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오바마와 민주당에 대형 악재가 터졌습니다
멕시코 만에서 원유를 뽑아올리던 시추선이 폭발해 멕시코만 바다속에서 끝없이 시커먼 원유가 유출되고 있는 것입니다. 취임 후 이라크 전쟁과 아프간 전쟁 처리,그리고 무너진 경제를 일으켜 세우는 것을 지상과제로 삼고 내달리던 오바마에겐 예기치 않던 악재입니다
세계 최강국 미국은 도대체 얼마 만큼의 원유가 유출되고 있는 지 조차 사고초기 측정해 내지 못했습니다.
아름다운 야생동물의 천국 루지애나와 플로리다 그리고 미시시피 알라바마 주에 걸쳐 어민들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고 환경 대재앙이 예고되고 있습니다. 이미 기름 범벅이 된 펠리컨의 안타까운 모습이 뉴스 화면을 덮고있습니다.
사고 초기엔 그저 규모가 큰 단순 사고이겠거니 했던 미국인들은 텔레비전으로 두 달 넘게(6월24일 현재 유출 66일째) 분출하고 있는 시커먼 원유를 속절없이 지켜봐야 하는 형편입니다. 유출을 막아보려는 사고 당사자 BP社의 시도는 몇 번에 걸쳐 실패를 거듭하고 있고 연방정부는 말 그대로 속수무책입니다.
미국인들의 분노가 점차 정부를 향한 반감으로 치닫고 있고 그 한 가운데 오바마 대통령이 있습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게 인간이라지만 오바마는 참 운도 없습니다. 하필이면 멕시코만 원유유출 사고 바로 직전 미국 연안에서의 원유채굴을 늘리겠다는 정책을 대통령 입으로 직접 발표까지 한 것입니다.
(사고 이후 오바마는 부랴부랴 6개월간 미국 해안 원유 채굴을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했는데 이마저도 6월22일 뉴올리안즈 연방 판사에 의해 거부됐습니다)
여기에 그렇지 않아도 환경파괴 회사로 찍혔고 이번 사고의 당사자인 BP사가 미워죽겠는데, 연방정부를 대표한 해안경비대 대장이란 사람은 “BP말고 원유유출을 막을 기술을 누가 갖고 있겠는 가“라며 정부의 무대책을 자인해 버리자 미국의 여론이 폭발했습니다
사고 초기엔 원유유출을 다루는 오바마 행정부의 능력과 태도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미국인들이(5/4~5/5 오바마 행정부가 사고를 잘못 다루고 있다:29% -폭스 뉴스-) 원유유출이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자(5/21~5/23 잘못다루고 있다:62%-CNN-) 심각한 수준의 민심 이반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오바마 대통령 지지율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50% 안팎을 오락가락 하는 상황에서 이 정도의 민심 이반은, 특히나 중간 선거를 앞두고 심각한 수준이라고 미국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중간선거(11월) 6개월 전 현직 대통령의 지지율이 50%이하일 경우 2차대전 이후 대통령 소속 정당이 중간 선거에서 승리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나섰습니다.
1년 만에 처음으로 기자들과 자유 질의 응답 형식의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이 직접 책임지고 사태를 감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과오가 있었음을 다음 세가지로 정리했습니다.
1.사전에 원유유출로 인한 최악의 상황이 일어날 수 도 있다는 잠재적 시나리오를 예측하지 못했다.
2.석유회사와 연방정부간 부적절한 관계를 개혁하는데 필요한 충분한 입법을 하지 못했다.(의회 청문회 과정에서 석유회사와 연방정부간 규제를 놓고 벌어진 부적절한 관계가 속속 드러나고 있음)
3.유출되고 있는 원유의 정확한 규모를 측정하는데 실패했다.
그러면서도 연방정부가 사태를 안이하게 생각해 느슨하게 대응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는 사실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의 주장이라고 일축하고 BP社가 2백억 달러에 이르는 사고 수습 기탁금을 내도록 유도하기도 했습니다.
사고 발생초기부터 현재까지 오바마의 대응을 가만히 지켜보면 대통령의 언급 한마디 한마디와 연방정부의 대응은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물론 제 주관적 견해입니다만) 그런데 미국민들의 분노 특히 연방정부를 대표하는 대통령을 향한 분노는 재난지역 주민은 물론 미 전국에 걸쳐 가라앉기는 커녕 더욱 거세지는 형국입니다
왜 그럴까?
미국도 우리정치 현실과 크게 동떨어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모든 사안의 최종 책임자인 대통령을 향해 무조건 책임지라는 정서가 미국민들과 우리국민들 생각의 공통점 아닌가 하는 느낌입니다. 화는 나지만 합리적인 미국인들 답게 이번 원유유출 사고의 책임이 오바마 행정부에 없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사고 이후 처리는 모두 대통령 책임이라는데는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게다가 미국은 1989년 엑손 발데스 원유유출 사고이후 대통령에게 사고방지와 사후 유출 원유 제거를 위한 포괄적 권한을 부여하는 법을 통과시킨 바 있습니다. 이번 사고에 꼭 부합하는 포괄적 권한을 갖고도 왜 이것밖에 못하냐는 정서가 강한 것 같습니다
다른 이유로는 자존심의 상처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명실상부 최강국인 미국이 원유유출의 양 조차도 제대로 측정해 내지 못하고(유출량 측정이 중구 난방이다 보니 적절한 대응과 향후 예측이 갈팡질팡일 수 밖에 없습니다) 유출 차단 시도는 번번히 실패하는가 하면 연안 원유 유출 사고 경험이 있는 외국의 도움까지 청하는 현실이 미국인들의 자존심을 세게 건드린 것입니다.
미국인들의 분노의 이유를 또 한가지 꼽자면 너무 똑똑하고 합리적인 대통령에 대해 느끼는 정서적 이질감이 눈앞에 벌어지는 원유유출 참사와 오버랩 되면서 분노를 증폭시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 대통령 당신 똑똑한데 그런데 이런 국가적 재난앞에 당신이 한 게 뭐 있어“ 하는 정서 말입니다
미국인들도 대통령이라고 해서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냐고는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리더십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 큰 것 같습니다.
정치적 반대자들의 공세는 집요합니다.
공화당이 내세우는 대표적인 선전문구는 “이번 멕세코만 원유유출 사고는 오바마의 카트리나다“입니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루지애나의 뉴 올리안즈를 덮쳤을 당시 부시 대통령은 허리케인 피해 상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나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아 상황을 잘 모른다”는 황당한 답변으로 곤욕을 치렀고, 말 뿐 아니라 그야말로 형편없는 연방정부의 대응으로 피해를 오히려 키웠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후 선거에서 공화당 완패의 주요 원인으로 카트리나 대처가 꼽히기도 합니다. 카트리나에 한이 맺힐 만도 한 공화당이 자신들이 잘못한 대처를 다시 떠올리게 하면서까지 오바마 공격에 열심입니다.
현재까지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정리해보면 왜 좀더 적극적으로 사고처리에 개입하지 않았느냐,뭔가 리더십을 보여줬어야 했다라는 비판이 주를 이룹니다. “우리는 정치인이 아닌 지도자를 원한다” 식입니다.
심지어 일방주의와 구설수로 숱하게 비판받았던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조차도 9/11 사태 당시 미국인을 단결시킨 리더십을 보여주지 않았냐는 것입니다.
부시 전 대통령의 실정 덕에 압도적으로 당선된 오바마 대통령으로선 자존심 상할 일이겠지만 사상 최악의 원유 유출이라는 국가 위기상황에서 합리적이고 명석한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는 미국민들이 믿고 의지하고 그리고 따를 수 있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기자회견과 현장방문으로 직접 사고를 감독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오바마 대통령은 며칠 침묵을 지키다 새로운 정국 구상을 들고나왔습니다. 6월 2일 피츠버그에 있는 카디지 멜론대학 연설을 통해 경제회복이라는 자신의 아젠다를 계속추진하겠다고 역설합니다
“물론 원유유출을 막는게 최우선 과제지만 원유율출로 인한 위기, 중동과 한반도 위기가 미국 경제를 재건하려는 자신의 계획을 변경시키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6월11일에는 생중계된 백악관 로즈가든 연설을 통해 “소상공인들의 신용회복을 위한 법안을 마련했으며 이는 미국 경제회복의 또다른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정치적 위기상황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입장에서 특히 불과 다섯달도 채 남지않은 중간선거를 앞두고 상황타개에 나선 것인데 핵심으로 들고 나온 것이 경제입니다.
중간선거에 대해서도 직접적이진 않지만 경제에 대한 자신의 미래 비전과 과거 실패한 경제정책과의 선택이라는 점을 유권자들에게 호소하고 싶어합니다.
멕시코만 원유유출로 촉발된 연방정부의 대응 논란에서 벗어나 그동안 공들인 경제회복에 유권자들의 관심이 모아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람이 포함된 전략같습니다. 다만 자국의 대통령에게 주어진 정책수행자 역할 그 이상을 요구하는 미 유권자들에게 “이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클린턴 전 대통령이 써먹은 마법의 방망이가 통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숩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직 담배를 끊지 못했다고 합니다. 워싱턴 백악관 한 켠에서 담배한대 피워 문 오바마 대통령을 상상해 봅니다.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지 않을까요
“참 대통령 해먹기 어렵네..”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