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기는 이 나라의 새로운 것, 또는 무척이나 인상적인 것으로 시작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엄청나게 쌓여 있는 미국, 중국 연수기와 달리 일본 연수기 코너에는 아무것도 없더군요. 말하자면 이 연수기가 LG상남언론재단 홈페이지에 실리는 첫번째 일본 해외연수기가 되는 셈입니다. 아무래도 정착기 같은 게 하나쯤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일단, 일본에서-정확히는 도쿄 신주쿠구에서- 자리를 잡는 것으로 첫번째 일본 해외연수기의 문을 열어 보겠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지난해, 그러니까 2007년 8월 31일 일본 하네다 공항에 도착한 날, 우리 가족에게 제대로 갖춰져 있는 것은 집 밖에 없었습니다.
집은 일본에 오기 한달 전 쯤에 현지 부동산에 의뢰를 해서 5~6개 가운데 하나를 선택에 이미 계약을 해 놓은 상황이었습니다. 일본의 경우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에 1년간 살게 될 집을 미리 보고 계약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고 생각됩니다.
일본의 집은 크게 단독주택, 아파트, 맨션 등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아파트와 달리 일본의 아파트는 목조 건물로 2층 이상 짓지 못하도록 돼 있습니다. 임대료가 싸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많이 낡아 있고 화재의 위험성도 큽니다. 맨션은 한국의 저층 아파트 개념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저는 와세다 대학까지 자전거로 통학할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맨션을 선택했습니다.(자전거로 20분 정도 걸립니다.) 매월 집세만 18만6000엔이나 하는 상당히 비싼 맨션입니다. 지은 지 2년 정도 되는 비교적 신축 건물로, 방2개에 거실 부엌 욕실 등이 갖춰져 있고 면적은 24평형 정도 됩니다.
참고로 이 같은 구조를 일본 사람들은 2LDK라고 부릅니다. 맨 앞의 2는 방의 숫자, L은 리빙룸 즉 거실, D는 다이닝룸으로 식당, K는 키친 즉, 부엌을 의미합니다. 1LK라면 방이 하나에 거실과 부엌이 있는 집을 말합니다.
일본에서 외국인이 집을 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일본은 집주인(大家さん)의 영향력이 그 어느 나라보다 셉니다. 집주인이 세입자를 골라서 집을 임대합니다. 세입자의 국적, 직업, 아이들 수 등의 문제로 임대를 거절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일본 영화 ‘아무도 모른다’를 보면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집주인 몰래 아이들을 숨겨 이사 오는 상황이 있는데 결코 허황된 얘기가 아닙니다.
일본에서는 집을 빌릴 때 초기 비용이 상당하다는 점도 신경 써야 합니다. 일본은 우리나라의 전세 개념이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월세 입니다. 문제는 임대 계약시 최고 첫 6개월분 집세가 나간다는 것입니다.
우선 집을 빌려 줘 고맙다고 집주인에게 한두달치 집세를 그냥 줍니다. 이것을 레이킨이라고 합니다. 이 돈은 나중에 이사갈 때 돌려받지도 못합니다. 최근 레이킨은 한달치만 받거나 또는 아예 받지 않는 곳도 있긴 합니다. 또 두달치 정도 집세를 보증금으로 집주인에게 줘야 합니다. 시키킨이라고 하는데 이 돈은 나중에 돌려 받습니다. 하지만 집주인이 집수리비, 청소비라면서 일부를 제하고 주기 때문에 온전히 돌려 받기는 쉽지 않다고 합니다. 여기에다 한달치 집세를 미리 냅니다. 그리고 부동산 중개 수수료가 한달치 집세 입니다. 저의 경우 레이킨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화재보험료 등을 포함해 처음 계약시 74만엔 정도의 거금을 미리 내야 했습니다.
집을 고르는 데 고려해야 할 점으로 전철역과의 거리가 중요합니다. 미국 캐나다 등으로 연수를 간 분들과 달리 일본은 연수 생활을 하면서 자가용을 굴리는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승용차 가격은 그리 부담스럽지 않지만 운용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경우 주차장 공간이 있어야만 차를 구입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주택 임대가격에 주차장 비용까지 포함돼 있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차장 비용을 따로 부담해야 합니다. 만일 거주하는 맨션에 주차장 공간이 없다면 근처 사설 주차장 사용계약을 증명해야 합니다. 이 비용만 월 3만~4만엔 정도 합니다. 연간 50만엔 가까운 돈을 주차 비용으로 쓴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겠지요.
따라서 웬만한 거리는 그냥 걸어 다니고 조금 멀다면 자전거를 타고 다닙니다. 장거리는 전철을 이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도쿄의 경우 전철망이 그물처럼 연결돼 있어 굳이 차가 없어도 돌아다니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하지만 처음 도쿄 전철 노선도를 보게 되면 너무 복잡하게 얽히고 있어 헷갈릴 정도입니다. 노리카에(乗り換え) 즉, 갈아타는 것도 쉽지 않아 익숙해 지려면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합니다.) 이 때문에 전철역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집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일본 주택임대 광고를 봐도 ‘00역에서 도보 몇분’하는 식의 광고 문구가 큼직하게 씌여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 입니다.
그렇다면 ‘도보 3분’이라면 어느 정도 거리를 말하는 걸까요? 어른 걸음걸이로 3분 정도 되는 거리를 말하는 걸까요? 일본답게 이런 것도 매뉴얼화돼 있습니다. 일본에서 도보 1분은 80m를 말합니다. 따라서 도보 3분이라면 역과의 거리가 240m 정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도쿄 전철은 JR선과 도쿄도가 운영하는 도에이(都営)선, 그리고 세이부신주쿠(西武新宿)처럼 일반 기업이 운영하는 사철(私鉄) 등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줄기라고 할 수 있는 JR선에서 가까운 역에 집을 구하는 게 좋습니다. (물론 이 경우 집값이 그만큼 더 비싸지겠지요.) 도쿄의 경우 대표적인 JR선이 바로 야마노테(山の手)선입니다. 한국의 서울 지하철 2호선처럼 도쿄도내를 둥그렇게 둘러싸고 도는 전철입니다.
자…집이 마련됐다면 살림 살이도 장만해야 하겠지요. 이 글을 쓰려니까 일본 생활 초기 아무것도 없는 집에서 라면 박스를 펴 놓고 식사를 하던 눈물겨운 장면이 생각나네요. 다음 편은 일본의 알뜰 쇼핑에 대해서 말씀드리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