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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야기(에세이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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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에세이(Essay) 쓰기



영국 대학원 수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에세이 쓰기입니다. 앞서 얘기한 것 처럼 제 경우 기말시험 대신 과목당 3천자 에세이 2개를 내야 했던 탓에 상당한 공을 들여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첫 에세이를 쓸 때의 막막함은 지금도 생생하기만 합니다. 처음 것은 ‘Historical Perspectives: Europe since 1945’라는 과목의 ‘What do you consider to have been the most significant medium and longer-term effects, economic, social or political, of the Second World War for Europe?’이었습니다. 사실 2차대전에 대해선 책이나 영화로 많이 읽고 들었지만 막상 그 전쟁이 유럽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를 정치, 경제, 사회 분야별로 파악하려니 정말 막막하더군요. 교수가 제시한 참고도서부터 무작정 파고들려니 어느 책부터 어디를 읽어야할지, 전부 2천여 페이지에 달하는 참고도서와 논문 앞에 질려버릴 것 같은 심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인터넷으로 우리 글로 된 관련 논문을 조회해 읽어본 뒤 이를 참고로 참고도서에서 관련부분만 찾아 읽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며칠동안 인터넷을 이 잡듯 뒤졌지만 2차대전이 유럽에 미친 영향을 논한 글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더군요. 정말 초조하더군요. 귀중한 시간만 낭비했다는 생각에 이젠 어떻게 하지라는 절망감마저 밀려들더군요. 할 수 없이 정공법으로 방향을 전환했습니다. 일단 참고도서 읽기에 들어갔습니다. 작심하고 토요일 아침부터 책을 읽기 시작하니 아, 글쎄 답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읽으면서 주요 포인트를 요약해 따로 메모하니 한 사흘만에 전체적 윤곽이 드러나더군요. 그후부터 책읽기의 속도도 상당히 빨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1주일만에 참고도서의 관련부분을 다 독파하고 하니 괜히 겁을 집어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나 컴퓨터 앞에 앉아 에세이를 시작하려니 또 다시 막막하더군요. 다행히 영문타자는 영국 오기 전부터 틈틈이 연습을 해서 자판은 안보고 치는 수준이었지만 난생 처음 써보는 영문 에세이를 어떻게 써야할지 다시 골치가 아프기 시작하더군요. 일단 메모한 내용을 전부 컴퓨터로 옮겨봤습니다. 이틀 꼬박 걸려 컴퓨터에 옮겨놓고 보니 단어 수가 자그마치 1만5천자에 가깝더군요. 이것을 거의 5분1 수준으로 줄이면서 제 생각의 글로 다시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오더군요. 특히 ‘표절은 절대 안된다’는 교수의 엄포를 생각하면서 원문의 한 문장, 한 문장을 어떻게 다 paraphrase할지 걱정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찬찬히 메모를 들여다보면서 정리를 해보니 글의 순서가 떠오르더군요. 참고로 이 에세이의 목차를 소개해보죠.

Contents



I. Introduction

II. The wounded European Prestige

1.Devastation of Europe

2.The degraded European status

2-1.Fall of European position

2-2.Dependence on the US

2-3.Rise of the Soviet Union

3.The death of colonialism

3-1.Destined to dissolve the Empires

3-2.Anti-colonialism of new superpowers

4.European Division and the beginning of the Cold War

4-1.East-West split: Berlin blockade

4-2.Iron curtain

4-3.Truman Doctrine

III. The European struggle for the restoration of its Prestige

1.The increase of the governments role

1-1.Government involvement

1-2.Keynesian economic theory

1-3.Welfare state

2. The cooperation among states

2-1.Marshall Plan

2-2.Bretton Woods system

2-3.Atlantic Alliance

3.The commencement of European Integration

3-1.Necessity of integration

3-2.European Movement

4.The evolution of the society

4-1.Unity of the social classes

4-2.Rise of woman status

4-3.Scientific advance

4-4.Cultural life.

VI. Conclusion

이 목차를 정하고 이에 맞춰 글을 진행하니 의외로 속도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원문을 그대로 인용할 경우, 각주를 통해 출전을 밝히고 나머지는 paraphrase하는 방식으로 다시 썼습니다만 생각보다 시간은 많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사흘만에 거뜬히 끝을 낼 수 있더군요.



하지만 제가 쓴 글을 그대로 제출하진 않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색한 표현, 비문법적 표현 등 자신이 서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영국 친구들에게 한번 보이고 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보다 10살 이상 어린 영국 애들에게 제 에세이를 한번 봐달라는 얘기가 처음엔 그렇게 쉽게 나오지 않더군요. 한마디로 쑥스럽더군요. 그래도 수업시간에 자주 옆자리에 앉던 Rebeca라는 여학생에게 용기를 내 슬쩍 얘기를 건넸더니 의외로 쉽게 OK하더군요. 학교식당에서 만나 커피를 한잔 대접한 뒤 나란히 앉아 1시간 반 동안 한 문장, 한 문장 점검해나갔는데 정말 어이없는 경우가 속출하더군요. 그렇게 꼼꼼히 제가 점검했을 땐 안보이던 비 문법적 표현들이 어찌 그리 자주 눈에 띄기 시작하던지. Rebeca는 ‘minor problem’이라며 ‘문제는 내용인데 아주 정리가 잘 됐다’고 격려해줬지만 어쨌든 꽤나 쑥스럽더군요. 이처럼 철저한 사후 점검까지 거쳐 제출한 덕분인지 이 에세이의 점수는 70점을 기록했습니다.(제 자랑 같습니다만 나중에 들은 얘기론 70점 이상 고득점자가 3명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이상의 경험에서 제가 느낀 바는 영문 에세이를 쓰는 것과 우리 글을 쓰는 것은 크게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서론, 본론, 결론 식으로 논리적 전개를 하면서 자기 주장에 대한 논거를 철저히 밝히는 형태의 글쓰기는 기자라면 익히 해온 탓에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다만 한글이 아닌 영어로 글을 쓴다는 점이 문제인데 평소 영어 원문을 paraphrase하는 연습을 충실히 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출하기 전 영어 원어민으로 하여금 자신의 글을 한번 읽어 보게 해 어색한 표현 등을 순화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 경우엔 Rebeca이외에도 같은 주제를 발표했던 영국 친구들이 기꺼이 제 글을 점검해줬고 학기 중반에는 학교 영어센터에서 무료로 외국학생들의 에세이 지도선생을 제공, 이 선생님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앞서 이 글에서 소개한 시행착오처럼, 한국 문헌을 보고 난 뒤 영어 에세이 쓰는데 참고하겠다는 생각은 지양해야 할 듯 싶습니다. 서로 딱 맞는 주제를 쉽게 찾을 수 없을뿐더러 있다해도 그것을 번역하는 수고보다 주어진 영어 원문을 paraphrase 하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참고문헌의 인용 등 각주 사용법, 에세이 작성방식은 학기초 원하는 학생들을 상대로 한 설명시간이 따로 있는 게 상례인 만큼 이 시간을 절대 놓치지 말고 반드시 참석해 미리 미리 연습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