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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도시에서 노숙자의 터전으로…포틀랜드의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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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도시에서 노숙자의 터전으로…

포틀랜드의 어제와 오늘

미국 오레곤주 포틀랜드는 한국에 잘 알려진 도시는 아니다. 서부의 대표적 도시인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등에 비하면 존재감이 약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포틀랜드는 ‘킨 포크’라는 힙한 매거진이 한국에서도 출간되면서 마니아들 사이에선 꽤 유명한 도시가 됐다. 킨 포크는 패션, 여행 등을 다루는 잡지인데 포틀랜드에서 발간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선 번역본을 구할 수 있다.

포틀랜드의 별칭은 ‘장미의 도시(City of Rose)’이다. 1800년대 목재산업이 기반이었던 이 도시는 나무를 베고 남은 그루터기(Stump)가 가득 차 한때 ‘스텀프 시티’로 불렸다. 이 같은 부정적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1900년대부터 정책적으로 장미를 키워 도시에 색깔을 입혔다. 포틀랜드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역시 북서부지역 ‘워싱턴 파크’에 자리한 장미정원이다. 이곳에는 수백 종류의 장미가 자라나는데 형형색색 아름다운 색상을 뽐낸다.


[사진1] 포틀랜드 장미정원

우리 가족의 첫 포틀랜드 도심 체험도 장미정원에서 시작했다. 9월까지는 장미가 많이 피어 있는 만큼 가족 단위의 방문객이 넘쳐났다. 방문객은 저마다 장미꽃에 코를 대고 향기를 맡거나 사진 찍는데 몰입해 있었다. 우리는 매일 오후 1시에 진행하는 무료 투어에도 참여해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가이드는 “포틀랜드는 정책적으로 장미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장미의 이름을 딴 거리를 조성하기도 했고, 장미축제와 함께 장미 여왕 선발대회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가이드의 설명처럼 장미정원 한편에는 마치 LA 할리우드 거리를 연상시키는 거리가 있었다. LA가 유명 배우, 감독의 동판을 할리우드 보도블록에 새겨 넣은 것처럼 포틀랜드는 매년 선발한 장미 아가씨의 이름을 적은 동판을 장미정원 보도에 설치했다. 장미 여왕에 선발된 주인공은 평생 자신의 이름을 사람들에게 알릴 기회를 얻게 되는 셈이다.

포틀랜드의 또 다른 명물은 수제 맥주이다. 킨 포크 잡지에도 수제 맥주와 펍이 자주 소개된다. 우리 가족은 이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10 배럴 브루어링(Barrel Brewing)’ 이란 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포틀랜드 펍의 특징은 평일 일과시간이 종료되면 바로 앞 도로까지 펍의 야외로 공간을 확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도로가 펍의 야외 테라스가 되는 셈이다. 도심 외부의 주거단지가 형성되고 대형 몰이 들어서면서 구도심의 상권이 극도로 쇠퇴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일종의 상생방안이었다. 펍의 테라스는 늘 만원인 만큼 사전에 예약하지 않은 우리 가족에게 기회는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는 차선책인 루프 톱의 이용 가능성을 물었지만, 이 역시 만석이었다. 결국, 1층 창가로 자리를 안내받았다. 펍이라고 해도 우리나라의 호프집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이곳은 카페와 더 비슷한 분위기였다.


[사진2] 차선을 야외테라스로 운영중인 포틀랜드 펍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의 손님이 많았고 커피에 케이크를 결들이듯 피자, 나초 등에 맥주를 곁들이는 사람이 다수였다. 우리는 ‘스테이크 치즈나초’를 주문했고, 종업원의 추천을 받아 IPA 맥주를 손에 쥐었다. 수제 맥주의 성지에는 IPA가 항상 자리하는데 사실 내 취향은 라거 맥주에 더 가깝다. 이곳의 IPA 역시 쓴맛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맥주와 함께 안주가 나왔는데 치즈나초는 우리 가족이 다 먹고도 남을 만큼 양이 많았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많은 양의 안주가 10달러가 채 되지 않았다. 우리는 여유로운 오후를 느낀 이후 펍을 나왔다.

포틀랜드의 또 다른 명물은 푸드트럭이다. 나는 각국 여행을 다닐 때마다 길거리 음식을 즐긴다. 저렴하고 맛있는 음식을 찾는다면 패스트푸드보다는 단연코 현지 길거리음식이다. 포틀랜드에서 처음 경험한 식사도 푸드트럭이었다. 포틀랜드 도심 내에는 수백 곳의 푸드트럭이 합법적으로 운영된다. 포틀랜드대학교(PSU) 캠퍼스 내에도 푸드트럭이 입점해 영업하고 있다. 학교 도서관 인근 공터에서 중식과 라오스음식을 판매하는 푸드트럭이 각각 구수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고 냄새에 이끌린 나는 라오스 쌀국수와 닭 날개 튀김을 주문했다. 길거리 음식은 역시 웬만해선 실패를 하지 않는다. 라오스 푸드트럭의 주인장은 “이곳에서 영업한 지 한 달 됐다”고 말했다. 동남아시아에서 즐겨 먹던 특유의 진한 국물맛이 나서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맛이 어떠냐”고 묻는 주인장에게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보였다.

포틀랜드 도심을 구경하다 고른 두 번째 푸드트럭의 식사도 나쁘지 않았다. 마치 서울 한강이 남북을 가르듯 포틀랜드 도심에는 월레밋강이 동서를 나누고 있다. 강 주변에는 수변공원이 조성돼 있고 많은 시민이 이곳에서 여유를 즐긴다. 당초 수변공원 자리에는 우리의 올림픽대로와 마찬가지로 순환도로가 차지해 시민들의 접근을 막았었는데 도시 재생의 목적에서 도로를 걷어내고 수변공원으로 다시 꾸몄다. 시민들이 찾아올 수 있는 공원으로의 조성은 대성공이었고 사람들이 몰리자 이 일대에도 푸드트럭이 성업하기 시작했다. 내가 선택한 음식은 그리스 여행 당시 많이 먹었던 기로스였다. 터키 케밥과 흡사한데 난과 같은 전병에 각종 고기와 채소를 넣어 먹는 음식이다.

음식을 들고 수변공원 일대에서 먹으려고 공간을 찾았지만 웬걸 가장 좋은 곳은 모두 노숙자가 차지하고 있거나 노숙자의 짐이 자리했다. 심지어 일부 벤치는 심각하게 훼손됐지만, 수리 없이 방치되고 있었다. 노숙자의 범람으로 시설물 관리조차 어려워진 것이다. 이곳이 노숙자의 터전이 된 것은 사람들의 방문이 잦은 장소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거리동냥을 할 기회의 장소가 되는 만큼 노숙자들이 몰려오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사진3] 인도를 차지하고 있는 노숙자 거주텐트

노숙자들은 포틀랜드 대학에까지 진출했다. 얼마 전 한 대학 건물에 들어가던 중 한 노숙자가 소란을 피우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는 누가 보라는 듯이 고함을 치며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잠시 돌아봤는데 불필요한 충돌이 생길 듯해 이내 시선을 돌렸다. 그는 내 근처까지 오더니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고 사라졌다. 이곳 캠퍼스의 사람들은 익숙한 일인 듯 그냥 지나쳤다. 노숙자들이 어느덧 상아탑까지 와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셈이다.

킨 포크를 통해 포틀랜드를 접한 다수의 사람은 포틀랜드를 힙한 장소로 인지하고 있다. 수제 맥주와 각종 힙한 디자인, 부티크상점 등이 발달해 마치 서울의 홍대와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 포틀랜드는 여전히 ‘힙함’을 유지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어느 도시나 주목을 받게 되면 반대급부를 겪기 마련, 포틀랜드의 오늘은 ‘살기 좋은 도시’라는 유명세에 몰려든 노숙자들을 합리적으로 수용할 방안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포틀랜드의 노숙자 위기 경보등은 사실 상당히 오랜 기간 진행되고 있었다. 미국 언론의 추산을 보면 포틀랜드 시에서는 현재 6,000명 이상의 노숙자가 거주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포틀랜드시는 노숙자를 위한 캠프시설 정책을 펴고 있지만, 이들이 자발적으로 수용을 받아들일 마땅한 방안이 없어 골머리를 앓는 분위기다. 포틀랜드가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을지 관심을 두고 지켜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