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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Car Boots S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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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영국이지만, 살림에 필요한 중고품들을 헐값에 구입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은 곳이 이 나라다. 물가가 비싼 탓에 영국인들이 중고품 쪽으로 눈을 돌리기도 하는 것 같다. 이와 관련해 다른 나라에는 흔치 않고 영국에서만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Car boots sale’이라는 것이다. 말 그대로 집에 있는 물건들을 자기 승용차 트렁크에 싣고 와서 파는 일종의 벼룩시장이다. 물론 정해진 어느 장소가 있고, 일정한 날에 시장이 선다.

이곳 Cardiff 일대에서는 크고 작은 너댓개의 카부츠 세일 장터가 열린다. 가장 규모가 큰 카부츠 시장은 카디프 과일도매시장터에서 열리는데,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에 장이 선다. 매매 대상이 되는 물건에는 아무런 제약도 없다. 책에서부터 장난감, TV, CD, 컴퓨터, 배터리, 옷가지, 그릇 등등 모든 물건을 사고 팔 수 있다.

과일과 야채를 파는 좌판도 있다. 물건을 팔고 싶은 사람은 장터에 들어갈 때 자동차 한 대당 6파운드(1만2천원)를 내면 좌판을 벌이고 장사를 할 수 있다. 물론 물건을 구입하려는 사람은 입장료를 낼 필요가 없다.
카부츠 세일은 학교 운동장이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공장소, 넓은 잔디밭 초원, 대형 주차장 등지에서 열린다. 추운 겨울철에는 실내에서 카부츠 세일 장터가 열리기도 한다. 주로 주말에 장터가 서지만, 주중에 열리는 장터도 간혹 있다.

물건 가격은 역시 벼룩시장이다보니 흥정이 필수다. 여기저기서 ‘It is a bargain’(이건 거의 거저다)이라고 파는 사람들이 외친다. 쭈뼜거리다가 그냥 발걸음을 돌리면 다시 불러 세워서 가격을 깎아주는 일이 흔하다. 하나에 10펜스(2백원) 정도 밖에 안하는 잡동사니 물건들을 팔아봤자 돈 몇푼 벌기 힘들텐데 왜 주말 뙤약볕 속에서 물건을 팔러 저렇게 많은 영국 사람들이 장터에 모이는 것일까? 처음에는 재미삼아 그러는 것인가 했는데, 여기서 좀 더 살다보니 돈에 관해서는 영국 사람들이 철두철미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사실 영국의 대표적인 할인점인 Tesco 매장에 가보면 젊은 사람이고 노인이고 할 것없이 단돈 1펜스(20원)짜리도 주머니에 잔뜩 넣고 다니면서 계산할 때 사용하는 풍경을 자주 볼 수 있다.

카부츠 장터에 가면 이른바 ‘great value’ 물건을 운 좋게 건질 수도 있다. 진품을 헐값에 잡을 수 있는 것인데, 1백년 전에 만들어진 앤티크 바이올린이나 도자기, 그릇 등을 단돈 1파운드(2천원)에도, 50펜스(1천원)에도 살 수 있다. 여기 와서 몇 번 장터에 다녀온 뒤로 내 아내가 가장 즐겨하는 것이 바로 카부츠 세일 나들이다. 주말만 되면 카부츠 타령이다. 몇 번 가서 재수 좋게 시장가격 20 파운드를 웃도는 목걸이와 그릇 등을 단돈 1파운드에 사더니 단단히 재미를 붙인 것이다. 이 장터에 가보면 볼만한 어린이 책도 많다. 정가 5파운드 짜리인 깨끗한 상태의 책을 단돈 20펜스에 살 수도 있다. 아내가 그러니 아이들이라고 가만있을 리가 없다. 어느 날은 우리집 꼬마 둘이서 자기들이 갖고 놀던 장난감 10여개를 들고 가 바닥에 즉석 좌판을 깔기도 했다. 10펜스, 20펜스 이런 식으로 대충 종이에 적은 가격표를 장난감에 풀로 붙여놓고 장사를 시작한 것이다. 물론 장난삼아 한 것이고, 좌판을 벌인지 약 10분만에 철시했다.

1980년대 초에 영국의 어느 지역에서 처음으로 카부츠 세일 장터가 열렸다고 하는데, 지금은 이런 유형의 장터가 영국 전역에 확산되고 있다. 영국인들의 대표적인 주말 야외활동(Day out)으로 정착되고 있을 정도다. 애초에는 주로 여름에만 카부츠 세일이 열렸으나 요즘에는 1년 내내 장터가 서고 있다. 특히 영국에서 카부츠 세일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영국에서 자기가 사는 지역 어느 장소에서 카부츠 세일이 열리는지는 http://www.carbootjunction.co.uk에 들어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