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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석사에서 배우는 것-런던 석사 이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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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학교에서 어떤 과정을 밟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선택한 골드스미스 런던대학의 ‘미디어 앤 커뮤니케이션’ 석사 과정에서 지금까지 배운 것에 대해 한번 정리해볼까 한다. 작년 8월 처음 이 학교의 프리세셔널(pre-sessional) 코스에서 5주간 학생들에게 가르친 것부터 돌이켜봐야겠다. 그때 배운 것들이 이 학교의 전반적인 커리큘럼과 모두 맞물려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프리세셔널 코스는 영어 글쓰기가 익숙치 않은 국제 학생들에게 아카데믹 잉글리쉬를 가르치는 과정이지만, 단순한 영어 회화나 영작을 가르치는 과정은 아니다. 

5주간 학교는 크게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과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두가지 주제를 통해 강의와 토론, 글쓰기 수업을 진행했다. 이 외에도 ‘영화’와 ‘예술사(Art history)’ 중 한가지를 추가로 선택할 수 있었고, 일주일에 두세번 두 그룹으로 나눠 강의와 토론을 진행했다. 처음엔 왜 하필 앞의 두가지 주제를 전공과목이 모두 다른 학생들에게 똑같이 5주 내내 가르치는지 알 수 없었지만, 9월에 본격적인 학기가 시작되고 강의를 들으면서 그 이유를 깨닫게 됐다. 현대 사회를 관통하는 이 두가지 큰 흐름은 인문학이든 사회학이든 정치학이든 예술학이든 모든 학문의 가장 기본적인 배경지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미디어와 문화이론, 예술 쪽에 강점이 있는 이 학교는 골드스미스 학생들이 기본으로 지녀야할 ‘교양 지식’으로 포스트모더니즘과 세계화라는 두가지 화두를 던진 것이다. 이는 석사 뿐 아니라 학사 과정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또 데미안 허스트 같은 YBA(Young British Artists)가 등장했던 학교답게 영화나 미술 등 예술에 대한 상식도 갖추길 원했다.(YBA는 1980년대 말 등장한 영국의 젊은 예술가들이란 뜻으로 골드스미스 출신들이 주축이 돼 자유분방하고 파격적인 예술로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포스트모더니즘과 관련해선 프랑스 사회학자 장 리오타르, 미쉘 푸코, 롤랑 바르트, 자크 라캉, 장 보드리야르 등과 주디스 버틀러 같은 페미니스트들의 저서 일부를 읽었고, 세계화와 관련해선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와 인도 출신의 미국 예일대 교수 아르준 아파두라이의 글이 중심이 됐다. 이 글에서 이 학자들의 이론까지 제대로 잘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배우면서 느낀 것은 학교가 편집해 준 짧은 교재만으로도 이 학자들이 해당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잘 설명되었다는 점이다. 대학 시절 철학을 복수전공하면서 동서양의 다양한 철학자들을 접했지만, 현대 철학과 사회학자들은 매우 난해하다는 느낌 때문에 제대로 탐독하지도 못했고, 명확히 이해하지도 못했었다. 어렴풋한 기억만 남아있는 현대 철학을 좀 더 쉽게 접하니 고대, 중세, 근대철학과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면서 좀더 쉽게 이해되었다. 특히 이들의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글로 읽었을 때보다 영문으로 읽을 때 의미가 더 분명하게 다가왔다.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에선 실용적인 교육을 너무 강조하다보니, 인문계열의 유럽 학생들이 ‘교양서’로 읽는 유럽의 현대 철학, 사회학자들에 대한 공부는 별로 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웠다. 이들이 말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그대로 집약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이런 흐름은 서양에는 우리보다 훨씬 더 이전부터 생겨났고 이는 세계화를 통해 아시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런 사회적 변화가 우리나라에는 급속한 경제성장과 함께 훨씬 빨리 진행되면서 크고 작은 갈등과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거시적으로 바라보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이후 본격적인 석사 과정에서 배우게 된 내용들은 훨씬 더 방대하고 다채롭다. 내가 택한 과목은 전공과목인 ‘Media and Cultural Theory'(미디어와 문화 이론)와 ‘city and consumer culture'(도시와 소비자 문화) ‘promotional culture'(홍보 문화) ‘political economy of the media'(미디어 정치경제학) 등이다.

먼저 이 학교 미디어학과에는 영국에서 발전한 사회학의 한 분야인 문화이론으로 유명한 교수님이 포진해 있다. 그래서 미디어를 문화학과 사회학을 바탕으로 이해하고 접근한다. 과목별로 배웠던 핵심 내용을 지금 생각나는대로 간략히 적어본다면, 전공과목인 미디어&문화이론에서는 레이몬드 윌리엄스의 문화이론, 하버마스의 공적영역, 미디어와 국가, 미디어 제국주의, 미디어와 몸, 미디어와 민족정체성, 미디어와 인터넷 등을 주제로 배웠다. 문화이론 쪽에선 유명인사이신 안젤라 맥로비 교수님의 ‘도시와 소비자 문화’ 과목에선 현대사회에서의 도시의 의미, 소비의 의미, 사회 계층과 문화 차이 등을 그동안 생각해보지 못했던 관점으로 배울 수 있어 흥미로웠다. 데이비드 하비의 포스트 포디즘, 피에르 부르디외의 문화 자본(cultural capital)과 상징 권력(symbolic power) 같은 현대 사회학 개념을 좀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또 미디어 정치경제학 분야에서 영국을 대표하는 학자 중 한분인 제임스 커런 교수님이 개설한 미디어 정치경제학은 미디어와 국가, 미디어와 경제 구조간의 권력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하는지 선명하게 보여주는 알찬 수업이었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과 함께 요동치는 힘의 관계, 그리고 위협받는 저널리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전세계, 특히 선진국에선 어떻게 하고 있는지 들여다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한국말로 제대로 번역하기가 좀 어려운 ‘프로모셔널 컬처’ 수업은 패션부터 정치까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많은 광고와 홍보로 보이지 않는 곳까지 뒤얽혀있는지 깨닫게 해주었고, 미디어를 통해 이런 문화가 어떻게 확산되고 사회의 본질과 시스템까지 바꾸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과거에 국가나 정치인은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미디어를 통제하거나 이용하려했지만, 지금은 미디어에 효과적으로 보여지기 위해 감성에 호소하고, 포퓰리즘 정책을 만들고, 자신을 연예인화 시키는 정치인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 등을 학문적으로 분석했다. 

지난 연수기에 얘기했던대로, 모든 과목은 매주 각 1시간~2시간 강의와 곧바로 이어지는 1시간~1시간30분 정도의 그룹 세미나로 구성된다. 많은 주요 강의들이 학사 과정 학생들과 함께 듣도록 개설되는데, 그만큼 대학생들도 질 높은 수업을 듣는 셈이다. 대학원생들만 참여하는 그룹세미나에선 매주 30~50페이지 분량의 자료를 읽어와야 한다. 누가 검사를 하는 건 아니지만, 읽지 않으면 토론에 참여할 수도 없고 평가에 반영되는 6000단어의 에세이를 쓸 수도 없다. 덕분에 전반적인 수업 내용과 흐름을 파악하고, 관심 분야에는 좀 더 깊이 있게 파고 들 수 있었다. 이외에도 학문적 글쓰기와 연구방법론에 대한 여러 강의들이 개설돼 영어 글쓰기에 대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전반적으로는 이 과정을 통해 현장에서 기자로서 보고 듣고 하고 있었던 일을 사회학적, 정치학적 맥락에서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지난 3월 말로 2학기를 끝내고 지금은 방학 기간이다. 말은 방학이지만, 방학이 끝날 무렵에 각종 과제 제출 마감(6000단어 에세이 각 2개)과 시험(1500단어 2개)이 기다리고 있다. 1만5000단어를 써야하는 논문은 지금 생각할 겨를이 없지만, 지도 교수님과 약속한 분량을 중간 점검 기한까지 써내려면 에세이를 끝내고도 책을 놓을 수 없다. 런던에 화창한 봄날씨가 계속되는 요즘, 이보다 더 한 고문은 없다. 하지만, 그동안 짬짬이 시간을 내 이곳 저곳 여행을 꽤 많이 다녔기 때문에 불평을 할 처지는 못된다. 다음 편에는 틈틈이 유럽여행 다닌 이야기를 풀어 놓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