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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응 안 되는 미국의 팁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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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응 안 되는 미국의 ‘팁 문화’

필자는 해외 체류 경험이 적어서인지 팁 문화가 적잖이 낯설다. 기껏해야 호텔에서 방 청소해주시는 분들을 위해 베개 위에 1달러짜리 지폐 한두 장 올려놓은 경험이 다다. 이 때문에 가는 곳마다 팁을 줘야하는 미국 문화는 어지간히 적응이 안 된다. 개인의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이성과, 사회적 시선‧도덕적 딜레마와의 충돌을 경험해야하기 때문이다.

일단, 왜 줘야 하는지부터 수긍이 잘 가지 않는다. 종업원에게 주는 팁은 내가 받은 서비스의 대가다. 하지만 음식 값에 서비스 비용까지 포함돼 있는 한국 등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왜 미국의 서비스만 특별한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납득이 안 된다. 물가가 높은데 종업원들은 ‘상대적으로’ 페이가 적고, 보험 적용도 제대로 안된 경우가 많아 미국에서의 팁은 일종의 생계보조수단이라고 한다. 실제로 미국 연방 최저임금은 시간당 7달러 25센트로 우리 돈 약 1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다만 각 주마다 차이가 크다.)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그걸 왜 가게 주인이 아닌 소비자가 떠맡아야 한다는 말인가.

두 번째로 팁을 주는 방식이다. 과거 1달러짜리 지폐 몇 장을 테이블에 놓고 가던 것과 달리 카드 결제가 익숙해지면서 팁도 카드로 지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먼저 종업원이 음식 값이 적힌 빌을 가져다주면 카드를 준다. 그럼 종업원은 카드를 가져가 음식 값 만큼만 먼저 계산한 뒤 영수증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그 영수증에 팁을 얼마나 줄 것인지 적으면 차후 음식 값을 계산한 그 카드에서 추가로 팁이 결제가 된다. 친절하게 객관식으로 15%, 18%, 20%로 나눠주고, 각 %마다 팁이 얼마인지 적혀있는 경우도 있다.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소비자가 팁을 적어낼 때 종업원이 옆에 서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 순간이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서비스가 별로여도 중간 정도의 팁을 줘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느껴진다. 왜 내가 내 돈 쓰면서 그런 압박감을 느껴야 하는지 한국사람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세 번째, 들쑥날쑥한 ‘팁 퍼센티지’다. 일반적으로 서비스가 별로였으면 10%, 그럭저럭 괜찮으면 15% 정도를 주고 아주 만족했다면 20% 정도를 주면 된다고 들었지만 실제로는 음식점마다 차이가 크다. 특히 미국에 있는 ‘한국 음식점’이 그런 곳이 많은데 아예 팁이 18%부터 시작되기도 한다. 한국 음식의 경우 무료로 주는 반찬의 가짓수가 많고 그만큼 종업원이 더 자주 왔다갔다해야하기 때문 아닐까 추측된다. 물론 영수증에 나와 있는 팁 권고 수준을 무시하고 스스로 퍼센티지를 계산해 팁을 적어 넣을 수도 있지만 막상 쉽진 않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미국 일각에서도 팁을 없애고 아예 음식 값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이 나온다고 한다. 팁을 없애면 서비스의 질이 저하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돈을 줘야만 서비스를 해주는 ‘가식적인 서비스’라면 글쎄, 개인적으론 종업원과 소비자 피차 마음 편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서비스가 ‘가식’을 전제로 한다는 것은 인정한다.)

미국 팁 문화는 과거 유럽을 다녀온 상류층이 유럽 귀족 문화를 흉내 내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특히 노예제 폐지 이후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했던 흑인들에게 임금 대신 팁만 주는 데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이런 만큼 팁 문화에 거부감을 느끼는 필자를 ‘선진 미국 문화’의 경험이 부족한 데 따른 것이라고만 매도하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