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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차에서 신차까지…차 쇼핑 노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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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장기연수를 위해 가장 중요한 쇼핑목록을 하나 들라면 나는 주저없이 차를 꼽겠다.
연수 준비할 때 집을 고른다고 꽤 신경을 썼는데, 와서 지내보니 집엔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차는 다르다. 어떤 차를 인수했느냐에 따라 많게는 몇 천 달러의 목돈지출을 막을 수 있다. 특히 장거리 여행이 잦은 연수생은 차에 가족의 안위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폭탄 돌리기’, 누가 걸릴지 모른다>

기자 대학교수 공무원 회사원 등에게 인기 있는 연수지역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노스캐롤라이나 지역은 날씨와 학군(초중등학교를 포함)이 좋고, 동부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는 사통팔달 지역이어서 여행을 떠나기에 최적의 지역으로 꼽힌다. 그래선지, 올해에는 한국인 연수생만 어림잡아 500명 가까이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1인당 4인가족을 기준으로 2000여명이 더램 채플힐 캐리를 중심으로 한 ‘리서치트라이앵글’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이 매년 들고나면서 생활집기 등을 일괄적으로 넘기는 무빙(moving)이 다음카페(카페명 NC Visiting)나, 듀크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등의 한인사이트를 통해 1년 내내 활발하게 이뤄진다. CJ, 대한통운 등 NC지역에 진출한 물류회사는 매년 들고나는 연수생덕분에 먹고 산다는 얘기가 들리는 것을 보면 무빙이 NC지역에 적잖은 경제파급효과를 불러 일으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무빙만 잘 받고 넘겨도 연수기간을 최대 1달여 세이브할 수 있는 것은 당연지사다. 무빙의 핵심품목이 바로 차량이다.(왜 무빙이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연수생끼리 직거래를 통해 차를 인계받으면 싯가(미국 자동차거래 사이트 kelley blue book의 딜러판매가 기준)보다 30% 정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연수생의 손을 몇 번 거친데다 연식이 10년 가까이 되고 마일리지도 10만일(한국 km로 환산하면 16만km)을 훌쩍 넘긴 차들이 수두룩하다보니 타임벨트 등 주요 소모품 교체시기가 언제일지, 최악의 경우 차 구입가격 이상을 들여 엔진을 통째로 바꿔야 하는 시기가 언제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연수생들은 차를 주고 받는 것을 ‘폭탄 돌리기’라 부른다. 한국에 돌아가면 다 알만한 사람들이라, 차를 인수한 후임자가 1년만 무사히 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심정으로 넘기는 게 그래서다. 동종업계 선후배끼리 차를 사고 팔았다가, 서로 관계가 어색해졌다는 얘기도 종종 전해 듣는다.

중고차 인수는 속된말로 ‘복불복’이다. 똥차 샀다고 투덜대는 사람이 수 만 마일을 잔고장 하나 없이 잘 타다 가는가 하면, 차 잘 샀다고 자랑했던 사람이 1년 내내 속앓이를 하는 경우가 자주 회자된다.

<차종에 따라 여행의 스케일이 결정난다>

차 문제 등으로 단 하루의 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3~5년식, 5만마일 이하의 손을 덜 탄 차를 인수할 생각이었다. 특히, 어린애들 안전문제를 감안할 때 처음 무빙 인계자가 10만 마일 이상의 차를 함께 넘기려고 했을 때 기분이 좀 상했던 기억이 난다.

내 상식으로 10만km는 폐차를 고민해야 할 마일리지인데, 이역만리 타국에서 16만km(10만 마일)를 주행한 고물차에 애들을 태우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아서다. 하지만, 미국은 도로사정이 좋아선지 30만일을 달려도 차가 멀쩡한 경우가 많다. 고국에서 끌던 차가 교체시기가 되면서 신차(세단)를 구입하는 쪽으로 와이프와 의견합일을 이뤘다. 미국에서 신차를 사서 반입하면, 차고장 고민에서 해방되는 것은 물론 중고차 사고 파느라 힘을 빼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그러다, 연수를 다녀온 사람들의 세컨드 차 필요성과 함께 가족이 장기여행을 하는데 있어서 미니밴이 필수란 얘기를 전해 들었다. 그때는 긴가민가 했었지만, 연수자가 어떤 차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여행의 스케일이 결정된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거대한 미국대륙 횡단은 물론 여차하면 캐나다 멕시코까지 장거리 여행을 하려면 세단차량으론 어림도 없다. 하루 7시간이상 차량으로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린애들일수록 밴에 창작된 DVD를 틀어주다 경찰의 눈을 피해 안전벨트도 풀어줘 뒷좌석에서 활개를 치게 두지 않으면 1시간도 주행하기 힘들다. 짐칸에 애들 간식거리와 음료수를 담은 아이스박스와 전기밥통, 10여일분 식량을 싣지 않으면 마땅히 여행경비를 절약할 곳도 없다.

눈치 챘겠지만 난 일제 미니밴을 갖고 있다. 이 차로 캐롤라이나 머틀비치에서 북동부 포틀랜드까지 웬만한 대서양 비치에 모두 몸을 담가봤고, 사우스캐롤라이나, 스모키 마운틴(2번), 코넷티컷, 뉴욕 등 동부 쪽은 거의 섭렵하다시피 돌아다녔다. 살 때 11만3000마일이던 차의 마일리지가 12만3000마일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솔직히 난 운이 좋았다. 출국 한 달 전쯤 미니밴 구입을 수소문했는데, 검찰청의 한 검사가 내놓은 차를 KBB사이트의 GOOD가격에 매입했다. 더 깎을 수도 있었지만, 서로 $100~$200가지고 말 섞는 게 쑥스러워 그만뒀다. 덕분에 내비게이션도 남겨주고, 애들 어리다는 말에 정비소에서 다시 한번 점검을 받은 것으로 안다. (이 것도 못미더워 장거리 여행 전엔 반드시 정비소에서 직접 차량 점검을 받고 있다)

<좋은 차를 선점하라>

난 현재 모는 미니밴에 아주 만족하고 있다. 와이프도 처음에는 차 색상이나 생활스크래치 등으로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더니, 몇 번 장기여행을 다녀보고는 차를 한국에 가져가자는 농담을 하곤 한다. 운이 좋았다. 하지만, 대부분은 쏟은 노력과 정성만큼 좋은 차를 확보하는 것 같다. 연수지역이 결정되면 그 지역 유학생 카페나 대학 등의 직거래 사이트를 뒤지면서 매물을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해 사진 몇 장하고, KBB기준 가격만 보고 구매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차라리 자신의 네트워크를 좀만 활용하면 얼마든지 좋은 차를 선점할 수 있다. 회사 선후배가 같은 지역에 연수를 하고 있으면 의외로 차 문제는 쉽게 풀릴 수 있다. 난 처음 LG상남언론재단을 통해 NC지역에 연수하고 있는 기자를 수소문 한 후 집과 차량구입을 타진했다. 또 연수대학인 듀크대학의 담당조교를 통해 당시 연수생들의 이메일 주소를 받아 내 의사를 전달했다.

‘짐을 풀자마자 곧 짐을 싸는’게 연수다. 차에 관심을 가져주면 그 쪽에서도 대환영이다. 그래서, 일면식도 없던 언론계 선후배 및 공무원들로부터 ‘상냥한’구애 답신을 많이 받았다. 거래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연수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도 귀동냥할 수 있었다.

차 가격은 통상 자동차 거래사이트인 KBB의 프라이빗 파티 밸류(private party value)를 기준으로한다. KBB에 접속하면 대상 차의 가치(value)를 뽑아 볼 수 있다. 현재의 차 가치를 알아보기 위해 연식, 메이커, 차종, 마일리지를 기입하면 trade in value와 private party value가 동시에 나온다. 전자는 중고차 딜러 샵에 넘기는 기준 가격이고, 후자는 개인간 직거래 가격이다.

KBB기준 가격은 Excellent, Very good, Good, Fair 네 가지로 구분되는데 최상위와 최하위 가격차이가 많게는 몇 천 달러에 달한다. 또 같은 정보를 입력해도 차주와 구입희망자가 뽑은 차 가치가 다르게 나올 수 있다. 차의 옵션사양을 적용했느냐 여부 때문이다.

그렇다면 양자가 만족할 만한 차 가격의 절충점은 어디일까.
차 상태나 차주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은 Good 가격에서 결정되는 것으로 안다.
주위의 경험담 등을 감안할 때 구매자 입장에서 가격 할인에 치중하기 보다는 차에 대한 정확한정보를 교환, 상호간 차량 안전을 도모하는 쪽으로 신경을 쓰는 게 좋다. 6개월 이상 차를 몰아본 차주는 차에 대한 사소한 흠이나 향후 소모품 교체시기 등에 대해 정비소에서 귀띔을 들었을 것이다. 연수생들이 대부분 차거래 경험이 많지 않아 유무선을 통해 가격을 후려치면 상호간 기분이 상할 수도 있다. 차라리 가격할인보다는 단골정비소를 갖고 있는 차주에게 의심 가는 소모품을 교체해줄 것 등 요구해 보는 게 어떨까. 어떤 차가 ‘폭탄’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선점이 유리한 것은 차에 대한 예방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제품처럼 당일 쇼핑하는 신차>

미국의 자동차 딜러샵에 가면 앉혀놓고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부터 물어본다. 그러면 서너번 귀찮은 전화를 각오해야 한다. 미국과 한국은 신차판매 시스템이 다르다. 한국은 현대 기아 GM대우 등의 전속대리점이 있어, 차종과 사양 옵션 등에 대해 일대일 대면 상담을 거쳐 일정 시점 후 차를 인도받는다.

하지만, 미국은 전속대리점이 아니라 판권을 가진 딜러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랄리 더램 채플힐 등 도시에는 지역 판권을 획득한 온갖 브랜드의 카 딜러샵들이 들어서 있다. 땅덩어리가 넓고, 모든 카메이커들이 진출해 무한경쟁을 벌이다 보니 딜러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것 같다. 샵에 들어서면 딜러는 원하는 차종이 뭐냐고 묻고는 곧바로 차를 보러 간다. 색상, 원하는 사양의 차를 둘러본 후 사무실에서 가격 네고가 끝나면 계약서를 쓰고, 보험번호만 있으면 바로 자동차 키를 내준다. 자동차 가격에는 노스캐롤라이나 세금(차량가격의 2%)과 자동차번호판 등록비용(70달러 정도)이 포함돼 있고, 임시번호판을 달고 나가면 나중에 우편으로 자동차 번호판을 배달해준다. 자동차 사는 게 쇼핑몰에서 물건 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동차 딜러는 자신의 실적 및 향후 구매자의 변심을 방지하기 위해, 그날 계약을 종료하기 위해 차를 당일 가져갈 것을 종용하는 느낌을 풍겼다. 보험이 없다고 하면, 자신이 싼 보험을 소개해주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보험계약이 없으면 자동차를 가지고 나갈 수 없다)

이 같은 당일 쇼핑을 위해 딜러샵들은 같은 차종의 다양한 색상 및 옵션별 차량을 구비하고 있다. 구매자들의 구매패턴 및 유행하는 색상을 예측, 차량을 갖다 놓고 파는 식이다. 그래서 가죽시트교체나 노스캐롤라이나에는 없는 시트의 히팅(heating)시스템 등 추가 옵션은 우선 차를 가져간 후 1주일 후쯤 재 입고해 작업을 한다.

<정상가에 사면 미친 짓이다>

무슨 품목이 됐건 미국에서 정상가(tag price)에 사면 미친 짓이라고 한다. Tag price는 앞으로 할인율을 표시하기 위한 기준가격일 뿐이지 실제로 판매가격이 아닌 것이 분명해 보인다. 적어도 미국에서는….자동차도 마찬가지다.

나는 쇼핑에 많은 시간을 들이는 스타일이 아니다. 자동차도 원하는 차종을 정했으면 최대한 깎았다고 생각되는 시점에서 바로 계약을 한다. 실제로 그럴려고 했는데, 와이프 때문에 계약을 못했다. 계약 직전에 다른 곳을 한번만 더 둘러보자고 번번이 고집을 부렸다. 와이프에게 끌려 다니다 보니 차 구입하는데 까지 2주일이 소요됐고, 그러다보니 여러 메이커의 딜러들을 만나 안되는 영어로 협상을 하느라 진땀을 뺐다. 와이프는 자신이 점 찍은 차를 사려는 목적으로 계약직전의 차를 번번히 퇴짜 놓은 것으로 나중에 밝혀졌다. 자신은 부인하고 있지만…

딜러샵에 방문한 후 주차장에 진열된 차종을 둘러봤으면 본격적인 가격협상을 벌이게 된다. 물론 협상의 기준은 자동차에 달려 있는 tag price이다. 나도 처음에는 이 것을 기준으로 가격 네고를 했다. 이러면 절대 안된다. Tag price에는 구매자에게 깎아주기용 생색을 내기 위한 거품이 잔뜩 끼여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1000달러 남짓한 딜러 인센티브(incentive)이다. 신차의 모든 tag price에는 딜러 인센티브가 포함돼 있고, 가격 네고에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깎아주는 항목이다. 딜러 인센티브는 딜러샵마다 1000~1200달러까지 제 각각이다. 그래서 어떤 곳은 1200달러를 깎아줬다고 생색부터 낸다. 나를 포함해 자동차 할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여기서 조금만 더 깎아주면 바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게 된다.

tag price를 협상의 기준선으로 삼으면 할인폭은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자동차에 관한 한 전문가에 속하는 딜러에게 질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나 같은 경우는 딜러가 인센티프를 포함해 서너번 담당 매니저를 만나고 온후 할인폭이 3000불(딜러의 주장)을 넘었다고 주장하자 가계약서에 사인을 했다.(딜러샵에는 딜러를 총괄 관리하는 매니저가 있으며, 딜러는 소비자가 가격 할인을 요구할 때마다 매니저에게 달려가 허락을 받는다. 난 이틀에 걸쳐 가격을 깎자, 나중에는 딜러가 매니저의 메모를 보여주고 그 곳에 사인을 요구했다. 거기에는 “no more haggle” 이 적혀 있었다. 가격에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의미다. 실제로 사인을 했다. 그리고 또 깎아달라고 했더니 또 깎아줬다)

지엽적인 얘기를 너무 많이 한 것 같다. 여하튼 미국자동차 매장에는 빈손으로 가지 말고, 차 메이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원하는 차종의 기본형 가격을 확인하고 옵션 색상 등에 따른 가격명세서를 뽑아서 가는 게 좋다. Tag price가 아니라 이 명세서를 협상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기본형에는 공장에서 현지까지 선적비용(destination + handling)만 포함돼 있다. 물론 이 것은 깎을 수 없다. 나머지는 다 협상의 대상이다. 기본 차값은 물론이고, 히팅 시스템 가죽시트 등등 옵션 사항들도 얼마든지 깎을 수 있다.

관세가 면제되는 현대차에 연수생들의 관심이 많다. 면세대상은 한국공장에서 생산한 제너시스와 그랜저(현지명 아제라)이다. 하지만 그랜저는 현대가 지난해 모델체인지를 한 후 가격을 올리면서 큰 메리트가 없어졌다. 실제로 노스캐롤라이나 현대차 대리점에서 확인한 제너지스(3.8)의 tag price가 3만 7000여불인데 비해 그랜저(3.3)는 3만 9000여불에 달했다. 그랜저는 거의 풀 옵션인 만큼 정면 비교할 수 없다는 설명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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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제너시스와 그랜저를 놓고 딜러와 상담도 했고, 여러가지를 저울질을 해봤다. 하지만, 10년 가까이 탈 차를 단순히 관세를 면제받자고 구입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판단이 들어 포기했다. 현대차는 tag price에서 수 천불이상을 할인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안다. 현지 딜러는 현대차가 관리하는 한 사이트(Hyundaicircle)에 접속, 한국인임을 증명하고 직업을 포함해 다양한 정보를 입력하면 비밀번호(pin number)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딜러는 “핀 넘버를 가져오면 tag price는 아무 의미가 없고, 엄청난 할인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단계에서 포기해 실제로 얼마나 깎아주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딜러가 공무원(government person)이냐고 몇 번 묻는 것을 봐서는 직업에 따라 할인율이 좀 다른 것으로 추정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