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보기

주차 표시 잘 살펴보기

by

주차 표시 잘 살펴보기…벌금 30만원에 가슴이 벌렁벌렁

“뭐? 주차위반 요금이 30만원이라고?!!”

자동차 왕국에 엄청난 땅덩어리를 가진 미국에서 자동차를 주차한다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미국도 도심에서는 주차난이 심각한 만큼 차를 잘 주차해야 한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지만 그다지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어딘가 주차할 곳이 있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렇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리고 주차를 잘못하면 엄청난 벌금이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데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미국에 입국한 지 2주가 채 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에서 학교가 있는 워싱턴 DC로 나가려면 지하철로 대략 30분 정도 걸린다. 워싱턴의 주차요금이 시간당 2.5달러로 생각보다 비싼데다가 차를 마땅히 주차할 만한 곳도 없어서 대체로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가곤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그날은 마침 학교에 볼일이 있는데다 이후 아내와 함께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해서 불가피하게 차를 갖고 시내에 가게 됐다.

그림 1워싱턴 DC 시내에 있는 주차미터기. 장애인전용 주차 구역임을 알리는 스티커가 선명하게 붙어있다.

학교에 도착한 나는 차를 길거리에 주차한 뒤 20여 분 간 볼일을 본 뒤 차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저 멀리에서 덩치 큰 여성경찰관이 내 차 앞 유리창에 무엇인가를 놓고 있는 것이 보였다. 순간 나는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직감하고 서둘러 뛰어갔다.

“오피서(Officer), 제 차에 무슨 문제가 있나요? 지정 구역에 잘 주차하고 요금도 지불했는데요”라고 말했다. 미국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관에게 최대한 공손하게 해야 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기에 아주 예의바르게 물었다.

그러자 그 경찰관은 나를 바라보며 씩 웃더니 “맞아, 당신 아주 주차를 정확하게 잘 했어. 그런데 잘 봐봐. 여긴 장애인 지정 주차구역이야”

그 경찰관은 친절하게도 손가락으로 주차미터기를 가리켰다. 아뿔싸. 거기엔 큼지막하게 장애인 주차구역임을 나타내는 표시가 있었다. 나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멍하니 주차위반 딱지를 받아들었다. 벌금을 확인해보니 무려 250달러. 거기에 견인신청까지 한 것으로 나타났다. 만일 견인까지 당했다면 차를 찾기 위해 추가로 250달러가 더 들어갈 상황이었던 것이다. 국내에서 운전한지 20년이 넘었지만 우리 돈으로 30만원이나 하는 주차위반 벌금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한동안 망연자실한 채 서 있었다. 당시 침대 매트리스를 50달러 정도 깎아보려고 이곳저곳을 알아보고 있었지만 이런 노력을 한방에 허무하게 만드는 일이었던 셈이다.

그림 2워싱턴 DC시내에 있는 주차구역 표지판. 주차가능 시간과 제한 등이 복잡하게 설명돼 있다. 잘못 이해하면 주차위반딱지를 받는 것은 물론 최악의 경우 견인당할 수도 있다.

나와 아내의 충격은 상당기간 계속됐다. 워싱턴에는 웬만해서는 차를 갖고 가지 않으려했다. 그러던 12월의 마지막 날. 마침 연말을 앞두고 시내에 있는 박물관에서 입장권을 무료로 나눠주는 행사가 있어 이번에는 괜찮겠지 하는 생각에 아내와 함께 차를 갖고 나갔다.

어느 정도 주차에 적응도 한데다 두 명이 함께 움직이면 주차요금보다 지하철 요금이 더 비싼 현실도 감안했다. 이번에는 백악관 인근에 주차를 했다. 주차 표지도 수차례 확인하고 다른 승용차도 주차했기에 큰 문제가 없는 줄 알았다. 박물관 구경을 잘 마치고 나오니 이번에도 또 유리창 위에 주차위반딱지가 떡하니 놓여있었다. 이번에는 관광버스 승하차 지역에 주차했다며 30달러짜리 주차위반 딱지를 붙여놓았던 것. 주차 당시 아무 문제가 없어 다른 차는 어떤가 살펴보니 거기에도 모두 주차위반 딱지가 놓여있었다. 아놔..정말 어쩌라는 건지.

주차악몽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올해 초 마이애미의 쿠바인 밀집 지역인 리틀 하바나에 주차한 뒤 주변을 둘러보고 돌아오자 이번에는 마이애미 경찰이 마침 주차 딱지를 내차 유리창 위에 올려놓고 있었던 것. 나는 이번에도 경찰관에게 “오피서, 우린 관광객이다. 방금 주차했는데 무슨 문제가 있는가?”라고 하자 경찰관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맞다. 당신이 버지니아에서 온 관광객인 것을 잘 안다. 그런데 이곳은 트럭 전용 주차구역이다. 당신 차때문에 다른 트럭이 옆 차선에서 물건을 내리다 300달러짜리 딱지를 받았다. 당신도 위반은 위반이니 딱지를 끊은 것이다”

그림 36개월여 동안 생활하며 받은 주차위반 딱지와 속도위반경고장. 장애인 관련 위반은 벌금이 상상을 초월한다.

나는 경찰관에게 주차구역 표시가 혼돈의 여지가 있다며 읍소했지만 경찰관은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며 79달러짜리 주차위반 딱지를 내밀었다. 겨우 5달러짜리 기념품 한 개를 구입한 대가는 참혹했다.

주차 위반 외에도 한 번은 속도위반 딱지를 받을 뻔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에서 조지아 주의 서배나로 이동 중이던 17번국도. 왕복 4차선 도로였지만 오가는 차가 거의 없을 정도로 무척이나 한가했다. 피로를 덜기 위해 자동운행장치를 60마일로 맞춰놓고 가고 있었는데 정말 어디서 나타났는지 경찰차가 바로 뒤에 따라 붙었다. 차가 별로 없으니 분명히 우리차를 따라 오고 있다는 게 분명해 차를 갓길에 세웠다. 여러 사람이 말하길 속도위반의 경우 벌금이 문제가 아니라 정식재판에 회부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는 만큼 우습게 볼 일이 아니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무척 긴장했다. 그리고 경찰관이 올 때까지 두 손을 운전대에 올려놓은 채 공손하게 기다렸다.

나는 씩 웃으며 “오피서, 무슨 문제가 있나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경찰관은 “다리를 건널 때 속도표지에 50마일로 돼있었는데 속도위반을 했다”고 대답했다.

나는 “아, 그런가요? 저는 표지판을 보지 못했는데요?” 경찰관은 “그래서 당신 차의 번호판을 보니 버지니아에서 온 차더라. 여기서 종종 외부인이 그 사인을 보지 못하고 속도위반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관은 우리의 행선지를 물은 뒤 운전면허증과 보험증서를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나는 면허증을 제시한 채 제발 딱지를 받지 않기만을 기원했다.

10분여가 흐른 뒤 경찰관이 다가와 “살펴보니 속도위반 기록이 없고 사안도 경미해 이번에는 경고만 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연신 “감사하다”고 말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긴장이 풀린 나는 심지어 경찰관에게 우리가 가는 곳에 맛집을 아는 곳이 있느냐고 묻는 여유도 부렸다. 경찰관은 친절하게 “지난 주말, 나도 서배나에 다녀왔는데 그곳의 해산물이 유명한 만큼 해산물 식당에 가보라”고 권했다.

미국에서 생활한지 벌써 6개월이 넘었지만 여전히 도심 주차는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몇 가지 팁을 제공하고자 한다. 우선 워싱턴을 포함한 도심에서는 주차미터기에 카드나 동전을 넣는 방식은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파크모바일’이라는 앱을 추천하고 싶다. 워싱턴 시내에서는 대체로 주차가 2시간으로 제한돼 있다. 이 앱을 사용하면 따로 동전을 넣을 필요가 없다. 그게 싫다면 일요일에는 도심 길거리 주차가 무료이니 그때를 이용해도 된다.

만일 뉴욕으로 간다면 베스트파킹(Best Parking)이나 스무스파크(Smooth park)를 이용할 것을 권한다. 주차요금 비싸고 길거리 주차장 찾기 힘든 뉴욕에서 무료 길거리 주차장을 찾아주는 아주 유용한 앱이다. 주말의 경우 길거리 주차가 무료인 곳이 많으니 이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