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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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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오후 2시 28분.

중국 국무원은 5월 19일부터 21일까지 3일간을 쓰촨성(四川省) 대지진으로 희생된 사람을 애도하는 애도기간으로 정하고, 대 지진이 발생한 지 만 일주일째 되는 이 시간에 재난을 당한 모든 사람들을 위해 3분간 묵념을 올리도록 했다.

또 차량과 기차 선박은 3분간 경적을 울려 애도의 뜻을 나타내도록 했다.

비록 중국 국무원이 공고하고 모든 기관이 동참하도록 한 상당부분 강제성을 띄긴 한 것이지만 지진 발생지로부터 2천8백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상하이(上海)에서 과연 이 같은 애도행사가 제대로 이뤄질지 궁금하던 나는 상하이의 도심 거리에 나가 이를 지켜봤다.

교통사고가 나면 다친 사람을 긴급히 후송하기 보다는 서로의 잘잘못을 가리는데만 열중하는 중국 사람들, 싸움이 벌어지면 말리는 사람은 없고 구경만 하는 중국 사람들, 자신이 손해볼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 중국 사람들.

자신과 가족을 제외한 다른 사람을 대하는 중국 사람들의 집단의식에 대해 이 같은 말을 많이 듣고 직접 목격하기도 한 나는 애도 행사가 형식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내가 예상한 것과는 달리 오후 2시 28분이 다가오자 사람들은 일을 멈추고 옷 매무새를 가다듬었고 오고 가던 차들도 길가에 멈춰선 채 애도행사를 준비했고, 2시 28분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자 일제히 묵념을 시작했고 차량들도 경적을 울리기 시작했다.

톈안먼(天安門) 광장에는 수만명의 시민들이 모여 묵념을 올린 뒤 “중국 힘내라, 쓰촨 힘내라”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이 같은 모습은 중국 전역에서 동시에 같은 모양으로 진행됐다.

중국인들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지진 현장에는 인민해방군과 무장경찰, 소방대원 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재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자원봉사자가 넘쳐난다.

지진 현장 부근 도로에는 `항진구재(抗震救災·지진에 맞서 싸우고 재난에 처한 사람을 구한다)`라는 붉은 표어를 붙인 채 자원봉사자를 싣고 또는 이재민에게 전달할 구호품을 싣고 현장으로 달려가는 차량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공항이나 기차역에서는 구조현장의 생중계를 지켜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중국 전역에서 모금운동이 벌어지고 자발적인 헌혈운동도 계속되고 있다.

중국인들이 달라졌다는 말은 중국인 스스로도 하고 있다.

쓰촨성 현지에서 만난 한 택시 기사는 과거 큰 재앙이 닥쳤을 때는 이런 모습은 보지 못했으나 이번 지진 때는 많은 중국인들이 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사상 최악의 대지진을 겪으면서 중국사회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재난에 대처하는 중국정부도 크게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1976년 탕산(唐山) 대지진 당시 중국 지도부는 지진 피해 실상을 숨긴 채 외부의 지원조차 거부했다. 해외 언론에는 물론 국내 언론에 조차 붕괴된 탕산의 현장 모습이 공개되지 않았고 사망자 수가 공개된 것도 2년 이상 지난 뒤였다.

그러나 이번 쓰촨 대지진에서는 신속하고 투명한 중국 정부의 대응이 돋보였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대지진 발생 첫날 쓰촨성으로 달려가 현장을 찾아다니며 구조를 독려했고 이어 후진타오(胡錦濤) 주석도 현장으로 달려갔다.

관영 CCTV는 실시간으로 재난 방송을 내보며 참혹한 현장 모습과 울부짖는 희생자 가족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쓰촨성에서 발생한 최악의 대지진은 깊은 상처를 남기긴 했지만 중국 사람들에게 단결과 일체감, 위기 극복에 대한 자신감이라는 중요한 경험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8월에 개최될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 정부는 이번 올림픽을 중국의 성장에 대한 대외 과시용과 함께 중국 내부 단결을 위한 하나의 중요한 이정표로 인식하고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중국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이 같은 중국 정부의 의도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 관심(關心) 반, 회의(懷疑) 반으로 바라보았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이번 쓰촨 대지진이 발생하면서 초기에는 중국이 과연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는 진정한 능력이 있고 그만한 환경을 갖추었는지 의구심이 일었던 것도 사실이다.

또 중국 정부가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중국 정부가 이끌려고 하는 방향과 의도와는 상관없이 중국 사람들 내부에서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고 이 물결이 이미 하나의 큰 파도가 되어 중국 대륙을 휩쓸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 대지진을 통해 목격할 수 있는 것이다.

근세 백여년 동안의 외세의 침탈과 문화대혁명의 깊은 상처 때문에 ‘상처받은 용’으로 표현되던 중국은 최근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룩하면서 이제 여러 측면에서 거리낌없이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에 대해 ‘그래도 아직은’ 하고 물음표를 던졌던 사람들이 많다.

글로벌 스탠더드가 여전히 통하지 않고, 공중도덕은 지켜지지 않으며,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중국은 세계인이 인정하는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졌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쓰촨성 대지진과 이에 대처하는 중국과 중국 사람들을 보면서 중국이 자신감을 가질 만 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 같다.

중국의 위협이 너무 빨리 현실화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중국의 성장을 강건너 불 보듯 하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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