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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면서 배운다 – 미주리대 저널리즘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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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면서 배운다 – 미주리대 저널리즘스쿨

김민형 서울경제신문 차장

‘Learning by Doing.’

미국 중부 미주리주의 미주리대학(University of Missouri)의 저널리즘스쿨의 교육철학을 상징하는 표어다. ‘일하면서 배우는’ MU J-School의 모토는 월터 윌리암스(Walter Williams)가 1908년 미국 최초로 저널리즘스쿨을 설립할 때 세운 원칙이다. 현재 미주리대 J-School은 TV,(KOMU) 신문(Missourian), 라디오(KBIA), 잡지(VOX magazine), 광고기획사(Mojo Ad) 등을 운영하고 있다.

미주리대학의 저널리즘스쿨 외부전경이 평화롭다.

일하면서 배운다는 것은 현대 교육의 관점에서 보면 깊은 철학이 담긴 말이지만, 설립 당시에는 부족한 재정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1865년 노예제도를 둘러싼 남북전쟁이 끝난 후 미국은 방황을 거듭하다 결국 1893년 경제적 공황을 맞게 된다. 월터 윌리암스는 당시 언론들이 보이던 당파적인 모습에 실망해 학문적 배경과 실무 능력을 갖춘 저널리스트들을 배출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공황의 여파가 지속되는 가운데 충분한 재정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대학과 지역언론을 결합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배우는 학생들이 직접 신문을 만들면서 실무 능력을 쌓고, 그 수익으로 저너리즘스쿨의 재정을 유지하는 묘안을 낸 것이다. 프리츠 크롭(Fritz cropp) 미주리대 저널리즘스쿨 부학장은 “부족한 재정을 메우기 위한 아이디어가 실용적인 저널리스트들을 길러내는 MU의 특징이 됐다”며 “대학의 교수들과 프로 저널리스트들이 스태프로 참여하는 TV, 신문, 라디오에서 모든 학생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실무경험을 쌓기 때문에 졸업 후 미디어산업에 취직이 잘 되고 시작부터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미주리대학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이 수업하고 있는 모습

MU J-School은 수업 역시 학문적 배경을 쌓는 과정과 다양한 경험을 쌓는 산학협력(CAPSTONE)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캡스톤은 학업과 함께 TV, 신문, 라디오 등에서 실무경험을 병행하는 학생들을 위한 실질적인 수업이다. 교수가 아닌 TV, 신문, 라디오의 경영진이나 PD, 기자들이 맡아 진행한다. 학부 수업이지만 고리타분한 원칙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미디어 산업에서 필요로 하는 정보를 가르친다. 취업인터뷰나 직장 상사와의 갈등해결 같은 개인적인 문제부터 뉴미디어 산업 전략이나 줄어드는 젊은층 공략위한 미디어전략 등 다양한 문제를 케이스 스터디로 다룬다. 해당 케이스에 대해 최소 5명 이상의 현직 미디어 종사자들에게 멘트를 받아서 자신의 의견을 반영한 의견을 내야 학점을 이수할 수 있다. ‘Media management and Leadership’ 수업을 맡고 있는 마이크던(Mike Dunn) KBIA 사장은 “인력운용, 직원교육, 재무경영 등 미디어 산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강의실이 아닌 현장의 메커니즘을 배우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며 “현장은 강의실과 다른 정글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느끼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른바 ‘Academic Mission’을 수행하는 MU이 미디어들이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라디오 매체인 KBIA는 미주리주는 물론 전국 라디오 스테이션을 대상으로 한 시상식에서 거의 매년 수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 청취율이 가장 높다. 마이크던 KBIA 사장은 “기자들을 포함해 모든 구성원들이 회사의 전략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사장으로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며 “전국적인 이슈와 지역적인 이슈들에 대한 합리적인 의견을 듣도록 하고, 청취자들이 원하는 음악에 초점을 맞추고, 매출로 직결되지 않는 온라인 광고보다 실제 광고주에 도움이 되는 광고를 전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미주리대학 저널리즘스쿨 학생과 교수진들이 함께 만드는 TV채널 KOMU의 스튜디오

가장 경쟁이 치열한 TV의 경우 자체 제작 프로그램을 30%까지 유지하고 있다. 대부분이 뉴스들로 지역주민들에게 관심있는 뉴스들이다. 맷가렛(Matt Garrett) KOMU 사장은 “학생들과 함께 만드는 방송이지만 우리는 매일매일 수십개 채널과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학생들이 만드는 TV 채널이라는 점은 강점이자 약점”이라며 “광고주들에게 이 부분을 어필함으로써 일종의 ‘기부’에 가까운 재정적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퀄러티를 높여서 그런 장벽을 넘어서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학생들이 만드는 미디어 매체들이 이 같은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던 배경은 뭘까. 맷가렛 사장은 “KBIA, 미주리안, KOMU 등은 MU의 교수들이나 프로 저널리스트들이 상주하면서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높은 퀄러티를 유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며 “다만 앵커, 날씨 등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춰야 하는 분야는 학생들이 아닌 프로들을 기용함으로써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맞추고 있다”고 전했다.

미주리대학 저널리즘스쿨 학생들과 교수 등이 만드는 신문 미주리안 외부전경

신문인 미주리안은 지역 경쟁지인 트리뷴을 위협해 결국 최근 매각되도록 하는 전리품(?)을 챙겼다.

MU J-School의 프로그램은 한국의 지역매체에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대학과 지역언론이 결합해 고품질 컨텐츠를 생산해냄으로써 상업언론과 당당히 경쟁하는 컨셉이기 때문이다. 이런 형태의 미디어가 생존하려면 프로페셔널한 코치진들이 구성되어야 하며, 컨텐츠 역시 지역주민들에게 관심을 끄는 것들이어야만 한다.

미주리안의 편집국 풍경. 모바일을 강조하는 표어가 인상적이다.

미주리안의 경우 약 250명의 인력 중 20~30%가 교수들이나 전문 저널리스트들이다. 약 50명의 프로들이 200명의 아마추어들을 철저히 관리함으로써 경쟁력있는 신문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기자가 직접 미주리안 편집국을 방문했을 당시 프로 저널리스트들은 점심도 먹지 못한 채 경쟁지들이 온라인으로 어떤 뉴스를 내보내는 지 실시간 모니터링하면서 현장에 나가 있는 학생기자들에게 끊임없이 지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마케팅과 세일즈 파트 역시 수십년간의 경력 또는 MBA학위를 취득한 교수들이 현장에서 학생들과 함께 뛰면서 영업현장을 누비고 있었다. 능력있는 코치진들이 없다면 매년 바뀌는 학생들이 유지할 수 있는 품질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들의 헌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주리안의 사진편집장인 브라이언 크래쳐(Brian Kratzer)는 “현재 총 20명의 학생사진 기자가 일을 하고 있으며 이들 중 프로 페셔널은 2명 뿐이다”라면서도 “학생들 수준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은 프로들의 몫”이라고 전했다. 실제 그는 캔자스시티, 세이트루이스 등 미국 중부의 주요 도시들의 유력 언론사들과 강력한 네트워크를 맺어 사진을 교류하기도 하고, 기술적 도움을 받아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그는 “미주리안이 학생들이 만드는 신문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여러 지역의 친구들이 무료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미주리대학에서 함께 공부하는 동료들과 미주리안을 방문해 기념사진을 찍었다.

두번째 핵심과제는 컨텐츠의 지역화다. 전국적인 이슈와 관련한 뉴스는 CNN, NBC, ABC,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등에서 충분히 다룬다. 문제는 실제 독자들이 관심있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과 관련한 컨텐츠들이다. 이 지점에서 MU의 미디어매체들은 모두 공통적인 철학을 갖고 있다. 지역뉴스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미주리안의 경우 1면 뉴스는 모두 지역뉴스다. 사진 역시 지역의 모습이나 문제를 제기하는 사진들이 대부분이다. 전국적으로 아무리 중요한 뉴스라도 지역뉴스 보다 더 비중있게 다뤄지지 않는다. 미주리주 콜럼비아 지역 주민들이 지역뉴스를 따로 소비하는 이유다. TV인 KOMU의 경우 전체 프로그램 중 30%를 자체제작하고 있는데, 이 중 95%가 뉴스다. 그만큼 지역뉴스에 공을 들이는 것이다. 맷가랫 KOMU 사장은 “우리가 만드는 뉴스가 지역사회와 밀접할수록 회사의 매출은 늘어난다”며 “날씨, 시의회, 도로상황 등 지역주민들의 삶과 직결된 뉴스를 가장 중요하게 다룰 뿐만 아니라 탐사보도팀인 ‘Target 8 investigate team’에 최고의 인력을 투입해 지역정치나 사회 문화에 걸쳐 일어나는 새로운 일들에 대해 집중 보도한다”고 말했다.

KOMU는 지역뉴스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날씨는 가장 중요한 컨텐츠다.

실제 KOMU에 대한 브랜드인식조사 결과 시청자들은 KOMU의 가장 주요한 브랜드 이미지로 지역뉴스와 탐사보도를 꼽았다. 맷가랫 사장이 기자에게 직접 보여준 뉴스게이트키핑 체크리스트에도 어김없이 ‘Local’이 포함되어 있었다. 기자들이 뉴스를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바로 지역문제인 것이다.

이 같은 모델은 한국의 언론계와 학계에도 큰 울림을 준다. 학생 감소와 매출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방 대학과 지방 언론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지방대학과 언론이 협력해 이런 모델을 구축한다면 어떨까. MU J-School의 일하면서 배우는 인프라는 하루 아침에 갖춰진 것이 아니다. 1905년부터 무려 110년이 넘는 역사를 통해 현재의 모습을 구축했다. 다양한 시행착오를 통해 끊임없는 궤도수정을 했으며, 현재도 혁신이 지속되고 있다. 교육적 목적을 수행하는 상업미디어로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존재의 이유를 결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헌신과 차별화한 지역 컨텐츠가 이런 일을 해냈다. 최고 수준의 교수진과 프로들의 헌신, 그리고 지역컨텐츠 개발에 초점을 맞춘 게이트키핑이 열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