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보기

운전 초짜의 미국 면허 따기

by

국내에서 면허를 딴 게 불과 지난해 11월이었을 정도로 내 운전 경력은 짧았다. 그나마도 해외연수에 대비해 급조된 면허였고, 그 뒤에도 자동차를 구입하지 않아 운전 경험을 별로 쌓지도 못했다. 같은 동네 사는 처제 부부의 차를 빌려 주말에 잠깐씩 운전을 해본 게 거의 전부였다. 장거리 운전이라고는 출국(7월28일) 직전 폭우 속에서 3시간 거리의 고향을 다녀온 게 전부였다. 이런 내게 낯선 미국 땅에서 운전을 한다는 일은 여간 성가시고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미국 땅에서 처음으로 운전대를 잡아본 건 입국 다음날인 29일 아침이었다. 자동차와 세간살이를 우리한테 넘긴 분의 안내로 렌터카를 인수하러가는 길이었다. 렌터카를 인수하는 곳은 입국 첫날 묵었던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은 ‘랄리-더램(RD) 국제공항’ 인근에 있었다. 호텔에 우리를 픽업하러 온 그 분은 차 열쇠를 선뜻 내게 건네줬다. 어차피 몰고 다녀야할 차니, 빨리 익숙해져야하고 차 상태를 점검도 해봐야하지 않겠느냐는 취지였다. 한국에서 몰아본 차(트라제)와 비슷한 ‘크라이슬러 밴-닷지(dodge)’여서 운전하는 게 크게 어렵지는 않았지만, 미국 현지서 처음 차를 몰아본다는 긴장감에다, 시차 적응을 못해 멍한 상태여서 좀 허둥댔다.

한국에서 면허증을 따고, 국제운전면허증을 만들어왔기 때문에 미국서 운전을 할 수는 있지만 자동차 보험료를 아끼려면 미국서 다시 운전면허를 따야한다는 건 이미 상식처럼 널리 알려져 있는 듯하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고 성가시더라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미국 현지 자동차 시험에 관한 사항은 국내에서부터 이미 대략 듣고 있었다. 노스캐롤라이아(NC) 지역 한인들의 정보 교환 인터넷 카페인 ‘NC Visiting’을 통해서였다. 필기 시험에 나오는 문제집도 이미 받아둔 터였다.

미국 자동차 면허를 따기 위한 도전은 입국 일주일만인 8월3일에 이뤄졌다. 전날 우연찮게 연락이 닿은 한국 분이 안내를 해주었다. 운전면허 시험을 본 곳은 랄리시(Raleigh City) 아벤트 페리가(Avent Ferry Rd.)에 있는 DMV였다. DMV는 ‘Division of Motor Vehicles’의 약자로 자동차 면허시험소격이다. 안내를 맡아준 분은 시험 코스를 한 바퀴 돌아봐 주면서 실기시험(Road Test) 때 조심해야할 사항들을 일러 주었다. 제한 속도를 철저하게 지킬 것, 차선을 바꿀 때 ‘사이드 미러’로만 보지 말고, 어깨 너머로 뒤를 쳐다볼 것, 후진할 때 뒤를 쳐다보면서 할 것 등이었다.

3일 오전 간단한 접수과정을 거친 뒤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치른 첫 관문은 시력검사였다. 안경점에서 시력 검사하는 것과 비슷해 스크린에 비치는 영어 알파벳을 읽는 시험이었다. 시력검사와 동시에 교통표지판을 알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간단히 테스트도 한다. 표지판에 적힌 영어를 읽는 수준의 아주 간단한 절차였다. 별도 내용이 없는 표지판의 의미를 묻는 질문도 있었는데, 이 또한 단순한 시험이다. 그 뒤 컴퓨터 모니터상에서 이뤄지는 필기시험을 치렀다. 25개 문항중 20개를 맞추는 내용으로 그리 어렵지 않았다. 더욱이 한글로 시험을 볼 수도 있도록 돼 있어 편리했다. 중간에 두 문제를 틀리고 22번까지 진행되자 시험은 중단되고 ‘합격’을 알리는 표시가 떴다. 한 문제도 안 틀렸다면 20번에서 끝났을 터였다.

필기 시험 뒤 곧바로 실기 시험(직접 운행해 보는)을 치렀다. 내가 몰고 간 렌터카로 직접 코스를 도는 것이었다. 좌회전 신호에 대기하기 위해 차선을 바꿀 때 너무 빨리 들어간 점, 후진을 할 때 뒤를 제대로 살피지 않은 점,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지 못한 점 등을 지적받아 이날은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다음주 화요일(11일)에야 다시 시험을 치를 수 있다고 했다. 한번에 합격 못하는 바람에 애초 2주로 잡았던 렌터카 대여 기간을 더 연장해야 했다. 첫날 시험에서 만난 시험관은 전형적인 양키 인상의 깐깐한 아저씨였다. 면허 시험장을 빠져 나와 우회전 한 뒤 제한 속도 45마일 구간에서 제대로 속도를 못내자 한국말로 “빨리 빨리”라고 외치기도 했다.

일주일 만인 11일 면허 따기 도전에 다시 나섰다. 전주에 예약해 둔대로 오전 9시에 치르는 도로주행 시험이었다. 지난번과 달리 이날 동승한 시험관은 마음씨 좋아 보이는 ‘흑인 할머니’였다. 마음이 한결 편했다. 이틀전과 이날 이른 아침 코스를 몇 번 돌아본 점도 마음을 좀 편케 한 요소였던 듯하다.
운전 시작 전 시험관 지시에 따라 ‘스위치 온’ 상태에서 지시에 따라 좌우 깜빡이를 켜는 등 간단한 자동차 조작을 해보였다. ‘Right’ ‘Left’ 따위 간단한 영어 지시였다. 곧 이어 출발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일단 후진해서 주차장에서 차를 뺀 뒤 나오면서 좌회전, 큰 길에 들어서면서 우회전이다. 이 때 제일 바깥 차선을 타기 때문에 곧 이어지는 좌회전에 대비해 차선을 바꿔야 한다. 응시생이 알아서 바꾸는 게 아니라, 시험관이 곧 지시를 내려준다. ‘When you can, change the lane’식의 간단한 영어다. 이날은 시험 시작전에 영어를 잘 못하니 천천히 말해달라는 부탁을 미리 해놓기도 했다.

면허 시험장을 빠져나온 뒤 제한 속도 45마일에 약간 못 미치는 정도로 속도를 내서 차선을 왼쪽으로 바꾼 뒤 좌회전 대기했다. 신호등 표시에 따라 좌회전을 한 뒤 다시 지시에 따라 오른 쪽으로 차선을 바꾼 뒤 직진하면 ‘스쿨존’으로 들어선다. 여기서 제한 속도는 시속 25마일이다. 천천히 가다가 지시에 따라 길 오른 편에 차를 세운 뒤, ‘쓰리 포인트 턴’(왼쪽으로 틀었다가 후진한 뒤 다시 왼쪽으로 돌려 차를 뒤로 완전히 돌리는)해서 왔던 길로 돌아오는 코스다.

첫 시험 때와 달리 좌회전 직전에 적당한 곳에서 차선을 바꾸었고, 제한 속도를 잘 지켰다. 후진할 때 확실하게 뒤로 쳐다봐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한 가지 걸렸던 게, 쓰리 포인트 턴할 때 뒤에 오는 차를 미처 못 봐 한차례 왔다갔다하면서 좀 허둥댔던 일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시험관을 따라 DMV 사무실로 따라 들어가 지정된 ‘8번’ 자리에 앉으니, 시험관이 “You did good!”이라고 한다. 휴~. 드디어 합격이다.
시험관은 4달러를 내라고 하더니, 사인을 하라면서 조그만 쪽지를 내줬다. 사인을 한 뒤 지정받은 곳으로 가니, 사진을 찍고 임시 면허증을 내 준다. 사진을 박은 플라스틱 재질의 정식 면허증은 일주일이나 열흘 쯤 뒤에나 우편으로 배달된다고 했다. 면허증을 받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오려는데, 동행했던 아내가 임시증에서 잘못된 점을 발견했다. 거주지 주소가 잘못 적혀있었다. 사무실 쪽에서 집 주인 주소로 잘못 입력했던 것이었다. 하마터면 정식 면허증이 엉뚱한 곳으로 배달될 뻔했다. 사무실에 가서 정정을 요구했더니, 아까 만난 시험관을 기다리란다. 5~10분 가량 기다려도 해당 직원이 오지 않자 옆에 앉은 직원이 대신 처리를 해주는데, 사인을 하고 사진을 찍는 절차를 다시 거치도록 했다.

운전 면허는 겨우 땄지만, 보험에 들고 인수 차량을 정식 등록하는 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국내에서 운전 경력 3년 이상을 쌓지 않으면 보험료가 꽤 비싸다고 한다. 돈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짧은 운전 경험 탓에 앞으로 우여곡절을 많이 겪을 듯하다. 벌써 그런 일이 시작되고 있다. 안해보던 운전을 하려니 겪는 일마다 평생 처음인 게 많다.

면허를 딴 날, 집(랄리시 마르테로가) 근방에 있는 ‘윌리엄 움스테드’ 공원에 갔을 때였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차에서 내리는데 아내가 ‘어, 이게 뭐야?’라며 깜짝 놀란 듯 목소리를 높였다. 오른 쪽 뒤바퀴에 못이 하나 턱 박혀 있는 것이었다. 생전 겪어보지 않은 일이라, 이걸 어찌해야할지 몰랐다. 타이어 옆 부분이라 빼도 되지 않을까 싶어 나뭇가지로 뽑아보려고 해봤더니 못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당장 바람이 새지는 않는 것 같았다. 공원에서 좀 쉬었다가 집에 와서 미리 소개받아 놓은 자동차 정비소의 한국인 기술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못을 빼면 바로 바람이 빠지니, 그냥 정비소로 오라고 한다. 못을 빼지 않은(못한게?) 게 천만다행이었다. 타이어에 박힌 못을 그대로 둔채 정비소로 가서 펑크를 때웠다. 자동차 펑크 때우는 걸 본 것도 내겐 처음이었다. 못을 펜치로 빼니, 쉬익 하며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못이 박혔던 자리에 젤 형태의 적갈색 고무재질을 채워넣는 걸로 펑크 때우는 일은 끝일 정도로 간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