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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생활2 – 초기 필요한 제품, 리사이클 센터 활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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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도 TV나 가구가 갖춰져 있는 맨션이 있다고 듣기는 했습니다만, 저희 집에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전등도 없었습니다. 중개 부동산에서 도착한 날 서비스라면서 달아준 형광등만 하나 달랑 있었을 뿐입니다. 그밖에는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가지고 올 수 있는 옷가지와 냄비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한국에서 부친 짐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그래서 처음 며칠은 마치 대학 때 갔던 엠티와 같은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도착했을 때가 여름이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덩그러니 아무것도 없는 집에서 빵과 우유로 아침 식사를 하고 쇼핑을 하러 나갔습니다. 하지만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사야 하는지 사실 막막했습니다.

일본의 쇼핑-이라고 하니까 좀 근사하게 보이네요. 이때의 쇼핑은 집다운 집을 만들기 위한 지난한 작업이었을 뿐입니다만-은 콤비니(편의점) 100엔샵 슈퍼(슈퍼마켓) 할인점.양판점 등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본의 콤비니는 정말 많습니다. 4거리가 있다면 모퉁이 2-3곳은 반드시 콤비니가 차지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다닥다닥 붙어 있어가지고는 도무지 장사가 될 것 같지 않은데도, 어쨌든 일본에는 콤비니가 많습니다. 콤비니는 가벼운 먹을 거리나 간단한 잡화 등을 사기도 하고 은행 우편 택배 세탁 등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됩니다. 가격이 다소 비싸긴 하지만 처음 생각한 것처럼 터무니 없는 정도는 아닙니다.

100엔샵은 한국에서도 유명하지요. 소비세가 붙어서 실제 가격은 개당 105엔입니다. 싼 맛에 이것 저것 고르다 보면 나중에 계산할 때 아차 하기도 합니다. 주로 중국산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식기나 우산, 수건, 옷걸이, 아이들 과자나 학용품 등을 등을 사기에 안성맞춤입니다. 저의 경우 집 근처에 99엔샵이 있어서 그곳을 자주 이용합니다.

슈퍼는 한국의 동네 슈퍼마켓과 이마트, 롯데마트 등 대형 마트의 중간 규모에 해당하는 쇼핑센터입니다. 다양한 식재료와 생활필수품 등을 구입하는 데 알맞습니다. 세이유 이나게야 마루혼 유네스코 등 슈퍼가 저의 집 근처에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 슈퍼의 판매 가격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근처 점포보다 비싸면 신고하세요’라면서 치열한 가격 경쟁을 벌이지만 이곳은 똑 같은 상품인데도 어디는 싸고 어디는 비싸고 합니다. 예를 들어 세이유는 이나게야에서 206엔에 팔고 있는 음료수를 178엔에 판매합니다. 대신 이나게야는 스시가 상대적으로 다른 곳보다 쌉니다. 유네스코라는 곳은 육류와 채소가 신선하고 싼 것으로 유명한 가게입니다.

다음으로 양판점이 있습니다. 한국의 이마트, 롯데마트에서 과일, 채소, 고기 등 식재료를 제외하고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짓수가 많지는 않지만 가전제품도 판매합니다. 동키호테 올림픽 등이 대표적입니다.

자 어디에 가서 사야 할까요.
일단 자전거부터 사기로 했습니다. 일본 생활에서 자전거는 필수품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자전거를 참 많이 탑니다. 스커트를 입은 젊은 여성이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것은 이상하지도 않습니다. 자전거 앞 바구니에 서류 가방을 싣고 양복과 구두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 부지기수 입니다. 앞에는 작은 아이, 뒷 자리에는 큰 아이를 앉히고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자전거를 몰고 가는 아줌마, 아주 자주 봅니다. 전철역 앞에는 자전거가 겹겹히 포개져 세워져 있고 무단 주륜돼 있는 자전거 단속을 하는 자치단체 직원이 따로 있습니다.

자전거는 집 근처 올림픽이라는 양판점에서 가장 일반적인 스타일-앞에 장바구니 달려 있는- 자전거를 샀습니다. 1만엔입니다.(나중에 후회했습니다. 이유는 조금 뒤에 알려 드리죠)

TV 냉장고 세탁기 전자레인지 등은 일본의 가전 양판점인 ‘빅카메라’에 가서 구입했습니다. 요도바시 빅카메라 등 일본 양판점은 전국적 체인점을 갖추고 있습니다. 가격이 저렴하고 주요 메이커들의 제품이 두루 갖춰져 있기 때문에 편리합니다. 특히 이들 양판점은 제품을 구입할 때마다 적립되는 포인트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입니다. 저의 경우 주요 가전제품을 빅카메라에서 몰아 산 후 적립한 포인트로 약 8000엔 상당의 전자레인지를 구입했습니다.
쇼파는 거리에서 우연히 발견한 통신판매점 ‘닛셍’을 통해 구입했습니다.(이것도 잘못 산 대표적인 사례)

몇가지 살림살이가 갖춰지니 비로소 집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TV는 TV대 없이 마룻바닥에 그냥 놓여져 있고, 식사는 여전히 라면 박스위에 신문지를 펴 놓고 먹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가구가 필요했습니다. 일본의 가구는 비싼 편입니다. 1년 정도 쓰는 건데 신제품을 사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아 중고품 전문 매장을 돌아 봤습니다. 일본 사람들의 경우 중고품이라고 해도 깨끗하게 사용해서 제품은 괜찮았지만 여전히 만만치 않은 가격이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가다 발견한 곳이 ‘리사이클 센터’라는 곳입니다. 이 리사이클 센터가 바로 두번째 일본 연수기의 제목이라고 하겠습니다.
리사이클 센터는 중고품 전문매장이긴 합니다만 일반 가게가 아닙니다. 자치단체가 자원재생, 장애자 취업지원 등을 위해 설립한 비영리단체입니다. 제가 주로 이용하는 곳은 ‘신주쿠구 리사이클 활동센터’입니다. 센터는 일반 자원봉사자들과 장애자들이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JR야마노테선 타카다노바바(高田馬場) 근처에 있는데, 집에서 걸어가면 20분 정도 걸립니다. 그래도 센터가 학교와 집 중간에 있어서 틈이 날 때마다 들리는 편입니다.

이 곳에는 가구에서부터 의류, 주방용품, 잡화, 중고본, 학용품 그리고 아이들 장난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중고제품이 있습니다. 제품 중에는 이른바 브랜드 명품도 있습니다. 대부분 깨끗하게 사용한 것들이라 상태는 상당히 좋은 편이고, 가격도 저렴합니다.

이 곳을 알게 되면서 마침 당장 필요한 게 생겼는데 바로 큰 아이 책가방 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일본 소학교 어린이들은 ‘란도셀’이라는 직사각형 모양의 독특한 가죽 책가방을 메고 다닙니다. 이것은 규정입니다. 아직도 저렇게 똑같은 가방을 메게 한다는 게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어쨌든 아이 전학을 앞두고 당장 필요했습니다.

근데 이 란도셀 가격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신주쿠에 있는 오다큐 백화점에 가서 진열돼 있는 란도셀을 봤는데, 보통 3-4만엔대였고 비싼 것은 12만엔이나 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100만원이 넘어가는 셈입니다. 1학년때 사서 소학교 졸업할 때까지 사용하기 때문에 비싼 재질로 튼튼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겠지만 일반 소비자들이 보기에는 상당히 부담스런 가격대입니다. 하물며 1년 정도만 쓰게 될 우리 같은 외국인 처지에서는 곤란한 상황이었죠. 주위 지인들에게 급하게 알아봤지만 헛수고였습니다.

그러다 이 신주쿠 리사이클활동센터에서 중고품으로 나온 란도셀을 발견했습니다. 가격은 단돈 500엔. 가방 안에는 처음 샀을 때 달려있는 보증서까지 포장돼서 들어있더군요. 원래 가격이 몇 만원 대의 좋은 제품이더군요. 란도셀은 그리 자주 나오는 품목이 아니라는 것을 봐서는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싼 가격에 감사하게 쓰고 있습니다.

중고 가구점에서 5000~6000엔 대나 하는 TV받침대도 이곳에서 아주 괜찮은 제품으로 3500엔에 샀습니다. 센터는 중고 자전거도 매월 첫 번째 일요일과 매주 목요일 판매하고 있습니다. 자전거는 6800엔(등록세 500엔 포함, 일본은 자전거 구입시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합니다.)에 판매하고 있는데, 거의 새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여기서 자전거를 사면 올림픽에서 산 1만엔짜리 자전거보다 더 근사한 것을 오히려 더 싸게 구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소 아쉬웠습니다.
쇼파나 탁자 등 가구도 배달비용(무거운 가구 등은 배달료를 따로 받습니다. 신주쿠 구내는 1000엔, 신주쿠구 이외는 2000엔)을 포함해 3000~4000엔이면 아주 좋은 제품을 살 수 있었는데, 당장 급한 마음에 일반 제품으로 구입한 게 안타깝더군요.

혹시 나중에 일본 도쿄로 연수를 오시는 분이 있다면 일용 잡화나 가구, 자전거, 의류 등을 살 때 지역 내 리사이클 센터를 꼭 이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강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