟁과 남북전쟁에서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언론은 용의자로 체포된 21살의 백인 청년(딜란 루프)의 행동을 증오 범
죄로 규정했다.



그러나 백인청년 딜란 루프의 총기 난사를 한 마리 ‘외로운 늑대’의 일탈로 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 조
용하고 고풍스러운 아름다움과 달리 찰스톤에는 인종차별이 만연하다고 USA TODAY는 주민들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사건현장 2-30 미터 앞에는 노예제도를 적극 찬성했던 부통령 ‘존 칼훈’의 동상이 서 있었다.
또 노예제도는 사라졌지만 백인 우월주의는 사라지지 않았다고 신문은 일갈한다. 이런 토양에서는 또 다른
딜란 루프가 태어날 수 있다.


이미 남북간 긴장이 고조되며 전쟁의 발발 가능성이 높아져 있던 시기 당선된 링컨 대통령은 취임 연설에서
“언젠가는 우리 본성에 깃든 보다 선량한 천사의 손길이 다시 와 닿을 것이며 그때 연방의 합창은 울려 퍼
질 것이다”라고 했다.


흑인 대통령까지 나오고, 표면적으로 미국은 연방의 합창은 물론 이미 전 세계의 연합을 주도하고 있다. 그
러나 링컨이 기대했던 우리 본성에 깃든 선량한 천사의 손길은 여전히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