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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생활4 – 이현세와 토리야마 아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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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세와 토리야마 아키라.
누구인지 아시겠습니까. 한국과 일본의 대표적인 만화가들입니다.
이현세 씨는 물론 잘 알고 계시겠죠? 공포의 외인구단으로 시작해서 아마겟돈 남벌 등 숱한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한국 만화산업의 대가입니다. 어렸을 때 이현세의 만화 한번 안보고 자란 이는 없을 겁니다. 등장인물도 까치와 엄지, 오혜성 등 엄청나게 많은 캐릭터가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자, 그럼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토리야마 아키라(鳥山明), 그는 누구일까요?
그는 몰라도 ‘드래곤 볼’은 아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토리야마 아키라는 바로 드래곤 볼의 작가입니다. 이 한편의 만화로 그는 순식간에 세계적인 만화 작가가 됩니다. 일본에서는 ‘아톰’의 데즈카 오사무(手塚治忠)의 뒤를 잇는 일본 만화 산업계의 거장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일본 연수기에서 뜬금없이 왠 만화가 타령이냐구요? 일본의 재패니메이션이 얼마나 대단한지, 일본 만화산업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저는 잘 모릅니다. 또 그걸 조사해서 글을 쓰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제 일본 연수를 정리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일본이라는 나라는 과연 어떤 나라인지, 그 단편을 하나 소개하는 것으로 마지막 해외 연수기를 써 보고자 할 따름입니다.

저는 지난 1년간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연수를 했습니다.
일본. 어떤 나라입니까?

한때 세계를 호령하던 아시아의 경제대국에서, 이제는 잃어버린 10년과 고령화의 나라로 인식되고 있는 ‘한물 간’ 선진국. 융통성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고지식하고, 가끔가다 ‘토리마(通り魔) – 지난 6월 도쿄 하키아바라에서 발생했던 무차별 살인사건 같은 것이죠. 이유도 없이 길 가던 행인을 살인하고도 별다른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살인마를 말합니다 – 등으로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나라.

물론, 이런 것들도 일본의 한 단편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그리고 이 외에도 많이 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잠재력은 무한하다. 여전히 세계적인 경제대국이다.” 등 등…

제가 일본에 대해 받은 큰 인상중 하나는 그들의 시장이었습니다.
일본은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수출 주도형 산업구조를 내수형으로 바꾸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써 오죠. 사실 그 토양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이 나라는 1억 2000만명에 달하는 거대한 인구가 있습니다. 인구가 1억을 넘는 나라의 부러움이란 대단합니다. 여전히 일본의 수출산업은 세계적인 수준이긴 합니다만 ‘쥐 잡는 약’ 광고가 TV 공중파를 탈 정도로 내수 시장을 갖고 있는 게 또한 이 나라의 큰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만화가 얘기로 돌아가죠.
이현세와 토리야마 아키라. 이현세가 1956년생, 토리야마는 1955년생입니다. 동년배 사람이지요. 데뷰 시기도 아주 비슷합니다. 이현세가 1979년 ‘저 강은 알고 있다’라는 만화로, 토리야마는 1978년 ‘원더 아일랜드’라는 작품으로, 각각 세상에 만화가 신고를 합니다.

두 사람 모두 30대 들어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도 공통점입니다. 이현세는 저 유명한 ‘공포의 외인구단’으로, 토리야마는 ‘주간 소년점프’라는 만화잡지에 ‘드래곤 볼’이라는 만화를 연재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오릅니다.

여기서부터 두 사람은 차이가 나기 시작합니다. 공포의 외인구단은 당시 한국 만화계에 새바람을 일으키며 등장합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누적 판매부수는 100만권에 못미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현세는 공포의 외인구단을 계기로 수많은 작품을 발표합니다. 다양하고 흥미로운 줄거리, 새로운 캐릭터를 속속 등장시킵니다.

반면 드래곤볼은 일본에서만 1억5000만원이 팔렸습니다. 드래곤 볼은 전부 42권 시리즈입니다. 한권당 약 450여만부 이상이 팔린 셈입니다. 토리야마 아키라, 그는 이 만화 하나로 뜹니다.

한국과 일본 만화 출판시장의 차이를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문화의 차이를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 시장성의 차이입니다. 100만과 1억5000만이라는 시장의 차이입니다. 아무리 만화산업, 출판시장, 독서문화의 차이 등을 감안한다고 해도 이 정도 차이는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수치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드래곤 볼은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일본 시장을 넘어 전세계로 갑니다. 현재까지 전세계적으로 3억권 이상이 팔렸다고 합니다. 성경보다 많이 팔린 것입니다. 당연히 만화책으로 그치지 않지요. 애니메이션, 캐릭터, 영화 등으로 드래곤 볼은 황금알을 낳은 거위가 됩니다.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는 한때 일본 고액 납세자 순위 랭킹 1위를 놓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한국의 1위는 세계가 주목할 때가 있습니다. 반면, 일본의 1위는 세계가 항상 주목합니다. 일본 문화의 힘-도 물론 있겠지요-만이라기 보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경제력,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바로 그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인정하든, 인정하고 싶지 않든 일본은 덩치가 큰 나라 입니다.

좁은 도로, 고달픈 샐러리맨들, 복닥거리는 아파트라는 생활 소국에서 사는 그들이지만, 주말마다 야구나 축구 클럽으로 스포츠를 즐기고, 휴가 때에는 우리가 봤을 때 놀랄 정도로 상당한 지출을 하는 1억 2000만여명의 사람들이 있는 거대 시장이 일본에는 있습니다.

게다가 그 시장은 보통 배타적이지 않지요. 다른 나라 기업들의 침투를 좀처럼 허용하지 않습니다. 일본 초등학교 학용품의 대부분이 여전히 수의계약 방식으로 이괄 구매로 이뤄진다는 사실은, 이런 일본 시장의 후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한 예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량품율이 극도로 낮은 질 높은 상품을 어쨌든 공급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저 거대한 시장을 높다랗게 벽을 쳐 넣고 마음껏 향유하고 있는 일본 기업들이 얄밉고도 부러웠던 1년이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일본 기업들이 ‘세계화’라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잃어버린 10년을 넘어 앞으로 10년후 일본 시장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 지 한번 지켜봐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