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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C연수기 4 = Soccer Par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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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 DC의 조지타운대학에서 연수중인 동아일보 이기홍입니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어느새 돌아갈 날이 코 앞에 다가왔습니다.
그동안 보고 느낀 이것 저것을 말씀드리려다보니 너무 피상적인 관찰기라서 송구스럽기만 하네요.

저도 미국에 오기전에 ‘Soccer parents’란 표현을 들어봤습니다.

한국에서의 자녀들 과외활동 뒷바라지 못지 않게, 미국에서도 부모들이 자녀들

의 방과후 활동 뒷바라지에 여간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게 아니라는 설명과 함

께 사용되는 표현이었지요.

저도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이른바 ‘Soccer parent’가 되었습니다. 인터넷이

가설되자 마자 검색을 통해 아이들이 축구를 할 수 있는 ‘마당’이 없나를 찾아

봤습니다. 또 아이들이 다닐 학교에 가서 입학 등록 절차를 밟은후 행정직원에

게 물어보니, 학교에는 축구팀이 없지만 지역마다 축구팀이 활성화되어 있다

고 설명해주더군요.

곧 인터넷으로 제가 사는 지역의 소년 축구리그에 큰 아이를 가입 시켰지요.

예를들어 fairfax county라면 `fairfax youth association` 식으로 되어 있는 겁

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제가 미국 도착 직후 했던 일들중 가장 잘한 일중 하나

가 아이를 축구 리그에 가입시킨 것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한 시즌(보통 9월에서 11월초가 가을시즌, 4월에서 6월까지가 봄 시즌입니다)

에 회비가 90달러 가량입니다.

한 리그에 각 연령별(유치원에서 중학생 나이까지)로 10여개씩의 팀이 구성

돼 있습니다.팀별로 매주 주중에 이틀씩 모여 연습을 하고 토요일에 다른 팀들

과 돌아가며 시합을 합니다. 시즌 종료후에는 올스타를 뽑아 다른 지역 올스타

들과 토너먼트를 하고요.

우선 함께 어울려 연습하고 놀다보니 아이가 금방 팀원들과 친해지더군요. 시

즌 초반엔 제가 코치 옆에 붙어 서서 코치의 지시사항을 번역해서 알려줘야 했

지만 몇 달 지나니 그럴 필요없이 눈치로 알아 차리더군요. 학교 친구들 보다

축구팀원들과 더 친해지는 것 같아요.

사실 미국의 잔디 운동장은 부러운 점중 하나입니다. 학교는 물론 공원과 지

역 곳곳에 여러 곳의 잔디 운동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 상당수 잔디 운동장

이나 공원은 ‘빛좋은 개살구’더군요. 잔디 관리상태가 그리 좋지 않더군요. 게

다가 야생 기러기와 오리들이 바글 대서 연못이나 강이 가까이에 있는 잔디밭

은 배설물이 지천으로 널려 있습니다.

또 상당수 공원 잔디밭에는 애견 배설물도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개를 끌고

산책을 다니다나 개의 배설물 뒤처리를 하지 않고 가는 사람들이 아주 많지는

않아도, 꽤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도 몰상식한 애견가들이 적지 않더군요. 잔

디밭에 오물이 많다보니, 이곳 사람들도 “잔디밭은 그냥 예쁜 색깔을 구경하라

고 있는 거지, 들어가서 놀기엔 적당하지 않다”고 말하더군요.

물론 아이들 축구리그에서 사용하는 잔디운동장은 시즌이 시작 되기전에 청

소를 해서 그런지 그런대로 깨끗합니다.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면 저는 아이 축구 연습과 시합을 보면서 미국인들

이 자녀에게 쏟는 열정을 느끼곤 했습니다.

우선 축구팀의 코치와 보조코치들은 모두 팀원의 아빠, 엄마들입니다. 무보수

로 자원봉사 하는 거지요. 부모중에서 자원자를 뽑아서 시즌 시작전에 몇 번씩

따로 모아서 코치 훈련을 시키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그냥 노는 거겠지…’라

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다양하고 전문적이며 효과적인 연습방법이 동원되더

군요. 코흘리개 아이들의 축구 연습이지만 코치 아빠 엄마들의 열정은 보통이

아닙니다.

주중 연습은 저녁 5시반경부터 1시간 가량 하는데, 아이들이 연습을 하는 동

안 부모들은 운동장 옆에 접이식 의자를 펴고 앉아 기다립니다. 아빠들이 오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퇴근하자마자 오는 거더군요. 주5일의 퇴근후 시간중 최

소한 이틀은 아이 축구연습에 할애하는 것입니다.

물론 ‘귀중한 토요일 낮시간’의 대부분도 아이 축구시합에 바쳐집니다. 토요

일에 시합이 열리면 월드컵 경기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열기가 뜨겁습니다. 이겨

도 그만 져도 그만인 리그내 다른 팀과의 친선시합, 더구나 헛발 차기가 부지기

수인 초등학교 저학년들의 시합이지만 코치와 부모들의 응원 열기는 대단합니
다.

경기 시간 내내 양팀 코치들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고함을 지르며 선수들을

지도하고, 부모들도 보통 극성 응원을 하는게 아닙니다. 마치 월드컵 결승전의

감독들처럼 흥분해 있는 코치 아빠들을 보면 재미있습니다. 물론 시합만 끝나

면 이겼는지 졌는지 조차 까먹을 정도로 잊어버리지요.

흙먼지 날리는 학교 운동장, 그나마도 일요일이면 문을 닫아서 담을 넘어 들

어가서, 여러 팀이 섞여서 축구를 하거나, 차 다니는 동네 골목길에서 담장의

‘반동(바운스)’을 이용해가며 축구를 하던 우리 어린 시절과 비교하면 부러운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아이팀 코치의 경우엔 엄마와 형까지 축구팀을 위해 온갖 일을 다합니

다. 주중 연습이 끝나고 아이들이 돌아가면 코치는 잔디밭에 널린 연습도구들

과 공을 챙기고 그의 부인은 토요일 시합을 위해 잔디밭에 라인을 그리곤 합니
다.

“당신네 온 가족이 둘째 아들의 축구를 위해 헌신하는 것 같다”고 하자 그 코

치가 웃으며 대답하더군요.

“Eric(아이 이름)이 벌써 9살이다. 이제 조금 더 크면 아빠 엄마 보다는 친구

들의 세계로 들어갈 것이다. 내가 아이와 함께 즐겁게 놀면서 뭔가를 해줄 수

있는 시간은 정말 짧은 것 같다. 아이들 축구팀의 코치를 해줄 수 있는 시간도

얼마 안 남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